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16 18:59:24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국무회의에서 간호법 거부권 행사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MBC뉴스 캡처
2021년 11월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첫 상정돼 지난 4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간호법이 16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국회 재의요구)로 무산됐다.
윤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의 첫 이유로 간호법이 의료 직역 간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간호사 업무 범위를 의료기관에서 지역사회로 넓히는 법안 내용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간호 서비스의 탈(脫) 의료기관화가 국민건강관리에 불안감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에서 간호법을 재의하여 통과시키려면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기 때문에 간호법에 반대하는 여당 의석이 전체의 3분의 1을 넘는 현 상황에서는 재의결의 문턱을 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인다.
당정은 간호사의 표심(票心)을 고려해 간호사 처우 개선 등을 담은 별도 중재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간호법은 국민들의 의료서비스 이용 행태에 중대한 변화를 줄 수 있음에도 너무 피상적으로 다뤄져왔다. 윤 대통령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을 외면하는 상황에서 여야간 진지한 논의나 타협도 없이 야당 일방 주도로 통과됐다. 이 법이 그냥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시행된다면 의료인 당사자는 물론 의료소비자도 적잖은 혼선과 불만을 겪었을 것이다.
법이 시행되려면 체감이 되는 여론화와 그에 따른 타협의 산물이 도출돼야 그나마 법을 지키는 국민의 공감이 형성될 수 있는데 간호법은 그렇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거부권 행사는 안타깝지만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
대다수 언론은 간호법 논란을 보도하면서 “자격증 기준으로 의사는 11만5000명, 한의사는 2만4000명, 간호사는 40만명, 간호조무사는 72만5000명”이라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심의 향방에 관련된 분석을 내놨다. 사람 수로만 보면 여당이 의사 및 조무사의 손을 들어주는 게 결코 부적절하지 않다는 뉘앙스였다.
또 “간호조무사가 간호사 사이에는 ‘신분제’가 있다” “간호사들이 간호조무사에게는 간호스테이션에 들어가 휴식할 기회도 주지 않는다” “간호조무사 자격을 고졸로 제한해 군림하려 한다”는 간호조무사의 하소연 내지 불평등에 정의감이 발현되는 대중심리를 자극하는 보도가 나왔다.
그렇다. 의료계에는 ‘카스트’가 존재한다. 의사를 정점으로 간호사는 홀대를 받았고, 간호조무사는 더 차별받았다. 그러나 세상살이에 높낮이 없는 것은 없다. 직장에는 정규직, 계약직, 일용직이 있다. 연구소에는 박사급, 석사급, 일반 연구원이 있다.
의료계는 의사가 지휘하고 간호사나 다른 의료 직군들은 지원 및 보조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병원에서는 약사마저도 의사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게 생리다. 잡음이 있겠지만 이런 시스템은 응급대처 등 긴박한 상황에서 효과를 발휘한다. 의료사고의 책임도 의사가 지고, 책임의 소재가 분명하다.
억울한 차별이 있겠지만 갈수록 우리사회는 인권과 평등이 강조돼 의료계에서도 과거처럼 심각한 차별은 사라지고 있다. 더욱이 정부도 간호사나 전공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대한간호협회와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는 약속을 파기한 대통령에게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고 선언하고 대정부 투쟁을 선언했다. 아쉽지만 간호사의 위상은 높아졌고 향후 처우도 개선될 것이므로 간호법 투쟁은 적정한 선에서 타협하는 게 맞다고 본다.
의사들도 불만이 생겼다. 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취소 강화 등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16일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았다. 정치란 게 타협과 절충의 산물인 만큼 일방의 완전승리는 존재하기 어렵다.
지난 2년간의 의료법 갈등을 지켜보면서 그 에너지를 의료서비스 향상, 의료산업 발전, 고령화에 대비한 요양의료 확충, 필수의료 보완, 의사과학자 양성 같은 건설적인 과제에 쏟아부었으면 더 좋지 않았겠나 싶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대응에 혼신을 다한 의료진의 상황을 고려하면 가혹한 제언일 수도 있지만 불필요할 갈등이 야기된 게 심히 유감스럽다.
향후 의료계 당사자나 언론계는 왜 간호법에 다시 재추진돼야 하는지, 아니면 현 의료법에서 수정 보완돼야 하는지, 갈등의 핵심 요인이 뭔지, 어느 측의 의견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 절실하고 리얼한 근거를 제시해 국민에게 설명했으면 한다. 국민이 비교 판단할 논리나 증거 없이 제각각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회적 비용의 낭비가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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