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표적항암제, 면역관문억제제, 항체약물접합체(ADC), CAR-T 등의 신약개발에서 양적 성장과 대규모 기술수출에 성공하고 있는 가운데 전통적 방식의 연구개발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약개발에서도 큰 성과를 이뤄지고 있다.
China Post Securities의 최근 보고서(7월 14일)에 따르면 중국기업들의 제약분야 기술수출 규모는 2025년 상반기에만 660억달러로 치솟았다. 이는 작년 한해 수치를 이미 넘어선 것으로, AI 신약 개발 플랫폼이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의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올해 7월 중국 장쑤헝루이제약(Jiangsu Hengrui Pharmaceuticals‧江蘇恒瑞醫葯)Hengrui Pharma)과 중국 사상 최대 규모인 125억달러(선불계약금 5억달러, 마일리지 최대 120억달러) 규모의 12개 신약후보물질에 대한 개발 및 판매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
장쑤헝루이는 프랑스의 인공지능 기반 신약발굴 기업인 익토스(Iktos)와 협업해 ‘Makya’라는 플랫폼을 이용해 다수의 신약후보물질을 도출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 덕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현지 기업들은 정부의 정책적 및 금전적 지원, 규제 간소화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우량한 인재를 저렴한 인건비로 고용하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는 AI 신약 개발을 2025년 5개년 계획에서 공식적인 우선순위로 지정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중국 AI 기반 신약개발기업들이 해외 제약사와 대규모 기술수출 계약을 잇따라 체결하면서 한층 더 주목을 받고 있다.
이달 6일에는 중국 선전에 본사를 둔 AI 기반 약물 연구원 크리스탈파이(XTalPi)의 주가는 하버드대의 저명한 학자이자 사업가인 그레고리 베르딘(Gregory Verdine) 교수가 설립한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 소재 도브트리(DoveTree)와 59억9000만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에 급등했다. XTalPi는 전날인 5일 홍콩 증권거래소에 제출한 서류에서 지난 6월 말 최종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화학생물학 연구와 벤처 창업을 선도하고 있는 그레고리 베르딘 미국 하버드대 교수(출처 라이프마인 홈페이지)
베르딘 교수는 화학생물학의 선구자로서 현재 라이프마인(LIFE NINE)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로도 일하고 있다. 그는 FogPharma, Variagenics, Enanta, Eleven Bio, Tokai, Wave Life Sciences, Aileron 등과 개인회사인 Gloucester Pharmaceuticals(나중에 Celgene에 인수됨) 등 5개의 상장기업을 포함해 10개 이상의 생명공학 회사를 단독 또는 공동 설립했다. 그가 주도한 3개의 치료제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시판 승인을 받았다.
DoveTree는 XTalPi가 발견한 약물 후보를 개발 및 상용화할 수 있는 전 세계 독점권을 확보하는 조건으로 계약 서명 후 180일 이내에 XTalPi에 1억달러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이 중 5100만 달러가 지급됐다. 4900만달러는 가까운 시일 안에 추가 지급될 예정이다.
XTalPi는 후보물질이 개발, 인허가, 상용화를 마치면 마일스톤과 연간 순매출의 한 자릿수 % 비율에 따른 별도의 로열티 등을 합쳐 최대 58억9000만달러를 추가로 지급받을 수 있다.
XTalPi는 “우리는 통합적 'AI + 로봇공학' 기술을 통해 ‘엔드 투 엔드(End-to-End)’ 방식의 AI 신약 발견 플랫폼을 사용하여 주로 종양학, 면역 및 염증성 질환, 신경장애 및 대사조절장애 분야에서 DoveTree가 선택한 여러 표적에 대한 저분자 및 항체 기반 약물 후보를 발굴하고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 화이자(Pfizer), 사노피(Sanofi) 등 글로벌 빅파마도 중국 기업들과 대규모 AI 개발 신약 거래를 진행하고 있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는 올해 6월 13일, 중국 허베이성 스좌장시(石家庄市)의 AI 기반 신약개발 전문기업인 CSPC제약(CSPC Pharmaceutical, 石藥集團有限公司)과 53억3300만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선불금 1억1000만달러, 최대 16억2000만달러의 잠재적 개발 성과금, 최대 36억달러에 달하는 순매출 대비 로열티 등을 합한 금액이다. 아스트라제네카는 CSPC 제약의 신약개발 플랫폼을 통한 전임상 단계 항암제 포트폴리오를 공동 개발하기 위해 이같이 합의했다.
미국 화이자는 올해 6월, 프랑스 사노피는 2023년부터 중국 XtalPi와 AI 기반 신약 개발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사노피는 여기에 더해 올해 4월 중국 헬릭슨테라퓨틱스(Helixon Therapeutics)의 미국 자회사인 에렌딜랩스(Earendil Labs)와 독점 AI 플랫폼에서 발견한 자가면역 및 염증성 장질환에 대한 두 가지 잠재적 항체 후보에 대한 라이선스를 획득하기 위해 17억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글로벌 경영컨설팅기업 맥킨지앤컴퍼니(McKinsey & Company)의 상하이 파트너인 팡닝 장(Fangning Zhang)은 “글로벌 제약사에게 가장 큰 매력은 중국 기업의 약물 라이선스 및 고급 AI 플랫폼 액세스에 대한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이라며 “중국은 차세대 AI 기반 신약 발견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AI가 전세계적으로 신약개발을 위해 연간 150억~280억달러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중국 AI 기업에 신약후보물질 발굴을 맡기는 게 ‘가장 싸게 먹히는’ 신약개발 경로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가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