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로 넓게 뻗은 강원도의 중심 … 산세 수려한 홍천의 겨울 비경
2019-11-29 16:10:32
중앙(동면)엔 공작산 생태숲 ·구룡령길, 서쪽에 팔봉산, 북쪽엔 내린천 ·살둔마을
강원도 홍천의 겨울은 어떤 모습일까? 대부분의 땅이 산과 계곡으로 이뤄진 홍천은 어딜 가나 쉼터이고 비경이다. 홍천 여행은 크게 읍내를 기준으로 2개 코스로 나눌 수 있다. 44번 국도를 타고 북동쪽 인제 쪽으로 가는 방법과 56번 국도를 타고 동쪽 양양 방향 구룡령을 넘는 방법이 그것이다. 양양으로 넘어가는 56번 도로변에는 크고 작은 계곡들이 즐비하다. 오대산 북쪽인 구룡령 일대는 오가는 길이 험하지만 한적한 산골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공작산 생태숲과 산소길의 계곡 비경
이번 여행의 출발점은 공작산(孔雀山) 자락에 포근히 안긴 천년고찰 수타사(壽陀寺, 동면 덕치리)이다. 홍천의 겨울은 어디든지 좋지만 수타사와 수타사계곡은 유독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수타사에서 공작산 생태숲으로 이어지는 산소길이 인기를 끌면서 한겨울에도 제법 시끌벅적하다. 홍천엔 여러 산이 있지만 공작산은 영험한 산이다. 산새가 아름답고 암봉과 노송이 어우러져 공작 같다 하여 이같은 이름을 얻었다. 조선시대부터 세조의 비 정희왕후의 태실이 자리를 잡으면서 왕실의 숲으로 보호받았다. 공작산 생태숲과 산소길은 언제 찾아도 좋다.
드물게 평지에 자리한 수타사는 신라 성덕왕 때 창건한 고찰이다. 경내에 세조5년(1459년)에 세조가 석가일대기를 적어 간행한 월인석보(月印釋譜, 보물 745호)를 비롯해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다. 수타사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얼어붙어 을씨년스럽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우렁차다.
숲속으로 열린 산소길은 수타사를 벗어나면서 시작된다. 때가 때인지라 알록달록 물든 단풍과 푸른 색깔은 볼 수 없지만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공기 맛이 참 좋다. 숲을 스치는 바람 소리와 청아한 새 소리는 또 어떠한가. 기분이 절로 업 된다. 몸에 달라붙는 피톤치드도 맘껏 들이킬 수 있고 무엇보다 심신이 편안해진다. 바쁜 일상에선 느낄 수도 볼 수도 없었던 행복한 시간이다.
산소길을 걷다 처음 만난 비경, 출렁다리다. 이름 그대로 출렁거리는 다리 밑으로는 움푹 파인 ‘귕소’가 모습을 드러낸다. ‘귕’은 이곳 말로 소나 말이 여물을 먹는 통을 말하는데 소(沼)의 모양이 귕을 닮아 붙은 이름이다.
조금 더 가다 만난 두 번째 비경, 용담(龍潭)은 얼어붙었다. 용이 승천했다는 소인데 그 위로 펑퍼짐한 너럭바위가 천년 세월을 얘기하고 있다. 이곳에서 계곡 상류 쪽으로 계속 가면 농가 몇 채가 있는 신봉마을과 노천리가 나온다. 산소길은 노천리까지 이어지는데 낙엽 수북한 오밀조밀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하늘을 찌를 듯한 잣나무, 단풍이 아름다운 마가목, 매끈한 자태의 은사시나무, 아름드리 소나무, 쓰디쓴 열매를 맺는 소태나무, 아까시나무의 축소판이라는 귀룽나무 등을 만날 수 있다. 공작산 생태숲 홈페이지(www.ecogongjaksan.kr)를 보면 두루 친해질 수 있다.
산소길은 모두 4개 코스로 나뉘는데, 수타사를 둘러보고 생태숲-출렁다리-귀ㅇ소-용담-수타사로 돌아오는 코스가 가장 일반적이다. 총 2km에 서두르면 1시간, 천천히 걸으면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지친 몸과 마음을 힐링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길이다.
참고로 오리나무는 거리 측량을 위해 오 리마다 심었다고 전해지지만 실제는 오리나무가 습지대에 잘 자라고 습지대에 오리(鴨)가 서식하므로 여기서 오리나무란 이름이 유래했을 것이란 설명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시무나무는 십 리 또는 20리 마다 심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고 하나 문헌에 남아 있는 바는 없다. 오리나무는 자작나무과, 시무나무는 느릅나무과다.
기개 넘치는 팔봉산, 얕은 수심에 물맑은 백사장 반짝이는 홍천강
서면의 홍천강(洪川江)과 그 중류의 팔봉산(八峰山)은 붙어 있다. 해발 302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여덟 개의 봉우리와 치맛자락처럼 이어진 능선은 작지만 다부진 기개를 보여준다. 주차장이 있는 팔봉교에서 매표소를 지나면 바로 산행이 시작된다. 산행은 보통 3봉으로 올라 8봉까지(2.1km) 이어지는 능선길을 택한다. 1봉에서 8봉까지(2.6km) 뻗어있는 일주 코스도 있다. 그냥 1봉으로 올랐다가 3봉으로 내려오는 경우도 흔하다. 일주 코스는 어른 걸음으로 2시간 30분 남짓 걸린다.
팔봉산이 인기를 끄는 것은 바로 밑에 홍천강이 흘러서다. 등산과 물놀이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여름이 성수기지만 겨울도 나름대로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다. 다만 눈이 쌓인 겨울엔 등산장비를 꼭 갖추고 여러 명이 팀을 이뤄 움직여야 한다. 홍천강의 자랑인 넓고 고운 백사장은 마치 해변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근래 들어 붐을 이루고 있는 오토캠핑도 가능한데 비취빛 강물과 파란 하늘을 벗 삼아 색다른 정취에 빠져볼 수 있다.
홍천강은 서석면 생곡리 미약골이 발원지다. 홍천군 중심을 가로질러 팔봉산을 지나 청평호로 이어지는 총 143㎞다. 상류 계곡엔 모래무지, 쏘가리, 누치 등 1급수에만 사는 물고기가 지천이다. 홍천강은 곳곳에 유원지란 이름으로 쉼터를 마련해 놓았는데 강줄기와 나란히 달리는 44번 국도변의 팔봉산, 굴지리, 모곡밤벌, 수산, 개야, 마곡, 노일강변 등이 유원지로 이름난 곳이다. 겨울엔 뜸하지만 여름철엔 수심이 얕고 물이 맑아 피서 삼아 이곳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모곡밤벌유원지 한쪽엔 독립운동가 한서(翰西) 남궁억(南宮檍, 1863~1939)의 묘역과 기념관이 있다. 한서 남궁억은 서울 정동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황성신문’을 창간했다. 언론인, 교육자로서 민중계몽을 위해 힘썼다. 서재필, 이상재 등과 함께 독립협회를 창립하고 1933년 11월엔 독립운동 비밀결사대인 ‘십자당’을 조직해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에 직접적으로 투신했다. 무궁화꽃과 직접 지은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등 1백여 곡의 애국가요를 보급했다. 옥살이와 고문으로 투병하다 그가 지은 홍천 한서감리교회와 한서초등학교 가까운 데서 사망, 이곳에 묻혔다.
내린천의 출발점 살둔마을, 독특한 외형의 살둔산장
팔봉산과 홍천강이 있는 서면에서 북동쪽 내면으로 거슬러 오르다 보면 겨울철 특유의 비경을 두루 만날 수 있다. 특히 내면계곡은 무주 구천동을 열 개쯤 모아놓은 것처럼 절경이다. 오대산, 계방산, 응복산 등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시리도록 찬 물은 계방천, 자운천, 조항천, 내린천으로 합치고 갈리면서 수많은 여울과 폭포, 소를 만들어놓았다.
내면 율전리 살둔마을. 강원도에서도 가장 강원도답다는 이곳은 산줄기 물줄기가 첩첩이 돌아가는 산중이다. 내린천이 시작되는 첫 마을로 현재 열 가구가 산밭을 일구며 살아간다. 1985년에 지은 귀틀집 모양의 살둔산장(www.saldun.co.kr)은 한국의 100대 산장에 꼽힌다. 산악인 윤두선씨(고 윤보선 대통령 동생)가 월정사 복원 작업에 참여한 도목수에게 부탁해 지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어찌 보면 전통사찰 같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일본식 주택을 연상시킨다. 내부에 있는 2층 다락방은 ‘바람을 베고 눕는다’의 뜻으로 ‘침풍루(寢風樓)’라는 이름이 붙었다. 산장 바로 옆 계곡은 내린천의 상류 지점으로 풍광이 수려하다. 살둔마을에서 홍천 문암마을로 넘어가는 총 6㎞의 트레킹코스도 열려 있다.
살둔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미산계곡, 모래소계곡, 미천골, 명개리계곡, 칡소폭포, 삼봉약수로 이름난 삼봉자연휴양림이 있다. 내면 명계리에서 양양(서면 갈천리)으로 넘어가는 구룡령 옛길(명승 제26호)도 걸어볼만 하다. 예부터 영동 지방 사람들이 한양으로 갈 때 많이 이용했던 길이다. 삼봉약수가 있는 삼봉휴양림은 천연림의 보고다. 전나무, 분비나무, 주목, 거제수나무, 박달나무 등 침활엽수가 가득하다. 겨울 스포츠인 스키와 보드를 즐기고 싶다면 서면 매봉산 자락에 있는 대명 비발디파크로 가면 된다.
김초록 여행작가 rimpyung74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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