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를 훌쩍 넘긴 지인의 노모는 부작용이 두려워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코로나19) 백신을 안 맞겠다고 버티다가 의료진과 자녀들이 아스트라제네카(AZ)가 아닌 화이자 백신이라고 하니깐 그러면 한번 맞아보겠다고 나섰다. 그만큼 연세드신 분들도 백신이 왜 필요한지, 어느 정도 부작용이 있는지 이런저런 뉴스와 세간의 풍문을 듣고 삶을 영위하는 정보를 얻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허가된 아스트라제네카(AZ)와 화이자 등 2종의 코로나19백신을 선택할 권리는 없다. 정부는 다만 4월 1일부터 만 75세이상 고령층에게 화이자 백신을 놓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65~74세에게는 AZ 백신이 접종된다. 당초 들여올 백신 물량이 풍부했다면 지역별로 우리는 왜 아스트라제네카 것을 맞고, 왜 저 지역사람들은 화이자를 놔주느냐는 불만이 생길 법한데도 그럴 여지가 없게 백신이 절대 부족한 상황이다.
화이자 백신은 지난 24일 50만회 분이 국내로 들어왔고, 31일 50만회 분이 추가로 도착할 예정이다. 현재 정부는 2분기에 화이자 백신 600만회 분을 도입할 계획인데, 4월에는 100만회 분, 5월에는 175만회 분이 들어오고 나머지 물량은 이후로 밀릴 전망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55세 미만에서 혈전 생성 부작용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자란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노르웨이 등 영국을 제외한 세계 20여개국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잠정 또는 일시 중단했지만 자국민에게 한 사람이라도 더 맞게 해 더 일찍 집단면역을 형성시키고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고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각국 정부들로서는 백신 확보에 안간힘이다.
가장 많이 백신을 확보한 미국도 현재는 백신 수출을 막아놨다. 미국은 전세계 코로나19 백신의 27%를 생산하면서도 국외로는 전혀 수출하지 않고 있다. 자국민 우선주의에 따른 것이다. 미국에서는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등 1억3000만회분의 백신이 생산됐지만, 미국 밖으로는 전혀 반출되지 않고 있다. 한국에 들여오는 제3국에서 생산된 화이자 제품 등이다.
전세계 백신의 60%를 생산하면서 ‘세계의 백신 공장’으로 불리는 인도는 최근 하루 3만∼4만명씩 신규 환자가 발생하는 등 최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수출을 일시 중단했다. 이에 따라 세계 최대 백신회사인 인도혈청연구소가 생산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생산 물량 중 영국,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모로코로의 배송이 연기됐다.
한국은 SK바이오사이언스가 아스트라제네카와 노바백스의 백신을 위탁생산하는 계약을 체결한 상태지만, 안심할 수만은 없다. 노바백스의 경우 원료물질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AZ 백신도 SK가 생산만 할 뿐 국내 공급물량을 결정할 권한은 전적으로 AZ가 쥐고 있다.
같은 백신을 놓고도 정치 진영에 따라 입장이 갈린다. 보수 진영은 유럽의약품청에서 제기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뇌정맥동혈전증(Cerebral venous sinus thrombosis, CVST)의 위험성을 부각시키며 AZ 백신에 의존하는 정부의 무능함을 비판하고 있다. 또 접종 환자가 백신으로 인한 부작용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못하면 보상받기 어렵다는 것도 부각하고 있다. 야당은 서울 및 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백신 보릿고개’를 언제 넘느냐며 아직도 충분한 백신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함을 질타하고 있다.
반면 진보 진영은 AZ 백신의 부작용 논란에도 불구하고 눈부시게 발전한 첨단의학의 덕택으로 여전히 과거의 백신에 비하면 안전하고 효과도 높다는 점을 내세운다. 또 부작용은 20대, 30대, 40대에서나 주로 발생하고 이상반응도 심하지 50대 이상에서는 발생 빈도와 강도가 떨어진다며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기 바쁘다. 보건당국도 백신 접종 후 사망자는 혈전 자체보다는 지병의 악화나 폐렴, 심근경색 등이 원인이라며 예봉을 피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지난달 22일 기자회견에서 “부국과 빈국의 백신 접종 격차가 날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며 “이는 도덕적 잔학 행위이며 전세계가 (빈국의) 의료진, 기저질환자, 노인 등 의료 취약계층이 희생되지 않도록 단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유로뉴스는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 총량의 50%가 세계 인구의 16%를 차지하는 강대국에 돌아간 반면 저소득 국가가 확보한 백신 물량은 전체 투여량의 0.1% 밖에 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WHO는 지난 3월 11일 접종을 시작한 국가가 너무 적어 올해 안에 집단면역이 형성될 수 있는 접종률 70%에 도달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참고로 대한민국은 지난 2월 26일 코로나19 발생 1년 37일 만에, 전세계 국가로는 102번째, 37개 OECD 회원국 중 꼴찌로 접종을 시작했다. 30일 기준 국내 접종률은 전체 인구 대비 1.5%에 근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강한 전염력을 가진 탓에 70% 접종률로도 집단면역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는 상황이다.
그 와중에 AZ 백신에 대한 불신이 증폭되면서 요양병원 입원환자 등의 접종 동의율은 75% 수준에 그치고 있다. AZ 백신을 맞고 아나필락시스 부작용이 생기면 200만원을 지급한다는 백신보험도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28일 기준 접종자 대비 이상반응 신고율은 선호되는 화이자 백신의 경우 0.44%인 반면 AZ 백신은 그 3배인 1.37%다. 이날까지 신고된 아나필락시스 부작용은 아스트라제네카백신의 경우 89건이다.
백신 불안감을 잠재우려면 미국이나 이스라엘처럼 국가 지도자들이 먼저 접종하는 게 좋았을 텐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정세균 국무총리는 26일에야 맞았다.
지금 최고의 경제백신은 코로나19 백신에 달려 있다. 지난 2월말부터 백신 접종이 시작되자 대기업 제조업 업황이 개선되는 기미가 보인다고 한다. 원자재 가격상승과 내수부진으로 침체에 빠졌는데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활기가 돌고 있다는 게 산업계의 분위기다.
28일 미국에서 2차까지 다 맞은 코로나19 접종자는 5014만명으로 전체 인구(3억3450만명)의 15%에 달했다. 한 번이라도 맞은 사람은 9171만명으로 성인 인구로만 따지면 3분의 1에 해당한다. 영국은 이날 3000만명이 1차 이상 접종을 마쳤다며 야외 스포츠를 재개하고, 최대 6명이 야외에서 만날 수 있으며 소규모 결혼식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12만6592명의 사망자를 낸 영국의 백신 자신감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