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촌 정독도서관, 백인제 가옥 … 옛 서울의 정취 가물가물
2019-12-09 11:51:45
세종 승하하고, 순종 가례 올린 안동별궁 … 맥없이 충남 부여로 이전, 낮은 문화의식 반영
서울에 25년 이상 정주하면서 안 가본 곳이 거의 없지만 KBS의 인기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바퀴’를 시청하다보면 의외로 생경한 곳이 많다. 서울시민이라도 자기가 사는 동네와 구를 벗어나면 살짝 이질적인 것을 느낀다. 아마 관심이 부족하든가, 걸어서 다니기보다는 차로 이동해서 그럴 것이다. 각박함과 형식적 인간관계라는 선입견을 갖는 서울에서 ‘아직도 이런 곳’을 발굴하거나, 근대화 이전의 서울 모습을 재발견하면 다시 서울이 좋아지고 동질감을 느낄 포인트를 찾게 된다.
서울의 북촌은 2001년 이후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해 ‘한옥 등록제’란 보존 정책이 시행되면서 한옥 재건축과 고급화 신축이 촉진됐다. 덕분에 빌라촌 난립이 멈춰졌다. 비록 주민들은 몰려드는 관광객의 소음으로 불편을 호소하지만 그나마 옛 서울스러움을 느낄 공간이 한 자락 남아 있으니 다행히 아닐 수 없다.
북촌은 가회동, 원서동, 계동, 재동, 삼청동, 팔판동, 화동, 소격동, 안국동, 송현동, 사간동 등을 일컫는다. 권세가, 명망가들이 종로나 청계천보다 북쪽인 이 곳에 모여 살아 북촌으로 불리었다. 그에 상대되는 개념이 ‘남산 딸깍발이’다. 벼슬길에 오르지 못해 몰락한 양반가들이 남산 기슭에 밀집했는데 여름이면 질척거리는 땅을 나막신을 신고 다녔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북촌의 핵심은 가회동이다. 과거 감사원, 보건복지부를 출입하면서 인근 음식점을 빈번하게 다녔지만 거의 8년이 지나 오랜만에 가보니 카페, 젊은층이 좋아할 디저트 전문점, 단품 음식점들이 럭셔리하게 들어서 있다. 업무 차 왔다갔다 했던 북촌의 일상과 여행객의 시선으로 보는 감흥은 사뭇 달랐다.
먼저 정독도서관에 가본다. 운 좋으면 저렴하게 주차할 수 있다. 이 곳은 옛 경기고가 강남으로 옮겨가면서 남은 학교 부지를 서울시교육청이 도서관으로 개조해 운영하고 있다. 1900년 10월 3일 관립중학교로 개교한 게 모태이니 무려 119년의 유서 깊은 자리다. 학교 교정은 시민의 휴식처가 됐는데 중앙의 오래된 분수대와 물레방아, 등나무그늘, 장독대, 수령이 200년이 넘은 회화나무가 정겨움을 준다.
회화나무(괴화나무)는 선비의 기개를 상징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행운을 부른다고 하여 조상들이 아꼈다. 국내에서 오래된 고목은 대개 소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회화나무, 팽나무, 왕버들 중 한가지다. 회화나무와 팽나무는 상대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나무라는 인식이 약하다. 은행나무나 소나무 위주의 가로수에서 벗어나 이들 두 수종을 확산시켰으면 한다. 그러나 주로 고궁, 옛 서원이나 사찰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더욱이 회화나무는 꽃을 많이 피워 벌들에게도 좋으니 밀원으로도 추천할 만하다.
정독도서관을 나와 북촌 한옥 밀집지로 향한다. 한옥은 많아도 막상 개방된 곳은 소수다. 그나마 백인제 가옥은 다른 한옥에 비해 넓기도 하고 우아하며 일본식·서구식 세련됨이 가미돼 힐링의 마음을 준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한옥이라 경북·충남의 고택과 달리 실용적이다. 전통적인 한옥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도 근대적 변화를 수용한 게 오히려 색달라 안구를 즐겁게 해준다. 창호지창 대신 거의 대부분 유리창으로 된 게 이를 말해준다.
백인제 가옥은 북촌 가회동의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북촌이 내려다보이는 2460㎡의 대지 위에 당당한 사랑채와 넉넉한 안채가 맞닿아 있다. 안채보다는 사랑채가 이 집을 대표하는 얼굴이다. 보통 사랑채는 안채와 떨어져 있지만 복도로 연결돼 공간을 분리하면서도 양채가 일체화된 느낌을 준다. 사랑채는 손님 접대가 많았던 집 주인의 일상이 느껴진다. 안채는 평온하고 아늑하다. 장작으로 불을 때는 아궁이가 제법 깊다. 연기가 덜 나게 하기 위함이다. 파티하기에 좋은 잔디 정원에는 옥잠화, 나리꽃 등 예쁜 꽃들도 피어 있다.
안채의 부엌에는 특이하게 지하실이 있다. 일제의 세계침략 기간 비행기 폭격에 대비해 지은 방공호 겸 창고다. 서울시에서 백인제 가옥을 시민에서 공개하기 전에 개보수하는 과정에서 지하실에서 오래된 나무 궤짝이 발견됐다. 오래된 문화재인가 싶어 문화재 전문기관에 의뢰한 결과 프랑스에서 수입한 와인 상자로 판명됐다. 가이드는 “백인제 선생이 의사들과 사교하기 위해 와인을 즐겼고, 경제수준이 높았기에 당시로서는 꽤 고가였을 와인을 수입해다가 드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문간채(행랑채)와 솟을 대문은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위엄을 세운 듯 격조 있게 세워졌다. 별당채는 백인제 가옥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인생을 담담하게 관조할 수 있을 것 같은 고적한 분위기가 들어가보지 않았어도 마음에 휴식을 준다.
백인제 가옥은 1913년 한성은행 전무였던 한상룡이 건립한 이래 한성은행, 최선익, 백인제, 최경진, 서울시 등으로 소유권이 바뀌었다. 최선익은 개성의 부호로 몽양 여운형을 후원했던 인물이다. 백인제는 인제대 백병원을 세운 창립자로 1940년대 당시 국내 외과 의사의 최고봉이었다. 1950년 6.25 동란에 납북돼 사망 시점은 미상이다. 서울시가 1977년 시 민속문화재 22호로 지정하고 2009년 소유권을 이전받아 2015년부터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가이드가 안내하는 15명 안팎의 특별관람에는 비용이 든다.
가회동 한옥 투어로는 11번지, 31번지가 꼽힌다. 그러나 개별 한옥에 들어가지 못할 바에 굳이 다 둘러볼 이유도 없다. 그 압축판인 백인제 가옥을 아름답게 봤으니까 말이다. 북촌의 명소로는 안동별궁터(옛 풍문여고 자리), 윤보선 가옥, 이준구 가옥, 김형태 가옥이 꼽히지만 비개방이다. 북촌마을 관광안내소는 못 내 아쉽다면 북촌한옥청, 북촌전통공예체험관, 북촌문화센터에 가서 문화의 향기를 맡아보라고 추천했다.
안동별궁(安洞別宮)은 안국방(安國坊)의 소안동(小安洞)에 위치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안국동 별궁 정도가 되겠다. 별궁 자리는 세종이 1449년 아끼던 아들 영응대군을 위해 지어준 저택이 있던 곳이자, 1450년 자신이 세상을 떠난 곳이다. 효성이 지극한 문종은 아버지 세종의 장례를 치르며 여기서 즉위식을 올렸다. 1472년 성종이 그의 형인 월산대군에게 이곳을 하사한 이래로 대대로 대군이나 공주·옹주들의 저택 자리가 됐다.
진짜 안동별궁은 1881년 고종이 왕세자(훗날 순종)의 가례를 위해 지었다. 1882년과 1906년 당시 각기 왕세자와 황태자 자리에 있던 순종의 혼례의식의 일부인 친영례(親迎禮)가 이곳에서 행해졌다. 친영례는 왕비가 될 규수를 민가가 아닌 궁가에서 임시로 여는 결혼식이다. 대한제국 황실 인사 중 항일운동에 참가했던 의친왕이 1955년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한 곳도 여기다. 한일합방 이후 상궁 등 궁녀들의 거쳐로 쓰였다.
1937년에 민영휘(휘문학원 설립자)-민대식(육군참령)-민병훈(감조관)-민덕기(조선맥주 사장)-민경현(풍문여고 교장) 가문의 민덕기가 안궁별궁 부지와 부속건물을 매입해 휘문소학교를 열었다. 1944년 민영휘의 부인인 안유풍의 여성인재를 양성하라는 유지를 받들어 풍문학원(풍문여고)으로 바뀌었다. 민씨 일가의 친일 행적 때문에 풍문학원은 ‘안유풍 독지가’에 의해 세워진 학교라고 얼버무리고 있다 하니 안타까운 사연이다.
1960년대부터 안동별궁의 원형이 차츰 훼손돼다가 2006년에는 충남 부여 국립 한국전통문화대학교(문화재 복원 특수 4년제 대학)로 그나마 남아 있던 경연당, 현광루가 이축됐다. 2017년 8월 문화재청이 안동별궁 옛 건물을 원래 위치로 복원하라는 의견을 냈으나 이행될지 의문이다. 풍문여고는 2017년 3월 서울 강남구 자곡동으로 남녀공학인 풍문고등학교로 개칭해 옮겨갔다.
현재 안동별궁 터에는 공예박물관이 지어지고 있다. 별궁터의 400년된 은행나무는 아직까지 잘 보존되고 있지만 소유자의 편의에 따라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옛 건축물들이 함부로 이전되는 것은 얼마나 한국의 문화의식이 가벼운가를 보여준다 하겠다.
지난 8월 15일 광복절 오후, 정독도서관 출발 무렵에는 빗방울이 간간히 내리더니 점차 날씨가 개어 백인제 가옥을 나올 무렵에는 화창해졌다. 북촌의 명품 디저트라는 팥 고로케를 아이들에게 사주고, 인근 카페에서 아이스커피와 팥빙수를 빅 사이즈로 시키니 어느덧 석양이 뉘엿뉘엿했다.
정종호 기자 help@healtho.co.kr
당사의 허락 없이 본 글과 사진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