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예일대, 암관련 유전자 대량추적 가능케 해 … 중국·호주·美로커스·韓툴젠도 고효율 경쟁
크리스퍼 유전자가위(CRISPR) 기술을 두고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임상연구 소식을 전하고 있다. 절단할 유전자 부위를 안내해주는 가이드(guide) RNA와 절단을 실행하는 Cas 단백질(nuclease, 제한효소)로 이뤄진 유전자 가위는 본래 세균이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를 찾아내 살멸하는 방어기전에서 발견됐으나 지금은 병적 유전자를 잘라내 교정하는 유전자 편집기술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국내외에서 기존 기술의 효율성을 높이고 역발상으로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하려는 노력이 치열하다.
암 분야에서 크리스퍼를 이용한 약물개발 적용은 주로 표적체 발견과 키메릭항원수용체 T세포(chimeric antigen receptor T cell, CAR-T) 등 체외 T세포 유전자 조작요법 등 크게 두 갈래로 진행돼왔다. 두 가지 모두 유전체(genome, 게놈)를 정확하게 절단하는 기술이다.
지난 14일 미국 커네티컷주 예일대 시스템생물학연구소 유전학과 연구팀은 네이처 면역학(Nature Immunology)에 바이러스 유전자 요법과 CRISPR 유전자 편집 기술을 결합한 ‘내인성유전자 다중활성화 면역요법’(Multiplexed Activation of Endogenous Genes as Immunotherapy, MAEGI) 시스템을 새롭게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예일대 연구팀은 암백신으로서 크리스퍼의 새로운 용도를 개발했다. 이 백신은 유전자를 편집하기보단 신생항원(neoantigen) 발현을 증가시켜 차가운 종양을 뜨겁게 만든다. 비활성화(dead or deactivated) Cas9 (dCas9) 출현은 유전자 전사를 막거나 유발해 종양학에서 크리스퍼 치료법의 가능성을 확장시켰다. dCas9는 유전체의 표적 영역에 특정 유전체를 옮겨주는 운반체로서 기능한다.
예컨대 캘리포니아주 리퓨지바오테크노로지(Refuge Biotechnologies Inc.) 경우 dCas9을 CAR-T가 작용하는 면역관문(check point) 표적에서 일어나는 전사(transcription)를 물리적으로 차단하는데 활용되고 있다. 이 회사는 Cas9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DNA를 더 이상 자르지 못하도록 하는 dCas9를 만들었고 이로써 유전자 작동의 스위치를 정밀하게 온-오프하는 정확성 높은 유전자 발현 조절 기술을 개발했다.
MAEGI라는 애칭을 가진 신기술은 시디 첸(Sidi Chen) 예일대 부교수팀에 의해 창안됐다. 바이러스 전사 활성인자인 VP64와 유전자 전사인자, 최대 수천 개의 가이드 RNA를 융합해 dCas9에 담아 표적유전체에 전달한다. 목표는 모든 환자의 신생항원을 일거에 발현시켜 체내 면역세포의 암 공격을 유도하는 것이다.
첸 부교수는 “하나 또는 몇 개의 암 항원을 전달하는 백신이 항암면역성을 유도하는 데 별로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믿지만 그렇다고 해서 mRNA나 펩타이드를 전달하는 형태로 많은 항원을 동시에 전달하는 것은 고비용에 노동집약적인 과정”이라며 “가이드 RNA의 크기가 작은 이점을 활용하는 크리스퍼 기술에 의해서만 MAEGI 기술의 확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연구팀은 항암제나 항호르몬제가 공격하는 포인트인 에스트로겐 수용체(Estrogen receptor, ER), 프로게스테론 수용체(Progesteron receptor, PR), 표피성장인자 수용체(Human epidermal growth factor receptor type2, HER2) 등 3가지 타깃이 음성(돌연변이 또는 무효과)인 삼중음성유방암(triple negative breast cancer, TNBC)을 가진 쥐(mouse)를 대상으로 동물실험을 했다.
MAEGI 기술을 활용한 종양 내 아데노바이러스 관련(adeno-associated viral, AAV) 벡터가 1116개의 돌연변이 유전자 발현(mRNA에 의한 유전자 전사)을 끌어올림에 따라 완전관해(complete remission, CR) 44%를 보였다. 반면 MAEGI 기술이 적용되지 않은 AAV 벡터 대조군으로 치료받은 쥐는 0%를 보였다. 완전반응을 보인 쥐들은 삼중음성유방암 세포를 이용한 재실험을 위해 보호됐다.
MAEGI 요법은 치료제가 주입된 종양과 말단 부위 종양에 효과적이었다. MAEGI는 또 흑색종과 췌장암을 가진 쥐(mouse) 동물모델에서 효능을 보였다. TNBC 모델 쥐에서 MAEGI와 면역관문억제제를 병용하면 시너지 효과를 보였다. 첸은 “MAEGI를 기본적으로 다른 치료법과 병용해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첸은 “MAEGI가 수백 개의 신생 항원체의 발현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어떤 신생 항원체가 면역반응을 이끌어낼지 알아보는 개인맞춤형 암치료제의 도전을 우회하고도 남은 이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MAEGI가 일부에 치우치지 않게 광범위한 돌연변이 유전자의 과발현을 유도함으로써 모든 면역 회피 돌연변이를 잡아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쉽게 말하면 MAEGI는 암 관련 유전자를 대량으로 추적해 GPS처럼 위치를 표시하고 시그널을 증폭시킨다. MAEGI는 종양세포에 주홍글씨로 표시를 하는데 항원성이 드러나지 않은 ‘차가운 종양’을 항원성이 발현된 ‘뜨거운 종양’으로 바꾸는 셈이다.
예일대는 MAEGI와 이를 병용한 면역요법에 관해 특허출원을 신청했다. 첸 박사팀은 예일대 병원과 암센터, 임상개발에 참여할 비공개 회사들과 협력하고 있다. 시디 첸 박사팀은 “MAEGI를 활용한 암치료법이 기존 면역요법에 내성을 가진 암을 포함해 여러 암 유형에 효과적일 것”이라며 “제조공정을 단순화하는 기술 개발과 암환자 대상 임상시험을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중국 베이징대 덩홍쿠이 박사팀은 처음으로 에이즈 환자에게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치료를 실시해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지난 11일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의학잡지(NEJM)에 “에이즈와 백혈병에 걸린 환자 치료에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적용해 완치는 못했지만 치료의 안전성은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유전자가위로 줄기세포의 CCR5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유발했다. CCR5 유전자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백혈구에 결합할 때 이용하는 수용체 단백질을 만든다. 유럽인의 약 1%는 CCR5 돌연변이를 보유하고 있어 수용체 단백질이 구부러지거나 막혀 에이즈 바이러스가 달라붙지 못한다.
앞서 중국 남방과학기술대의 허젠쿠이 교수는 인공 수정란의 CCR5 유전자에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돌연변이를 유발했다. 유전자 교정 아기는 에이즈 면역력을 갖고 태어나게 했지만 당시 수정란 유전자 교정은 불법이어서 처벌을 받았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모리스빌시 로커스바이오사이언스(Locus Biosciences)는 슈퍼박테리아 감염 및 장내 미생물군 유전체(microbiome) 관련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살균바이러스(bacteriophage)에 박테리아의 방어 메커니즘인 CRISPR-Cas3를 입혀 박테리아 사멸 능력 향상을 꾀했다. 로커스의 CRISPR-파지 플랫폼은 항생제와는 다르게 특정 박테리아에만 결합해 조작된 CRISPR-Cas3를 주입한다. 체내에 돌아다녀도 건강한 세포와 타깃이 아닌 박테리아에 무해하다. 올해 1월 존슨앤존슨(J&J)과 제휴를 체결했으며 외신은 올해의 혁신 생명공학 유망주로 주목하고 있다.
호주 퀸즐랜드주 브리즈번시 소재 그리피스대학(Griffith University) 연구진은 CRISPR-Cas9을 사용해 자궁경부암에 걸린 실험쥐를 100% 생존시켰다. E7 유전자를 표적치료하기 위해 스텔스(stealth) 나노입자를 혈관에 투입, 암세포 DNA 염기서열을 바꿨다. E7은 인간 유두종바이러스(HPV)으로 유발되는 암에서 발견되는 유전자다. 니겔 맥밀런 교수(Nigel McMillan, 수석연구원)는 “이 기술은 단어에 몇 글자를 추가해 맞춤법 검사기가 오자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같다”며 E6 또는 E7 바이러스 단백질을 억제하면 세포주기 정지 및 세포 사멸을 초래한다고 결론지었다.
툴젠은 지난 10일 중국에서 CRISPR-Cas9의 구성요소인 가이드RNA의 구조 변형을 통해 유전자교정의 정확도를 높이는 기술에 대한 특허를 획득해 “치료제 및 농생명 상품개발 및 국내외 기업들과의 협업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