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대부분 농민들은 추수를 마치고 겨울을 날 준비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온난한 기후의 제주도 농민들은 오히려 바빠진다. 겨울철 대표적인 과일인 ‘감귤’의 수확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조선시대까지 감귤은 왕족을 비롯한 일부 상류층만 먹을 수 있었던 귀한 과일이었다. 고려시대 문헌에 따르면 고려 왕실에 제주 감귤이 공물로 바쳐졌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에 의해 감귤이 관리됐다. 제주도로 파견된 관리는 감귤나무의 수를 일일이 기록하였으며 그 수확물을 모두 거둬 한양으로 보냈다.
감귤이 올라오면 이를 축하하기 위해 성균관과 사학(四學)의 유생들을 모아 황감제(黃柑製)라는 시험을 보게 하고 나눠줬다. 제주 농민들은 감귤 수탈로 인해 해마다 큰 고통을 겪었다. 관리들은 초여름에 피는 감귤 꽃의 수를 조사했다가 겨울에 그만큼의 감귤을 거두려고 했다. 감귤이 많이 열린 해를 기준으로 해마다 똑같은 양의 감귤을 내놓으라 닦달했다. 농민들을 수탈에서 벗어나기 위해 감귤나무 뿌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 고사시키기도 했다. 당시 제주에서 재배되었던 감귤은 동정귤, 금귤, 청귤, 병귤, 당유자, 진귤 등이었다. 이 시기 감귤은 상업적 가치가 없어 현재는 재배되지 않았다.
감귤(柑橘)은 운향과(Rutaceae 또는 감귤나무과) 아래 감귤속(Citrus), 금감속(Fortunella), 탱자나무속(Poncirus) 등 과일을 총칭하는 단어다. 감귤속에는 귤·유자·레몬·오렌지·당귤·광귤(山橙)·라임이 속한다. 탱자속에는 탱자, 금감속(금귤속)에는 금감·둥근금감·마르가리타금감 등이 있다.
참고로 운향(芸香)은 운향과 운향속(Ruta 또는 루타속)의의 작은 관목으로서 60cm 정도 높이로 자란다. 어두운 녹색을 띤 잎사귀들은 기름기가 흐르고 아주 향기가 좋다. 예부터 소독제와 향기 짙은 조미료로 사용돼왔다.
예전 귤은 밀감(蜜柑)으로도 불렀지만 일본어인 ‘미깡’(蜜柑)과 비슷하다 알려져 최근에는 잘 쓰지 않는다. 흔히 알려진 감귤은 온주귤(溫州橘)이라 칭하는 게 정확하다. 이 귤은 중국 저장성 온주에서 유래해 이름이 붙여졌다. 한국에서는 온주귤을 감귤로 부른다.
오늘날 감귤은 대부분 일본에서 개량된 품종이다. 일본은 일제강점기 제주도에 일본 감귤을 이식했다. 여러 감귤류가 도입되었지만 주요 품종은 지금도 가장 많이 재배되는 온주귤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제주 감귤을 크게 번성하지 못했다. 일본 감귤이 대량으로 한반도에 수입된 탓도 있지만 제주 농업 자체가 피폐해졌기 때문이다. 수산업은 일본인의 손에 들어갔으며, 많은 농지가 토지조사사업 이후 박탈돼 일본 총독부의 땅이 됐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제주 전체가 군사기지로 바뀌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4·3항쟁과 한국전쟁의 여파로 섬 자체가 황폐해졌다.
1950년대 말이 지나서야 감귤 농사가 부활했다. 양이 부족하다보니 조선시대만큼 귀한 과일이 됐다. 감귤 농사가 돈이 된다는 소문이 나면서 제주도 전역으로 확대됐다. 1960년대 말부터 유채, 맥주보리 등과 함께 제주도의 소득작물로 떠오르면서 ‘황금나무’가 됐다. 1960~1970년대에는 감귤나무 두어 그루만 있으면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해 ‘대학나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감귤은 제주도 남쪽 지역에서 생산된 게 품질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서귀포 일대는 다른 지역보다 기후조건이 좋아 토양도 감귤을 재배하기 적절하다.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화산회토와 그렇지 않은 비화산회토가 섞여 있다. 대체로 비화산회토가 섞여 있는 땅일수록 감귤의 당도가 높다. 토양 외에도 강수량과 일조량에 따라 감귤 맛의 차이가 난다.
흔히 귤을 오렌지와 비교한다. 전자는 동양, 후자는 서양을 대표하는 감귤류다. 귤은 원산지가 중국이며 영문명은 ‘만다린 오렌지(mandarin orange)’다. 만다린은 중국 관리를 뜻한다. 미국인이 ‘탄제린(tangerine)’이라 부르는 것은 만다린과 달라 귤의 ‘사촌’이지만 껍질이 과육에 단단하게 붙어있다. 하지만 영미권에서 귤을 먹고 싶다면 ‘클레멘타인’(clementine)을 찾아야 한다. 영미권에서 만다린이나 탄제린은 한국에서 낑깡이라 부르는 금귤을 뜻한다. 네덜란드, 독일 등에서는 감귤이 만다린이란 이름으로 팔린다.
귤과 오렌지는 영양적으로 비타민C가 풍부하다. 100g당 비타민C 함량은 귤(48㎎)·오렌지(43㎎)가 비슷하다. 오렌지 1개만 먹어도 비타민C 하루 섭취량의 90%가 채워진다. 담배를 많이 피우거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비타민C의 요구량이 늘어나는 사람에게 감귤류를 권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옐로 푸드답게 항산화 성분이자 노란색 색소인 카로티노이드가 많이 함유돼 있다. 귤·오렌지를 다량 섭취하면 손바닥이 노랗게 변한다. 적게 먹으면 곧 사라지고 건강에 해롭지도 않다. 귤 껍질도 유용하다. 오래 묵은 귤 껍질을 ‘진피(陳陂)’라 부른다. 차로 만들어 마시면 식욕이 되살아나고 설사·기침·구토를 멎게 하며 이뇨 효과가 있다.
한라봉은 일본에서 개발한 감귤의 개량종이다. 청견(1949년 온주귤의 일종인 궁천조생과 트로비타오렌지를 교배해 나온 품종, 오렌지 일종으로 봄)과 폰캉(중야 3호, 귤의 일종)의 교잡종으로, 1984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한국에는 1990년을 전후해 제주에 들어왔다. 일본의 품종명은 부지화(不知火)이고, 이 가운데 당도·색채 등 품질이 우수한 상품은 ‘데코폰’이란 특화 상표로 유통된다. 한라봉은 튀어나온 꼭지 부분이 한라산을 닮아 이같은 이름이 붙었다. 껍질이 두껍고 당도가 높으며 육질이 부드럽다. 2~3월에 수확해 늦은 봄까지 먹는다.
천혜향은 향기가 천리를 간다며 이름이 붙여졌다. 한라봉이 나온 뒤 오렌지와 귤을 교배시켜 만든 품종이다. 1984년 일본에서 청견과 앙콜을 교배하고 여기에 다시 마코트를 교잡해 육성했다. 신맛이 적고 당도가 높으며 향이 좋아 제주도인들이 가장 아끼는 감귤 중 하나다. 3월부터 5월초까지만 나온다.
황금향은 초겨울부터 봄이 오기 전까지 맛볼 수 있는 신품종이다. 껍질이 얇고 과육이 부드러우며 달콤하다. 입 안에서 톡톡 터지는 부드러운 알갱이가 인상적이다.
하귤은 여름에 나는 귤로 일반 감귤보다 크고 껍질이 두껍다. 맛은 자몽과 비슷하며 시고 쌉사래하다. 과즙을 내 설탕이나 꿀을 넣어 마시면 여름철 더위를 해소하는 데 제격이다.
레드향은 일본에서 육성된 것으로 한라봉과 감귤을 교배한 품종이다. 일반 귤보다 2~3배 큰 몸집에 투박하게 생겼다. 껍질에 붉은 기가 돌아 레드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잘 익은 레드향은 과육이 풍부하고 일반 감귤에 비해 당도가 월등히 높다. 한겨울부터 봄까지 맛볼 수 있다.
감귤은 80% 정도 익었을 때 수확한다. 유통의 편의를 위해서다. 막 따서 먹으면 신맛이 강하고 단맛이 부족하다. 신맛이 강한 감귤을 구입했을 경우 상온에 며칠 보관했다가 먹는 게 낫다. 시중의 감귤은 유통기간을 늘리기 위해 왁스 코팅이 돼 시중에 나온다. 반질반질 빛이 나며 손으로 만지면 매끈하다. 왁스는 감귤 껍질의 수분 증발을 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