삼성그룹은 전 계열사가 1등이기를 강요받는다. 하지만 뼈아프게도 1970년대~1980년대 조미료 전쟁에서 대상(옛 미원)에 밀렸고, 세탁기·냉장고·에어컨·텔레비전 등 가전산업에서도 현재 상당수 소비자들은 ‘가전은 역시 LG’라는 의식이 박혀 있다. 삼성서울병원도 이와 마찬가지로 최근 1등 전쟁에서 크게 의욕을 상실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이 작년 말 정부의 ‘의료질 평가’에서 처음으로 ‘최상급 병원 탈락’ 판정을 받은 것으로 지난 24일 알려졌다. 2015년부터 이 평가가 시작된 이래 국내 ‘빅5′ 병원(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서울성모병원·세브란스병원·삼성서울병원) 중에서 최고 등급을 받지 못한 사례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해 기준 보건복지부의 의료질 평가에서 최고 등급(1등급-가)보다 한 단계 낮은 ‘1등급-나’를 받았다. 삼성서울병원을 제외한 나머지 ‘빅5′ 병원과 가천대 길병원·부산대병원·아주대병원·인하대병원 등 총 8곳이 1등급-가를 맞았다. 삼성서울병원은 1등급-나를 받은 28개 그룹으로 강등됐다. 보건복지부가 매년 국내 300여 개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시행해온 의료의 질 평가 기준은 크게 네 가지다. ①환자안전(환자당 의사 수 등) ②진료의 질(뇌졸중 치료 수준 등) ③공공성(중환자실 운영 비율 등) ④지원 활동(입원 환자 비율 등)이다. 기자가 알아보니 삼성서울병원은 환자대기 시간이 너무 길고, 이를 컨트롤할 간호 및 서비스인력이 부족해 결정적으로 1등급-나를 맞았다. 인력을 고용해 환자 정체를 해소해야 하는데 투자 효율화를 위해 이에 대한 투자를 유보했다는 게 병원 안팎의 관측이다. 삼성서울병원은 2016년 4월부터 ‘꿈의 암치료’라 불리는 양성자치료를 시작했다. 양성자치료센터 건립에는 최소 1000억원이 투입됐다. 일부에서는 3000억원이 들어갔다고 보도하고 있으나 실제 금액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밤 10시까지 2교대로 양성자치료기를 가동하고 있지만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이 애초 낮게 설정한 급여 치료비용 때문에 오히려 적자를 보고 있다는 관측이다. 문제는 이런 적자를 메우기 위해 삼성서울병원이 인력이나 신규 장비 도입해 소홀해졌다는 점이다. 삼성서울병원은 2021년 1조6407억원의 의료사업수익(매출)을 올렸다. 2022년도에는 1조7000억~1조8000억원 수준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의료계 관계자는 “고 이건희 삼성회장 시절에는 1등할 생각만 하라며 삼성의료원(주로 삼성서울병원)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지만,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 와병 후부터 이런 기조가 흔들렸다”고 말했다. 삼성의료원은 2011년 10월 25일 이종철 의료원장이 퇴임했다. 사실상 전격 경질이었지만 지금도 함구하고 있다. 이유인즉슨 이건희 회장이 치아가 부실해 틀니를 하고 다녔는데 의료원 산하 치과의사들은 ‘임플란트’ 대신 ‘틀니’를 권했다고 한다. 치과 의료진이 신진, 일류가 아니고 노장파여서 임플란트를 시술한 기술도 의지도 없는 상태에서 이건희 회장은 의사들의 견해만 믿고 틀니를 줄곧 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 나중에 임플란트의 기능적, 심미적 기능이 틀니보다 월등함을 알게 돼 격노한 이건희 회장이 그동안 신뢰했던 이종철 의료원장의 실태를 면밀하게 재고하게 됐다고 한다. 정밀하게 쳐다보니 1위인 서울아산병원과의 양적, 질적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졌음을 깨닫게 됐다. 그동안 번드르르하게 시간이 지나면 아산과의 격차가 줄어들고 1위를 쟁취할 수 있다는 보고들이 허언임을 이건희 회장이 알게 된 게 이종철 전 의료원장의 경질 배경이다. 삼성은 2011년 11월 26일 삼성석유화학 사장을 지낸 삼성 비서실 재무팀 출신의 윤순봉 씨를 삼성서울병원 지원총괄사장에 앉혔다. 이 때부터 삼성서울병원은 ‘의술’보다는 ‘돈’을 따지는 분위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건희 회장 와병 이후 삼성그룹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재용 회장은 선친에 비해 훨씬 의료사업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이재용 회장은 삼성의료원이 1등하는 데에 대한 관심은 없고, 환자커뮤니티나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욕을 듣지 않는 수준으로 관리하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삼성서울병원의 의료의 질 최고등급에서의 하락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전자 외에는 화학, 건설, 조선 분야에 대한 관심도 선친보다 크게 모자란다는 평을 듣고 있다. 지난해 삼성서울병원의 의료수익이 1조7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환자 정체를 해소하는 인프라에 수백억원을 투자했다면 불명예스러운 강등 사태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의 질 평가등급이 낮아지면 삼성서울병원이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이 80억~100억원 가까이 삭감되지만 투자를 줄여 절약되는 수백억원보다는 적은 비용이기 때문에 인프라 추가 투자를 아낀 것으로 본다”고 풀이했다. 의료계를 오래 취재한 기자의 관점에서 삼성서울병원은 ‘홍보력’으로 브랜드를 키워왔다. 의료기관 본연의 ‘의술’보다는 ‘직원들의 친절함’ ‘깨끗한 장례식장’ ‘효율적인 병원정보화’ 같은 진료 외적인 소프트웨어의 힘으로 오늘날의 브랜드파워를 키워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마저도 구심점을 잃고 있다. 의료의 질 평가등급이 왜 낮아졌는지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은 없고, 일부 언론에서만 보도됐으니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겠지하고 관망하는 자세다. 홍보실 관계자는 코로나19 초창기 유행으로 한창 의료계가 힘들 무렵 기자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요즘 병원 예산이 줄면서 홍보 같은 비의료자원에 투입되는 지출이 대폭 삭감 또는 동결됐다”며 “성과급 잔치를 받는 삼성전자에 비한다면 삼성병원은 ‘삼성병자’”라고 자조했다. 홍보 담당자가 기자에게 할 말은 아니었지만 윤순봉 전 사장 취임 이후 지속돼온 ‘탈(脫) 일류지향’의 그림자가 지금 삼성서울병원에 드리워져 있다. 보건복지부는 왜 삼성서울병원의 평가등급이 강등됐는지 언론에 함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삼성의 입장도 감안해야 하고, 의료의 질 평가가 너무나 양적 지표 위주여서 한계가 있음을 자인하는 측면도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삼성그룹의 일원이니만큼 잘 키우면 해외환자 유치 등에서 기여할 측면이 있다. 그보다도 더 많은 의료소비자가 양질의 진료를 받고 삶의 질이 향상될 것이다. 삼성은 현재 모든 진료영역에서 상위권이 아니다. 양성자치료, 일부 장기이식, 심혈관질환 시술 등 일부 잘하는 것만 잘한다. 나머지 영역은 2위권인 1등급-나 병원들과 대등소이하거나 오히려 한참 뒤떨어진 분야도 있다. 의학기자들은 이를 감안해 친지나 지인들로부터 무슨 병에 어디 병원을 가야 하느냐고 질문을 받을 때 컨설팅해준다. 당연히 삼성이 우선순위에 드는 게 생각보다 적다. 보건복지부의 의료의 질 평가등급이 현재 삼성서울병원의 수준을 100% 반영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평가자인 복지부가 삼성을 ‘시범 케이스’로 삼아 긴장감을 주기 위한 목적도 있지 않을까 의심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에서 일류정신이 사라진 점은 국내 의료발전을 위해 안타까운 일이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출자한 삼성서울병원이 공익보다는 수지타산에 치중한다는 것도 비판할 만한 대목이다. 이런 점을 명심하고 삼성은 심기일전해 이번 평가등급 하향을 다시 ‘일류지향’으로 전환하는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23-05-31 19:18:44
2021년 11월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첫 상정돼 지난 4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간호법이 16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국회 재의요구)로 무산됐다. 윤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의 첫 이유로 간호법이 의료 직역 간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간호사 업무 범위를 의료기관에서 지역사회로 넓히는 법안 내용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간호 서비스의 탈(脫) 의료기관화가 국민건강관리에 불안감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에서 간호법을 재의하여 통과시키려면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기 때문에 간호법에 반대하는 여당 의석이 전체의 3분의 1을 넘는 현 상황에서는 재의결의 문턱을 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인다. 당정은 간호사의 표심(票心)을 고려해 간호사 처우 개선 등을 담은 별도 중재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간호법은 국민들의 의료서비스 이용 행태에 중대한 변화를 줄 수 있음에도 너무 피상적으로 다뤄져왔다. 윤 대통령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을 외면하는 상황에서 여야간 진지한 논의나 타협도 없이 야당 일방 주도로 통과됐다. 이 법이 그냥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시행된다면 의료인 당사자는 물론 의료소비자도 적잖은 혼선과 불만을 겪었을 것이다. 법이 시행되려면 체감이 되는 여론화와 그에 따른 타협의 산물이 도출돼야 그나마 법을 지키는 국민의 공감이 형성될 수 있는데 간호법은 그렇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거부권 행사는 안타깝지만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 대다수 언론은 간호법 논란을 보도하면서 “자격증 기준으로 의사는 11만5000명, 한의사는 2만4000명, 간호사는 40만명, 간호조무사는 72만5000명”이라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심의 향방에 관련된 분석을 내놨다. 사람 수로만 보면 여당이 의사 및 조무사의 손을 들어주는 게 결코 부적절하지 않다는 뉘앙스였다. 또 “간호조무사가 간호사 사이에는 ‘신분제’가 있다” “간호사들이 간호조무사에게는 간호스테이션에 들어가 휴식할 기회도 주지 않는다” “간호조무사 자격을 고졸로 제한해 군림하려 한다”는 간호조무사의 하소연 내지 불평등에 정의감이 발현되는 대중심리를 자극하는 보도가 나왔다. 그렇다. 의료계에는 ‘카스트’가 존재한다. 의사를 정점으로 간호사는 홀대를 받았고, 간호조무사는 더 차별받았다. 그러나 세상살이에 높낮이 없는 것은 없다. 직장에는 정규직, 계약직, 일용직이 있다. 연구소에는 박사급, 석사급, 일반 연구원이 있다. 의료계는 의사가 지휘하고 간호사나 다른 의료 직군들은 지원 및 보조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병원에서는 약사마저도 의사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게 생리다. 잡음이 있겠지만 이런 시스템은 응급대처 등 긴박한 상황에서 효과를 발휘한다. 의료사고의 책임도 의사가 지고, 책임의 소재가 분명하다. 억울한 차별이 있겠지만 갈수록 우리사회는 인권과 평등이 강조돼 의료계에서도 과거처럼 심각한 차별은 사라지고 있다. 더욱이 정부도 간호사나 전공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대한간호협회와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는 약속을 파기한 대통령에게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고 선언하고 대정부 투쟁을 선언했다. 아쉽지만 간호사의 위상은 높아졌고 향후 처우도 개선될 것이므로 간호법 투쟁은 적정한 선에서 타협하는 게 맞다고 본다. 의사들도 불만이 생겼다. 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취소 강화 등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16일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았다. 정치란 게 타협과 절충의 산물인 만큼 일방의 완전승리는 존재하기 어렵다. 지난 2년간의 의료법 갈등을 지켜보면서 그 에너지를 의료서비스 향상, 의료산업 발전, 고령화에 대비한 요양의료 확충, 필수의료 보완, 의사과학자 양성 같은 건설적인 과제에 쏟아부었으면 더 좋지 않았겠나 싶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대응에 혼신을 다한 의료진의 상황을 고려하면 가혹한 제언일 수도 있지만 불필요할 갈등이 야기된 게 심히 유감스럽다. 향후 의료계 당사자나 언론계는 왜 간호법에 다시 재추진돼야 하는지, 아니면 현 의료법에서 수정 보완돼야 하는지, 갈등의 핵심 요인이 뭔지, 어느 측의 의견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 절실하고 리얼한 근거를 제시해 국민에게 설명했으면 한다. 국민이 비교 판단할 논리나 증거 없이 제각각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회적 비용의 낭비가 심하다.
2023-05-16 18:59:24
지난 1일 종중의 시제를 치렀다. 소종(小宗)의 최고령 어르신은 심기불편한 일로 올해부터는 시제 집전을 손아래 사람에게 미뤘고, 6대조 5대조 4대조 세 번 상을 차리는 것도 비용과 고됨을 이유로 한번으로 줄였다. 시제를 끝나고 으레 하던 음복도 생략하고 시내 음식점에서 그저그런 식사로 행사를 마감하니 이제 ‘유교적 전통의 마지막 자취’마저 해질녘 노을처럼 아스라이 사라지는 서글픔이 밀려든다. 성묘와 시제, 세배로 혈족이란 것을 느껴왔다. 조상을 잘 모신다는 것은 성실의 증표요, 그런 집안이 대대로 성하고 이를 소홀히 하면 불성실이 삶의 성과에 악영향을 미치고, 후손에게도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내면의식이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순수하게 조상을 추모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을 반추하는 일을 멈추고 있다. 종중 일을 소일거리로 삼고, 종재(宗財)로 유흥과 생활비의 일부를 충당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심지어 종재에 엉큼하게 눈독을 들이기도 한다. 종중은 대부분 공동 선조의 분묘를 안치할 임야와 제사(시제) 등을 시행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용도의 농지 등을 소유하고 있다. 임야(산지)의 경우 법인격이 없는 사단(社團)인 종중 명의로 등기를 할 수 있지만, 농지의 경우 경자유전(자경농만 농지를 소유) 원칙에 따라 농지법 상 종중 명의로 등기를 할 수가 없어 종원 중 일부에게 명의를 신탁해 그들 명의로 등기를 해오고 있다. 이러한 종중 소유의 부동산이 공익사업에 수용돼 나오는 토지보상금을 받으면 이의 분배를 놓고 종인 간에 옥신각신하거나, 종중의 임원이나 일부 종원이 전횡하거나, 또는 종중 소유 재산을 임의로 처분해 분쟁을 야기한다. 이제 우리 소종도 연장자의 노화와 고됨을 이유로 시제를 소홀히 하고 1~2대가 내려가면 종중 재산을 놓고 다툴 게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제 축소를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 필자만의 과민반응일까. 박정희 전 대통령은 종중 땅 때문에 국토의 효율적인 개발이 더뎌지고 종중 간 갈등이 심해진다는 이유로 농지법을 핑계 삼아 종중의 농지 소유를 막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많은 종중이 임의단체(영농법인, 선양회, 장학재단 등)를 설립해 임의단체 명의나 특정 종인의 소유로 종중 땅을 관리하고 있다. 국내서는 아직 특정 종인이 종중 소유 땅을 몰래 팔아 전횡한 게 용인된 판례가 없다고 한다. 따라서 대개는 매매계약이 무효화되고 그 종인은 형사, 민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 시제는 축소한다면서도 우리 소종의 일부는 종중 땅에 납골당을 지어 후손이 같이 묻히자고 제안했다. 재력이 있는 사람도 묘지 관리가 힘들다며 선영 또는 자기 소유의 임야 또는 농지가 있어도 공동묘지 또는 납골당(서랍)을 사서 장례를 치르는 요즘이다. 화장해서 골분을 상자나 유리, 도자기 그릇에 담아 서랍에 담아놓는 일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시멘트, 금속, 유리, 도자기, 돌로 뒤범벅된 납골당이란 상징물은 그 자체가 보기에 거슬리고 또 다른 공해다. 게다가 생전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섞여 있는 일, 사자(死者)에게는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매장도 쉬운 일은 아니다. 매장 후 30일 이내에 매장지를 관할하는 자치단체장에게 매장 신고 및 분묘 설치 신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도로, 철도의 선로, 하천구역 또는 그 예정지역으로부터 200m 이상 떨어진 곳 △20호 이상의 인가밀집지역, 학교, 그 밖에 공중이 수시로 집합하는 시설 또는 장소로부터 300m 이상 떨어진 곳이어야만 분묘를 설치할 수 있다. 이런 땅을 찾기가 쉽지 않고, 매장 예정지가 매장 허용 지역이 아닌 것으로 판명될 경우 파묘하거나 이장해야 하므로 긁어 부스럼이 될 수 있다. 더욱이 매장 예정지 마을에서 주민들이 매장 반대 민원을 넣거나 하면 그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시신이 섞어 토양이나 하천을 오염시킬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 자리라면 명당자리도 아닐 터다. 매장지 허용 기준이 과도하다는 생각이 든다. 매장 후 과도한 비석이나 상석, 경계석, 석물 등도 어쩌면 오염물이라 할 것이다. 살아서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 않았다면, 경제적 여유가 많더라도 이런 치장은 삼갔으면 하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자연장을 한답시고 화장 후 수목장을 한다면 시신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유교적 관점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화장은 불교나 기독교에서만 용인하는 장례다. 내세가 있다고 믿고 부활을 꿈꾸는 종교에서 화장을 허용한다는 것은 필자가 보기엔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장 자연친화적이고 유교적 관념에도 부합하는 것은 비석 같은 것을 세우지 않고 봉분을 최대한 낮게 쓰거나 평장하고, 관은 잘 섞는 최소한의 것으로 구해서 매장하고 그 위에 나무나 화초를 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표석은 아주 작게 또는 녹 안 쓰는 금속판 정도로 하면 어떨까 싶다. 어쩌면 가장 합리적인 장례는 화장을 해서 산천에 흩날리거나, 풍장이나 초분을 통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요, 잠깐 지구를 들렀다 가는 것이므로. 다시 유교주의자 관점으로 돌아와서 유교는 내세보다는 현생을 중시하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사상체계이지만 풍수지리와 제사 같은 것을 통해 사실상 조상신을 섬기는 종교라 할 것이다. 나만 편하려고 제사를 축소하고 묘지를 파헤쳐 납골당을 만들어 이장하는 것 등은 이기적, 소아병적 행동이라 생각한다. 후손들이 언젠가는 이런 일을 관둘지라도 전통을 지키려는 의식이 남아 있다면 어렸을 적의 기억과 관습대로 숨이 다할 때까지 물려받은 종사(宗事)를 이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현재의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게 유교의 가르침이고 나에 대한 성(誠)이자 조상에 대한 경(敬)이다.
2023-04-05 10:53:08
요즘 거의 매일 한두 건 씩 보도자료가 보건복지의료연대, 대한의사협회 등이 보내오는 ‘간호사법 제정안’의 입법 중단 요구에 관한 것이다. 간호사법 제정안은 2022년 5월 17일 국회 보건복지위를 통과하고, 2023년 2월 9일 국회 본회의 직회부 방안이 복지위에서 의결됐다.의료법은 의사(치과의사, 한의사 포함)를 정점으로 간호사·간호조무사·방사선사·임상병리사·물리치료사·조산사·안마사 등 의료인이 의사의 처방(진료의 하위 행위에 대한 지시) 아래 일사불란하게 환자의 진료에 나서도록 체계가 잡혀 있다. 병원 업무와 관련해 종사하는 약사·영양사 ·한약사·안경사·응급구조사·요양보호사·기타 의료기사 등은 의료인력지원법에 따라 역시 의사의 통제를 받게 돼 있다. 간호사법은 2005년, 2019년에도 입법이 시도됐지만 무산됐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간호사들의 희생정신과 전문성이 부각되면서 2021년 11월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에 처음 상정됐다. 민주당 중심의 야당 의원들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여당의 반대로 간호사법의 법사위 통과가 어려울 것을 알고, 본회의 직회부 방식을 택했다. 올해 2월 9일 복지위(민주당)가 간호사법 제정안, 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를 박탈하는 ‘의료법 개정안’ 등의 직회부를 의결했다. 법사위가 60일 이상 상임위가 제안한 법률에 대한 수정 검토를 미룰 경우 자동으로 본회의에 상정시키는 경로를 택한 것이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입법 추진 중인 간호사법은 간호사가 아니면 그 누구도 간호업무를 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간호업무의 범위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또는 처방 하에 시행하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 △간호조무사 및 요양보호사가 수행하는 업무 보조에 대한 지도로 규정하였다. 또 △환자의 간호요구에 대한 관찰, 자료수집, 간호판단 및 요양을 위한 간호 △간호 요구자에 대한 교육과 상담 및 건강증진을 위한 활동 등을 말한다. 또 간호사는 면허 범위에 규정된 다른 진료행위를 일절 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런 내용들은 현행 의료법에 어느 정도 포괄적으로 담겨져 있지만 문제는 이런 간호행위를 간호사만 할 수 있다고 못박는 것이다. 이럴 경우 간호사를 제외한 다른 직역(간호조무사 포함)은 일절 간호업무를 할 수 없게 됐다. 간호업무는 너무 포괄적이어서 어찌 보면 의사가 직접 하지 않는 모든 진료행위로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간호사를 제외한 의료직역들이 간호업무를 일절 못하게 막는다면 업무 영역이 침해되고, 간호사들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불편과 불이익을 직면해야 한다. 간호사법 제정을 반대하는 보건복지의료연대에 13개 단체가 동참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보건복지의료연대가 일치단결해 간호사법 출현을 막는 것은 왜 똑같은 의료인인데 간호사만 특혜를 주고 의료인 직역 내 또 다른 ‘옥상옥’을 만드냐는 불만 때문일 것이다. 13개 단체는 대한간호조무사협회·대한방사선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대한응급구조사협회·대한임상병리사협회·대한의사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한국노인복지중앙회·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한국재가장기요양기관협회가 참여하고 있다. 13개 단체 소속 회원만 400만 명에 달한다. 주요 의료인 단체 중 대한물리치료사협회가 빠진 것은 의사로부터 독립해 물리치료 행위를 독자 서비스업으로 독립시키고 싶은 속내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간호사법은 통과 여부를 떠나 현미경적으로 보면 따질 게 많은 의료직역간 역할 분담에 관해 기본부터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간호사가 주사를 놓는 것은 의사의 처방 아래 이뤄지는 진료행위다. 의사가 직접 놔야지 왜 간호사가 대신 놓느냐는 지적에 입원 환자의 정기적인 주사를 제외하고는, 외래진료에서 의사가 직접 놓는 게 최근 추세다.상당수 방사선사들은 의사들을 대신해 방사선 사진을 판독하기도 한다. 엄연히 불법이지만 관행화돼 있다. 물론 난해한 판독은 의사가 한다 치더라도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방사선사가 조영제 부작용이 있는 환자에게 조영제를 투여하거나, 또는 과량 투여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럴 경우 의사나 방사선사가 모두 처벌 대상이지만 지난한 법률소송을 거쳐야 환자가 승소할 수 있다.의사들은 수술보조인력(Physician’s Assistant, PA)을 주로 간호사, 간호조무사, 방사선사 등으로부터 충당한다. PA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거나, 아직은 경험이 일천한 수련의를 대신해 수술을 보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지만 그동안 의료계는 관행적으로 PA를 진료에 활용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양성화하기 위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의료계 안팎에서 찬반이 갈린다. 간호사법이 제정되면 PA 업무는 간호사법에 제정된 업무가 아니어서 오히려 불법으로 몰리거나, 별도의 법적 근거가 추가돼야 한다.간호사들은 간호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의사로부터 독립된 지위를 획득하고, 부당한 업무지시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간호사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실 간호사들은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의사들의 지시에 복종해야 하는 힘없는 집단이었다. 하지만 이후 간호사 출신 국회의원들이 배출되고, 전반적인 인권의식이 강화되면서 이런 필요성은 많이 약해졌다. 오히려 간혹 간호사끼리의 갈굼. 일명 ‘태움’이 문제시되는 상황이다. 국외자인 시민으로서 왜 간호사법이 필요한지 의문이다. 첫째 전반적인 인권 강화 추세로 간호사의 권리도 점점 강고지고 있다. 둘째 새로운 법안의 출현은 그만큼의 규제를 수반한다. 셋째 의료계를 통제하는 시스템이 허물어지면 직역 당사자는 물론 의료소비자가 손해를 보게 돼 있다. 예컨대 과거에 아무런 문제가 없던 의사의 지시를 간호사가 ‘업무행위’ 영역 밖이라고 거부하면 환자들은 낭패를 보게 돼 있다. 의료계에서 의사들의 권위주의는 많은 억울함과 불합리를 양산하기도 하지만 환자의 생명을 구하거나 편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만약 의사들의 진료 프로세스가 간호사법 조항 때문에 지장을 받게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의료소비자에게 전가될 게 뻔하다. 비의료인 국민들이 볼 때 간호사법이 없다고 불편한 점은 거의 없다. 한마디로 간호사법 제정은 국민의 핵심이익과 전혀 무관하다. 간호사들이 특별히 억울하게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지도 않은데 왜 굳이 여당의원들이 이 법안의 통과를 위해 무던히 애를 쓰는 것일까. 그것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 결집력이 높은 간호사단체를 아군으로 포섭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따라서 정치권은 불요불급한 간호사법 제정에 헛힘을 쓸 게 아니라 진정 민생에 직결되는 법안의 처리에나 신경써줄 것을 권한다. 예컨대 ‘문재인 케어의 폐악 정리정돈’, ‘국민연금의 전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개선안 도출’ 같은 것 말이다.
2023-03-14 19:04:44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온 국민이 고통을 받은 지 어언 2년 9개월이 다 되어간다. 그 와중에 가뜩이나 붕괴돼 가던 기초 의료시스템은 더욱 망가졌다. 젊은 의사들이 피 안 보고 돈 많이 버는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일명 피안성)에 1차적으로 몰리고, 그 다음으로는 조금 아쉽지만 안정적이고 제법 돈도 버는 정신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일명 정재영)으로 쏠리는 현상이 심화됐다. 일반외과, 흉부외과는 수술할수록 손해라는 데 정부가 약간의 돈을 이들 진료과에 조금 대줘도 현실적인 젊은 의사들이 관심을 가질 리 만무하다. 과거 필수 진료과라던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일명 내외산소)는 저수가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젊은 MZ 세대들이 기피하고 있다. 환자는 많지만 일은 고되고 돈벌이가 안 된다는 게 중요한 요인이다. 특히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의 소도시와 군, 야간에 아이들이 다쳐도 의지할 소아과 전문의가 없는 야간소아응급체계, 장차 십수 년이면 맹장수술을 받을 의사가 없어 발을 동동 굴려야 하는 외과수술 의사의 감소와 노장화 등이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기자는 잘 아는 강남의 K 의사가 무릎관절염에 줄기세포시술을 한다며 줄기세포가 아닌 다른 것을 무릎에 주입하다가 덜미를 잡혀 보건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간적으로 훈훈한 고향 선배인데 그런 일까지 벌이다니…. 줄기세포 아닌 물질은 히알루론산이나 혈소판풍부혈장(PRP)나 지방세포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의사는 십수년 전 라이벌인 인천의 L원장이 경로당을 돌아다니며 인공관절을 삽입하지 않아도 될 노인 환자를 모집해 억지로 수술해놓고 돈을 뜯고 다닌다고 비분강개했었다. L원장도 결국엔 보건당국에 적발돼 1년 이상 미국으로 도피생활을 해야 했다. 명분은 지병인 당뇨병이 악화돼 치료 차 외국에 나간다는 것이었다. 기자에겐 너무나 10년 이상 병원 키우기에 노력하다보니 심신이 탈진됐다며 좀 쉬어야겠다고 했다. 당시엔 그의 도미에 공감이 갔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의사면허가 1년 이상 정지된 탓이었다. 그는 지금도 브라운관에 후덕하고 자상한 의사로 비쳐지고 있다. 3년 전에는 기자가 오랫동안 취재해온 강남의 한 P 안과의사가 백내장이 아닌데도 백내장이라며 수술을 권하다가 적발돼 5개월 동안 의사면허가 정지됐다. 그는 심지어 실제 수술을 하지 않았는데도 한 것으로 건보공단에 허위청구하기도 했고, 단일초점 일반 인공수정체를 써놓고 다초점 고가 특수 인공수정체를 썼다고 부당청구를 하기도 했다. 보험급여로 단초점렌즈를 삽입하면 한 눈 당 40만~50만원이면 충분할 것을 대다수 의사는 다초점렌즈로 한 눈 당 400만~600만원으로 올려받고 있다. 이로 인해 실손보험 재정이 축나자 보험사들이 환자에게 보험급을 지급하지 않고, 오히려 소송을 걸어 패소한 상당수 환자들은 수백만~수천만원의 손해를 감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돈을 더 벌기 원하는 의사들의 속내에 파고 드는 브로커도 기승을 보내고 있다. 불법 브로커들은 실손보험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고가 수술을 받도록 유도하고 30% 커미션을 의사들로부터 받아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산부인과 영역에서는 50세 전후 폐경기 여성의 자궁근종을 환자의 자궁 보존을 위해 ‘하이푸’((HIFU: 초음파 유도하 고강도 초음파집속술)로 치료하라고 권유하면서 1000만원의 시술비를 지급하게 유도하고 있다. 아직은 대다수 실손보험이 하이푸에 대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안과에서는 근시교정수술인 라식, 라섹과 중장년층의 노안교정을 권유하면서 500만원 이상(양안)을 받게 유도한다. 현재 강남의 라식 및 라섹 수술비용은 한 눈 당 120만~130만원이다. 가장 싼 곳은 70만원, 가장 비싼 곳은 대략 260만원에 이른다. 하지정맥류에서는 비급여 치료인 ‘베나실’(의료용 생체접착제) 시술을 권하고 있다. 베나실 비용은 한쪽 다리에 800만원에 달한다. 하지정맥류 중 정맥류가 생긴 줄기가 한 곳인 경우가 65%를 차지하고, 두 줄기가 망가진 경우는 30%, 세줄기 또는 네줄기가 망가진 경우는 5% 정도에 그치는 데 대다수 하지정맥류 시술병원은 두 줄기가 망가졌다며 800만원을 환자에게 뜯어내고 있다. 한 줄기에 400만원 안팎이면 충분한데도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 아니 사기를 치고 있다. 하지정맥류는 의사들의 ‘노력’으로 아직은 비급여 시술이 대부분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설명에 따르면 하지정맥류 급여 대상은 국소적 경화요법과 국소제거술, 광범위 정맥류발거술(스트리핑) 등이다. 2017년 기준으로 급여로 치료하면 최저 4만원~최고 36만원(수술비용만 해당) 정도 든다. 그 사이 의료수가가 올랐더라도 수백만원의 비급여가격에 비하면 큰돈은 아니다. 반면 비급여 대상 하지정맥류 수술은 고주파정맥내막폐쇄술, 광투시정맥흡입제거술, 레이저정맥폐쇄술, 초음파유도하 혈관경화요법 등이 있다. 급여 수술에 초음파, 고주파, 레이저를 동원해 분식(粉飾)해놓고 비싼 수백만원대 비급여 진료비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물론 환자가 전액 부담하든지 실손보험으로 때워야 한다. 강남의 C흉부외과 I외과 등은 수도권 영업도 모자로 지방에서도 브로커와 결탁해 하지정맥류 환자를 모집하는 것으로 의료계에서 파다하게 알려져 있다. 이들은 다른 강남의 비급여 시술비보다 50% 이상 수술비를 더 받는다. 물론 수술비의 30% 이상은 브로커 몫이다. 기자가 아는 몇몇 의사들 가운데 사기이거나 사기성에 가까운 의료행위를 하다가 곤욕을 치른 사람들은 대체로 강남의 비싼 자기건물을 샀다가 하루라도 빨리 빚을 갚기 위해 무리수를 저지른 사람들이었다. 몇몇 성공한 의사들이 강남에 자기건물을 사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하락세이고 자기 돈벌이도 탄탄대로일 때 건물을 샀으면 좋았을 것을, 가격은 상승세이고 의사 경쟁자들은 날로 늘어가는 마당에 건물을 샀다가 막대한 이자비용에 허리가 휘어 불법적인 의료에 눈을 돌리는 양상을 띠고 있다. 기자는 의술을 인술(仁術)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저 의업(醫業)이라고 한다. 의술을 베푼다는 사전적 설명도 있지만 상업적 의료사업을 한다는 뜻도 겸비했다고 본다. 의사는 밤잠 안 자고 열심히 공부하고 수련했으니 그만큼 많은 돈을 벌 자격이 있다. 하지만 기만과 불법으로 점철된 지금의 상업적 의료행위를 보면 어쩌다 이용하게 되는 의료소비자로서 분노를 감출 길 없다. 많은 의사 선생님들과 친하고 과거엔 꽤 많은 술을 얻어마셨는데도 말이다.
2022-09-29 09:14:30
5살, 7살 아이를 키우다보니 인도 보행, 횡단보도 건너기에 예전보다 민감해졌다. 러시아워에 차가 꽉 막히면 배달 오토바이들이 인도로 올라오기도 하고, 어린이가 인도와 인도 사이의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데도 차량이나 오토바이가 무시하고 제 갈길을 가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하지만 우리가 둔감해하는 것이 있으니 인도 속에 난 자전거도로의 자전거 주행 횡포다. 불법일 수도 있고, 불법은 아니지만 상식으로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주행이 계속되고 있다. 대체로 이명박 정부 시절에 난 인도 속 자전거도로는 자전거로의 교통수단 분산 및 건강증진을 위해 처음엔 환영받았다. 세월이 지나 논리적, 철학적으로 생각해보니 왜 그렇지 않아도 좁은 인도 한켠에 자전거도로를 깔았는지, 그마저도 아무런 펜스나 경계석 없이 라인만 치고 자전거도로라 명명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로교통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명 피해와 교통사고 최소화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도 속 자전거길은 사람과 자전거(물론 자전거에도 사람이 타고 있다)를 같은 레벨로 보고 있다는 관점을 만든다. 사람이 자전거보다 약자이기에 우선 보호돼야 원칙 때문에 양자가 충돌하면 도로교통법이나 보험피해 정산에서 사람에게 유리한 판결이나 보상이 이뤄진다 해도 다치고 나서 보상받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조용한 인도를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다니고 있는데 뒤에서 자전거가 오면서 갑자기 따르릉 소리를 낸다. 자전거도로와 인도의 교차점에서 자전거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느긋하게 자전거도로를 건너는 행인에게 욕을 한다. 도로교통법 상 자전거 전용도로는 시속 30km,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는 시속 20km, 자전거전용차로는 시속 20km이지만 이런 속도를 지키는 사이클러는 거의 없다. 이런 것을 일일이 숙지하는 라이더나 보행자도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일부 사이클러들은 자신들이 즐기는 속도감에 방해를 준다는 이유에서 행인에게 화를 낸다. 비록 횡단보도는 없다 할지라도 멀리서 사람이 자전거도로를 건너는 것을 봤다면 속도를 줄여야 하는데 그럴 생각은 없어 보인다. 자전거도로를 킥보드가 다닐 수 있도록 2020년 12월 10일부터 허용됐다. 자전거나 킥보드나 자전거도로가 있으면 우선적으로 이용하고, 없으면 우측 차선 끝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킥보드의 소리 없는 진격은 규정 시속 25km를 넘어 40km이상으로 인도 속 자전거도로를 다닌다. 조용하게 다가온다는 측면에서 어찌 보면 자전거보다 더 위험한 게 킥보드다. 게다가 타고 나서 인도나 차도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방치해놓고 사라지는 공유 킥보드 이용자들. 인도 속 자전거도로는 대체로 차도 쪽으로 나 있지만 가로수나 전봇대, 가로등, 신호등, 소화전, 버스 택시 정류장 등의 시설 때문에 훨씬 인도 가운데 쪽을 향해 점령한다. 더욱이 인도의 폭이 1.5m도 안 되는데 이를 사람과 자전거(퀵보드)가 각각 절반씩 점유하도록 허용한다는 것은 인간 무시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궁극적으로 인도 속 자전거도로는 없애야 마땅하다. 단계적으로 없어야 한다면 대인 충돌사고가 날 경우에 거의 전적으로 자전거나 퀵보드가 배상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 전에 아무리 법적으로 인도 속 자전거도로를 달리는 게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지나가는 행인에게 위협적이고 불쾌감을 주는 빠른 속도의 주행, 느닷없는 경적, 자전거도로를 불가피하게 또는 부지불식간에 점령한 행인에 대한 라이더들의 욕설이나 짜증은 사라져야 한다.
2022-08-02 09:55:48
두창(痘瘡)은 천연두(天然痘) 또는 마마(媽媽)라고도 불렀다. 마마는 천연두를 옮게 하는 여신을 말한다. 임금과 그 가족을 높여부르는 존칭, 또는 벼슬아치의 첩을 높여 부르는 속칭이기도 하다. 천연두는 기원전 1000년쯤부터 나타나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혔다. 1796년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가 우두접종법(종두법)을 발견하기 전까지 상당한 사망률을 보였고 살아남아도 실명·지체부자유·곰보 등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제너는 비교적 약한 우두바이러스(cowpox)에 감염되면 치명적인 천연두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부여된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종두법을 개발했다. 제너는 우두를 소의 천연두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소두창(우두바이러스)을 사람두창(smallpox, 천연두), 원숭이두창(monkeypox)과 명확하게 구분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80년 천연두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선언했지만 1970년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첫 인간 원숭이두창 환자가 나오면서 인류에게 하나의 걱정거리를 만들었다. 원숭이두창은 어디까지나 중·서부 아프리카 국가에 국한된 풍토병이었다. 그런데 지난 5월부터 영국·스페인·이탈리아 등 유럽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하더니 지난 6월 21일 국내에서도 첫 원숭이두창 확진자가 나왔다. 원숭이두창 바이러스는 천연두 바이러스의 사촌 격이다. 그래서 2세대 천연두 백신의 경우 원숭이두창에도 약 85%의 예방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행히도 1980년 이전에 어린 나이에 천연두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원숭이두창에 대한 면역력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된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서유럽 원숭이두창 확진자를 보면 대부분 천연두 백신을 맞지 않은 젊은 층”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50대 이상은 어려서 천연두 백신을 맞았기 때문에 예방 효과가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천연두 백신을 접종한 것은 1978년이다. 원숭이두창은 코로나19처럼 공기로 전파될 가능성은 거의 없고 주로 피부 접촉이나 감염 동물을 만졌을 때 전염된다. 사망률도 서아프리카형은 1%, 콩코분지형은 10% 정도였지만 아프리카 이외 지역에서 사망한 사례는 없다. 그러나 두 가지 복병이 있다. 원숭이두창은 쥐, 다람쥐 등 설치류를 통해 감염될 수 있다. 2003년 미국 일리노이주 등 6개 주에서 어린이를 중심으로 47건의 원숭이두창 집단감염 사례가 나왔는데 아프리카에서 애완용으로 수입한 프레리도그라는 설치류를 통해 전파된 것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설치류 애완견 사육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또 하나는 원숭이두창은 동성애자 집단에서 잘 생긴다는 것이다. 밀접접촉, 성적접촉을 통해 다른 집단보다 훨씬 많이 전염된다는 것이다. 물론 배우자나 가족 등을 밀접접촉을 통해 전파되기도 하지만 영국보건안전청(UKHSA)이 지난달 10일 발표한 원숭이두창 환자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152명 중 151명이 동성애자라고 답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원숭이두창의 지역사회 내 전파가 주로 남성 간 성적 접촉을 통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6월 15일까지 42개국에서 2103명이 원숭이두창에 감염됐는데, 이 중 468명을 분석해 보니 99%가 남성이고 대부분 남성과 성관계를 맺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상황이 이런데 16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 일대에서는 동성애자를 포함한 1만5000명의 성소수자가 모여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벌였다. 소나기가 내리는데도 ‘성 정체성’의 선택과 자유를 외치는 ‘해방의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최근 다시 급증하는 코로나19나 잠재적인 원숭이두창 확산 위험을 감안하면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물론 보수단체들의 반대 시위도 있었지만 퀴어 행렬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김우주 교수는 “원숭이두창은 성적 및 밀접접촉만 없으면 전파되지 않는다”며 “수치적으로 원숭이두창은 동성애자를 통해 걸릴 위험이 높지만, 동성애자만 걸리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UKHSA는 “원숭이두창 감염자 대부분이 동성애자, 양성애자라 등 남성과 성관계를 하는 남성”이라고 지적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서울에서 전주로 전학 온 S라는 친구가 있었다. 쉬는 시간이면 뜨개질을 하거나 수를 놓았다. 그 아버지는 양복점을 하셨다. 친구들은 건건히 그를 ‘계집애 같다’며 놀려댔다. 처음에는 관망하던 급우들이 점점 ‘이지매’를 가하더니 ‘왕따’가 됐다. 비교적 관용적이던 담임 선생님도 몇 달이 지나자 체벌을 가했고 필자도 결국엔 S를 외면하는 처지가 됐다. 그 때 살뜰히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성소수자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떠올려진다. 서울퀴어축제에 새로 부임한, 성 소수자로 알려진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는 16일 퀴어축제에 참가해 “미국은 차별이 어디서 발생하든 차별을 종식시키고, 모든 사람이 존중받고 인간으로 대우받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며 “ ” 미"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유럽연합(EU),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스웨덴, 아일랜드, 영국, 캐나다, 핀란드, 호주 주한대사도 참석해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정의당의 류호정, 장해영 의원도 참석해 성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했다. 요즘 많은 인터넷 기사나 칼럼은 물론 보수적이라는 지면 신문에서도 성소수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이 점점 자주 올라온다. 이런 글들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편협한 시각을 가진 사람’, ‘개인의 선택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이런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으며 점점 성소수자에 우호적이다. 훨씬 많은 비 성소수자들이 두려움과 배척하는 마음으로 성소수자를 바라보고 있는데 상당한 마음의 준비를 할, 예열 과정 없이 불쑥 성소수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어 필자 같은 사람은 불안하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동물복지를 운운하며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을 위해 지방정부 예산을 집행하는 것에 애완동물을 기르지 않는 사람이나 극빈층은 반대한다. 마찬가지로 아직은 애완동물 애호가보다 훨씬 소수인 성소수자의 생각은 옳고 그렇지 않는 사람은 ‘틀렸다’ ‘속좁다’고 바라보는 시각은 아직도 많은 사람이 불편해한다.
2022-07-17 14:54:12
국내 ‘자궁경부암 백신’ 시장에서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한국MSD는의 ‘가다실9프리필드시린지’의 가격 인상이 7월부터 기존 13만4470원에서 14만5900원으로 8.5% 인상될 예정이다. 지난해 4월 공급 가격을 15% 올린 지 약 1년 만에 이뤄지는 추가 인상이다. 가다실9은 자궁경부암 발생의 70%를 차지하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 16형과 18형을 98% 이상 차단하며 6형과 11형도 예방하는 ‘가다실 오리지널’에 5가지 항원(31형, 33형, 45형, 52형, 58형)을 추가해 총 9가지 항원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16형과 18형을 커버하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서바릭스프리필드시린지(Cervarix)’와의 경쟁에서 일찌감치 앞서 있었다. 가다실9은 9가지 HPV와 관련한 자궁경부암, 외음부암, 질암, 항문암, 생식기 사마귀 등을 예방하며 3회 접종이 권고된다. 이번 인상으로 의료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의사의 진료비(약가 마진 포함)를 포함해 기존 60만~70만원대에서 80원대로 상승한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2020년 자궁경부암 백신 후보물질 ‘NBP615’의 해외 1, 2상을 완료했다. 데이터 통계를 집계한 뒤 임상 3상을 진행해 추후 개발 전략을 결정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집중하면서 임상 3상 진입이 지연되고 있다.난관 끝에 SK의 국산 최초의 코로나19 백신인 ‘스카이코비원멀티주’가 29일 허가됐지만 일부 내수 시장과 저개발국가를 제외하고 판로가 열릴지 우려된다. 아마도 세계보건기구(WHO)나 유엔을 통해 박리다매 방식으로 개도국 또는 저개발국가에 론칭할 가능성이 높다.‘NBP615’는 4가 백신이어서 개발에 성공한다 해도 9가인 가다실9을 제치는 일도 쉽지 않다. 더욱이 SK바이오사이언스는 언제 3상에 들어갈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이밖에 아이진은 자궁경부암 백신후보물질 ‘EG-HPV’의 임상 1상을 완료하고 해외 라이선싱아웃 계약 체결을 통해 현지에서 임상 2상을 수행하려 준비했지만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집중하면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자궁경부암 백신 후보물질의 비임상 단계에 진입했던 유바이오로직스도 코로나19 백신 등의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 자궁경부암 백신 개발 중단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자궁경부암 예방 효과만 생각한다면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주장대로 2가 백신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그러나 상품성에서는 당연히 4가, 9가 등 다양한 항원이 포함된 백신이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밖에 없다.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미생물학, 면역학 등 기초의학 인프라가 탄탄해야 하고, 국내외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는 자본력과 누적된 경험, 탁월한 임상자료를 바탕으로 한 글로벌 마케팅 능력 등이 수반돼야 한다.그러나 국내 제약사는 모든 게 일천하다. 예컨대 9가 자궁경부암 백신을 만드는 것은 9가지 단가 백신을 만들어 합쳐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게다가 코로나19처럼 이슈를 쫓아가면 언제 심지를 굳히고 자궁경부암 백신 개발에 매진할 수 있을까. 기초기술은 물론 인력도 부족하다. 한 바이오기업에 많아야 10명 이내, 대형 제약사라 해도 해당 개발팀에 고작 수 명이 연구개발에 배치돼 있고 그나마 프로젝트 조정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기 마련이다. 독일 바이오엔텍, 미국 모더나 등이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보기 좋게 전례에 없는 초유의 mRNA 방식의 코로나19 백신을 만들어 대박을 봤다. 두 벤처기업은 이미 수 년간 mRNA를 개발해오면서 시행착오를 겪었고 이를 통해 쌓은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었다. 이들 기업은 WHO가 중국을 통해 확보한 코로나19 바이러스 유전정보를 입수하자마자 스파이크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는 인조 염기서열을 바탕으로 mRNA를 창제했고 이를 세포질 내로 전달할 수 있는 지질나노입자(LNP)를 확보했다. 백신의 항원이 되는 mRNA 기술은 진작에 어느 정도 기술이 확보돼 있었으나 발전된 LNP를 실제 백신 개발에 적용해보는 것은 초유의 일이었다. 기적 같이 모든 게 맞아 떨어져 탄생한 게 2종의 mRNA 방식 코로나19 백신이었다.mRNA 이론은 쉽지만 실제 이런 원리를 바탕으로 백신을 개발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고 기대만큼 실행되지 못한다. 억겁의 시간처럼 공들인 연구개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인데 국내 바이오제약사들은 이를 패싱하고 외면하려 한다.MSD가 백신 값을 올려 소비자를 애먹인다고 분기탱천할 게 아니다. ‘건강을 볼모로 장사한다’고 비난만 할 일이 아니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화이자와 모더나의 코로나19백신을 뒤늦게 서둘러 도입하는 바람에 지불한 엄청난 규모의 ‘급행료’ 액수를 국민들이 알게 된다면 ‘늑장 대응’한 청와대 및 방역 당국에 비난의 화살을 쏠 것이다. 다만 급행료 규모는 화이자의 영업기밀이나 국가기밀로 웬만하면 공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나 누리호를 만들 때 들어가는 수 만 개 부품처럼 백신 개발에 들어가는 요소기술도 수만 가지인데 과연 어느 하나라도 경쟁력 있게 갖췄는지 자문자답한다면 얼굴이 뜨거울 것이다. 과거 녹십자, LG화학, 제일제당, SK바이오사이언스가 바이오제약 사업이 수익성 떨어지는, 사업 재미가 없는 분야라고 무시하지 않고 계속 정진했더라면 화이자나 모더나가 누릴 대박을 성취하지 못할 리 없었다. 특히 LG나 제일제당은 열심히 인적자원, 물적자원을 투자해놓고 결실하지 못하거나, 여기서 뛰쳐나온 연구개발자들이 바이오벤처를 차려 재미를 보는 광경을 지켜봐야 하는 신세다. 우리나라의 백신 자급률은 약 27%다. ‘백신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다 선택적이고 집중된 지원이 뒷받침돼야 하며 ‘한우물만 파는’ 뚝심을 가져야 한다.
2022-06-29 11:44:37
강원도 춘천시 중도에 들어선 레고랜드코리아리조트(이하 레고랜드)의 고객 무시, 이익지상주의 영업이 원성을 사고 있다. 한번 구입한 티켓은 절대로 환불이 안 되고, 하루 1만8000원에 달하는 주차요금이 횡포라는 게 소비자들의 불만이다. 이곳은 경차나 장애인차에 주어지는 주차료 감면 혜택도 없었다. 입장료도 성인 평일 5만4000원, 주말 57000원이고 어린이도 각각 4만5000원, 4만7000원이다. 에버랜드의 성인 5만6000원, 어린이 4만4000원에 버금간다. 레고랜드호텔의 성인 2인, 어린이 2인 숙박비(조식 포함 프리미엄 기준)은 무려 58만원에 달한다.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 개장식에 맞춰 늦둥이 자녀 둘과 찾아간 레고랜드의 느낌은 레고를 테마로 한 놀이공원이라는 점 말고는 딱히 조경이랄까 서비스랄까 만족스러운 것은 없었다. 조경 수준은 에버랜드에 비하면 봉황과 참새 수준의 격차였다. 부지는 좁았고, 그늘막이 드리워진 쉴 자리도 부족했다. 그야말로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만 좋아할 영유아용 놀이터, 미니어처 놀이공원이었다. 그나마 중도의 의암호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해적선 놀이터, 해상경비 놀이터(소형 보트 탑승장), 레고로 만든 서울 도심 축소 모형 등이 고객의 시선을 끌 만한 포인트였다. 하지만 인기 놀이코스는 워낙 길이 줄어 1시간도 넘게 기다려야 이용 가능했다. 레고랜드는 국내 놀이공원 최초로 ‘히어로패스’(패스트트랙)을 운영 중이다. 미국 등에서야 부자들이 돈을 더 내면 기다리지 않고 패스트트랙으로 놀이기구를 탈 수 있게 한다. 이게 바로 서구 선진국의 정서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위화감’ 탓에 드러내고 이를 운영하는 게 부담스럽다.기자가 운영요원들에게 물어보니 “패스트트랙은 아니구요. 궁금하시면 매표소에서 물어봐주세요.”라고 했다. 어떤 직원은 “그냥 장애인들만 먼저 타라고 배려하는 정도입니다.”라고 불편한 거짓말까지 했다. 히어로패스의 가격은 공식적으로 홈페이지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쉬쉬하는 것이다. 보통 이런 예민한 가격은 인플루언서나 블로거 등에 의해 공개되는데 이들마저도 레고랜드로부터 어떤 지침(?)을 받았는지 실제 가격을 올리지 않고 있다. 기자는 그저 보통 입장권 가격의 3~10배일 것으로 추산할 뿐이다. 패스트트랙을 운영키로 했으면 정정당당하게 해야지 비밀스럽게 작당하듯 하는 게 영 마뜩잖다. 기자의 직접 체험한 악몽 같은 불만은 이제 거의 ‘트라우마’가 됐다. 해상경비 놀이터에서 무려 1시간 이상 줄을 서서 소형 보트를 탔는데 실수로 휴대폰을 물에 빠뜨렸다. 운영요원은 건져 줄 생각도 않고 고객이 밀려 있으니 지체할 수 없다며 폐장 후 건져주겠다고 했다. 물이 깊고 안 보이면 이해하겠는데 1m도 안 되는 수심에 수상보트 근처 사각지대에 떨어진 것을 기자가 못 줍게 했다. 속이 터졌고 지금도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요즘에는 휴대폰이 내 근처에 잘 있는지 수시로 확인해보는 ‘강박증’까지 생겼다.여기까지도 참겠다. 고객센터에서 향후 처리방안을 물어봤더니 “접 연락하는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겠다”며 “우리가 먼저 전화할 테니 기다려달라”고 했다. 또 “한참 바쁠 때 전화해봐야 받을 수도 없고 대답해줄 여력도 없다”고 했다. “당신이 전화해봐야 우린 바빠서 응대해줄 시간도 없으니 포기하라”는 뉘앙스가 깔려 있었다. 다음날 전화를 걸었더니 계속 통화중 또는 무응답이었고, 불쑥 기자 아내에게 걸은 전화를 통해 ‘건져놨다’는 게 전부였고 이후 통화가 되지 않았다. 기자가 생각하기에는 고객만족의 완료는 건진 전화를 고객에게 보내주면 최상이고, 최소한 어떻게 하실 거냐고 의향을 물어본 후 휴대폰을 폐기하든지 보관하든지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절충한다면 소정의 무료서비스나 기념품을 제공하는 것도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레고랜드로서는 무난한 대응일 것이다. 5월 5일 방송매체들은 레고랜드 개장일에 맞춰 호화찬란한 그랜드 오픈 소식을 보도했다. 하지만 ‘뺀질거리는’ 레고랜드 직원들의 대응에 기분이 잡친 기자는 덴마크 국적의 상혼과 고객무시 영업에 분노를 금할 길 없다.레고랜드는 최문순 강원도 지사가 2011년에 투자합의각서를 레고랜드와 체결한 뒤 7000억원이 넘는 드는 도비를 들여 삼고초려가 아닌 십고초려하며 유치했다. 반면 레고랜드가 들인 돈은 많아야 1600억원 정도 된다고 한다. 9000명의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홍보내용과 달리 겨우 200명 안팎의 고용이 이뤄졌다. 한마디로 혈세를 퍼붓고 수익금은 덴마크 계좌로 빨려들어가게 생겼다. 우리나라에 에버랜드가 없는가, 서울랜드가 없는가, 굴욕적인 레고랜드와의 계약은 뭐며, 기자처럼 무시당하는 레고랜드의 영업 태도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하는 연유는 뭔까…. 덴마크 회사는 굳이 한국에 오지 않겠다고 했는데 십고초려하며 유치했다는 최문순 전 지사의 과오는 없는가?
2022-06-02 14:52:23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 20일 당선인 시절 대통령 집무실을 기존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긴다고 발표했을 때 국민의 약 3분의 2는 ‘무슨 예산 낭비냐’ ‘정권 이양기 안보가 위협 당한다’고 반대했다. 하지만 기자는 ‘웬걸, 신의 한수구나’라고 생각했다. 이후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후보자 등 국민의 시각에서 볼 때 흠결이 많은 내각 예정자들로 ‘인사 참사’가 빚어지면서 용산 집무실 이전은 빛이 바래나 싶었는데 최근 나오는 기사들을 보면 집무실 이전 퍼포먼스는 성공한 대통령 제1호 공약 실행으로 평가된다. 여론의 무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번 뱉은 말은 지킨다’는 윤석열의 신뢰를 굳히는 바로미터가 됐다는 점에서도 의미심장하다. 기자는 지난 3월말 주위 지인들에게 “지금은 다들 윤석열 욕해도 청와대 구경 갔다온 사람들이 늘어나면 다들 칭찬할 걸 … 이명박 서울시장도 청계천 정비 밀어붙여 처음에는 욕 먹다가 나중에는 그걸 발판으로 대통령 됐는데”라고 말해줬다. 그 말은 현실이 됐다. 기자 같은 범인(凡人)도 이 정도 예측이 가능한데 용산 이전 때문에 오는 6월 1일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득표에서 크게 손해볼 것이라고 예단한 것은 역시 반대파인 현 야당의 ‘부럽지만 실행할 수 없는 배아픔’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기자는 용산에 거주하므로 최근 연일 대통령 집무실 이전 때문에 용산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는 기사의 수혜자인지도 모르겠다. 허나 문재인 대통령 집권 시절 아파트 가격이 고공행진했던 게 마뜩잖고, 윤석열 현 정부 덕택에 또 오르는 것도 마땅찮다. 그저 어느 정도 하향 안정세가 돼야 젊은 세대도 집을 살 의욕이 생기고, 부동산 관련 세금도 덜 내지 않겠나 싶다. 필자의 집에서 바라보는 옛 미군용산기지는 벌써 비워준다고 공표한 지가 20년이 되도록 진척된 게 없다. 이젠 그런 기사에 관심이 가지도 않는다. 노무현 집권 당시부터 나온 ‘곧 있으면 미군이 나간다’는 말은 2018년 용산 미군기지의 주력 부대와 시설이 평택으로 이전한 뒤에도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 얘기다. 관리되지 않아 흉물스런 미군기지 시설이 4년째 방치 상태다.가끔 젊은이들이 미군 부사관이 쓰던 관사(官舍)를 구경한답시고 일부 개방된 용산기지를 찾아오는 데 무슨 궁상맞은 호기심인가 싶다. 그저 한국의 옛 주택공사가 지은 서민적인, 다소 미국 분위기가 나는 1, 2층 소형 서민주택일 뿐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막혀서일까, 그저 막연히 조금이라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누리고 싶어서일까, 미국 문화에 대한 싸구려 동경일까 … 이럴 때 보면 무슨무슨 ‘K신드롬’의 바닥이 일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용산 입성을 반긴 것은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이란 기대 때문은 아니었다. 하루 빨리 용산기지를 국민공원화해서 국민의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국민으로서 실지(失地)를 조금이라도 일찍 회복하고 싶은 염원 때문이었다. 미군 기지라 해도 해마다 4월에 올라오는 환상적인 신록을 보면 빨리 기지가 공원화돼 만인에게 공유돼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 관저가 남향으로 들어선다면 기자의 집(북서향)이 마주하게 되는 것도 사소한 영광이라 하겠다. 과거 국무총리를 지낸 고건은 서울 시장 재임 시절 서울시청을 용산기지의 일부로 이전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다. 6호선 녹사평역의 지하철역이 매우 깊은 것은 당시 서울시청 예정지를 지하철역과 바로 연결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그러나 고건의 뒤를 이은 이명박과 오세훈 시장은 지금의 위치에 신청사를 지었다. 유리로 정체성 없이, 좁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면적을 차지하려 지은 신청사는 볼 때마다 답답하다. 차라리 그 공간을 공원화하고 용산으로 서울시청을 옮겼더라면 도심에 녹지공간이 더 생기고 용산도 한층 발전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기자의 사견으로는 서울시청이 청와대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어야 서울시장이란 자리가 대통령의 권위에 버금갈 수 있을 것이라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던 게 아닌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은 일종의 ‘천도’(遷都)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조 이성계가 경복궁 자리를 정할 때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주산(진산)으로, 정도전은 북악산을 주산으로 주장하다가 태조가 정도전의 손을 들어줘 지금의 자리에 경복궁이 섰다. 하륜은 무악(지금의 서대문구 안산)을 추천하기도 했다. 조선의 주궁인 경복궁 자리를 놓고 530년 전에도 옥신각신했는데,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다 거기서 거기인데 당시에는 논란이 컸던 것을 떠올리면 하물며 이번 대통령 집무실 이전도 이런 논쟁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본다. 용산은 지리적으로 서울의 중심이다. 조선시대의 서울 영역으로 보면 도성 남쪽의 한강과 가까이하는 변두리였다. 이촌동(二村洞)이란 지명은 한강가에서 고기잡이로 생업을 잇던 강가의 조그마한 두 마을이란 뜻에서 왔다. 강남으로 서울이 퍼지면서 지금은 용산이 서울의 중심이다. 중국 대륙으로 보면 중원(中原)이고, 바둑판으로 보면 천원(天元)이다. 풍수지리가에 따르면 황룡이 물을 마시는 황룡음수형(黃龍飮水形)의 땅이다. 용산에는 서부이촌동, 한남동, 보광동, 주성동, 후암동, 청파동, 동자동 등 도심인데도 1980년대 분위기 나는 낙후된 동네들이 많다. 상대적으로 인구는 적고 교통도 한적하다. 고층빌딩이 마구 들어서 발전하는 것만이 해답은 아니고 그런 면에서 고밀도화를 억제한 고 박원순 시장의 정책은 상당히 옳았다. 요즘 용산 거리를 보면 고만고만한 소형 오피스텔과 사무실 빌딩만 난립해서 올라간다. 기왕 지으려면 랜드마크 같은 건물도 들어서야 하고, 전원주택에 가까운 수준 높은 주거지도 조성돼야 하는데 중구난방이다. 오는 지방선거 당선이 유력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용산구민들의 반발을 의식해 용산 집무실 이전으로 인한 신축 인허가 억제 등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큰 설계도를 갖고 고밀도화와 그린시티화를 조화시켜야 할 것이다. 용산 리뉴얼에 관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기자가 바라는 것은 시끌벅적한 용산이 아니라, 용산 미군기지가 대통령 집무실의 아름다운 파노라마가 되고 용산민족공원을 아우르는 여전히 한적하면서도 조금은 지금보다 세련되고 정화된 정도의 용산이다. 우리나라 최고 부자들이 산다는 한남동과 이태원동, 동부이촌동과 젊은이들의 용광로인 이태원동을 품고 있는 용산구는 용산미군기지의 뉴욕 센트럴파크 화(化)를 통해 더욱 쾌적하고 아름다운 시티로 거듭날 수 있다. 아울러 용산역 기지창과 서부이촌동 일대가 아파트가 아닌 관광 및 상업지대로 변신해 포트가 서고 유람선과 화물선이 정박하는 글로벌 강해(江海)도시로 탈바꿈하는 것도 꿈꿔본다.
2022-05-24 11:29:45
수 년 전부터 권력을 가진 자의 ‘이기적 위선’과 ‘안면몰수 허위의식’을 일컫는 ‘내로남불’(naeronambul)이 한국 정치의 상징어가 됐다. 외국 영어사전에도 ‘재벌’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단어로 등재됐고 외국 언론도 한국의 잘못된 정치나 사회현상을 내로남불로 묘사하곤 한다 이 단어는 1996년 15대 총선 직후 당시 여소야대 상황에서 여당(신한국당)의 ‘의원 빼가기’와 관련해 야당(새정치국민회의)이 맹공을 퍼붓자 당시 신한국당의 박희태 의원이 ‘내로남불’로 응수한 게 지금은 신조어가 아닌 기성어가 된 내로남불의 효시가 됐다고 한다.‘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의 내로남불은 이후 두고두고 정치판에서 써먹고 있다. 야당을 하다가 여당을 하면 야당 때에 하던 주장을 뒤집고, 마찬가지로 여당하다가 야당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과거의 주장을 모른 체 한다.심리학에서는 행위자-관찰자 편향(actor-observer bias), 허구적 독특성(false uniqueness), 자기 편의적 위선(self-serving hypocrisy) 등으로 보는데 궁극적으로는 자기의 거짓과 위선을 방어하기 위한 기제로 내로남불이 활용된다. 사실 바람을 피워 본 사람은 다 알지만 결혼이란 제도의 틀을 깨고 배우자 몰래 다른 이성을 만나는 것을 당사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합리화한다. “아내(남편)는 말이 안 통하는데, 파트너(다른 이성)는 내 맘을 참으로 잘 이해해줘” “파트너만 만나면 모른 시름을 잊어” “파트너는 항상 나를 최고로 대해 줘” 라며 ‘도피’를 정당화한다. 그러나 파트너가 일시적으로 외도 당사자에게 최고인 것은 우리(가족)가 아닌 ‘신선한 타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선감이 가시면 그저 그런 관계가 되고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때로는 파트너와의 관계가 너무나 뜨거워 가정이 결딴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외도 관계가 발각이 날 것 같은 예감이 들면 각자 가정으로 돌아가 서서히 쿨링하며 원상복귀하는 게 통례다.세상에는 어떤 내로남불도 정당화될 수 없다. 배우자의 허락을 맡든가, 이혼하고 새 삶을 찾지 않는 한 내로남불은 잘못이다. 배신이자 속임수이기 때문이다.사람은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마음에 없는 아첨을 하고, 때로는 비굴하게 하고 싶지도 않은 사과를 해야 한다. 어쩌면 이런 것은 슬프기도 하고 용인할 수밖에 없는 구석이다. 우리 모두 허약하고 생존해야 하고 위기를 모면해 거듭나야 하니깐 불가피하다. 그러나 정치판을 비롯해 사회의 이런저런 썩은 구석에 내로남불이 도사리고 있다. 부정입학, 뇌물, 취업청탁, 논문베끼기, 음주운전 등 필자를 포함한 누구도 내로남불할 수 있다면 그 유혹에서 벗어날 도덕적 저항력이 그리 강하지 않다. 내로남불은 우리가 나약한 존재임을 이해하게 하는 성찰의 단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로지 권력투쟁을 위해 위선과 허위의 아수라장을 만들고 있는 정치판에서는 내로남불이 언젠가부터 대수롭지 않게 행해지는 일상이 됐다. 적어도 미국, 유럽 등 현대 서구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내로남불이 허용되지 않았다. 한번 배신하고 신뢰를 잃으면 ‘그걸로 끝’이고 다시는 표를 받지 못해 정치판에서 떠나야 했다. 염치와 명분이 있어야 정치를 계속할 수 있었다. 과거에는 내로남불 대신 ‘역지사지’(易地思之)란 점잖은 단어를 많이 썼던 것 같다.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보자는 역지사지에는 인간이 나약한 존재임을 자인하고 서로 포용해야 한다는 너그러움이 담겨 있다. 하지만 내로남불은 포용이 빠져 있고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이기적 동물적인 본성만이 이빨을 드러내고 있어 서글프다. 무엇보다도 나쁜 인식과 행동의 도돌이표가 내로남불을 통해 악순환되고 있음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운 일이다.
2022-04-25 14:13:54
지난 1월 7일 세계 최초로 미국 메릴랜드대학병원에서 돼지 심장을 이식받은 시한부 환자 데이비드 베넷(57) 씨가 수술 두 달 만이난 지난 8일 사망했다. 환자의 생존 기간은 짧았지만, 의료계에서는 초기 급성 거부반응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이식용 장기 부족 문제 해결의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앞서 베넷은 치명적 부정맥으로 입원해 6개월 이상 기계의 도움을 받아 연명했지만, 심장이식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는 마지막 수단으로 지난 1월 미국 바이오기업 리비비코어(Revivicor)가 제공한 돼지 심장을 이식받았다. 이 회사는 미니 돼지의 면역 거부 유전자 3개를 차단하고, 인체의 면역 체계에 순응하도록 인간 유전자 6개를 추가했다. 이식한 심장이 더 자라지 못하도록, 성장 유전자 기능도 억제했다.수술 후 수주 동안 베넷에게 아무런 거부반응도 일어나지 않아 돼지 심장 이식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베넷은 사망 수일 전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기 전까지 재활치료를 정상적으로 받고 수퍼볼 경기도 시청했다고 병원은 밝혔다.리비비코어는 1996년 세계 최초의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PPL테라퓨틱스(PPL Therapeutics)에서 분사한 기업이다. 리비비코어의 모회사인 생명공학업체 유나이티드테라퓨틱스(United Therapeutics)는 리비비코어가 개발한 유전자 변형 돼지를 이용한 장기이식에 도전할 계획임을 밝힌 바 있다.2021년 9월에도 유나이티드테라퓨틱스는 면역거부반응을 없앤 돼지의 신장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실험을 했다. 미국 뉴욕대 랑곤헬스(NYU Langone Health) 메디컬센터의 로버트 몽고메리 이식연구소 소장팀은 신부전으로 뇌사 상태에 빠진 환자에게 돼지 신장을 연결하는 실험을 했다. 의료행위로서의 이식이 아니라 사흘(54시간) 동안 거부반응 없이 정상 작동하는 것을 확인하고 중단했다. 연구진은 돼지 신장을 환자 몸 밖에 둔 채 환자의 혈관을 연결한 뒤 3일간 면역 거부반응과 정상 기능 여부를 관찰했다. 그 결과 이식된 돼지 신장은 즉각적인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노폐물을 걸러내고 소변을 만드는 신장 기능도 정상적으로 수행했다. 신부전 증상 지표 중 하나인 크레아티닌도 신장이식 후 ‘거의 즉시’ 정상 수준을 회복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미국 앨라배마대 연구진도 지난해 9월 뇌사자에게 돼지 신장을 체외에 이식해 수술 23분 만에 돼지 신장이 소변을 생성하기 시작했고, 사흘간 정상 기능을 확인했다. 올해 연말까지 실제 환자에게 돼지 신장을 이식하는 정식 임상시험을 하겠다고 밝혔다.이들 3가지 임상연구 또는 체외실험에는 모두 리비비코어의 돼지 장기가 쓰였다. 미국 언론들은 이같은 시도에 대해 이식할 장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이같은 작은 성공은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희망이 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이종 장기이식은 오래 전부터 시도돼 왔다. 1960년대엔 몇몇 환자가 침팬지 신장을 이식받아 최대 9개월까지 생존했다. 1983년엔 개코원숭이 심장을 이식받은 소녀가 20일 동안 생존했다.이후 의과학자들은 키우기 더 쉽고 6개월 만에 사람의 성인 몸집 크기까지 자라는 돼지에 주목했다. 그동안 돼지 심장과 신장 이식은 원숭이를 대상으로 해왔으며,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이식 실험은 안전상의 문제로 금지돼 왔다. 그러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유전자변형 돼지에 대한 의료용 사용 허가를 내줌으로써 이종간 장기이식 실험이 물꼬를 텄다. 이종장기이식은 기술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문제가 많다. 우선 기술적으로 미완에 그칠 확률이 높다. 리비비코어가 창조한 ‘갈세이프(GalSafe)’는 면역거부 반응의 주범인 돼지 세포의 당 분자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유전자를 편집한 돼지다. 그러나 단지 이런 것 몇 개를 해결한다고 해서 면역거부반응이 생기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면역학자들이 더 잘 안다. 면역체계는 워낙 복잡하고 미묘해 몇 가지 경로의 거부반응을 막는다고 해서 거부반응이 소멸될 리 없다. 지금 사람간 장기이식 후 평생 복용해야 하는 면역억제제는 장기가 면역세포의 공격을 받지 않도록 전면적으로 막는다. 이 때문에 신독성, 신경독성, 고혈당, 고혈압, 고콜레스테롤혈증, 각종 감염 등의 부작용을 안고 있다.흔히 돼지가 잡식성으로 사람과 먹는 게 비슷해 유전자가 가장 비슷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어디까지 이종장기 동물을 개발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그칠 뿐이다. 돼지보다 인간에 가까운 것으로 개가 있고 그보다 더 가까운 게 영장류(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원숭이) 등이다. 인간과 침팬지는 99.4%의 동일한 유전자 염기서열을 갖고 있었다. 쥐와 인간도 유전자의 80%가 똑같다.하지만 이런 수치조차도 비교하는 유전자의 범위와 종류에 따라 매우 달라진다. 좀 더 보정해보면 사람 간 유전자는 99.9% 동일하다. 차이는 0.1% 미만에 그친다. 침팬지와는 96~99% 동일하다. 고양이와는 90%, 쥐와는 80~85%, 개·돼지·소 등 가축과는 80% 정도로 동일하다.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도 큰 데 하물며 사람과 돼지의 동일성을 운운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다. 이같은 과학적 사실을 모른 척하며 이종장기이식으로 생명연장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것은 ‘희망고문’이자 ‘기망’에 가깝다. 유전자가 0.1%만 다른 사람끼리도 타인의 장기를 동종이식하려면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는데 20% 안팎 차이가 나는 돼지의 장기를 떼어다 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기자가 서울대 의대, 수의대 등에서 이종장기이식을 연구한다고 접한 때가 이미 1990년대 중반이었다. 거의 30년이 다 돼 가는데 획기적인 성과는 없었다. 국내에서 이종장기이식의 선구자라는 제넨바이오도 결국은 이들 연구팀들이 주축이 돼 만든 바이오벤처다. 대학이 됐든, 바이오기업이 됐든 이들은 정부로부터 연구과제 수행비 명목으로 매년 수십억원을 타다 썼다. 바이오기업은 주식시장을 통해 수 천 억원을 조달했다. 근거 없는 낙관을 바탕으로 조달한 투자자들의 쌈짓돈이다. 이종장기이식은 취지야 좋지만 실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연구자들 스스로 중단을 선언하는 게 맞다고 기자는 본다.2000년대 중반 서울대 의대 모 교수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종장기이식은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사기’에요. 나도 연구비를 타서 연구에 동참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될 수 없다는 걸 확신합니다. 물론 연구과정에서 실패의 원인을 찾다보면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언젠가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랏돈이나 투자자의 돈을 투입할 더 효율적이고 실현 가능한 연구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 점을 지적하고 연구를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봤지만 워낙 연구자들의 자기고집이 강하고 이는 그들의 살길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소용이 없더군요” 데이비드 베넷은 결국 돼지 심장 이식 후 60일 살다가 저승에 갔다. 환자는 수술을 앞두고 "죽거나 돼지 심장을 이식받거나이다. 나는 살고 싶다. 성공할 가능성이 없는 시도라는 걸 알지만, 마지막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의 사후 고인의 아들인 데이비드 베넷 주니어는 “병원 의료진이 아버지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며 “아버지는 실험적인 이식 수술을 받아 의학에 이바지했으며 장차 환자들의 생명을 살릴 희망을 줬다”고 밝혔다. 애써 의미를 부여하지만 이종장기이식의 성공 가능성을 비관하는 사람이 볼 때엔 씁쓸하다. 그럼에도 이종장기이식에 바이오기업이나 의학자들이 계속해서 도전에 나설 것은 확고해보인다. 미국 유나이티드테라퓨틱스나 한국의 제넨바이오나 대중의 기대에 올라 타 가끔 호재가 생기거나 생명공학 바람이 불 때 주가가 상승하는 재미를 볼지 모르겠다. 특히 제넨바이오의 대주주(지분 7.22%)인 제넥신은 1999년 설립된 오랜 역사와 화려한 이름값에 비해 변변한 신약을 내놓지도 못한 기업이다. 제넥신은 지난 11일 오후 3시 40분, ‘제넥신, 엔데믹 시대 맞아 개발 전략 수정’이란 보도자료를 내놨다. 시장이 마감된 후 내놓은 보도자료의 내용은 ‘사업성이 낮아 인도네시아에서 진행하던 코로나19백신 후보물질의 임상 2상, 3상을 중단한다’는 것이었다. 이 회사는 2020년 코로나19 신약 또는 백신 개발 경쟁이 한창이던 때에 ‘동물실험에서 효과’ ‘특허 출원’ ‘1상 결과 발표’ 등 설익은 내용을 생중계하듯 보도자료를 내놓아 15일 현재 42800원에 머문 주가를 2020년 9월 4일엔 17만6500원까지 부양시켜놨다. 호재성 보도자료는 아침 일찍 내고, 창피한 악재성 보도자료는 오후 장 마감 후 내는 작태야 말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설령 기술적으로 유전적 차이에 따른 이종장기이식의 면역거부반응을 해결했다 해도 문제다. 생명윤리 상 인간이 동물의 장기를 달고 사는 게 바람직하고 당당하며 인간의 존엄성,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이 없느냐는 얘기다. 할 수 있다고 해서 하는 게 옳은 것은 아니다.
2022-03-15 16:51:17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이끄는 정부에서는 현 보건복지부가 보건의료를 전담하는 보건부와 사회복지 정책을 담당하는 복지부로 분리될 것으로 보인다. 정기석 국민의힘 코로나위기대응위원장 등 윤 당선인 측에서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유행 과정에서 보건부 독립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바 있다.10일 대한의사협회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께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향후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될 전염병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컨트롤타워로서 보건부를 설립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의협은 성명서에서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다른 감염병들이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땜질식 방역이 아닌 의료인과 국민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과학에 근거한 방역과 의료 대응이 될 수 있도록 컨트롤타워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입니다. 차기 정부에서는 보건부를 설립하여 질병관리청, 식품의약품안전처, 보건소 등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보건소의 진료기능을 없애고 지역사회 건강증진, 감염병 예방에 집중하게 해야 합니다.”라고 요구했다.보건복지부는 보건의료, 복지, 여성, 가족 등을 포괄하던 과거 비중 있는 부처에서 현재는 외청이던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식약처로 승격 독립하고, 산하기관이던 질병관리본부도 질병관리청으로 외청이 되면서 보건의료 분야에서조차 힘이 빠진 부처가 됐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직전 차관이 식약처장을 자청할 정도로 보건복지부는 무력한 조직으로 변했다. 따라서 과거처럼 질병관리청과 식약청이 보건복지부의 지휘를 받거나 새 보건부에 통합되는 게 해당 관료들이나 업계가 효율성과 전문성 면에서 더 선호하는 방향으로 보인다. 복지 분야에서도 국민연금공단의 막강한 재정능력에 비록 보건복지부의 지침을 받긴 하지만 실제 공단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다. 따라서 취약계층에 대한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기준을 확대하는 등 취약계층에 우선한 복지정책이 강조되고 국민연금 개편도 강조되는 상황에서 이에 주력할 복지부가 독립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복지 전문가로 코로나19 유행 이후 하기 싫은 ‘보건의료’ 업무를 억지로 하는 것처럼 보였던 이미지를 감안하면 복지부의 독립성이 타당한 측면도 있다. 특히 각종 연금 개편에 주력하면서 이 난제를 풀려면 독립부처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된다.문제는 윤석열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세운 점이다. 이번 대선 결과 표심에서 20~30대 여성 유권자가 국민의힘을 외면하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옮아간 것으로 분석돼 이 공약은 실현될 가능성이 낮아졌다. 이 공약을 선호한 20대 남성(일명 이대남)의 표를 모으는 효과를 발휘하긴 했으나 그 정도는 젊은 여성표의 이 후보 쏠림현상에 비하면 약했다. 윤 당선이 역대 최소 표차로 신승했기 때문에 여가부 폐지의 명분이나 추진동력은 약해졌다.그렇다고 윤 당선인이이 이 공약을 마치 없었던 것처럼 뭉개기도 쉽지 않다. 그럴 경우 이대남의 불신을 사면서 다음 선거에서 이대남마저 이탈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당선인의 개인적 스타일로 봐 폐지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따라서 보건부가 생기면 분리될 복지부와 기존 여성가족부를 합쳐 복지여성가족부나 복지양성평등부로 새로 태어날 가능성도 있다. 이명막 정부 초기에는 보건복지부의 이름이 2년 동안 보건복지가족부였다. 요컨대 업무 효율과 전문성 강화를 위해서는 보건부가 독립되는 게 나은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전문성을 빙자해 ‘관료의 장막’을 치고 대중을 외면하거나 은폐일변도의 일방적인 행정을 펼칠 우려도 함께 존재한다.
2022-03-10 11:12:15
지난 2월 초만 해도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에 걸리면 밀접접촉자로 간주돼 최소 1주일, 길게는 2주간 옴짝달싹을 못할 정도로 가둬놓던 정부가 이달 1일부터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를 돌연 중단했다. 과도한 방역으로 자영업자들의 생계가 곤란하다는 원성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원천봉쇄를 고집하던 정부가 올해 들어 서서히 방역 태세를 완화하더니 정책의 일관성도 없이, 과학적 근거도 없이, 사전에 충분한 예고도 없이 방역 장벽을 허물었다.우선 지난 2월 3일부터 정부는 신속항원검사를 받아 양성이 나와야 PCR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방침을 바꿨다. 양성 확진자 수를 줄이기 위한 꼼수인 게 명확했지만 하루에 감당할 PCR 검사 역량을 넘어섰다고 정부는 둘러댔다. 올 1월 초까지만 해도 하루 5000명 신규 확진자도 많다며 걱정하던 보건당국이 2월 5일 3만6362명이 되자 아연실색하더니 4일 신규 확진자는 26만6853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하루 4만명 정도나 검사할 인프라가 한 달 만에 7배로 갑자기 늘어났다는 말인가. 한국은 이 정도는 충분히 수용하고도 남을 바이오 인프라가 있는데 정부가 엄살을 피웠을 뿐이다.음식점, 은행, 관공서, 마트 등을 출입할 때마다 해애 했던 QR코드 인증은 4개월 만에 중단됐다. K방역의 수작(秀作)이라고 자화자찬하더니 사실상 ‘폐지’인데 ‘잠정 중단’이라며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청소년 접종, 전국민(성인)의 부스터샷을 거의 강권하더니 이제는 그런 말이 쑥 들어갔다. 청소년들에게 4월 1일부터 방역패스를 하니 예방접종을 하라고 애원하더니 이젠 아무 소리가 없다. 가족 중 확진자가 생기면 온 가족이 격리 대상이더니 지금은 확진자 동거인의 자가격리 의무화가 없어졌다.결국 못살게 군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틀어막던 정부가 오는 9일 대선을 앞두고 약 한 달 전부터 방역 태세를 급격히 느슨하게 했다. 정부 스스로 ‘선거용 방역’이란 의심과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정부는 확진자 폭증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코로나19의 순한 ‘오미크론 변이’에 적응하는 ‘엔데믹화(endemic化 독감처럼 유행성 감염질환으로 관리)’에 들어갔다고 항변하지만 이제 마스크를 쓰는 것만 제외하고 확진자를 제외한 아무나 어느 곳이든 드나들 수 있게 됐다. 이러다간 거리 전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확산될 ‘가족 전파’를 어떻게 감수하려는지 모르겠다.결론은 자영업자의 표를 의식한 ‘선거용’ 정책 변화가 일어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 자영업자는 560만명 정도가 된다. 전체 경제인구의 20%를 약간 넘는다. 자고로 국내 역대 선거에서 자영업자, 서울과 충북을 잡지 못하면 이긴 적이 없다고 한다. 정부는 선거를 앞두고 지난 2월 23일부터 자영업자(소상공인)에 2차 방역지원금 300만원씩을 지급했다. 1차 방역지원금(2021년 12월 27일부터 100만원씩)보다 대상도 많고 금액도 많다. 게다가 1차 때에는 거의 한달 후에 지급되더니 2차는 며칠 만에 통장이 들어왔다. 사실상 자영업자에 대한 매표 행위나 다름 없다. 물론 방역지원금을 받고 여당 후보를 찍지 않아도 되지만 인지상정이라는 게 그렇지 않다. 여당은 2020년 4월 총선 때에도 전국민 재난지원금 명목으로 180석이 넘는 국회 의석을 차지하는 쏠쏠한 재미를 봤고 2021년 4월 재보궐 선거에서도 재난지원금을 풀어 효과를 봤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도 지난달 26일 방역지원금 최대 1000만원 즉시 지급, 손실보상률 100% 보장, 채무 재조정(채무 삭감 또는 면제) 등을 골자로 하는 자영업자 소상공인 대책을 제시했다. 결국 국민에게 선거는 자주 할수록 좋은 것이며, 선거 때마다 뭐 ‘공돈 생기는 게 없나’하는 요행심만 불러일으키게 생겼다. 정부가 한 달 전까지 방역패스를 강력하게 밀어붙인 것은 미접종자의 감염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방역을 느슨하게 하면서 지난 1월 4510명이던 전체 영유아 국내 코로나19 환자는 2월 5만9071명으로 13배 폭증했다. 인구 100만명 확진자 수도 3188명으로 OECD 주요국 중 가장 많았다. 독일(1268명), 일본(572명), 미국(146명)을 크게 앞질렀다.코로나19의 엔데믹화는 이제 시작이다. 보건 전문가들은 하루 확진자 수가 45만명에 이르는 정점에 도달한 뒤 한 달 정도 시간이 흘러야 거리두기까지 해제하는 일상 회복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앞으로 한 달 내지 두 달을 견뎌야 하는 데 정부는 오히려 5일부터 오는 20일까지 약 2주간 사적모임 인원은 6명으로 유지하되, 식당·카페 영업시간은 오후 11시까지 1시간 연장하기로 했다. 기왕 엔데믹화에 진입하기로 했으나 방역 고삐를 더 풀어보자는 전략인데 이런 모험이 성공할지 우려스럽다. 거꾸로 가는 방역 정책에 혼란스럽다. 선거에 휩쓸려 그동안의 원칙을 순식간에 허물어뜨린다는 게 더 불안하게 만든다. 누적된 민생경제의 손실을 지금부터라도 해소하기 위해 현행 거리두기 지침을 조기에 완화하겠다는 것인데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의 돌변은 ‘선거를 의식한’ 현 정부의 ‘총동원’이자 간접적 선거개입이 아니라 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2022-03-04 15:33:38
벌써 코로나19 진단을 위한 PCR 검사를 받으러 대기줄에 선 게 어제로 다섯 번째다. 정말 걱정돼서 받은 것은 2020년 망년회 술자리에서 과음과 피로, 목감기 증상이 겹쳐 걸리지 않았을까 우려된 게 딱 한 번이고 나머지는 전부 어린이집 다니는 자녀를 위해 ‘안 걸렸다’는 증명을 내보이기 위해서다. 갈 때마다 느끼는 게 검사받으러 오는 사람이 다들 ‘밀접접촉자’이거나 이들과 접촉했다고 우려되거나 양성에서 음성으로 전환됐는지 확인하러 온 사람일 텐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지 않는다. 장시간 대기줄에서 휴대폰 통화를 하는 사람이나 심지어 같이 온 동료와 희희낙락하며 대화하는 사람도 있다. ‘위험지역’인데 이래도 되나 싶은데 관리자들도 제지하려 하지 않는다. 개입했다가 ‘인권’이니 ‘개인권리’니 하며 대드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지난 3일부터는 정부가 신속항원검사를 받아 양성이 나와야 PCR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방침을 바꿨다. 두 검사를 받는 인파가 합세하니 검사 현장이 어수선하다. 용산구보건소에 배치된 관리자는 신속항원검사와 PCR 검사를 받을 사람을 구분하지도 않고 뒤섞어놨다. 센스 없는 필자는 가뜩이나 추운 날 신속항원검사 줄에 30분 가까이 섰다가 뒤늦게 알고 PCR 검사를 받았다. 노고가 많은 관리자들에게 침묵으로 넘어가려다 결국 참지 못하고 기자는 역정을 내며 항의했다. 양념이긴 한데 보건소가 나눠준 신속항원검사 신청서에는 피검사자 성별에 ‘남녀’가 아닌 ‘여남’으로 기재돼 그 중 하나를 체크하라고 돼 있었다. 여성 피검사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그러려니 하면서도 좀체 적응하기 어려운 서류양식이었다. 으례 그랬듯이 코로나19 피검사자는 젊은층이 노년층보다, 여자가 남자보다는 더 많았는데 이날은 무려 4분의 3 정도가 여성이었다. 8000~1만원하는 자가진단키트 값을 아끼려 보건소를 찾은 인파가 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보건소에서 검사받았다는 증빙이 필요한 사람도 있겠지만 신속항원검사 결과로 음성을 인정해주는 직장이 몇이나 될까 싶다. 무료검사를 받으러 온 인파에서 질서는 없었다. 1m도 안 되게 다닥다닥 붙어 줄을 서고, 어떤 이는 헐렁한 마스크에 코와 입에서 나온 공기가 내 호흡기에 들어올 것처럼 위험해보인다. 또 어떤 이는 감염됐을까봐 걱정된다며 침착하지 못하고 흐느낀다. 검사받으러 왔다가 더 걸릴 것 같다는 푸념이 공연한 말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회당 1만5000원(원가 개념)하던 PCR 검사를 물쓰듯이 권고하던 정부가 갑작스럽게 이를 제약하고 신속항원검사로 전환한 저의가 의심스럽다. 검사비 재정 절감 효과도 있겠지만 확진자가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줄여보려는 ‘눈 가리고 아웅’식 정부 전략 때문이 아닐까 의심해본다. 4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젠바디와 수젠텍의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 2개 제품을 신규 허가한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작년 4월 23일에는 휴마시스와 SD바이오센서 제품이, 7월 13일에는 래피젠 제품이 허가된 이후 국내 자가검사키트는 3개 제품으로 꽉 막아놨다. 그래서 거의 모든 약국에는 SD바이오센서 제품이 깔려 있었고 현 정권이 이 회사를 ‘특별대우’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기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난 설 연휴 전에 자가진단키트를 4세트(8인분) 샀고 2세트를 자가격리 중인 아들을 위해 보건소로부터 받았다. 자가진단키트 걱정 없이 언제고 불안해보면 검사할 수 있어 심적으로 안심이 된다. 물론 자가진단키트의 정확도는 41~50%로 미약한 수준이다.신속항원키트는 집에서 스스로 해보는 자가진단키트와 병원에서 의사가 검사해주는 전문가용 키트로 나뉘는데 그 차이는 면봉 길이 차이란다. 자가진단키는 비강까지만, 의사는 비인두까지 찌른다고 하는데 깊게 찌를수록 검사 정확도가 높다는 게 익히 알려져 있다. 또 양쪽 코로부터 비강 분비물이 흥건하게 채취해서 가급적 많이 짜내서 키트 위에 점적해야 더 정확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지난달까지만 해도 하루 5000명 신규 확진자도 많다며 걱정하던 보건당국이 1월 30일 1만7528명, 2월 5일 3만6362명이 되자 아연실색하고 있다. 이럴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검사 대기줄의 어수선한 풍경을 목도하면서 보건당국이 혼이 나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7일간의 격리기간을 채운 기자는 오늘 오전에 음성 판정을 받으면 격리에서 해제된다. 그러나 밀접접촉자나 격리대상자에 대한 관리는 많이 느슨해진 것 같다. 5일째 보건소로부터 건강 체크 전화가 오지 않더니 내일 집밖으로 나가도 될지 물어볼 길이 없다.
2022-02-06 02:2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