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제약사 사노피가 영국 런던의 바이오기업 바이스바이오(Vicebio)를 최대 15억5000만달러에 인수한다. 이를 통해 사노피는 호흡기 세포융합바이러스(RSV) 및 hMPV(인간 메타뉴모바이러스) 등 주요 호흡기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비-mRNA 호흡기 백신후보물질 ‘VXB-241’과 관련 핵심 플랫폼 기술인 ‘분자 클램프’(Molecular Clamp)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계약에 따라 사노피는 주식 인수 대금 선불로 11억5000만달러를 바이스에 지급한다. 또 개발, 인허가, 상용화 달성 이정표에 따른 성과금으로 최대 4억5000만달러를 추가로 지불하기로 약정했다. 이번 거래는 올 4분기에 완료될 예정이다.
VXB-241은 RSV, hMPV를 겨냥한 2가 백신으로서 60~83세의 건강한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탐색적 1상에서 안전성과 내약성이 확인됐다.
이와 함께 RSV, hMPV, 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 3형(PIV3)을 표적으로 하는 3가 백신 후보물질인 ‘VXB-251’은 현재 전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이들 3가지 바이러스는 폐렴과 같은 하기도 감염의 주요 원인이다. 기침, 발열, 호흡곤란 등 증상이 중복되는 경우가 많지만 항원적으로 서로 다르며, 종종 함께 전파되어 계절성 호흡기질환의 급증을 유발해 노인의 쇠약함, 입원, 심지어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노피가 주목한 핵심 기술은 ‘분자 클램프’다. 이 기술은 바이러스 표면 당단백질을 본래 형태로 안정화해 면역체계가 더 효과적으로 인식하도록 돕는다. 이를 통해 당단백질에 강력한 면역반응을 유도할 수 있으며, 냉동이나 동결건조가 필요 없는 완전 액상형 백신 개발을 가능케 한다. 특히 2~8도의 표준 냉장온도에서 안정적으로 보관할 수 있어 유통과 접종의 효율성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리 채워진 주사기 형태로 제공 가능하다는 점도 현장 가용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백신으로 여러 가지 바이러스를 방어하는 다가백신 개발이 용이할 것으로 바이스는 예상하고 있다. 바이스바이오는 작년에 1억달러 규모의 시리즈 B 투자 유치에 성공해 자금력을 확보했지만 상업화를 가속화하기 위해 이번에 피인수를 택했다.
이 기술은 호주의 퀸즐랜드대가 개발했으며, 이 대학 상용화 사업부인 유니퀘스트(UniQuest)로부터 바이오바이스가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RSV와 hMPV는 물론 인플루엔자, 코로나바이러스 등에도 적용 가능하다.
장-프랑수아 투생(Jean-François Toussaint) 사노피 글로벌 백신 연구개발 책임자는 “이번 인수를 통해 백신 설계를 단순하면서 심도 깊게 개선할 수 있는 분자 클램프 기술을 얻었다”며 “단일 접종으로 노인에게 여러 호흡기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는 차세대 백신 개발 잠재력을 확충하게 됐다”고 말했다.
엠마누엘 하농(Emmanuel Hanon) 바이스바이오 최고경영자는 “사노피에 합류하게 돼 기쁘다”며 “사노피의 거대한 규모와 백신개발에 관한 심도 깊은 전문성이 우리의 혁신기술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사노피(위)와 영국 바이스바이오 로고 사노피는 이미 임상시험에서 이 세 가지 바이러스에 대한 mRNA 백신을 개발했다. SP0256은 RSV와 hMPV를 표적으로 하고, SP0291은 RSV, hMPV, PIV3를 표적으로 한다. 이들 백신 후보는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한편으로 사노피는 유아용 약독화 RSV 생백신으로 3상 임상을 진행 중이다. 이미 아스트라제네카와 함께 항-RSV 항체인 베이포투스(Beyfortus, 성분명 nirsevimab)를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사노피는 바이스바이오 인수를 통해 다양한 RSV 프로그램 파이프라인에 비-mRNA 백신 후보물질을 추가함으로써 “의사와 환자의 선택권을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인수는 mRNA 백신에 대한 비판론자들이 최근 미국 연방 백신자문위원회에 임명된 데 따른 대응으로도 해석된다. 지난 6월 11일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부 장관은 영향력 있는 연방 백신자문위원회 위원 17명을 전원 해임한 데 이어 이틀 뒤인 13일 후임 8명을 발표했다. 신규 위원 가운데 일부는 백신 반대론자, 코로나19 백신 접종 거부자 등도 포함돼 있다. 더욱이 mRNA 백신을 긍정해 코로나19 백신의 조기 승인을 지지해온 전임 위원들의 해촉으로 수십년간 누적돼온 전문성이 와해되고 mRNA 백신에 대한 반대 기류가 형성될 것으로 백신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한편 사노피의 잠재적 경쟁자인 모더나(Moderna)는 1상 파이프라인에 RSV와 hMPV에 대한 백신을 포함시켰다가 2023년 9월에 hMPV-PIV3 후보물질(2가 백신) 및 코로나19-독감 복합 2가 백신의 개발을 중단했다.
또 중국 상하이의 클로버바이오파마슈티컬스(Clover Biopharmaceuticals)는 사노피와 경쟁할 수 있는 두 가지 백신에 대한 1상 시험을 시작한다고 지난 6월 17일 발표했다. 하나는 RSV와 hMPV에 대한 2가 백신(SCB-1022_, 다른 하나는 RSV·hMPV·PIV3(SCB-1033)에 대한 3가 백신이다.
이번 바이스바이오 인수는 사노피가 지난 6월 2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 소재 블루프린트메디신코퍼레이션(Blueprint Medicines Corporation)을 95억달러에 인수하면서 희귀 면역질환 포트폴리오를 확대한 지 7주 만에 성사됐다. 한다. 당시 사노피 최고재무책임자(CFO)인 프랑수아-자비에 로저는 투자자들에게 “사노피가 초기 단계 의약품과 백신 분야에서 추가 사업 개발에 나설 상당한 (재무적)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