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바람과 돌은 많아도 물은 귀한 곳이다. 제주에 내리는 빗물은 대부분 돌 틈으로 스며들어 땅 속을 흐르다 바닷가에서 용천수로 솟기 때문에 중산간 지역에서는 샘은커녕 고인 빗물조차 구경하기 어렵다. 개천 역시 큰 비가 내릴 때에만 잠시 흐를 뿐 늘 말라 있다. 물이 귀했던 과거 중산간지역의 샘과 연못은 식수와 생활용수를 얻을 수 있는 곳이어서 애지중지 귀하게 관리됐다. 제주의 오름 368개 중 분화구에 물이 고여 있는 오름은 10여 곳에 불과한데 물영아리오름이 그 중의 하나다.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 있는 물영아리오름의 분화구는 빗물이 빠져나가지 않아 습지를 이루며 귀한 습지 동식물과 곤충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 생태학적 가치가 인정돼 2007년 람사르습지로 지정됐다. 우리나라 다섯 번째 지정 습지다. 해발 400m의 제주 동남부 중산간 지역 위치한 물영아리오름은 그 높이가 128m이고 아래쪽 둘레는 4km가 넘는다. 오름 주변에 넓은 초지가 자리해 오래 전부터 소와 말의 방목장으로 이용됐다. 가축이 초지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오래 전에 쌓아올린 돌담인 잣성이 여전히 보존돼 있다.물영아리오름은 거문오름의 세계자연유산센터나 동백동산의 습지센터만큼은 아니지만 방문자를 위한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주차장과 화장실이 충분하고 아담한 공원에 방문자 안내센터도 있다. 공원 조형물을 통해 물영아리오름이 품고 있는 귀한 생물에 관한 설명을 읽고 탐방로에 들어서면 눈앞에 넓은 초지가 펼쳐지고 그 끝에 물영아리오름의 우거진 숲이 보인다.입구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어 오른쪽의 드넓은 초원을 살피며 걷다가 갈래 길을 만나 다시 왼쪽의 둘레길로 접어들었다. 분화구로 바로 올라가려면 오른쪽 길을 선택하면 된다. 물영아리오름 둘레길은 뒤쪽에서 분화구 능선으로 올라 습지까지 왕복하는 거리를 포함해도 6km가 채 되지 않지만 제주의 어느 오름보다 풍부한 볼거리를 간직하고 있다. 지난 2월초 이곳에 왔을 때 둘레길로 접어들어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진한 노란 꽃들을 만났다. 지천으로 자란 달래 무더기 사이에서 높이 자라 오르지도 않고 겨우 마른 풀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이 꽃들을 보려 발걸음을 옮기는데 발을 디딜 때마다 진한 달래향이 풍겼다. 눈에만 담기 아까워 사진을 찍으며 봄이 오기 전 눈 위에 누운 듯 피는 복수초라 생각하고 있는데 지나던 이들이 다가와 제주 세복수초라고 설명을 한다. 세복수초꽃을 뒤로하고 접어든 오솔길은 평탄하고 일부 구간은 시멘트로 포장돼 있었다. 길 양쪽의 나무에 잎이 피어나면 이 길은 길고 긴 나무 터널이 될 것이다. 길이 험하지는 않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일정한 거리마다 세워져 있는 위치 안내 표지판을 휴대전화 사진기로 찍으며 걸었다. 마른 고사리 밭을 지나 곰솔 숲을 빠져나가니 드넓은 초지가 나타나고 그 끝 먼 곳에 또 다른 오름이 보인다. 여문영아리오름이다. 여기서부터는 물영아리오름의 뒤쪽 산기슭을 걷는다. 아직 어린 비자나무가 길을 따라 자라고 있다. 곳곳에 새우란이 보인다. 2월초 새우란 잎은 마른 풀 위에 누워 있었다. 4월말 지난해의 잎 사이로 연한 초록의 잎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곧 꽃대가 올라온다. 4월말부터 꽃이 피는 새우란은 활짝 피면 마치 여러 어린 소녀들이 폭 넓은 치마를 입고 나풀나풀 춤을 추는 듯 바람에 꽃잎을 흔든다. 통상 새우란 꽃잎은 짙은 갈색과 희색이 섞여 있지만 이곳 물영아리오름에 자생하는 새우란 중에는 꽃이 온통 노란색 일색인 금새우란이 포함되어 있다. 제주의 어느 오름보다 많은 새우란 포기가 오솔길 옆 얕은 숲을 따라 자라고 있었다. 물영아리오름 뒤에서 분화구로 오르는 계단 길은 앞쪽의 길보다는 짧고 가파르지도 않아 쉽게 오를 수 있다. 이 계단 양쪽에도 새우란이 보였다. 마치 누군가 길 가까운 곳에 심어 두고 보살피는 듯하다. 분화구 능선에서 습지 아래까지 이어지는 길은 모두 나무 계단이 설치돼 방문자가 많아도 분화구 능선이 훼손되지는 않을 듯했다. 문득 방문자 수가 급증하면서 야자매트를 깔아둔 산책로마저 패이기 시작했던 용눈이오름과 백약이오름의 능선이 떠올랐다.물영아리오름의 능선에서는 숲이 울창해 능선 밖의 풍경은 볼 수 없다. 겨울엔 나뭇가지에 비치는 햇빛이 아름답고 여름엔 그늘을 스치는 바람이 상쾌하다. 오름을 내려와 오른쪽으로 걸어 나가 전망대에서 멀리 겹겹이 겹쳐진 오름들을 바라보며 능선에서 이것저것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랬다. 물영아리오름 입구까지 멀지 않은 길은 돌담을 따라 걷는다. 방목 중인 가축들이 목장을 벗어나지 않도록 오래 전 쌓은 중잣성이다. 상잣성은 말이 한라산의 삼림지대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중산간 지대 위쪽에 쌓은 것이다. 아래쪽엔 하잣성을 쌓아 가축이 농경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 가운데 중잣성은 목장의 경계를 나타내는 돌담이다. 물영아리오름의 중잣성은 아직 옛 모습을 거의 잃지 않고 있다. 바위 틈을 비집고 자란 나무가 제법 실하고 바위마다 붙은 이끼가 오랜 세월을 이야기하고 있다.
2020-05-16 14:40:45
한라산의 서쪽 능선에서 외지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오름은 해마다 정월보름에 맞춰 억새를 불사르는 들불축제가 열리는 새별오름이다. 오름의 모양이 초저녁에 뜨는 샛별 같다고 해서 새별오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새별오름은 분화구가 복잡한 형태의 오름이어서 정상부에 올라보면 다섯 봉우리가 보인다.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소재 새별오름은 높이가 519m다. 해발 400m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서 실제 올라가는 높이는 119m에 그친다. 그러나 오르기에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정상부까지 급한 경사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20분 정도 걸으면 오를 수 있다고 하지만 찬찬히 꽃과 풀을 살피다 보면 20분으로는 어림없다. 매년 10월 중순이면 새별오름의 억새꽃이 절정에 이르면서 방문객이 급증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억새꽃만을 보지만 그 품엔 잔대, 가시엉겅퀴, 야고, 이질풀, 자주쓴풀, 쑥부쟁이 등 온갖 제주 꽃도 함께 핀다. 이 꽃들을 찾아 눈을 맞추다보면 어느새 시간은 훌쩍 지나고 남들이 사진 찍고 볼 것 다 보았다고 내려갈 때에야 겨우 오름 위에 올라서서 서쪽의 넓은 들을 가슴에 안는다. 그 너머 바다 위엔 비양도가 떠 있다. 반대편으로 눈을 돌리면 한라산이 내려다보고 있다. 새별오름에서 눈에 들어오는 서쪽 벌판에서 650여 년 전인 1370년(공민왕 19년) ‘목호의 난’이 일어났다. 최영 장군이 이끄는 관군이 토호인 몽골인과 그를 따르는 세력을 싸워 진압한 곳이다. 원나라가 탐라의 삼별초를 진압하고 4년 뒤 1277년 목마장(牧馬場)을 설치했다. 원은 여기에 목호(牧胡)를 보내 말을 기르게 했다. 그러나 원이 기울고 명이 일어나면서 고려와 명의 국교가 이뤄지고 제주의 말을 명으로 보내고자 했다. 그러나 목호들이 ‘원 황제의 말을 명에 보낼 수 없다’며 저항했다. 이게 목호의 난이다. 이 때 고려 진압군의 규모를 보면 전함 314척에 병사 2만5600여명이었다. 제주에 남아 있던 몽골인과 원을 따르는 사람들의 세력이 그만큼 강력했음을 알려주는 기록이다. 흥하고 있던 명은 고려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려 했고, 쇠하던 원의 세력이 이에 대항하며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벌판이 이 곳이다. 이제 사람들은 억새의 장관과 음력 정월대보름 전날과 당일 사이에 들불을 놓아 억새를 태우는 들불축제로 새별오름을 기억한다. 말과 소를 방목해 키우던 옛날, 제주 사람들은 겨울이 지날 때쯤 초지에 불을 놓아 마른풀과 해충을 없애곤 했다. 재는 거름이 되어 풀을 더욱 잘 자라게 했고, 소와 말 먹이기가 수월해졌다. 과거의 풍습을 담아 지금 사람은 새별오름 봉우리의 한 경사면에서 가득 찬 억새를 태우는 들불축제를 벌인다. 오름 전체가 타오르는 듯 보이니 다른 지역의 달집 태우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불이다.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마치 ‘새별오름 화산이 폭발하는 듯하다’고 한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억새를 바라보며 새별오름을 오르기 시작하면 시작점에서부터 버려진 쓰레기 때문에 마음이 상한다. 쓰레기는 정상부에 올라가도록 끊어지지 않고 눈을 찌른다. 억새는 바람에 일렁이고 사람들은 억새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억새가 꺾인 자리에서 한 발 더 들어가고, 거기서 또 한 발 들어가 사진을 남긴다. 그리고 슬그머니 휴지 한 장 버리고, 마시던 음료도 내려놓는다. ‘흔적 남기지 않고 가기’가 그리 어려운 일이던가.
2020-05-08 16:27:49
제주도엔 4곳의 자연휴양림이 운영되고 있다. 절물자연휴양림과 교래자연휴양림은 제주시, 붉은오름자연휴양림과 서귀포자연휴양림은 서귀포시 소관이다. 서귀포자연휴양림을 제외하면 모두 제주도 동부 중산간지대에 있다. 제주시 봉개동 산 78-1에 위치한 절물휴양림의 중심부엔 해발 697m의 절물오름이 있다. 이 오름을 향해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절물오름 주변으로 유모차나 휠체어도 다닐 수 있는 숲길이 조성돼 있고 10여분 남짓이면 오를 수 있는 오름 정상의 능선엔 전망대가 설치돼 먼 바다의 수평선까지 펼쳐진 장관을 볼 수 있다. 그 반대 방향으로는 한라산 아래에 조성된 삼나무 조림지의 초록 바다를 볼 수 있다. 제일 긴 탐방로는 11㎞가 조금 넘는다. 절물오름 주변의 다양한 숲을 볼 수 있도록 길이 나 있다. 부지런한 걸음으로 3시간쯤 걸릴 것이나, 숲에 들어 굳이 서둘 필요는 없으니 멈칫거리며 4시간 정도면 이 숲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절물오름자연휴양림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어느 곳보다 오랫동안 잘 가꾼 삼나무 숲이 장관이기 때문이다. 탐방로 입구에 들어서면서 이미 양쪽의 울울창창한 삼나무 숲이 깊다. 숲 냄새가 훅 풍겨나온다. 샛길로 들어서면서 걷는 이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느 덧 덤불과 나무가 우거진 동굴 같은 길이 나오더니 솔숲을 잠깐 지나 다시 삼나무 숲이 나온다. 까마귀와 멧비둘기, 다른 산새들이 따라오며 끝없이 지저귄다. 숲의 축축한 공기와 냄새가 온몸을 휘감는다. 길은 점점 더 깊이 들어가고 마음은 가벼워진다. 이 숲의 주인이 되어가는 중이다. 갈림길이 나왔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난 것으로 보아 꽤 멀리 온 것은 분명하니 이쯤에서 돌아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제주에 와서 처음 걷는 숲길이라 엉뚱한 길로 빠져 고생하기는 싫었는데 안내판이 보이지 않는다. 맞은편에서 부지런히 걸어오는 탐방객이 보였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을 물으니 자기들이 온 방향의 길로 가면 그리 멀지 않다고 알려준다. 가는 길을 알았으니 다시 편안한 마음으로 숲을 살피며 걸었다. 숲을 벗어나면서 잘 꾸며진 정원이 나타난다. 주제별로 다양하게 조성돼 꽃과 풀과 나무를 살피며 그 이름을 알아가기에 편리했다. 고로쇠나무와 때죽나무의 연리목 안내 간판도 예사롭게 보아 넘겼다. 그렇게 또 시간을 보내고 주차장으로 가 보니 어딘가 낯선 곳이다. 다른 주차장이 또 있는지 직원에게 물었다. 이곳 하나뿐이라 한다. 숲속에서 길을 물었을 때 우리는 이미 한라생태숲 구역에 있었고 그들은 당연히 한라생태숲 주차장을 알려준 것이었다. 절물자연휴양림과 한라생태숲이 거의 접해 있음을 모르고 무턱대고 걸은 결과였다. 절물자연휴양림의 탐방로를 어디서 벗어났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의도하지 않고 우연히 한 걸음에 두 곳을 살폈다. 한라생태숲에서 절물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교통편은 생각보다 불편했다. 왔던 길을 다시 걸어가는 방법이 최선이란다. 오후 4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때때로 길을 물으며 좌우 살피지 않고 걸어 두 시간 만에 다시 원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돌아올 때에는 새소리도 듣지 못했다.
2020-04-30 01:26:26
한여름엔 더위와 습기 때문에 숲길 걷기도 그리 쉽지는 않다. 그러나 그늘이 있어서 잠시 쉬기에 불편함이 없을 뿐 아니라 체력에 맞춰 쉬엄쉬엄 걸어도 대개 4시간 이내에 숲을 나올 수 있으니 그나마 자연휴양림의 숲길은 걸을 만하다. 제주도 내 자연휴양림의 길들은 잘 정비돼 낯선 방문자도 편하고 안전하며 숲을 즐길 수 있어 체력이 충분하지 않으면서도 걷기를 원하는 이들에겐 제격이다. 제주시 조천읍 함덕에서 멀지 않은 중산간 지역엔 좋은 숲길이 여럿 마련돼 있다. 교래자연휴양림, 절물자연휴양림, 한라생태숲, 사려니숲길, 삼다수옛길, 동백동산 산책로까지 모두 차로 10~20분 내외의 거리에 있다. 절물자연휴양림은 인공조림지인 삼나무숲이 울창하고 동백동산은 다듬어지지 않은 숲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나무들의 모습이 압도적이다. 교래자연휴양림의 숲 역시 용암 돌무더기 위에 형성된 나무와 덩굴의 곶자왈이다. 숲이 울창해 숲길은 컴컴하지만 그늘을 만드는 나무들의 햇빛 경쟁은 그리 치열해보이지 않는다. 이미 곳곳에서 경쟁이 끝나 커다란 나무들이 충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크지 않은 빈 공간을 두고 작은 나무들이 다투고 있다. 숲속의 습도 역시 절물자연휴양림이나 동백동산보다는 높지 않아 걷기에 훨씬 편했다. 교래자연휴양림 내의 숲길은 경사가 가파르지 않고 걷기에 큰 부담은 없지만 돌투성이 길이 계속되기 때문에 긴장하고 걸어야 한다. 교래자연휴양림은 오름을 둘 포함하고 있다. 입구의 늪서리오름은 야영장과 산책길로 이용되고, 조금 멀리 떨어진 큰지그리오름까지는 산책로가 정비돼 있다. 마치 ‘비밀의 정원’으로 향하는 느낌의 휴양림 입구에 들어가면 초가지붕을 인 제주 전통가옥 형태의 관리사무소가 색다르다. 여기서 40분 정도 소요되는 생태관찰로를 가볍게 걸어도 되고, 왕복 7㎞의 오름산책로를 걸어 큰지그리오름 정상의 전망대에서 멀리 수평선을 바라볼 수도 있다. 숲길로 들어서니 요란한 매미 울음소리가 모든 소리를 삼키고 있다. 새소리가 인상적이었던 절물자연휴양림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8월에 접어들면서 오랫동안 땅속 생활을 하던 매미들이 한꺼번에 숲을 덮친 듯하다. 도심에서 요란한 매미소리에 새벽잠을 설친 기억이 있다면 8월의 제주 휴양림 걷기가 불쾌할 수도 있겠다. 두리번거리며 숲길을 걷는데 꽃향기가 스친다. 근처 어딘가에 틀림없이 누리장나무꽃이 활짝 피어 있을 것이다. 산책로 입구 관리사무소 옆에서 본 꽃이다. 잠시 서서 돌아보는데 꽃향이 다시 보답한다. 누리장나무가 그리 자주 보이는 게 아닌데도 이 숲에서는 잊지 않을 만큼의 시간을 두고 꽃향이 찾아왔다. 길 옆으로 ‘숯가마터’ 또는 ‘움막터’라는 안내표지가 서 있지만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 어두운데다가 온통 풀과 나무와 덩굴로 덮여 있어 바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가만히 서서 자세히 봐야 돌로 쌓은 담장이 풀잎 사이로 겨우 보인다. 한 때는 사람들이 머물렀던 흔적이지만 이젠 그냥 돌무더기로 돌아가고 있다. 자연의 복원력은 느리지만 위대하다. 전북 고창의 람사르습지인 운곡습지에 가면 사람이 떠난 논과 밭, 그리고 마을이 어떻게 자연으로 돌아가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7월과 8월의 제주 숲길은 온통 초록뿐이다. 노랑과 분홍색 혹은 흰 꽃이 드문드문 보인다면 훨씬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길이지만 아쉽게도 눈에 보이는 꽃은 거의 없고 온통 발에 밟히는 돌이 불편감만 전한다. 그래도 길 가장자리를 살피며 혹시 그동안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해본다. 문득 어두운 그늘 속에서 1cm 남짓한 크기의 흰 꽃송이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들고 있던 카메라로 밝게 찍어 확대해 보니 틀림없이 야생란의 한 종류였다. 이제껏 책에서도, 실제로도 본 적이 없는 꽃이다. 휴대전화로 검색해보니 ‘붉은사철란’이다. 다른 꽃들까지 촬영해 확대했다. 꽃잎 끝에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붉은 물이 들었다. 몇 년 전 비자림을 걷다가 산책로 옆 풀 사이에서 마치 아래 단이 넓은 치마를 입고 나풀나풀 춤을 추는 모양의 새우란꽃을 보았을 때,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치악산 정상 길옆에서 감자란꽃을 보았을 때도 지금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즐거워했다. 붉은사철란 꽃 위에 엎드리다시피 해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데 마주오던 아주머니들이 멈추어 서서는 나를 살핀다. 낙엽 위에 피어 있는 ‘숲속의 요정’을 보고는 저마다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사진을 찍는다. 잠시 숲이 왁자지껄해졌다. 그들도 처음 본 꽃이었다. 나도 그들도 운수 좋은 날이었다. 마음이 들떠 설렁설렁 보며 숲길을 걸었다. 길 위에 엎드린 딱정벌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또 사진을 찍었지만 이 벌레 이름을 알아볼 방법은 막막했다. 그런데 며칠 뒤 제주 시내의 자연사박물관에 갔다가 우연히 이 벌레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제주홍단딱정벌레가 엊그제 본 그 벌레의 이름이었다. 1843년 영국인 의사 아담스 (A. Adams)가 우리나라를 탐사하던 중 제주에서 이 딱정벌레를 채집해 본국의 곤충학자인 테이텀(T. Tatum)에게 보냈다. 1847년 테이텀은 이 벌레를 Carabus smaragdinus monilifer Tatum이란 학명으로 전문 학술지에 발표했다. 이렇게 제주홍단딱정벌레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린네식 근대 학명으로 발표된 곤충이 됐다. 붉은사철란도 제주홍단딱정벌레도 그 이름을 알게 되었다 해서 내 삶을 바꿀 만큼의 의미는 아니다. 다만 교래 휴양림에서 잠시 내게 큰 즐거움을 주었으니 뭘 더 바랄 것인가. 언젠가 이맘때쯤 다시 제주 숲길에 들면 또 마주치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걷게 될 것이다. 치악산을 오를 때마다 감자란을, 비자림을 갈 때마다 새우란을 생각하듯이.
2020-04-21 00:51:05
붉은오름자연휴양림은 절물자연휴양림, 교래자연휴양림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만큼 비슷한 조건의 숲을 보여준다. 이들 숲은 모두 한라산 동쪽 중산간 지역의 곶자왈, 인공조림된 삼나무숲, 기생화산인 오름을 포함하고 있어 기본 스펙이 거의 같기 때문이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남조로)에 있는 붉은오름자연휴양림에 들어서면 아름다운 곰솔 숲이 먼저 눈에 띄고 주차장과 매표소까지 계속 이어진다. 매표소를 지나 숙소 등 시설이 있는 곳까지 길지 않은 길을 걷는 동안에도 곰솔 숲은 방문자를 따라온다. 잘 자란 곰솔 숲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찾아와 쉴 수 있는 휴양시설과 체험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휴양관, 숲속의 집 등 숙박시설이 마련돼 있고, 어린이 놀이터, 연못과 둘레 산책로, 넓은 잔디밭이 조성돼 있다. 휴양관 앞이 넓은 잔디 마당엔 한 낮에도 노루가 슬며시 내려와 풀을 뜯곤 한다. 목재문화체험장은 어린이들을 위한 목공교실, 나무와 관련된 다양한 지식을 전하는 전시장 등을 운영하고 있다. 붉은오름자연휴양림엔 서로 성격이 다른 붉은오름과 말찻오름이 포함돼 제주도가 운영하는 네 곳의 자연휴양림 중 가장 다양한 숲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노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잘 반영된 숲속 산책길을 운영하고 있다는 게 이곳의 장점이다. 나무 데크를 설치해 조성한 평평한 숲길 위에 서면 4대가 함께 유모차나 휠체어를 타고 밀며 걸어도 불편함 없이 숲을 즐길 수 있다. 편안한 길을 걸으며 곰솔 숲의 향기와 정취를 눈에 담고 조금은 무질서하게 보이는 활엽수 숲의 자유로움을 즐기다가 야자매트가 깔린 길로 들어서면 6.7㎞의 제법 긴 말찻오름 탐방로가 시작된다. 이 탐방로는 곰솔 숲, 삼나무 조림지, 활엽수 숲을 지나고 경사지를 오르고 내리며 다양한 제주 숲의 모습을 보여준다. 곰솔과 활엽수 아래엔 다양한 덩굴과 풀 그리고 잡목이 활발하게 자라고 있지만 삼나무 숲에서는 거의 땅 위에 낮게 깔려 있다. 빽빽하게 줄맞추어 자라고 있는 삼나무들이 곧게 뻗어 오르며 키 높이기 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삼나무조림지를 벗어나 말찻오름 가까이 오면 여기서부터는 활엽수 세상이다. 다양한 활엽수들이 햇빛을 독점하고 그 그늘 아래에는 조릿대가 무성하게 자라니 다른 풀과 덩굴은 발붙일 틈이 없다. 탐방로는 지나치게 어려운 길이 아니면서 도무지 지루할 겨를이 없는 길이다. 말찻오름탐방로까지 걷고도 시간이 꽤 많이 남으면 휴양관 근처의 잘 정돈된 정원을 즐겨도 좋고 붉은오름을 걸어도 좋다. 붉은오름까지는 왕복 2㎞ 정도인데 다녀올 가치는 충분하다. 붉은오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어느 높은 오름 못지않게 시원하다. 날이 맑으면 한라산의 정상부까지 또렷하게 보인다고 한다. 전망대에서는 그대로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올 수도 있고 가던 방향으로 계속 진행해 오름 정상부를 한 바퀴 돌아서 내려올 수도 있다. 말찻오름 정상부엔 숲이 우거져 있어 올라가 숲속을 걷다 내려오지만 붉은오름 꼭대기엔 전망대가 설치돼 제법 멀리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붉은오름자연휴양림에선 이처럼 전혀 다른 느낌의 두 오름을 볼 수 있다. 산책로 옆으로 보이는 야트막한 전망대를 몇 계단 오르면 평평한 풀밭이 넓게 펼쳐지면 눈이 시원해진다. 제주경주마목장의 풀밭이다. 조선시대 세종 12년부터 목장에 돌담을 쌓았는데 제주도에선 이를 잣성이라 부른다. 해발 150~250m 일대에 하잣성, 350~400m 일대에 중잣성, 해발 450~600m 일대에 상잣성이 환상으로 위치한다. 붉은오름자연휴양림에서 볼 수 있는 잣성은 상잣성으로 그 오른쪽에 있는 게 지금의 제주경주마목장이다.
2020-04-08 01:03:16
제주시 조천읍 동백동산의 숲길은 5㎞ 남짓 걸어서 원점으로 돌아오게 돼 있다. 과거엔 이 숲에서 땔감을 얻고, 집을 짓거나 수리할 목재를 구하고 내다 팔 숯을 구웠다. 제법 많은 물을 가진 연못과 크고 작은 습지가 많아 물이 귀했던 시절엔 마실 물과 생활에 필요한 물을 길어 날랐다. 이 숲에 지천이었던 동백나무는 귀한 나무였다. 나무의 재질이 좋아 각종 생활용품을 만들었고 열매로는 기름을 짰다. 목재로, 땔감과 숯으로 나무를 베어내면서도 손대지 않고 남겨둔 동백나무들이 사람들의 눈에 쉽게 보일 만큼 많이 자리를 잡으면서 동백동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10만그루가 자란다고 알려져 있으나 수령이 오래된 나무는 드물고 다른 나무들과 경쟁하느라 빽빽하고 높게 자라 잎은 무성한데 꽃은 찾아보기 힘든 게 안타까움을 더한다. 동백동산 숲길로 들어섰다. 지난해 8월초 숲속의 공기는 축축하면서도 끈끈했다. 마치 깊은 동굴의 입구에 선듯했다. 숲길은 매우 어두웠고 온통 바위가 울퉁불퉁할 뿐 흙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숲속의 어두움에 익숙해져 가만히 살펴보니 바위 틈을 비집고 각종 고사리류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나무마다, 바위마다 마치 옷을 입듯 이끼를 덮어쓰고 있었고 때로는 콩짜개덩굴을 갑옷처럼 두른 나무도 보였다. 송악, 담쟁이덩굴 등이 나무에 올라타 함께 햇빛 경쟁을 하고 있다. 힘겨운 나무들이 행여 바람에 쓰러질 세라 바위 틈새를 비집으며 뿌리를 키워 바위를 움켜쥐고 다시 뿌리를 뻗어 다른 바위를 감싸고 있었다. 동백나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 숲에 10만 그루의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다는데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전기가 들어오고 연탄이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나무를 베어낼 필요가 없어졌고 산림녹화 사업이 전국적으로 시행되면서 동백동산의 온갖 크고 작은 나무들이 무제한으로 마구 자라기 시작했다. 동백도 옆으로 퍼지기를 포기하고 위로 자라면서 햇빛 경쟁에 뛰어들었다. 나무마다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잎을 달고 있으니 어느 나무가 어느 나무인지 나무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알아볼 방법이 없다. 어둠 속에서 겨우 길을 알아보며 숲 속의 이런 저런 식물들을 살피다가 나무숲동굴을 빠져나오고 보니 고요한 연못이 펼쳐져 있다. 주위로 높이 자라 오른 나무들이 바람을 막고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 쬐는데 물풀 사이로 노란 실잠자리 한 쌍이 알 낳을 자리를 찾고 있었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켜켜이 쌓이고 나무와 덩굴이 뒤엉킨 곶자왈 한쪽의 연못에서 식수와 생활용수로 퍼다 쓰며 사람들은 이곳을 먼물깍이라 불렀다. 물이 귀한 산지에 사는 사람들에게 용암 암반 위에 자리한 먼물깍은 참으로 귀한 수자원이었다. 상수도가 보급되면서 물 사정이 좋아지니 사람들은 더 이상 이 먼 곳까지 물을 구하러 올 필요가 없게 되었다. 물속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수생식물이 자라고 그 그늘 속에 각종 곤충이 터를 잡으면서 먼물깍의 주인이 바뀌었다. 먼물깍의 새 주인들을 위해 사람들은 이 일대를 람사르습지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동백동산 숲속에선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수많은 풀과 나무, 곤충과 동물이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아름드리나무조차 그 뿌리가 끌어안고 있는 바위가 부실해지면 쓰러지고, 도무지 살아남을 기약이 없던 어린 나무들이 그 곳에 비치는 햇빛을 놓고 치열한 키 크기 경쟁을 한다. 살아 있기를 열렬히 간구하는 그런 ‘곶’(숲)이다.
2020-03-28 21:17:50
<br>서우봉은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과 북촌리 사이에서 북쪽 바다로 불쑥 돌출된 해발 113m의 오름이다. 한국향토문화대전에 따르면 과거엔 서모, 서모오름, 서모롬 등으로 불렸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서산(西山), 서산악(西山岳) 등의 이름도 얻었다. 조선시대에 서모오름의 북쪽 봉우리에 봉수를 설치하면서 이 봉수를 서산봉이라 했는데 조선 후기부터 서우봉(犀牛峰)이라고도 했다. 지금은 서우봉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으나, 원래 이름은 아니다. 서우봉은 한 시간쯤 무리하지 않고 산책하기에 좋은 바다와 숲을 갖추고 있다. 19번 올레길이 함덕 해변을 지나 이 봉우리를 넘어간다. 함덕리 청년들이 중심이 돼 해안길, 둘레길, 정상에 이르는 산책로 등 안전하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을 개발 및 관리하고 있다. <br>조금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서우봉에 오르기 전 오른쪽에 허물어져 가는 가마가 눈에 들어온다. 기와를 굽던 와막밧이다. 길이 11m, 높이 166cm, 너비 280cm이다. 불을 넣던 화구 부분을 포함해 앞부분 약 2.4m가 훼손된 채 거의 방치돼 있다. 이 가마에 대한 안내문이라도 없었다면 아무도 여기가 기와를 구웠던 곳임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가마터 뒤엔 집터를 닦고 있는지 축대를 튼튼하게 쌓아 평지를 만들고 있다. 함덕 해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다. 해안을 따라 난간이 있고, 바다 가까이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아직은 미완인 듯 멀리 가지 못하고 길이 끝난다. 이 길 끝에서는 서우봉에서 분출한 용암이 흘러내리며 굳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갖가지 모양의 바위를 살필 수 있으니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br>서우봉으로 오르는 길은 잘 닦인 시멘트 포장도로다. 한 발자국 오를 때마다 함덕 해변과 바다가 조금씩 넓어지며 눈에 들어온다. 마음의 여유가 있는 관광객들은 저녁때면 중턱의 정자까지 와서 함덕 해변과 저 멀리 지는 해를 즐긴다. 중턱이라고는 하지만 걸어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이다. 정자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면 오른쪽으로 또 산책길이 나타난다. 그 길을 따라 동쪽으로 한참 내려가면 일제 말기에 구축한 동굴 진지가 있다. 산책로는 잠시 아름드리 소나무, 팽나무, 덩굴이 우거진 숲을 지나 서우봉 둘레길로 연결되는데 이 길을 따라 서우봉 정상 부근을 한 바퀴 돌며 숲과 주변의 경치를 즐길 수 있다. <br>서우봉은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오름으로 보이지만 막상 들어가면 제주의 울창한 숲이 압도적인 곳이다. 특히 올레길 표시를 따라가다 보면 한 순간 숲속으로 풍덩 빠지는 느낌이 든다. 한여름에는 나뭇잎과 풀잎이 우거져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이 길은 그리 길지는 않지만 한낮에도 으스스할 정도로 어둡고 습도조차 매우 높아 걷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겨울철에는 적당한 햇빛 속에서 쾌적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숲을 벗어나면 함덕 해변은 물론 한라산과 멀리 서쪽으로 내려가는 능선 위의 오름들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에 이른다. 말과 염소를 키우는 방목지 상단에 위치한 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일품이다. <br>이곳에서 몇 걸음 더 가면 서우봉 정상이다. 지금까지 서우봉이 가로막고 있던 동쪽 해안 풍경이 펼쳐진다. 서우봉 아래 북촌과 그 너머 동쪽으로 시야가 끝없이 달려간다. 이곳에선 제주도 동쪽 바다의 새벽 일출도 감상할 수 있다. 북촌을 향해 서우봉을 내려가면 해안가엔 일제가 연합군을 향한 자살공격용 무기를 배치하기 위해 구축한 동굴 진지가 20여 곳이 남아 있다. 북촌엔 제주 4.3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마을 주민의 절반 가까이 학살당한 아픈 현장이 있다.서우봉은 북쪽을 바라보며 솟아올라 서쪽의 함덕 해변을 잔잔하게 바라보고, 동쪽으로는 북촌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준다. 새벽에 오르는 이는 일출을 감상하고 저녁에 오른 사람들은 석양을 바라보며 감동한다.
2020-03-28 20:00:15
제주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숲길은 단연 사려니숲길이다. 본래 사려니숲길은 제주시 조천읍 봉개동의 비자림로에 있는 숲길 입구(북서쪽)에서 출발해 물찻오름을 지나 서귀포시 남원읍의 사려니오름까지의 15㎞ 숲길을 말한다. 최근에는 비자림로의 숲길 입구에서 물찻오름(조천읍 교래리)과 붉은오름(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을 거쳐 남조로의 사려니 입구(가시리·남동쪽)까지 약 10㎞의 길을 통상 사려니숲길로 부른다. 사려니의 뜻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명이 있다. 하나는 ‘사려니’가 ‘실 따위가 헝클어지지 않도록 동그랗게 포개어 감는다’는 의미의 제주어인 ‘ㅅ·려니’로 보는데 사려니오름 정상에 거대한 바윗돌이 돌아가며 사려 있기에 ‘사려니오름’이라 했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사려니’가 ‘살안이’ 혹은 ‘솔안이’에서 왔으며 ‘살’ 혹은 ‘솔’은 신성한 곳이라는 신역(神域)의 산명에 쓰이는 말이므로 ‘사려니’는 ‘신성한 곳’이라고 풀이한다. 그러나 제주의 오름 이름은 그 뜻을 풀 수 없는 경우가 꽤 있으므로 ‘사려니오름’의 정확한 뜻풀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사려니숲길의 가장 큰 장점은 어느 곳에서 출발하든지 처음부터 끝까지 길이 잘 정비되어 있을 뿐 아니라 급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없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위치와 길 안내 및 숲 해설표지판이 곳곳에 있어 안전하다. 서귀포시 남조로의 붉은오름 사려니숲길 입구 주차장엔 연중 계절과 요일을 가리지 않고 늘 렌트카와 관광버스가 북적인다. 넥타이를 매고 고급 구두를 신은 복장으로도 단 몇 걸음만 걸어 들어가면 울창한 삼나무 숲이 호위하며 짙은 그늘을 드리울 뿐 아니라 길은 시멘트 또는 다른 재질로 포장되어 있으니 세상 어디를 가도 이렇게 편하게 깊은 숲속을 걸을 수는 없다. 이곳 붉은오름 사려니숲길 입구에서 걷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대개 삼나무 조림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정도의 길을 걷는데 멀어야 왕복 1.5㎞ 정도다. 많은 사람들이 사려니숲길을 가 본 적이 있다며 울창한 삼나무숲길을 이야기 하는 이유다. 그러나 편도 10㎞터의 길을 다 걸으면 그들이 본 삼나무숲길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길인지 알게 된다. 가끔은 사려니숲길과 전혀 다른 길을 걸어보고 나선 사려니를 밟아봤다고 소개하는 사람들이 있다. 좁고 구불구불한 숲속 오솔길로 인기척이라곤 없는 호젓한 길이라는데 알고 보니 절물오름 입구 근처의 사려니숲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안내도에 따라 사려니숲길 입구까지 2.5㎞의 조릿대숲길을 걸은 경우였다. 사려니숲길 걷기의 참맛을 즐기기 위해서는 제주시 봉개동 남조로의 사려니숲길 입구에서 걸어 들어가는 것이 좋다. 이곳은 찾는 이가 많지 않아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걸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제주 중산간지대의 자연림을 먼저 만나면서 제주 숲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삼나무 숲과 자연림이 혼재된 입구에서 걷기 시작해 150m쯤 가면 좌우에 자연림이 나타나면서 ‘새왓내 숲길 순환로’ 안내표지가 보인다. 무시하고 그대로 직진하기엔 1.5km의 순환로가 너무 매력적이다. 좌로 돌든 우로 돌든 야자매트를 따라 숲속으로 들어가면 누구든 걷기에만 집중할 수는 없다. 숲 속 깊은 곳을 바라보기도 하고 고개를 들어 나무 위를 살피기도 하며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처음 보는 작은 풀에 잠시 정신을 빼앗기기도 한다. 보라색 투구꽃, 옛 왕관의 깃을 닮은 포자낭을 키운 고사리삼, 한여름에 꽃을 피웠던 붉은사철란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숲에서 이들을 만나면 모르는 새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붉은오름 사려니숲길 입구까지 10㎞를 다 걸어도 이렇게 아름다운 오솔길은 없다. 가슴벅찬 오솔길을 돌아 다시 원래 서 있던 곳에서 넓은 신작로 길을 걸었다. 그러나 몇 걸음 가지 못해 장승처럼 우뚝 멈추었다. 저 앞에서 노루가 펄쩍 뛰어 나와 길을 가로 지르고 있었다. 얼떨결에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노루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숲으로 들어갔지만 멀리 가지는 않고 그저 태평스럽게 나뭇잎을 뜯고 있었다. 이 숲의 주인이 놀라지 않도록 조심조심 걸었다. 물찻오름 입구까지는 4.5㎞를 걷는다. 물찻오름의 정상까지는 채 1.5㎞가 되지 않지만 10여년째 탐방로 자연회복을 위한 자연휴식년제가 시행되고 있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개방되지 않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2008년부터 11년간 폐쇄됐고 올해 1년이 더 연장돼 내년 2021년 1월 1일 이후에 개방될 것이라 하지면 산림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또 연장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는 성판악으로 가는 길과 사려니오름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모두 막혀 있어서 생각 없이 걸어도 붉은오름 사려니숲길 입구까지는 길을 잃을까 염려할 필요도 없다. 물찻오름 입구를 지나 2㎞쯤 가면 월든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인 삼나무숲이 이어진다. 한여름이라면 길가의 수국이 삼나무 숲보다 훨씬 아름다운 길이다. 삼나무 숲 사이를 지나는 넓은 길을 비록 수국이 수를 놓고 있지만 단조롭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숲속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타난다. 미로처럼 보이는 컴컴한 이 길이 있어 사려니숲길이 덜 지루하다. 삼나무 숲 속엔 눈에 띠는 풀과 꽃이 거의 없다. 떨어진 작은 삼나무가지들이 표면을 두툼하게 덮어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걷다보니 조금의 휘어짐도 없이 수직으로 쭉쭉 뻗어 오른 삼나무도 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려니숲길은 크고 넓은 길만 걸어서는 숲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없다. 새왓내 숲길 순환로와 삼나무 숲속의 미로숲길 등의 샛길에서 숲의 평화와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햇빛 한 줄기 들지 못하는 숲 속에서도 풀과 나무는 새로 싹을 틔우며 숲의 주인이 될 날을 기대한다.
2020-03-17 10:16:45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의 거문오름은 거대한 말발굽형 오름이다. 용암이 분출되며 가운데 둥근 형태의 분화구를 만들지 않고 한쪽이 터지면서 흘러나간 형태의 오름을 말발굽형이라 하는데, 거문오름은 오름이면서도 제주도의 특징적인 식생과 용암지형 등을 거의 모두 보여주는 귀한 오름이다.최소한 하루 전에는 예약해야 하고 당일 예약은 받지 않는다. 예약된 시간 전에 도착해서 예약자 신분을 확인하고 입장권을 구매하면 입장이 가능하나 반드시 해당 시간에 배정된 해설자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오전 9시부터 30분 간격으로 오후 1시까지 한 회당 최대 50명씩 450명만 입장한다. 매주 화요일엔 이마저도 쉰다.한겨울 눈이 와도 등산용 지팡이와 아이젠 착용은 금지되어 있으며, 비 오는 날 우산 사용 역시 금지되므로 비옷을 입어야 한다. 물 이외에 어떤 종류의 식음료도 지참할 수 없으므로 출발하기 전 사물함에 보관해야 한다. 거문오름 한 번 보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그래도 방문자는 줄지 않는다. 꽃피는 봄에는 이곳 방문 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제주 여행 일정을 확정한 다음 이곳을 방문하려 예약하면 이미 늦다. 일찌감치 마감돼 있기 일쑤다. 거문오름은 어떻게 해서라도 한 번은 가서 걸으며 보고 들을 가치가 있다. 2005년 천연기념물 제444호로 지정됐다. 3년 후엔 거문오름·만장굴·용천동굴이 포함된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성산일출봉,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방문 예약부터 까다로운 이유는 국내 유일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을 훼손하지 않고 보존해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라고 해설사들은 말한다. 가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 없이 걷다가 와야 할 곳이다.거문오름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명이 있다. 그 하나는 오름의 흙이 검은 데다 숲이 우거져서 오름이 검게 보인다 하여 ‘검은오름’으로 불리다가 한자를 넣으면서 거문오름이 되었다는 설명이 있다. 거문오름은 한자로 거문악(巨文岳)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제주 고유어로 불리던 많은 오름들이 어느 때부터인지 한자 이름을 얻으면서 그 이름의 유래를 밝힐 수 없게 된 경우들이 있는데 거문오름은 예외인 듯하다. 이런 맥락에서 거문오름을 검은오름으로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또 다른 설명에 따르면 신(神)이라는 뜻을 지닌 ‘검’이라는 단어에서 ‘거문’이 유래했다고 하면서, 신령스런 산이라는 의미로 거문오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과거 인근의 주민들이 거문오름을 ‘거물창’으로 불렀다고 하는데 여기서 ‘창’은 분화구를 뜻한다고 하니 이도 납득할 만한 설명이다.거문오름에 처음 간 때는 지난해 10월 초였다. 탐방 시간을 오전 9시로 예약하고 이른 시간에 도착했는데 주차장은 아직 한산했다. 마치 만화영화에서 본 듯한 납작하고 날렵한 건물이 보인다. 세계자연유산센터다. 외계 비행선처럼 생긴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니 도넛 모양의 건물이어서 하늘을 한 번 더 보았다.이날 9시에 탐방객 정원을 거의 다 채워 출발했다. 해설사가 다시 간단한 주의사항을 전달하고 거문오름으로 출발하는데 이제 피어나고 있는 억새꽃이 햇빛에 반짝인다. 그 뒤로 보이는 오름 길에 짙은 삼나무 숲 그늘이 검다.거문오름 탐방은 1구간을 지나 2구간까지만 해설사가 동행한다. 탐방객들은 사정에 따라 1시간 소요되는 1.8㎞의 1구간만 보고 출구로 나갈 수도 있고, 2시간이 소요되는 총 5.5㎞의 2구간까지 보고 나갈 수도 있다. 3구간은 약 4.5㎞로 해설사 동행 없이 탐방로를 걷는다. 탐방객 대부분은 2구간에서 해설사와 함께 돌아가기 때문에 3구간의 탐방로 산책은 그 어느 때보다 호젓한 분위기를 속에서 즐길 수 있다.11월 중순 두 번째 방문길에 해설사가 거문오름 오르막 입구에서 오름 능선을 향해 나 있는 길에 관해 잠시 설명을 했다. 과거 제주도의 오름은 대부분 밭으로 이용되거나 아니면 소와 말을 방목하는 목초지로 이용되었는데 새로운 풀이 나기 전 풀에 불을 놓아 해충을 없애고 그 재를 거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 불을 놓을 때 난 이 길이 불태우는 구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거문오름의 능선은 총 9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탐방로는 가장 높은 제1봉으로 올라가 오름 전체를 조망하고, 말굽형 분화구 안으로 내려가 일대를 두루 살피고 반대편 능선의 제9봉에서 해설사 탐방을 마친다. 각 봉우리는 용(龍)으로 표현해 자유 탐방이 시작되는 제3구간에서는 봉우리마다 9룡에서 2룡까지 깃발이 꽂혀 있다. 11월 중순에 접어들었음에도 제1구간의 능선 탐방로 주변엔 곳곳에 달래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었다. 10월까지만 해도 꽃을 달고 있었던 양하는 잎이 모두 스러진 상태였다. 제1구간의 탐방로엔 내내 삼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었다. 이렇게 삼나무가 지배적인 곳엔 다른 식물은 거의 모이지 않으며 새 소리 역시 들리지 않는다. 아마 거문오름의 일부분을 지배하고 있는 삼나무 숲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숲과 삼나무의 식생 변화를 연구하고 있는 듯했다. 제1 탐방 구간이 끝나는 분화구에서 보니 10월에 만발했던 억새꽃은 이미 초라하게 지고 있었다.이곳은 거문오름에서 분출한 엄청난 양의 용암이 제주도 동쪽 해변으로 빠져나간 곳이다. 이 용암이 흘러내리며 표면이 식어 굳는 동안 그 아래에서는 여전히 굳지 않은 용암이 흘러나갔고 용암의 추가 공급이 멈추면서 각종 동굴이 형성되었다. 선흘수직동굴, 뱅뒤굴, 웃산전굴, 북오름굴, 대림동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이 이에 속한다. 이중 만장굴이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그러나 거문오름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결정적 역할을 한 곳은 용천동굴이라 한다. 전봇대 세우는 공사를 하던 중 전봇대가 땅속으로 가라앉으며 우연히 발견된 용천동굴은 용암동굴이면서도 석회암 동굴에서 발견되는 종유석 등 각종 탄산염 생성물이 가득해 세계적으로 그 사례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이는 용암동굴이 만들어진 후 지표면에 조개껍데기 등으로 이루어진 바닷가의 모래가 바람에 날려와 쌓이고 비가 내려 이 모래의 석회 성분이 동굴로 스며들어 마치 석회암 동굴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해설사는 설명하고 있다. 더구나 이 용천동굴 끝에는 맑고 잔잔한 거대 지하호수가 있고, 동굴 곳곳에서 토기 파편이 발견되어 고고학적 가치도 높다고 한다. 이 용천동굴은 개방되지 않고 있으며 연구 목적으로만 출입이 허용된다고 한다. 이 동굴 관련 영상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관람할 수 있다.억새 군락지를 지나 다시 숲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거문오름 탐방의 핵심구간이다. 이 지역은 각종 활엽수가 자연스럽게 자라며 새들을 끌어들이고, 제주 곶자왈의 특성을 보이는 바위 지대 위의 숲이 형성되고 있기도 하다. 화산탄, 동굴, 붕괴협곡 등 화산활동으로 생긴 각종 지형이 눈길을 끌며, 한때 사람이 살며 만든 잣성, 숯가마가 점차 흔적으로 변해가고, 일제강점기 말에 일본군이 구축한 진지동굴 등이 곳곳에서 여전히 입을 벌리고 있다.드문드문 섞여 있는 단풍나무와 각종 활엽수의 나뭇잎이 물들며 떨어질 준비를 하는 동안 숲은 제법 화려한 색으로 치장한다. 그 나무들 아래 햇빛이 간간이 비치는 곳 여기저기에 새우란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10월까지만 해도 성성하게 세우고 있던 잎이 어느새 낙엽 위에 누워 있다. 이젠 내년 봄에 연녹색으로 꽃대를 감싸며 올라올 새잎이 설 자리를 마련해 주고 있었다.
2020-03-15 19:20:52
곶자왈은 여전히 제주 밖에서 온 사람들에겐 낯선 단어다. 온통 돌과 바위뿐 둘러보아도 흙 한줌 보이지 않으니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았다. 이끼가 끼고 그 이끼가 습기를 머금자 풀씨 싹이 텄다. 뿌리가 돌 틈을 메우고 풀이 조금 더 무성해지면서 나무와 덩굴이 들어와 자랐다. 떨어져 쌓인 나뭇잎 더미가 물을 머금으며 숲은 더욱 짙어졌다. 숯을 굽는 이들과 경찰과 토벌대에 쫓긴 사람들이 들어왔었다. 연탄, 기름, 가스가 숯을 대신하면서부터는 숯가마도 버려졌다. 잘린 나무 그루터기에서 싹이 나 하늘을 가릴 만큼 자라 오르고 송악과 담쟁이덩굴이 타고 오르고 다래넝쿨도 늘어졌다. 이렇게 바위와 돌 틈에 뿌리를 내린 나무와 덩굴과 풀이 빽빽하게 뒤엉킨 숲이 곶자왈이다. 들어갈 이유도, 필요도 없어 수십 년 방치되었던 제주도의 곶자왈에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오름과 곶자왈을 중심으로 관광객을 위한 휴양림을 조성하면서부터다. 숲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울창한 그 속을 걸을 수 있도록 길을 내니 대표적인 곳이 제주시 동부의 절물자연휴양림과 교래자연휴양림, 서귀포시 동부의 붉은오름자연휴양림, 서부권의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이다. 제주곶자왈도립공원(서귀포시 대정읍)은 제주 국제공항에서 차로 50분 정도 걸린다. 이곳 곶자왈 동남쪽 자락에 제주영어교육도시를 건설하다보니 숲과 농지였던 곳에 학교, 아파트, 상가 등이 들어섰고 건설공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곶자왈의 품 안까지 택지가 조성되고 대단지 아파트가 자리잡았다. 울창한 숲을 파고 들어 동남쪽을 향하고 있는 두 아파트 단지 사이의 작은 공간에 공원의 매표소가 있다. 지도상으로 보니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이 개발 중인 제주영어교육도시의 뒷산처럼 남아 있다.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은 총 면적이 약 150만㎡다. 2011년 12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2015년 8월 개장했다. 구간별로 테우리길, 오찬이길, 빌레길, 한수기길, 가시낭길 등의 이름이 붙은 산책길이 숲 속에 마련되어 있다. 숲속 산책길은 대부분 나무데크로 조성되어 있거나, 야자매트가 깔려 있어서 도심의 거리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도 불편 없이 짧게는 30분 길게는 몇 시간이고 숲을 걸으며 누릴 수 있다. 남쪽으로 불과 10분 거리에는 추사 김정희 유배지에 추사관(서귀포시 대정읍)이 있다. 서귀포시 안덕면 용머리해안(공항 근처 제주시 용담 2동 용두암과는 다른 곳)도 멀지 않으므로 제주도 서남부 관광 계획에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을 포함시킨다면 제주의 곶자왈을 눈으로, 피부로, 폐부 깊숙히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제주영어교육도시의 울타리가 워낙 곶자왈 깊은 곳까지 들어와 있어서 제주곶자왈도립공원 입구를 들어가면 바로 눈앞에 믿을 수 없을 만큼 울창한 밀림이 펼쳐진다. 마치 바닷가에서 한 걸음 내 디뎠을 뿐인데 수심을 알 수 없는 깊은 바다를 만난 느낌이 이와 비슷할 것이다. 숲으로 들어가는 데크 길에 올라서면 그 순간 하늘은 나무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고 길 양쪽에 크고 작은 나무와 덩굴이 커튼을 치듯 벽을 세우고 있다. 훅 풍겨오는 숲의 냄새와 습기 가득한 공기가 느껴지면 모르는 새 가슴 깊이 빨아들이며 발걸음을 내딛는다. 나무, 풀, 덩굴로 우거진 속으로 들어가면서 머리를 스치며 흘러가는 생각에 집중한다. 간혹 보이는 표지판은 용암의 모양과 형성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나무는 이름표를 달고 있어 그 모양과 이름을 기억 속에 넣어보려 하나 살아오면서 눈으로 본 적이 없어 낯설 뿐이다. 제주에 와서 자주 보면서도 그 이름을 알아 낼 수 없었던 식물 이름을 발견하기도 하니 숲속 걷기가 지루하지 않다.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은 산책길과 숲 해설이 적절하게 설계되어 있어 누구라도 안전하고 쉽게 제주도 곶자왈의 진면목을 온 몸으로 경험할 수 있다. 제주의 서부지역을 둘러보는 여행 계획을 짠다면 곶자왈 경험에 관한 한 당연히 이곳이 최적의 장소다.
2020-03-10 14:53:52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의 ‘산굼부리’는 산에 생긴 구멍(굼)이란 뜻의 제주도 방언이다. 산굼부리가 특별한 이유는 그 깊고 큰 분화구 때문이다. 지름 650m, 둘레 2㎞, 깊이 132m의 분화구는 한라산 백록담보다도 더 넓고 깊다. 산굼부리의 관리사무소에서 제일 높은 곳까지의 높이가 31m인데 반해 이곳에서 분화구 바닥까지의 깊이는 132m다. 분화구 바닥이 주차장 지면보다 100m나 아래에 있다. 지질학자들은 산굼부리가 용암이 분출된 후 마그마의 공급이 갑자기 줄어들었거나, 마그마가 다른 곳으로 이동해 지하에 공간이 형성되면서 지반이 가라앉아 만들어진 함몰분화구라고 설명한다.산굼부리는 오름이라기보다는 잘 정돈된 공원이다. 특히 억새밭이 정성스럽게 잘 가꿔져 10월 중순부터 11월까지 일렁이는 억새꽃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더욱이 모든 산책로가 잘 다듬어진 제주화산석으로 깨끗하게 포장돼 누구든 발에 흙 묻히지 않고 걸으며 제주를 살필 수 있다. 유모차나 휠체어와 함께 둘러보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산굼부리의 넓은 억새밭이 온통 하얗게 변하면 사람들은 그 샛길을 따라 걸으며 ‘인생 사진’ 찍기에 바쁘다. 산굼부리 위에 서면 한라산 능선이 더욱 예쁘다. 깊은 분화구와 그 주변 경사면의 울창한 숲을 살피다가 고개를 들어 멀리 보면 여러 오름들 사이로 멀리 얼핏 성산 일출봉이 보인다. 산굼부리에서 숲을 그냥 멀리서 바라만 볼 필요는 없다. 전망대 왼쪽에 구상나무길로 들어서서 1.2㎞의 길을 천천히 걷다보면 잘 다듬어진 잔디밭엔 무릇꽃이 한들거리고 억새풀 사이에선 야고가 고개 숙여 인사한다. 잔대는 작은 꽃을 흔들고 아직 이름을 모르는 이런저런 꽃들이 알아보아 주기를 바라듯 고개를 내밀고 있다. 구상나무는 1907년 한라산에서 처음 발견돼 1915년 당시 미국 아놀드수목원 소속 연구원이었던 어니스트 헨리 윌슨(Ernest Henry Wilson) 하버드대 교수에 의해 존재가 미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키 작고 아담한 구상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 용도로 인기를 얻었다. 현재 구상나무의 지적재산권은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이 갖고 있어 우리나라 고유종임에도 정원수 등의 용도로 수입할 때는 지적재산권 사용료를 지불하고 수입해야 한다. 우리나라 고유종인 털개회나무가 미국에서 미스킴라일락이 되어 수입되고 있는 상황과 같다. 산림청은 1997년 털개회나무를 희귀 및 멸종위기 식물로 지정했다. 구상나무 역시 기후 변화에 따른 생육환경의 변화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구상나무길을 돌아 나와 ‘꽃굼부리’로 불리는 잔디밭을 돌고 보면 산굼부리 출입문까지는 몇 걸음 되지 않는다. 산굼부리 전망대까지 높이가 31m에 불과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10월 중순이면 산굼부리와 함께 제주도 서쪽에서도 새별오름(제주시 애월읍 봉성리)이 멋진 억새꽃 소식을 전한다.
2020-03-06 00:26:54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사거리에서 따라비오름 주차장까지 3km가 채 되지 않는 길에 들어서면 제주의 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행여 맞은편에서 오는 차를 만날세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운전을 하게 된다. 그러다 앞이 탁 트이면 긴장을 풀며 주차장에 들어선다. 숲이 좋은 산이 따라비오름이다.‘따라비’는 ‘다랑쉬’만큼이나 낯선 이름이다. ‘따라비’에 관해 이 오름이 속한 가시리에서 1998년에 펴낸 가시리지(加時里誌)에 따르면 주변에 있는 모지오름, 장자오름, 새끼오름의 가장이라 하여 ‘따애비’라 불리다가 ‘따래비’, ‘따라비’로 와전된 것이라고 풀이한다. 민속학자인 김인호 박사의 풀이는 조금 다르다. 이 오름의 본래 이름은 고구려어에 어원을 둔 ‘다라비’인데 높다는 뜻을 가진 ‘다라’와 제주도에서 산 이름에 쓰이는 접미사 ‘미’와 같은 의미의 ‘비’가 합쳐진 말이다. ‘다라비’는 ‘높은 산’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며 후에 경음화되어 ‘따라비’가 됐다는 해석이다.따라비오름은 제주 동부지역의 오름군에서 남쪽으로 떨어져 있어 제주 남쪽 바다에서 직선으로 불과 10km 거리에 있다. 오름에 오르면 수평선이 멀게 느껴지지 않을 뿐 아니라 한라산 역시 지척이다. 따라비오름을 특징짓는 단어 중 하나는 세 개의 분화구이고 다른 하나는 억새다. 다랑쉬오름은 크고 단정한 오름의 모양새와 그 안에 품고 있는 백록담보다 큰 분화구로 오름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따라비오름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아낌없이 ‘오름의 여왕’이라 부른다. 해발은 342m, 주변 지형 대비 높이 102m, 둘레는 2633m, 분화구 직경은 855m이다. 가을이면 억새가 오름 아래 남쪽 주변부를 넓게 장식하는데 억새의 부드러운 흰색과 오름 경사면 남쪽 인공조림 숲의 짙은 초록과 하늘의 파란색이 어우러져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따라비오름 앞에 섰을 때 눈에 들어오는 이 흰색과 초록과 푸른색이 어울린 아름다움은 제주에서도 맑은 가을날 이곳에서만 가슴에 품을 수 있다. 특히 10월 중순쯤 이곳을 찾아오면 사람들은 주차장 주변에서 억새꽃의 물결 속에 들어 그 부드러움을 온몸으로 느낀다. 간혹 그 억새 가장자리로 살짝 모습을 드러낸 짙은 보라색 꽃은 잔대다. 억새와 그 속의 꽃을 바라보다 잠시 따라비오름을 잊는다.억새의 부드러운 몸짓에 흡족해진 마음으로 초록의 숲을 향해 걷는다. 그 숲 입구에서 만나는 목책은 이 오름 역시 소와 말의 방목지임을 알려준다. 길은 숲으로 향하지 않고 그 가장자리를 따라 왼쪽으로 향하다 작은 골짜기를 만나 비로소 위로 향한다. 은근한 그늘 속에서 계단을 오르고 언덕을 오르며 꽃과 풀을 살피다 문득 하늘이 환해지면 다시 억새가 보이며 그곳이 따라비오름의 능선임을 알려준다.바쁜 걸음으로 올라 능선에 서서 보니 분화구 셋이 이마를 마주대고 있고 그 가장자리를 넓게 봉우리와 능선이 둘러싸고 있다. 분화구 안에서 나온 세 갈래의 길이 바깥 능선의 높은 봉우리에 걸려 있다. 분화구와 능선엔 온통 억새가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문득 심장판막 중 대동맥판막이 생각났다. 심장이 힘껏 오므라들면 산소를 가득 머금은 피는 이마를 맞대고 꼭 닫혀 있던 판막을 열어젖히며 심장 밖으로 뿜어져 나간다. 피가 대동맥판막을 벗어나는 순간 세 판막은 다시 닫힌다. 피는 심장으로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나가던 힘으로 손가락 끝과 발끝까지, 뇌의 구석구석까지, 몸속 모든 장기의 끝까지 퍼져나가 그 산소를 나눠준다. 따라비오름은 그 안의 분화구 셋이 생명 유지의 첫 관문인 심장의 대동맥판막을 닮았다. 능선을 따라 걸으며 사방의 경치를 즐기고 분화구 안으로 이어진 길 위에서 문득 펄떡이는 생명의 꿈틀거림을 느낀다. 분화구 안에 서서 햇빛을 가득 머금은 억새가 능선을 향해 일렁이는 모습을 바라보는데 문득 심장에서 산소를 머금은 생명수가 온 몸으로 퍼져 나가는 듯했다.능선에 다시 올라 바라보는 남쪽 바다는 따뜻하고, 제주의 모든 오름을 안고 있는 한라산의 품은 넓게 보인다. 화려한 가을 억새와 대동맥판막을 닮은 분화구로 따라비오름을 기억하며 둘레길을 걸었다.
2020-02-21 18:42:23
인가만 벗어나면 모두가 숲인 제주에서 새삼 더 나은 숲을 찾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생태적으로 정서적으로 만족을 주는 명품 숲이 분명 있다. 제주도의 대다수 숲은 사실 곶자왈이다. 제주말로 숲을 뜻하는 ‘곶’과 암석과 덤불이 뒤엉킨 ‘자왈’의 합성어다. 특유의 신비감과 노스탤지어가 살아 숨쉬는 공간이다. 엠디팩트는 오근식 여행작가(전 건국대병원 홍보팀장)이 선정한 제주도 7대 ‘숲 중의 숲’을 연재한다. ①비자림(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②제주곶자왈도립공원(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 ③사려니숲길(북서쪽 입구·제주시 조천읍 봉개동·비자림로~제주시 조천읍 교래리·둘레길~물찾오름~붉은오름입구~남동쪽 입구·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남조로) ④동백동산(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⑤붉은오름자연휴양림(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남조로) ⑥교래자연휴양림(제주시 조천읍 교래리·남조로) ⑦절물자연휴양림(제주시 봉개동·명림로) 제주의 숲길은 낯선 환경을 살펴가며 자기 체력에 맞추어 걸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숲속의 새와 곤충과 풀과 꽃을 바라보며 눈에 익히고 귀에 담을 수 있으니 동식물에 관심이 많다면 즐거움이 많은 곳이다. 다만 정비돼 있는 산책로일지라도 곶자왈 지형의 특성상 때로 튀어나온 암반과 나무뿌리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길이 무작정 평탄하지는 않아 주의를 기울여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도무지 지루할 겨를 없이 10㎞쯤 걷고 나오면 심신이 개운한 곳이 제주도의 숲길이다. 비자림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숲이다. 수령 500~800년까지의 비자나무 2878 그루가 모여 있다. 우리나라에서 비자나무는 그리 흔한 나무가 아니다. 더구나 어떤 수종이라도 수령 수백년의 건강한 고목이 이렇게까지 밀집돼 있는 곳은 없으니 제주도에 오면 반드시 한 번은 찾아가 걸어야 하는 데가 비자림이다. 비자림의 산책로는 총 3.2㎞인데 이 중 1㎞ 정도는 휠체어나 유모차도 편안하게 다닐 수 있도록 다듬어져 있다. 비자나무 숲 끝 쪽으로 연장된 오솔길 형식의 탐방로는 좀 더 호젓하게 걸을 수 있다. 2012년 봄 처음 비자림을 걸었다. 숲속에 가득한 덩굴을 무색하게 만드는 엄청난 크기의 비자나무에 압도됐었다. 그날 산책로를 나오다가 이 숲의 비자나무조차 잊게 만든 너무나도 가벼운 새우란을 만났다. 산책로에서 멀지 않은 풀숲에 세 그루의 새우란이 꽃을 활짝 피우고 자신만만하게 햇볕을 받아내고 있었다. 꽃은 마치 초콜릿색의 상의와 흰 치마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아가씨처럼 보였다. 누군가 욕심내지 않는다면 내년에도 후년에도 그 근처 어디선가 이맘때쯤 또 찾아올 그이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자리를 떴다. 그 후로 내게 비자림은 비자나무가 아니라 거기 있던 새우란으로 기억됐다. 두 해 뒤 초여름에 찾아갔을 때는 비가 왔다. 우비를 입고 걸으며 숲이 숨 쉬는 소리를 들었다. 덩굴과 그 덩굴을 뒤집어 쓴 나무들의 합창과 춤을 비자나무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문득 스치는 바람에 숲의 온갖 향이 한꺼번에 실려 왔다. 빗속에서도 그 숲에 들어간 진짜 이유는 2년 전 보았던 새우란을 다시 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그날은 새우란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5년 뒤 다시 찾은 2019년 8월의 비자림은 예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수령 100년의 곰솔 고사목을 잘 다듬어 ‘천년의 숲 비자림’이라는 글귀를 새겨 입구에 세워두었다. 예전에 걸었던 산책로를 걸으며 보니 숲이 텅 비었다. 비자나무 사이사이 자라고 있던 활엽수에 기대어 숲을 가득 채웠던 덩굴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덤불도 많이 줄어 여기저기 이끼옷을 입은 바위들이 드러나 있었다. 아마도 이 숲의 주인인 비자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숲을 가득 채우고 있던 송악, 마삭줄, 담쟁이 등의 덩굴을 대부분 제거한 듯했다. 덕분에 숲 깊은 곳까지 눈길이 미친다. 예전엔 덩굴들의 이파리 위로 솟아 있는 비자나무의 가지를 보며 그 크기와 모습을 상상했는데 이제는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 비자나무의 등걸과 가지와 그 나무가 점령하고 있는 땅위의 모습까지 하나하나 잘 보였다. 비자림도 곶자왈이다. 흙 한 줌 없이 용암 바위들이 널린 곳에 나무, 덩굴 그리고 덤불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자라는 동안 나뭇잎이 쌓이고 그 아래로 뿌리들이 끝없이 물을 찾아 뻗으며 형성된 울창한 숲이 곶자왈이다. 비자림에 우뚝 선 2878 그루의 비자나무들은 적어도 800여 년 동안 무수한 덩굴과 이 덩굴이 오르던 나무들과 그 아래의 돌들을 덮던 덤불 속에서 살아남은 최후의 승자들이다. 2018년 8월 제주도는 구좌읍 비자림로 확장 공사를 위해 30여년 된 아름드리 삼나무를 800m 정도 베어내어 길을 내려다가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중단했다. 삼나무는 외래 수종이고 강하게 양분을 빨아들여 토양을 산성화시키고 다른 나무들이 자랄 수 없게 훼방해 생태 다원성을 훼손한다는 이유였다. 또 삼나무가 너무 많아 간벌을 통해 길을 내서 주민편의를 증진하고 교통체증과 교통사고 위험도 낮춰야 하며 삼나무로 인한 꽃가루 알레르기도 줄여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나름 절경의 하나인 삼나무숲이 베어지다보니 외지인이 보기에 흉흉한 게 사실이었다. 외래수종이라도 30년 이상된 멋있는 풍경을 훼손할 수 있느냐는 게 간벌 반대론자의 입장이었다. 관광객의 시각에서 보느냐, 주민의 입장에서 판단하느냐는 겪어보지 않고서는 누가 옳다 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비자림을 찾아가는 길에 막막하게 비자림을 감싸고 있던 삼나무숲이 훼손된다면 긴 장마 후 오랜만에 드는 햇살처럼 신비하게 나타나는 비자림을 볼 수 있는 정취가 반감될 것은 사실이다.
2020-02-17 18:46:02
“발해(渤海) 동쪽에서 수억만리 떨어진 곳에 오신산(五神山)이 있는데, 높이는 3만리이다. 여기엔 금과 옥으로 지은 누각(樓閣)이 늘어서 있고, 주옥(珠玉)으로 된 나무가 우거져 있다. 이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이곳엔 하늘을 날아다니는 선인(仙人)들이 산다. 오신산은 본래 큰 거북의 등에 업혀 있었는데, 뒤에 두 산은 흘러가 버리고 삼신산 (三神山)만 남았다고 한다.”사기(史記) 열자(列子)에 있는 삼신산에 관한 이야기다.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이 삼신산으로 우리의 귀에 익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금강산을 봉래산(蓬萊山), 지리산을 방장산(方丈山)이라 불렀다. 나머지 하나 영주산(瀛洲山)이 바로 한라산이다.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의 영주산은 한라산 자락의 작은 오름으로 산이라 칭하는 것만도 특별한데 아예 한라산의 이름을 이어받았다. 영주산은 높이 176m의 일반적 높이의 오름이다. 분화구가 동쪽으로 터져 있어 오름의 모양이 말발굽처럼 생겼다. 오름 서쪽의 비탈이 심한 부분은 삼나무와 소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지만 나머지는 경사가 완만한 초지여서 소 방목장으로 이용되고 있다.주차장이 넓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직은 찾는 이가 많은 편은 아니어서 주차에 불편은 없었다. 그러나 화장실은 마련되지 않았다. 영주산 걷기는 소가 넘을 수 없도록 만들어진 계단을 타고 올라가며 시작한다. 밧줄 울타리의 계단을 따라 가면 끝에 작은 시멘트 벙커가 있다. 소 관리하다 갑자기 비라도 오면 잠시 피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인 듯하다. 그 안에는 누군가 이런 저런 그래피티 작업을 해 두었다. 소들이 여름내 풀을 뜯은 탓인지 가시가 있는 작은 나무들을 제외하고 모든 풀은 잔디를 깎은 듯 짧다. 가시엉겅퀴, 꽃향유, 이질풀, 쑥부쟁이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가을꽃이 땅에 납작하게 붙어 있다. 반복적으로 소가 뜯어 먹으니 꽃 피울 기회를 번번이 놓치다가 소들이 뜸할 때에 번개처럼 꽃을 피운 듯하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소똥만 아니라면 초지는 잘 다듬어진 잔디밭 같아서 발 딛는 느낌이 좋다.낮게 누운 꽃과 풀밭을 느끼며 두 번째 언덕까지 오르면 비로소 시야가 넓어진다. 북쪽의 오름들이 멀리 보이고 동쪽으로는 풍력발전기 너머로 성산일출봉이 크게 보인다. 남쪽을 보면 수평선이 훌쩍 올라와 있다. 이곳의 나무계단은 마치 하늘에 올라서는 느낌의 사진을 연출할 수 있도록 설치했다. 산책로는 서쪽을 향해 완만하게 오른다. 한라산 정상부가 조금씩 올라온다. 철 지난 당잔대와 가시엉겅퀴, 꽃향유 꽃의 키가 커졌다고 생각할 즈음 산불감시 초소에 이른다. 영주산의 정상인 초소에서 비로소 서쪽으로 수많은 오름을 품에 안은 한라산이 보이고 남쪽으로 성읍민속마을이 보인다. 그리고 안내표지판에서 영주산 지명에 관한 애매한 설명을 읽는다. ‘신선이 살아 영모루라 불리다 한자로 영지(靈旨)로 표기되다가 발음이 비슷한 영주로 정착되었다’는 해설이 적혀 있다. 변천 과정에 대해 참 애매하게 적었다. 많은 사람들이 영주산을 영모루오름이라 부르고 있으니 바른 해설인지는 알 수 없다. 한자표기를 하려다 보니 조금은 억지스러운 이유를 끌어와 이름을 바꾼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길은 이내 내리막이고 잠시 후 갈림길 표지판이 보인다. 왼쪽 길은 주차장이고 오른쪽 길은 영주산 둘레길이다. 여기서부터는 어느 쪽으로 가든 울창한 숲길이다. 둘레길로 접어들었는데 급경사로다. 산책로를 ‘ㄹ’자 형으로 내었지만 방향이 바뀔 때마다 경사가 매우 급해 걸음이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경사로와 씨름하며 걷다보니 소나무숲이 어느새 삼나무숲으로 바뀌고 곧 숲이 끝난다. 그 아래 양지바른 곳에 마을 공동묘지가 있다. 어느 오름을 가든 비슷하다. 다니다 보니 좋은 자리 찾아 오름 높은 곳에 묘를 쓰고는 돌보지 않아 나무와 풀이 무성해져 돌담이 없었다면 무덤이라 알기 어려운 곳이 태반이다. 이곳 오름 아래 누운 분들은 그나마 소박한 삶을 살은 듯 싶다. 어렸을 적 이 오름에서 뛰어놀고 어른이 되어서는 이 오름에서 농사짓고 가축 키우다 늙어 다시 오름으로 돌아갔으리라.숲 가장자리로 넓은 평지에 억새가 무성한데 그 사이로 푸른 잎의 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문득 보니 차나무다. 철 늦은 차나무꽃이 드문드문 보이는데 누군가 심기만 하고 가꾸지 않아 차나무는 대부분 머리 위로 훌쩍 자라 올랐다. 차나무밭을 벗어나니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다. 그 길 끝에서 저수지를 만난다. 농어촌공사에서 2003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2016년 12월에 공사를 마친 이 성읍저수지의 저수용량은 125만㎡다. 저수지라기보다는 커다란 호수로 보인다. 그 둘레가 2.5㎞에 이르는데 이 물이 지하로 스며들거나 흘러나가지 않도록 가두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듯하다. 저수지 둘레길이 만들어져 있지만 너무 황량해 보여 걷기를 포기하고 다시 돌아 나와 영주산 둘레길로 접어들었다. 처음 출발한 주차장까지 계속 목초지를 걷는다. 삼나무가 울타리 역할을 하며 초지를 분할해 두었다. 이 울타리를 몇 번 지나는 동안 볼 것이라고는 길가에 드문드문 피어 있는 꽃뿐이어서 꽃에 관심이 없다면 영주산 둘레길은 조금 지루할 수도 있다.삼신산 중의 하나라는 내용을 읽고 걷기 시작한 영주산은 걷기를 끝내고 나서도 그 모양새가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정상에서 보는 사방의 경치가 장관이어서 꼭 한 번은 올라야 할 오름이다.
2020-02-11 14:19:35
백약이오름은 해발 356.9m이며 실제 높이는 132m다. 원형 분화구는 크지 않지만 그 주변 능선은 제법 높낮이에 변화가 있다.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돌아볼 수 있는 거리다. 과거엔 개여기오름으로 불렸고 19세기에 와서 약초가 많이 있어 백약이오름(百藥岳)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맞은편(북동쪽)에 문석이오름(문세기오름)과 동검은이오름이 가까이 있다. 동쪽에는 좌보미오름이 있다. 백약이오름은 능선의 형태가 용눈이오름만큼 변화가 많지는 않지만 오르는 길 중간에서부터 능선에 올라서까지 눈에 보이는 풍경이 시원하고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그러나 주차장은 찾는 이들에 비해 부족한 편이고 무엇보다 화장실이 마련되지 않아 불편하다. 오름 산책로의 오른쪽(북동쪽) 완만한 경사면은 가축 방목을 위한 목초지로 사용되고 있고 남쪽과 북서쪽 경사면에는 삼나무조림지가 있다. 오름의 위쪽(북서쪽)으로 아직 어린 곰솔 군락지가 있고 분화구 안에도 곰솔이 자라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민둥산 형태의 오름이어서 능선 위에서의 시야가 좋다.약초가 많이 자란다는 말이 생각나 오름을 오르며 꽃과 풀을 살폈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초목은 없었다. 꽃 핀 잔대 몇 포기로 만족을 하며 오르다 오던 길을 뒤돌아보니 눈이 참 시원하다. 목초지 근처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예쁜 사진을 얻으려 애쓰고 있고, 더 멀리 보니 온통 초록세상이다. 백약이오름의 분화구는 다랑쉬오름이나 산굼부리의 분화구만큼 웅장하지도 않고, 용눈이오름처럼 여러 분화구가 겹친 특별한 모양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래도 경사면을 따라 분화구 숲이 꽤 짙었다. 어쩌면 백약이오름은 이 숲에 약초를 숨겨두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백약이오름의 분화구 둘레는 크지 않지만 높낮이 차이 때문에 걷다보면 시시때때로 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 그저 앞만 보고 부지런히 걸을 것이 아니라 끝없이 두리번거리며 산책로 주변의 수풀을 살피고, 눈을 들어 사방의 풍경을 보며 살펴야 백약이오름의 진가가 드러난다. 큰 수고 없이 걸으며 제주의 아름다움을 속속들이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능선을 천천히 걷다보면 처음 보는 꽃과 풀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8월이나 9월이라면 절굿대와 소황금 꽃이 사람들을 반긴다. 특히 이곳에서 발견된 소황금(小黃芩)은 널리 재배되고 있는 황금보다 짧고 잎 모양도 달라 신종으로 보고된 적이 있으니 눈여겨 볼 일이다. 이곳은 아름다운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장소로 젊은이들에게 꽤 널리 알려진 곳이다. 길 양쪽의 목초지와 오름까지의 시야가 워낙 시원하게 트여 있어서 어떠한 방향으로 촬영을 해도 만족스러운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분화구 둘레를 걷다보면 흰 드레스를 입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이 종종 눈에 띈다. 오름에 오르지는 않고 목초지 언저리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다.2019년 여름 서귀포시가 백약이오름 탐방로를 정비하면서 길 양쪽에 기둥과 밧줄을 설치해 목초지 출입을 차단했다. 방목지도 보호하고 가축으로 인한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차원인 듯하다. 길 양쪽의 기둥들이 사진에 방해가 되긴 하지만 몇몇 젊은이들은 개의치 않고 길 중간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여전히 줄을 넘어 목초지에서 사진을 찍는 이들도 더러 보인다.
2020-02-04 16:2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