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01 17:40:51
올해 4월 23일 자가항원 신속진단키트로 허가받은 SD바이오센서의 ‘스탠다드 Q COVID-19 항원 홈테스트’(왼쪽)와 휴마시스 ‘휴마시스 COVID-19 항원 홈테스트’ 제품. 이들 두 회사는 올해 1분기에 각각 1조1800억원, 203억원의 매출을 올림으로써 역대 최대 성장하는 개가를 올렸다.
지난해 4월 총선을 전후해 이른바 ‘K방역’이 성공한 것은 전국민의 마스크 착용 동참과 신속한 진단시약 출시 덕분이었다. 국내 진단업계의 신속한 진단시약 출시 대응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데 크게 기여했고 해당 업체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문호개방적인 코로나19 긴급사용승인 부여 혜택을 입어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미국 시장에 진입하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최근엔 일부 진단업체의 불만이 있다. 승자독식으로 씨젠과 SD바이오센서 등 두 회사만 눈에 띄는 매출신장을 이뤘을 뿐 올해 들어서 나머지 기업은 지난해보다도 못한 매출로 잘 나가는 두 기업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는 형국이어서 그렇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두 회사가 거의 공공조달과 민간 발주물량의 80%가량을 독식하고 있는 것 같다”며 “나머지 수십 개 회사들이 나머지 20%를 놓고 경쟁하는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기실 기술력은 있지만 변변한 제품이 없었던 대다수 중소 진단업체는 코로나19 이전에는 소소한 유전자분석 서비스 대행과 정부가 주는 공적 연구개발 자금으로 연명했다. 굶고 살다가 갑자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횡재를 봤다. 예컨대 연간 수십억원 매출이 지난해에는 0이 하나 더 붙었다. 10배에서 수십배 매출이 불어난 회사가 많았다. 그러나 올해에는 그런 온기가 사라졌다. 미국도 자체 제품 또는 제3국의 더 싼 제품으로 충당이 가능해졌고 국내 시장은 씨젠과 SD바이오센서가 승자독식하는 구도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절대빈곤에서 상대적 빈곤으로의 전환이랄까? 당연히 중소 제약업체는 불만이다.
한 중소업체 관계자는 “씨젠의 기술력은 평범하거나 어떤 부분에서는 신흥 바이오벤처보다 밀리지만 브랜드파워로 버티고 있다”며 “제품 채택에 막강한 권리를 행사하는 기존 진단검사의학과 의료진들이 안면이 있는 씨젠 제품을 밀어주고 잇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같은 값이면 오랫동안 이 바닥에서 터를 닦아온 익숙한 기업에게 몰아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게 의료진의 대체적인 생각이라고 전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분석에 쓰이는 중합효소연쇄반응(PCR) 검사는 공지된 기술이고 정확도와 신속도를 높이는 데에는 개별업체마다 가진 노하우가 발휘된다. 이 노하우에 있어 신흥 벤처들은 씨젠 같은 기성기업에 비해 ‘비기(祕技)’를 갖고 있다. 선발주사를 앞서나가기 위해 차별화된 기술을 닦아왔다는 얘기다.
예컨대 실시간 역전사 등온증폭방식(RT-LAMP) 방식의 신속 코로나19 검사는 핵산만 추출되면 30분 이내에 검사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반면 기존 PCR 검사는 동일 조건에서 4시간, 여느 신속 PCR 검사는 1시간 정도 걸린다. 핵산추출에는 보통 30~40분이 공통적으로 소요된다.
그러나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등 전문가들은 새로운 신속검사 방식은 검체의 온도를 올려 유전자를 증폭하는 과정(속칭 ‘감는’ 과정)을 거치는데 오류가 날 가능성이 높다며 정확도에 차질이 있을 수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진단업체에 따르면 검체가 17도일 때부터 양성반응을 보이지만 이 정도 온도에서는 약양성(양성인지 모호한 경우)이어서 검체 온도를 인위적으로 올리는데 서서히 올리는 게 보통 PCR 검사이고 더 빠른 온도로 올리는 게 신속 PCR 검사다. 신속 PCR 검사 중에서도 더 빠른 게 LAMP 등 신기술이 접목된 신속 PCR 검사다.
ASM바이오에 따르면 일반 PCR의 코로나19 진단 양성일치도(민감도)는 94.38~95.45%인 반면 신속 PCR검사는 87.64~97.72%다. 음성일치도(특이도)는 100%로 동일하다. 이를 종합한 검사정확도는 각각 97.14%, 92.86~98.57%다. 신속검사의 경우 편차가 다소 크지만 크게 보면 일반 PCR검사와 대등소이하다.
신속 PCR 검사에 주력하고 있는 한 바이오업체 관계자는 “검사정확도가 신속이 일반보다 낫거나 대등한데도 다수의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들은 일반 PCR 검사를 고집하고 있고 보건당국도 이런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여 현재도 신속 PCR 대신 일반 PCR 검사가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보통 일반인이 선별검사를 받으면 18~24시간에 검사결과가 통보된다. 이는 일반 PCR검사는 특성상 유전자증폭에 4시간 이상 걸리는 데다가 96개 샘플을 모아 한꺼번에 검사를 시켜야 경제적이기도 하고 대중을 하는 검사상 하루를 잡는 것이다.
하지만 신속 PCR 검사는 DNA 추출에 30~40분, DNA 분석에 30~60분이 걸린다. 보건당국의 신속 PCR 검사 기준은 DNA 분석과정만 따져서 60분 이내로 정의하고 있다. 신속검사로 1시간 또는 길어야 2시간 이내에 검사결과가 나오면 더 많은 코로나19 의심 환자들이 진단에 나서 조기진단과 코로나19 확산 저지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일반 PCR과 신속 PCR의 비용 차이가 커서도 아니다. 거의 같거나 신속 PCR이 약간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한 수준이다. 효율은 제쳐두고 순전히 아집과 관행대로 일반 PCR검사가 지금도 시행되고 있다.
정부가 ‘방역 혼선’을 핑계로 뒤늦게 승인을 미루다가 작년 11월 11일에야 자가진단용 신속 항원진단키트를 처음 공식 허가한 것도 문제다. 신속 항원 진단키트는 확진용으로는 부족하지만 20분 만에 검사가 끝나는 게 강점이다. 위음성이 10~30%에 이르는 부정확성에도 불구하고 광역적인 방역에 효과가 있다는 견해도 상당했다. 일단 양성이 나오면 표준인 PCR 검사를 통해 재차 확진함으로써 조기진단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 더욱이 자가부담이라 재정이 추가 지출되는 것도 아니다.
항원 자가진단키트는 작년 11월 11일부터 올해 4월 23일까지 약국용 제품은 없었고 병원에 가서 유료로만 이용할 수 있어 사실상 활용도가 제한됐다. 그러다가 소비자 불만과 업계의 주장을 받아들여 올해 4월 23일 에스디바이오센서, 휴마시스 제품이 조건부허가를 받아 약국에 풀리기 시작했다. 올해 7월 13일에는 래피젠이 공식 허가를 받았다. 이렇게 3개 제품이 약국, 편의점. 마트 등에 유통되고 있다.
이에 대해 최근 대한의사협회가 태클을 걸고 있다. 3개 신속항원 자가진단키트의 민감도는 90%이상으로 알려져 있지만 ‘PCR 검사에서 스스로 검체를 채취하면 민감도가 50% 이하로 떨어진다’는 미국 연구결과를 근거로 제시하면서 항원 자가검사에서도 검체 채취 과정에서 이럴 확률이 높기 때문에 자가진단키트의 민간 사용을 지금처럼 허용하면 위음성 등으로 국가 방역에 구멍이 뚫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항원자가진단키트의 위음성이 10~30%, 심지어는 50%에 달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대한진단검사의학회는 정확도가 41.5%에 그친다는 검증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민감도가 낮은 자가진단키트 때문에 ‘조용한 전파’가 수그러들지 않아 지금처럼 신규 확진자가 지난 7월 이후 1000명 아래로 떨어지는 않는 것이라며 애먼 자가진단키트에 누명을 씌우기도 한다. 그러나 자기 돈으로 약국, 편의점, 인터넷 쇼핑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자가진단키트를 구매해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능동적으로 체크할 수 있는 편리함이 있는데 이를 보건의료단체나 정부가 막아서는 안 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자가진단키트로가 확진이 아니라 자기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보조적 수단임은 소비자도 다 안다. 따라서 의사단체의 주장은 너무도 포괄적인 이유로 타당한 근거 없이 일반인 사용을 규제하려는 속셈을 보인다는 게 해당 바이오업체와 상당수 시민들의 생각이다.
우리 보건당국이 그렇게 믿고 따르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필요성을 인정해 이미 2020년 초봄에 승인한 것을 그 해 늦가을이 다 돼서야 승인한 것도 의문이다. 또 특혜를 주듯 3개 업체만 허가해준 것도 의심을 살 일이다. 이에 3개 업체 중 모 업체가 정권과 친해서 그렇다는 게 이미 작년부터 공공연히 떠돌고 있다.
작년에 우리나라 바이오기업은 PCR검사는 물론 신속항원 진단키트로도 엄청난 외화를 획득했다. 지난달 23일 셀트리온은 휴마시스가 사실상 개발한 ‘디아트러스트’ 항원 신속진단키트를 미국 국방부에 최대 7382억원까지 공급하는 조달사업권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업계에 따르면 셀트리온이 전체 매출액의 15%를 중개수수료로 가져간다고 한다. 이처럼 대박이 날 수 있는데도 우리 정부는 신속항원 자가진단키트를 수출용으로 묶어 놓고 막상 내수용은 억제하는 양상을 띠었다. 마치 우리나라가 탄소중립을 이유로 원자력발전 비중을 축소해가는 와중에서도 중동이나 일부 유럽 국가에 원전을 수출하려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연상된다.
이처럼 의사단체와 진단검사의학과 학회 등이 일반 PCR 검사보다 신속성과 효율성이 높은 신속 PCR 검사를 억누르고, 보건당국이 자가항원 진단키트 허가를 억제해 일반인의 적극적인 자가진단 의욕을 꺾는 것은 참으로 비합리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신생 벤처들은 좁은 시장에서 알아서 경쟁하고 기득권 대형업체만 키워 보겠다는 정부와 기성 학계의 심산이 느껴지는 대목에서 K바이오의 더 나은 도약이 발목 잡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진단검사의학과 주류들은 신생 기업들에게 ‘너희들이 언제부터 바이러스 감염 진단’에 매진해왔다고 이 시장에 함부로 끼어들려 하느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적잖은 연구비를 기성 바이오업체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이에 대해 신생 바이오기업들은 병원체 진단 같은 것은 병원체의 유전자서열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영역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손을 놓은 것이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고 항변한다. 오히려 코로나19 이전에 주력해온 난치병을 유발하는 유전적 원인을 규명하고 관련 유전자를 선정해 새로운 고난도 진단상품을 개발하는 게 훨씬 어려운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K바이오에서 이미 코로나19 예방백신과 치료제(항바이러스제, 항체 등)의 연구개발 역량은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에 비해 한참 뒤떨어졌다는 게 사실상 탄로가 났다. 그나마 강점으로 꼽혀온 K진단의 경쟁을 촉발시키지는 않고 이를 억압하는 정책적 행보는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잘 나가는 씨젠과 SD바이오센서 주식을 가진 사람이 아닌 일반 국민들은 열심히 노력하는 바이오벤처들이 세계적 위기인 코로나19를 통해 도약하고 강소기업으로 성장해가기를 희망할 것이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공정경쟁이 저해되는 바가 없는지 경제 당국이나 시장감시 당국은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다. 이른바 ‘전문성’을 ‘폐쇄성’을 고수하는 방패로 삼아 시장경쟁을 막는 게 아닌지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불철주야 노력하는 신생 바이오기업들에게 격려를 보내고 싶다. 비록 이번에는 늦었지만 5년 단위로 신종 감염병은 출몰할 것으로 보인다. 그 때를 대비해서 진단기술, 항체 또는 백신개발 능력을 배양하면 시험을 앞두고 많은 공부를 수험생은 시험이 두렵지 않듯이 실컷 실력을 발휘해볼 다음 기회를 맞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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