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의사를 밝힌 FDA CBER 센터장 피터 마크스FDA 산하 생물의약품평가연구센터(CBER)의 센터장 피터 마크스(Peter Marks) 박사가 오는 4월 5일을 끝으로 사임한다.
피터 마크스 센터장은 지난 2016년부터 FDA 백신·생물의약품 규제를 총괄해 온 인물로, 2020년대 초 코로나19 백신을 신속 개발 등에 핵심 역할을 맡아 당시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은 인물이나 2기 트럼프 행정부와 동행을 거부하고 사임했다.
앞서 약물평가연구센터(CDER)를 이끌던 파트리치아 카바조니(Patrizia Cavazzoni)박사는 트럼프 취임 직전인 1월 10일 사임하면서 신약 승인에 중추적 역할을 하던 수장이 모두 자리를 비우게 됐다.
이번에 백신을 포함한 생물의약품 심사를 총괄하던 핵심 리더의 이탈로 신약 승인의 두축이 되는 수장이 모두 공석이 된데 대해 대해 업계는 과학 기반 규제체계의 후퇴와 정치 개입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리더십의 부재가 신약규제승인 라인의 대규모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마크스와 카바조니 외에도 FDA 고위 인력의 추가 사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FDA 산하 종양학우수센터(OCE)의 부소장 두 명이 조만간 사임할 계획이고, 2005년부터는 종양학 관련 제품의 심사를 총괄하는 리처드 파즈듀어(Richard Pazdur) 센터장마저 사퇴 위험에 처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월스트리트 저널 등 주요외신과 피어스파마 등 의약전문지 등은 피터 마크스의 사임의 주된 원인으로 정치적 압력이 작용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 보건복지부(HHS) 고위 관계자가 3월 28일 그에게 “자진 사퇴하거나 해임될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전달했고, 마크스 박사는 결국 사임을 선택했다는 것.
이에 마크스 박사는 사임의사를 밝힌 서한을 통해 이번 결정의 이유를 이례적으로 분명히 밝혔다. 그는 미국 보건복지부 수장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Robert F. Kennedy Jr.)를 직접 겨냥해, “장관은 더 이상 진실과 투명성을 원하지 않고 자신의 허위정보와 거짓에 대한 추종만을 바라기 때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백신처럼 FDA의 엄격한 기준을 충족해 온 의약품에 대한 근거 없는 신뢰 훼손은 공중보건에 해를 끼치고 국민의 건강, 안전, 안보에 분명한 위험이 된다”고 경고하며, 현재 벌어지는 일이 과학적 진실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케네디 복지부 장관 취임 이후 전문가 백신 자문위원회의 회의가 연기 또는 취소되는 등 실질적인 활동이 중단됐으며 대신 복지부 내부 직원들만 참여하는 비공개 패널을 구성하여 2025-26 시즌 인플루엔자 백신주 선정 회의를 진행했고, 사후에 자료가 공개했다. 자문위에서 함께 논의돌 예정이었던 수막구균 백신의 접종권고 및 어린이 예방접종 프로그램(VFC) 포함 여부 등에 대한 검토는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또 백신과 자폐증의 연관성을 다시 조사하겠다며, 해당 분야에서 악명높은 백신 회의론자 데이비드 기어를 연구 책임자로 임명하고 백신과 자폐증 사이에 인과관계에 대한 새 연구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결정적으로 최근 홍역 유행 대응에서의 비과학적 접근법에 대해 케네디 장관과 피터 마크스 센터장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현재 미국 텍사스주를 중심으로 홍역 집단발병이 발생해 최소 400명 이상이 감염되고 최근 10년이내 처음으로 2명이 사망하는 등 전국으로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케네디 장관은 이 홍역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하면서, 검증되지 않은 비타민 A 요법 등을 대안으로 권장해 논란이 일었다.
또한 3월 말 복지부 산하에서 약 1만 명의 인력 감축과 일부 기관의 폐지가 추진 중으로 FDA 인력은 이중 가장 많은 3500명의 인력이 줄어들게 된다.
이같은 수장의 공백과 관련 제약업계의 가장 큰 우려는 신약 승인라인의 공백이다. 마크스와 카바조니 모두 수년간 FDA의 전문성을 상징해온 인물들이었기에, 이들의 연쇄 이탈은 FDA 심사 체계 공백을 초래하고 신약승인의 지연으로 이어질까 걱하는 모습이다.
실제 업계와 규제 전문가들은 이러한 인적 손실이 신약·백신 승인 절차의 지연이나 혼선을 빚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FDA의 연속성 있는 리더십이 흔들리면서, 축적된 전문 지식과 경험이 유실되고 규제 기준이 일관되게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향후 후임 인선이다. 업계와 학계, 정계 모두 마크스 국장 후임으로 정치적 입김에 휘둘리지 않을 인물이 와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일각에서는 새로운 CBER 국장이 케네디 장관의 입맛에 맞는 “예스맨(yes-person)”이 될 경우 백신에 대한 반과학적 기조가 FDA 내부에 더욱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같은 상황에대해 미국 바이오산업협회(BIO)는 3월 29일 공식 성명을 통해 마크스 국장의 사임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존 크라우리 회장은 “마크스의 리더십 하에 FDA는 새로운 백신부터 세포·유전자치료에 이르는 신기원을 이끌어냈다”며 그의 공로를 치하한 뒤, “숙련된 리더십의 상실은 과학적 기준을 약화시켜 혁신 치료법 개발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바이오기업 오비드 테라퓨틱스(Ovid Therapeutics)의 제레미 레빈 CEO는 링크드인 등을 통해 “이번 사임은 매우 중대한 경고 신호”라고 평하며, 마크스의 서한이 “정치 개입과 과학 왜곡으로 FDA가 위협받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밝혔다.
다만 업계가 공개적으로 이번 문제와 관련 공개적인 의견을 낼지는 미지수다. 제약·바이오 업계는 그동안 새 행정부와 마찰을 빚지 않기 위해 로비 창구를 통한 비공개 소통에 치중해왔으며 아직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는 않고 있다.
반면 학계 및 과학 전문가들은 더욱 강도 높은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대표적인 백신학 전문가인 폴 오피트(Paul Offit)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피터 마크스를 사임시킴으로써 이제 복지부 장관이 직접 닭장 지키는 여우가 되었다”고 비유하며, “미국 어린이들에게 슬픈 날”이라고 개탄했다.
미국 국립과학·공학·의학한림원 회원 1900여 명은 “미국의 과학기반 시스템이 붕괴하고 있다”는 공개 서한을 발표하며 우회적으로 피터 마크스의 사임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보건의료 정책 분야의 원로들도 잇달아 의견을 내놓았다. 직전 FDA 국장 로버트 캘리프(Robert Califf)는 마크스 서한과 관련 “증거 기반 정책의 중요성을 믿는 이들에겐 두려운 내용”이라며, 학계·업계·정부가 합심해 과학과 증거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치권에서도 여야 모두 여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공화당 소속으로 의사 출신으로 중도 성향의 빌 캐시디(Bill Cassidy) 상원의원은 “마크스의 퇴장은 FDA에 큰 손실”이라며 동등수준의 후임인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