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원에서 진료받으면 진단된 질환이나 증상과 관련한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위생용품 등을 끼워파는 경우가 흔하다.
예컨대 피부과에서 레이저시술을 받으면 시술에 의한 피부 손상을 줄여준다며 이런저런 기능성화장품을 간호사들이 권한다. 피부재생에 도움이 된다는 EGF나 PDRN 함유 화장품, 히알루론산·세라마이드 등 보습크림, 피부 진정 및 자극 완화 효과가 있는 알란토인·판테놀 성분 크림, 자외선 차단제 등이다.
또 건강기능식품으로는 비타민, 프로바이오틱스(유산균), 오메가3 지방산, 홍삼, 루테인 및 지아잔틴 등을 추천한다. 피로 회복, 면역력 증진, 혈액순환 개선, 콜레스테롤 저하, 눈 건강 등에 좋다는 이유로 추천한다. 인유두종바이러스(HPV) 살상용 세척제로 팔리는 병원전용 제품
근거 없는 위생용품도 끼워파는 데 화들짝 놀랄 일이다. 모 산부인과는 자궁경부암을 유발하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의 고위험군이 검출됐다며 자궁경부와 음부에 바르면 HPV가 죽는다는 세척제를 권했다.
필자가 살펴보니 겉포장엔 성분명이 없었고, 상품명으로 검색해보니 마케터들이 의사들에게 “HPV가 죽을 수 있다고 설득하면 환자들이 구매할 것”이라고 설득하는 잡글들만 몇 개 보였다.
이 제품은 일반 인터넷 판매용과 병원 전용으로 나뉘어져 있다. 해당 산부인과의 간호사는 내원한 환자에게 “세 번 정도 시행하면(점적하면) HPV가 죽을 확률이 높다”며 “확실한 건 아니니깐 다음에 바이러스검사를 해보고 죽지 않으면 HPV가 사라진 게 확인될 때까지 계속해서 구입하시라”고 권했다.
HPV 고위험군 환자는 겁먹어서 약 3만5000원의 거금에 세척액 플라스틱 앰플이 3개가 들어 있는 ‘병원 전용’ 앰플을 사게 되고 언제나 바이러스가 죽을까 전전긍긍하게 된다.
현재 HPV 살상 효과가 확인된 의약품이나 의약외품, 위생용품은 없다. 산부인과 권한 제품도 사실은 ‘여성청결제’, 다시 말해 화장품(공산품)에 속하는 것이었다. 성분은 아마도 계면활성제, 유산균, 아연산화물 등일 것으로 추정된다. 효과가 좋으면 대대적으로 광고도 하고, 언론에도 알릴 텐데 그렇지도 않다. 산부인과 의사도 근거없는 제품을 팔려니 자기 스스로도 양심에 가책이 생겨 간호사를 시켜 판촉에 나서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또 병원에서 알레르기체질이나 감기에 잘 걸리는 환자에게 ‘코세척용 고급 식염수’를 비싼 가격에 팔기도 한다. 사실 일반 소금으로 조금 짭짤하게 물에 녹여 세척하는 것만으로 충분한데 프랑스 심해수에서 채취한 등장액 식염수라 효과가 엄청 좋다고 떠안긴다.
병의원에서 이처럼 진료에 매진하지 않고 관련 제품을 팔아 수익을 챙기는 게 합당한가. 이런 형태의 영업이 성행한 것은 대체로 2000년 7월 1일 의약분업이 시행되면서 의약품 마진을 잃어버린 병의원들이 달아난 수익을 보충하느라 '부업'을 챙기기 시작한 게 계기가 됐다. 그 전에는 거의 없던 일이 2000년대 초반 이후 관행처럼 늘어났다.
1997년 건강기능식품이란 법적 카테고리가 생기고, 2000년 전후로 웰빙 바람이 불면서 몸에 좋은 건기식, 기능성 화장품 등을 챙기는 라이프 트렌트가 형성된 것도 이런 병의원의 부업 관행을 촉발했다.
의사들의 이런 부업 행위가 의료행위인가, 의학적 근거가 없는 상업 행위인가. 의사들은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다시 말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허가한 의약품이나 의약외품을 팔아야 의사 답지 않겠는가.
이에 병의원들은 의사들이 ‘부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합리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의사의 건강기능식품 취급은 판매가 아닌 ‘처방’, 다시 말해 진료행위의 일부라며 정당화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건강기능식품은 건강식품, 또는 과거 건강보조식품으로 불리던 식품과 의약품의 경계선 상에 있는, 그 의학적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는 카테고리에 불과하다. 뒤집어 말하면 의사들은 ‘건기식 처방’이란 의료법에 없는 의료행위를 할 마땅한 근거도 없다. 비급여 기능성화장품, 비급여 건강기능식품을 환자들에게 떠넘겨 경제적 부담만 가중시킨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는 쓸데 없는 것에 대한 소비자 지출, 효용성이 부족한 건기식에 대한 오남용을 초래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입장을 과거 기사에서 검색해보니 ‘의사들의 건기식, 화장품 등의 판매를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해석도 있지만 ‘의사들의 판매활동은 소비자들이 건기식과 화장품을 의약품으로 오인할 소지를 갖고 있고, 건기식 벌률상 의사들은 인정된 판매자가 아니기 때문에 허용되서는 안 된다’는 견해도 있었다.
요즘 아침뉴스나 드라마가 끝나면, 또는 주말 아침이면 건강정보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성행한다. 케이블 및 종편 TV채널이 늘면서 그 양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여기에 출연하는 젊은 의사들은 훤칠한 미모와 유려한 화술로 ‘노화방지에 좋은’ ‘혈액순환에 좋은’ ‘장 건강에 좋은’ ‘시력 개선에 좋은’ 등등의 여러 건강기능식품 성분과 이론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건강정보를 알린다는 명목으로 특정 제품이나 치료법을 간접 홍보하는 ‘쇼닥터’의 전성시대는 가히 볼 만하다.
의사들은 진료에서 파생되는 관련 제품을 환자에게 떠넘기는 ‘약탈적 부업’을 지양하고, 자신의 숭고한 본업인 의업에 집중해 환자들이 더 짧은 기간에 효과적으로 치유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건기식, 화장품의 유통은 어쩌면 비 전문가, 서민 영업자들의 영역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