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05 10:53:08
한 종중의 한식을 겸한 시제 지내는 장면
지난 1일 종중의 시제를 치렀다. 소종(小宗)의 최고령 어르신은 심기불편한 일로 올해부터는 시제 집전을 손아래 사람에게 미뤘고, 6대조 5대조 4대조 세 번 상을 차리는 것도 비용과 고됨을 이유로 한번으로 줄였다.
시제를 끝나고 으레 하던 음복도 생략하고 시내 음식점에서 그저그런 식사로 행사를 마감하니 이제 ‘유교적 전통의 마지막 자취’마저 해질녘 노을처럼 아스라이 사라지는 서글픔이 밀려든다.
성묘와 시제, 세배로 혈족이란 것을 느껴왔다. 조상을 잘 모신다는 것은 성실의 증표요, 그런 집안이 대대로 성하고 이를 소홀히 하면 불성실이 삶의 성과에 악영향을 미치고, 후손에게도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내면의식이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순수하게 조상을 추모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을 반추하는 일을 멈추고 있다. 종중 일을 소일거리로 삼고, 종재(宗財)로 유흥과 생활비의 일부를 충당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심지어 종재에 엉큼하게 눈독을 들이기도 한다.
종중은 대부분 공동 선조의 분묘를 안치할 임야와 제사(시제) 등을 시행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용도의 농지 등을 소유하고 있다. 임야(산지)의 경우 법인격이 없는 사단(社團)인 종중 명의로 등기를 할 수 있지만, 농지의 경우 경자유전(자경농만 농지를 소유) 원칙에 따라 농지법 상 종중 명의로 등기를 할 수가 없어 종원 중 일부에게 명의를 신탁해 그들 명의로 등기를 해오고 있다.
이러한 종중 소유의 부동산이 공익사업에 수용돼 나오는 토지보상금을 받으면 이의 분배를 놓고 종인 간에 옥신각신하거나, 종중의 임원이나 일부 종원이 전횡하거나, 또는 종중 소유 재산을 임의로 처분해 분쟁을 야기한다.
이제 우리 소종도 연장자의 노화와 고됨을 이유로 시제를 소홀히 하고 1~2대가 내려가면 종중 재산을 놓고 다툴 게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제 축소를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 필자만의 과민반응일까.
박정희 전 대통령은 종중 땅 때문에 국토의 효율적인 개발이 더뎌지고 종중 간 갈등이 심해진다는 이유로 농지법을 핑계 삼아 종중의 농지 소유를 막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많은 종중이 임의단체(영농법인, 선양회, 장학재단 등)를 설립해 임의단체 명의나 특정 종인의 소유로 종중 땅을 관리하고 있다.
국내서는 아직 특정 종인이 종중 소유 땅을 몰래 팔아 전횡한 게 용인된 판례가 없다고 한다. 따라서 대개는 매매계약이 무효화되고 그 종인은 형사, 민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
시제는 축소한다면서도 우리 소종의 일부는 종중 땅에 납골당을 지어 후손이 같이 묻히자고 제안했다. 재력이 있는 사람도 묘지 관리가 힘들다며 선영 또는 자기 소유의 임야 또는 농지가 있어도 공동묘지 또는 납골당(서랍)을 사서 장례를 치르는 요즘이다.
화장해서 골분을 상자나 유리, 도자기 그릇에 담아 서랍에 담아놓는 일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시멘트, 금속, 유리, 도자기, 돌로 뒤범벅된 납골당이란 상징물은 그 자체가 보기에 거슬리고 또 다른 공해다. 게다가 생전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섞여 있는 일, 사자(死者)에게는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매장도 쉬운 일은 아니다. 매장 후 30일 이내에 매장지를 관할하는 자치단체장에게 매장 신고 및 분묘 설치 신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도로, 철도의 선로, 하천구역 또는 그 예정지역으로부터 200m 이상 떨어진 곳 △20호 이상의 인가밀집지역, 학교, 그 밖에 공중이 수시로 집합하는 시설 또는 장소로부터 300m 이상 떨어진 곳이어야만 분묘를 설치할 수 있다.
이런 땅을 찾기가 쉽지 않고, 매장 예정지가 매장 허용 지역이 아닌 것으로 판명될 경우 파묘하거나 이장해야 하므로 긁어 부스럼이 될 수 있다. 더욱이 매장 예정지 마을에서 주민들이 매장 반대 민원을 넣거나 하면 그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시신이 섞어 토양이나 하천을 오염시킬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 자리라면 명당자리도 아닐 터다. 매장지 허용 기준이 과도하다는 생각이 든다.
매장 후 과도한 비석이나 상석, 경계석, 석물 등도 어쩌면 오염물이라 할 것이다. 살아서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 않았다면, 경제적 여유가 많더라도 이런 치장은 삼갔으면 하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자연장을 한답시고 화장 후 수목장을 한다면 시신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유교적 관점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화장은 불교나 기독교에서만 용인하는 장례다. 내세가 있다고 믿고 부활을 꿈꾸는 종교에서 화장을 허용한다는 것은 필자가 보기엔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장 자연친화적이고 유교적 관념에도 부합하는 것은 비석 같은 것을 세우지 않고 봉분을 최대한 낮게 쓰거나 평장하고, 관은 잘 섞는 최소한의 것으로 구해서 매장하고 그 위에 나무나 화초를 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표석은 아주 작게 또는 녹 안 쓰는 금속판 정도로 하면 어떨까 싶다.
어쩌면 가장 합리적인 장례는 화장을 해서 산천에 흩날리거나, 풍장이나 초분을 통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요, 잠깐 지구를 들렀다 가는 것이므로.
다시 유교주의자 관점으로 돌아와서 유교는 내세보다는 현생을 중시하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사상체계이지만 풍수지리와 제사 같은 것을 통해 사실상 조상신을 섬기는 종교라 할 것이다.
나만 편하려고 제사를 축소하고 묘지를 파헤쳐 납골당을 만들어 이장하는 것 등은 이기적, 소아병적 행동이라 생각한다. 후손들이 언젠가는 이런 일을 관둘지라도 전통을 지키려는 의식이 남아 있다면 어렸을 적의 기억과 관습대로 숨이 다할 때까지 물려받은 종사(宗事)를 이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현재의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게 유교의 가르침이고 나에 대한 성(誠)이자 조상에 대한 경(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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