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21 18:42:23
따라비오름 서쪽에선 한라산이 마치 어머니와 같은 넉넉한 품으로 가까이서 바라보고 있다. 오름의 남쪽 인공조림지 외의 다른 방향에는 이렇다 할 나무가 거의 보이지 않고 아직 어린 소나무들이 드문드문 자라고 있다.
‘따라비’는 ‘다랑쉬’만큼이나 낯선 이름이다. ‘따라비’에 관해 이 오름이 속한 가시리에서 1998년에 펴낸 가시리지(加時里誌)에 따르면 주변에 있는 모지오름, 장자오름, 새끼오름의 가장이라 하여 ‘따애비’라 불리다가 ‘따래비’, ‘따라비’로 와전된 것이라고 풀이한다.
민속학자인 김인호 박사의 풀이는 조금 다르다. 이 오름의 본래 이름은 고구려어에 어원을 둔 ‘다라비’인데 높다는 뜻을 가진 ‘다라’와 제주도에서 산 이름에 쓰이는 접미사 ‘미’와 같은 의미의 ‘비’가 합쳐진 말이다. ‘다라비’는 ‘높은 산’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며 후에 경음화되어 ‘따라비’가 됐다는 해석이다.
따라비오름은 제주 동부지역의 오름군에서 남쪽으로 떨어져 있어 제주 남쪽 바다에서 직선으로 불과 10km 거리에 있다. 오름에 오르면 수평선이 멀게 느껴지지 않을 뿐 아니라 한라산 역시 지척이다. 따라비오름을 특징짓는 단어 중 하나는 세 개의 분화구이고 다른 하나는 억새다.
다랑쉬오름은 크고 단정한 오름의 모양새와 그 안에 품고 있는 백록담보다 큰 분화구로 오름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따라비오름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아낌없이 ‘오름의 여왕’이라 부른다. 해발은 342m, 주변 지형 대비 높이 102m, 둘레는 2633m, 분화구 직경은 855m이다.
가을이면 억새가 오름 아래 남쪽 주변부를 넓게 장식하는데 억새의 부드러운 흰색과 오름 경사면 남쪽 인공조림 숲의 짙은 초록과 하늘의 파란색이 어우러져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따라비오름 앞에 섰을 때 눈에 들어오는 이 흰색과 초록과 푸른색이 어울린 아름다움은 제주에서도 맑은 가을날 이곳에서만 가슴에 품을 수 있다.
특히 10월 중순쯤 이곳을 찾아오면 사람들은 주차장 주변에서 억새꽃의 물결 속에 들어 그 부드러움을 온몸으로 느낀다. 간혹 그 억새 가장자리로 살짝 모습을 드러낸 짙은 보라색 꽃은 잔대다. 억새와 그 속의 꽃을 바라보다 잠시 따라비오름을 잊는다.
억새의 부드러운 몸짓에 흡족해진 마음으로 초록의 숲을 향해 걷는다. 그 숲 입구에서 만나는 목책은 이 오름 역시 소와 말의 방목지임을 알려준다. 길은 숲으로 향하지 않고 그 가장자리를 따라 왼쪽으로 향하다 작은 골짜기를 만나 비로소 위로 향한다. 은근한 그늘 속에서 계단을 오르고 언덕을 오르며 꽃과 풀을 살피다 문득 하늘이 환해지면 다시 억새가 보이며 그곳이 따라비오름의 능선임을 알려준다.
바쁜 걸음으로 올라 능선에 서서 보니 분화구 셋이 이마를 마주대고 있고 그 가장자리를 넓게 봉우리와 능선이 둘러싸고 있다. 분화구 안에서 나온 세 갈래의 길이 바깥 능선의 높은 봉우리에 걸려 있다. 분화구와 능선엔 온통 억새가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능선에 다시 올라 바라보는 남쪽 바다는 따뜻하고, 제주의 모든 오름을 안고 있는 한라산의 품은 넓게 보인다. 화려한 가을 억새와 대동맥판막을 닮은 분화구로 따라비오름을 기억하며 둘레길을 걸었다.
당사의 허락 없이 본 글과 사진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