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3개의 오렉신 수용체 저해제(orexin receptor antagonist)를 불면증 치료제로 승인했다.
미국 머크(MSD)‘벨솜라’(Belsomra, 성분명 수보렉산트 Suvorexant)가 가장 먼저 2014년 8월13일에 가장 먼저 미국에서 승인됐다. 이어 일본 에자이의 ‘데이비고’(Dayvigo, 성분명 렘보렉산트 Lemborexant)가 2019년 12월 23일에 허가를 획득했다. 스위스 아이도시아의 ‘큐비빅’(Quviviq, 성분명 다리도렉산트 Daridorexant)은 2022년 1월 10일에 허가받았다.
이들 약은 모두 이중 오렉신 수용체 길항제(dual orexin receptor antagonist, DORA)로서 오렉신1 수용체(OX1R)와 오렉신2 수용체(OX2R)를 모두 차단한다.
오렉신은 1998년 여러 의학자에 의해 동시 다발적으로 그 역할들이 소개됐다. 오렉신(Orexin 또는 hypocretin, hcrt)은 뇌의 시상하부에 존재하는 오렉신뉴런(또는 hcrt 뉴런)에서 생성 및 분비된다.
기면증 1형에서는 오렉신의 결핍으로 근육에서 갑자기 힘이 빠짐(cataplexy, 탈력발작)과 동시에 쏟아지는 잠(주로 주간)을 주체할 수 없는 증상이 나타난다.
오렉신뉴런은 불과 수천 개밖에 안 되지만 뇌 곳곳의 각성과 관련된 부위로 가지(축삭돌기)를 뻗고 있다. 축삭돌기 말단의 시냅스에서 오렉신이 분비돼 각성 신호를 전달하면 뇌가 깨어 있고 명석한 인지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흥미롭게도 나이가 들면 오렉신뉴런의 수가 점차 줄어, 각성 신호 세기가 약해져 두뇌 회전이 젊을 때만 못하게 된다. 그런데 왜 나이가 들면 불면증이 심해지고 깊은 잠을 취하지 못하게 되는 걸까. 이는 오렉신뉴런의 수는 줄어들어도, 개별 오렉신뉴런 자체의 민감도는 올라가 약간의 자극으로도 활성화돼 그 결과 각성 네트워크가 수시로 작동해 잠드는 걸 방해하고 자다가 자주 깨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전반적으로는 이완과 각성 리듬이 교차하는 24시간 주기 간 진폭의 차가 커야 곤한 잠을 자게 되는데, 나이가 들면 두 주기 간 낙폭의 차가 작다보니 잠들기도 어렵고 쉽게 깬다는 설명이다.
오렉신은 각성 외에 식욕과 에너지소비에도 관여한다. 오렉신은 단기적으로 식욕을 올려 섭취량을 늘리고 포만감을 늦게 느끼게 해 비만을 초래한다. 오렉신은 갈색지방을 자극해 열에너지를 발산하고, 신체활동을 늘리며, 교감신경을 흥분케 하고, 지방산산화 등을 통해 에너지 대사(소모)를 늘린다. 이는 비만 경향과 역행되는 측면이다. 종합하면 오렉신 결핍(수용체 결핍 포함)은 쥐 실험에서 활동량 감소, 에너지 소모 감소, 지방 축적 증가 등을 통해 비만을 유발한다고 연구돼 있다.
불면은 일주기리듬의 교란, 우울증·걱정·스트레스 등 정신적 요인, 동반 질환, 편안하지 않은 수면환경 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초래된다. 불면증 환자는 정상 수면자에 비해 혈중 오렉신-A 수치가 통계적으로 더 높은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오렉신 수치가 정상이거나 낮은 불면증 환자도 꽤 있다. 따라서 오렉신은 불면증의 절대적인, 또는 독립적인 요인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오렉신은 두 개의 아형이 있다. orexin-A와 orexin-B(각각 hypocretin-1, hypocretin-2). 둘은 단백 구조가 50% 이상 비슷하지만 130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전단계 단백질(prepro-orexin 또는 preprohypocretin)에서 어떻게 떨어져 나오느냐에 따라 A와 B로 분류된다.
오렉신A는 33개의 아미노산이 2개의 사슬 안에 이황화 결합을 갖고 있고, 오렉신B는 28개의 아미노산이 선형으로 존재한다. 이들 오렉신은 뇌 전반에 지령을 내리는 시상하부의 측면 또는 후방의 매우 작은 세포 집단에 의해 생성된다. 이들 오렉신 펩타이드는 두 개의 G-단백질 결합 오렉신 수용체( G-protein coupled orexin receptor)에 결합한다. 오렉신A는 OX1과 OX2 수용체 모두에 거의 동일한 친화도로 결합하는 반면 오렉신B는 주로 OX2 수용체에 결합하며 OX1과의 결합력은 5분의 1 수준으로 친화도가 떨어진다.
OX1은 급속안구운동(REM) 수면의 시작을 억제하고, OX2는 비급속안구운동(NREM, 非REM) 수면의 시작을 억제한다. 렘수면은 꿈꾸는 수면이고, 비REM수면은 1~2단계의 얕은 수면, 3~4단계의 깊은 수면으로 나뉜다. 비REM수면은 전체 수면의 75~80%를 차지하고 육체 피로 회복에 밀접한 수면이다. REM수면은 낮동안의 불필요한 정보를 정리하고, 감정을 처리하며, 기억을 강화하는 등 정신의 피로를 회복하는 데 필요한 수면이다. 불면증 치료제인 DORA 계열의 ‘벨솜라’(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데이비고’ ‘큐비빅’과 GABA 작용제인 ‘졸피뎀’
벨솜라는 잠들기 전 30분 이내에 복용한다. 10mg이 권장용량이고 하루 최대 20mg까지 허용된다. 1~10%의 빈도로 나타나는 부작용은 설사, 이상한 꿈, 구강건조증, 두통, 기침 등이다.
데이비고는 5mg이 권장용량이고 하루 최대 10mg까지 허용된다. 고령자의 경우 낙상 위험이 존재하며 1~10% 빈도로 이상한 꿈, 피로, 두통, 악몽, 수면마비, 환각 등이 보고된 바 있다.
데이비고는 OX1 수용체보다 OX2 수용체에 대한 억제력이 상대적으로 강하므로 비REM 수면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데이비고는 수면유도 및 수면유지 효과를 입증했다. 복용 후 대부분 20분 이내에 잠들었고, 치료 전보다 밤에 60분 이상 수면을 더 취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비고는 본래 수면무호흡증 치료를 목표로 개발됐다가 수면제로 탈바꿈했다.
벨솜라, 데이비고, 큐비빅은 생체이용률이 각각 82%, 94%, 62%다. 반감기는 각각 12시간, 17~19시간(최대 55시간), 8시간이다. 이들 약은 임산부에서 안전성은 확증되지 않아 마음 놓고 사용하기에는 불충분하다. 신장질환이 있어도 용량조절이 필요하지 않다.
큐비빅은 25mg 및 50mg이 성인 불면증 치료제로 승인받았다. 임상시험에서 큐비빅 복용군은 수면유도시간을 나타내는 입면소요시간(지속적인 수면에 들어가기까지 걸리는 시간, latency to persistent sleep, LSP), 수면유지시간을 나타내는 지표인 입면 후 각성시간(입면 후 다음날 기상하기 전까지 잠자리에서 각성된 상태로 보내는 시간, wakefulness after sleep onset, WASO), 환자들이 보고한 주관적인 총 수면시간(Subjective total sleep time, sTST) 등 객관적인 측정지표들이 위약 대조군 대비 유의할 만한 정도로 개선됐다.
임상시험에서 환자의 5% 이상에서 나타난 잦은 부작용으로는 두통(7%), 졸음(5%), 피로(5%) 등이었다.
큐비빅은 일시적으로 인지기능과 주의력이 감소하므로 이 약을 복용 후 운전이나 위험한 기기의 조작, 명료한 사고능력이 필요한 작업을 해선 안 된다. 따라서 이 약을 복용하고 잠자리에 들어 다시 활동하기까지 7시간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과량 복용해서도 안 되고 잠자기 전 30분 이내에 복용한다. 우울증, 정신질환, 알코올중독, 탈력발작, 주간졸음, 자살충독 및 행위, 수면무호흡증, 간기능 이상, 임신이나 수유, 폐 등 호흡장애가 있으면 의사와 상의해 복용해야 한다.
DORA vs 졸피뎀
졸피뎀(zolpidem, ZST)은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처방되는 수면제로 중추신경계에 작용하여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GABA의 활성을 증강시켜 진정 및 수면 효과를 이끌어낸다. 특히 GABA-A 수용체 중 ω1 수용체에 선택적으로 결합하여 진정-수면 효과를 나타내며, 다른 효과(항불안, 항경련, 근이완)는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졸피뎀은 장시간형(서방형)이 주로 처방된다. 수면유지시간이 길지만 다음날까지 육체적, 정신적 기능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이로 인해 자기도 인식하지 못하는 ‘졸음운전’ 같은 위험한 수면관련행동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술이나 다른 약물과 병용하면 이럴 위험이 더 높아진다. 졸피뎀은 수면 후 금속성 또는 쓴 맛을 내고, 어지럼증·두통·구토·구역·등의 통증·인지기능저하(기억력 감소) 등을 초래한다. 반면 다리도렉산트는 두통, 악몽, 현기증, 생생한 꿈 등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부작용이다.
미국 의사들의 처방 선호도 설문에 따르면 졸피뎀과 관련 긍정 59%, 부정 22%로 긍정적인 입장이 우세하다. 반면 다리도렉산트에 대해서는 긍정 40%, 부정 43%로 부정적인 입장이 더 많다. 많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졸피뎀이 선호되는 것은 더 경제적이고, 수면유지 효과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작용을 고려한다면 졸피뎀은 4주 이상 복용하는 것은 금물이고, 복용 빈도와 용량을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
기본적으로 DORA는 졸음을 증가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깨어 있는 정도(각성)를 줄이는 데 집중한 약이다. DORA는 인지기능 저하(장기간 사용에 따른) 없이 수면 유도 및 유지에 효과적이다. 다만 높은 오렉신이 불면의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효과가 없을 확률이 높다.
오렉신은 부작용 위험이 졸피뎀 등 기존 수면제에 비해 현저히 낮고, 의존성이 거의 없는 게 장점이다. 각성도를 낮추는 특성 때문에 일단 잠에 든다면 자다가 중간에 깨는 빈도를 줄이고 수면의 심도를 깊게 할 수 있다는 논거다. 하지만 이는 입증된 게 아니다.
DORA는 남용과 의존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미국 마약단속국(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 DEA)에 의해 규제물질(controlled substance)로 분류돼 있다. 이는 처방이 활성화되지 않고, 국내에 도입되지 않는 이유로 관측된다.
졸피뎀 vs 에스조피클론·조피클론
GABA-A 수용체 작용제에 해당하는 에스조피클론(eszopiclone, ESZ)과 조피클론(zopiclone, ZOP)은 같은 계열인 졸피뎀, 잘레플론(zaleplon)과 함께 ‘Z-drug’로 불린다. 졸피뎀은 잠에 들게 하는 시간이 빠른 반면 에스조피클론은 수면 상태를 더 오래 유지하게 한다. 졸피뎀의 빠른 수면 유도는 그만큼 다행감 (Euphoria, 단시간의 폭발적인 행복감과 흥분)과 함께 오남용 위험을 높일 우려가 있다. 반면 에스조피클론과 조피클론은 졸피뎀 대비 수면의 질이 더 높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인지 기능에 대한 안전성은 모든 Z-약물이 입증되지 않았다. 대체로 인지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반대로 Z-약물은 모두 수면방추(sleep spindle)를 증강시켜 기억력을 강화한다는 이론도 있다.
수면방추는 특히 비REM수면 중 주로 2단계에서 느린 뇌파 수면 중 갑작스레 발생하는 짧은 뇌 활동 폭발(12~16Hz의 뇌전도(EEG) 진동)이 2초 미만 동안 지속되는 것으로 시상에서 일어난다. 수면방추는 기억력 강화, 수면보호(각성 억제) 등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졸피뎀은 수면의존적(수면에 따른) 기억력 강화를 증진시키지만 에스조피클론은 그렇지 않다는 연구도 있다.
졸피뎀은 조피클론 대비 약물반동(용량 감량 또는 중단 시 증상이 더 악화)이나 약물중단이 더 적고 내약성이 더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졸피뎀의 역사가 더 오래된 이유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종합적으로 Z-drug은 장기간 복용할수록 인지기능을 떨어뜨린다. 또 장기 복용으로 내성(약효감소)이 생기게 되고, 같은 수면효과를 얻으려면 점차 더 많은 용량을 복용해야 하는 문제가 야기되므로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