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부, 모더나 백신개발에 4억8300만달러 지원 약속 … mRNA백신은 전인미답의 길, 전폭적 지원에 뜻밖의 조기 성과 기대도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SARS-CoV-2) 해결에 전세계의 관심이 쏠리면서 굴지의 생명공학 회사들이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학술분석·의약통계 업체인 클래리베이트(Clarivate)는 지금 개발 중인 백신이 완전한 승인을 얻어 상용화되려면 최소 5년이 걸릴 것이란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코텔리스 AI, mRNA 백신 상업화 가능성 5% 불과 예측 … 전문가 ‘입증되지 않은 백신’ 평가
클래리베이트는 임상시험에 들어간 신약후보물질의 개발 일정과 성공 확률을 예측하는 코텔리스(Cortellis)란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 모더나(Moderna)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mRNA 백신 ‘mRNA-1273’은 5%의 성공 확률을 가지고 있으며 승인 기간을 5.2년으로 추정됐다고 밝혔다. 또 지난 9일 임상시험에 들어간 이노비오(Inovio)의 DNA 백신 ‘INO-4800’은 성공 확률 15%로 승인되기까지 5.5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각 제약사 관계자나 보건당국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12~18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했지만 클래리베이트는 현재로서는 가장 유망한 모더나와 이노비오의 백신 후보에 대해 “완전한 승인을 통해 개발 과정을 마치려면 최소 5년이 걸릴 것으로 보이며, 어느 회사도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클래리베이트에 따르면 지난 4월 8일 기준 전세계 185개의 기업과 연구소가 156개의 코로나19 의약품과 백신을 연구하고 있다. 이 중 11%가 임상 개발 중이며, 40개 이상의 후보물질이 발굴 단계에 있다.
클래리베이트의 사라 하디슨(Sarah Hardison) 규제·약물감시·제품화 담당 수석은 “mRNA백신은 입증되지 않은 새로운 백신 접근법으로 성공률이 적다”고 말했다. 어떤 종류의 감염성 질환에 대해서도 mRNA 백신은 승인되지 않았으며 모더나는 백신 성공에 필요한 규모의 제조 경험이 거의 없다고 국내외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mRNA 백신은 숙주세포에 항원의 메신저 RNA를 이식한 것이다. 이럴 경우 면역 체계에 침입한 병원체(항원)를 인식하고 공격할 수 있는 단백질을 만들도록 지시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의 경우 모더나의 백신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건강한 세포에 침투하기 위해 사용하는 스파이크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mRNA를 함유한다. 이론적으로는 참신하지만 실제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조급한 美정부, 모더나에 전폭적 지원 … 미국 보건당국자들 ‘신속 개발’ 낙관
사정이 이런데도 미국 정부는 지난 16일(현지시각) 모더나의 모험적인 백신 개발에 최대 4억8300만달러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관장하는 미국 바이오의약품첨단연구개발국(BARDA)은 최초로 모더나를 지원할 전망이다. BARDA 자금 지원에 대한 세부 사항은 제공되지 않았다. 만약 4억8300만달러 전부를 지원받게 되면 모더나의 현재 시장가치의 약 5%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지원금에는 연방의 백신 비축 비용이 제외돼 있다.
약 830명(지난 2월 기준)의 직원을 둔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소재 모더나는 지원을 받게 되면 최대 150명의 제조인력과 엔지니어, 임상 인력을 추가로 고용할 수 있다고 모더나 측은 설명했다.
아직 입증되지 않은 새로운 백신을 전문 개발하는 모더나는 코로나19 발발 후 두 달 여만에 초기 인체시험을 위한 시제품을 설계하고 지난달 16일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 of Health, NIH) 주관 아래 시애틀에서 첫번째 환자에 대한 투여가 이뤄졌다. 1상 연구에 이미 45명의 건강한 자원봉사자들이 등록했다. 이 연구에는 6개의 새로운 노인 그룹이 추가될 것이며, 모더나는 긍정적인 안전성 데이터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향후 2개월 이내에 임상 2상 시험 준비를 할 계획이다. 모든 게 순조로우면 올 하반기 임상 3상 연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이것이 현실화되면 백신 개발 역사상 전례가 없는 속도가 될 것이다.
모더나는 올해 한 달에 수백만 도즈의 백신 물량을 공급하고 내년에는 이를 수천만 도즈로 늘릴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생산은 BARDA의 재정적 지원을 받게 된다. 미국 정부는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의 임상시험 속도가 높아지고 안전성과 효과가 입증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얻게 될 경우 대규모 생산에 대비할 예정이다.
17일 기자회견에서 모더나 최고경영자(CEO)인 스테판 밴셀(Stephane Bancel)은 “이번 정부 지원으로 mRNA-1273 개발에 가속도가 크게 붙을 것”이라며 “회사명을 백신 이름으로 명명하겠다”고 말했다. 벤셀은 “임상 1상, 2상, 3상을 거치면서 위험이 줄어드는 전형적인 패턴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며 “계약한 연구기관과 협력하여 개발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협력 기관을 구체적으로 거명하지는 않았다.
BARDA의 릭 브라이트(Rick Bright) 국장은 모더나가 제공한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의 목표는 백신을 가능한 한 빨리 접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현재 임상 1상이 진행 중인 동안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수개월 단축할 수 있는 진전된 임상시험과 확충된 생산 규모를 갖추는 데 있다”고 말했다.
모더나의 대변인인 최고의료책임자(CMO)인 탈 작스(Tal Zaks) 박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임상적 이익에 입증하고, 안전성 데이터에서 나타난 리스크를 줄이고, 가능한 한 빠르고 부지런하게 인체에 적용하는 데 집중한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이처럼 백신 개발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자 클라리베이트의 하디슨 수석은 “모더나의 백신 후보에 대한 BARDA의 투자가 코텔리스 알고리즘의 예측 결과를 바꿀 수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개발 기간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하디슨은 “투자 증가, 기간 단축, 예측할 수 없는 FDA 규제 당국의 대응은 전례 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인허가 환경”이라며 “전례가 없을 정도로 연구기간이 짧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의 앤서니 포시(Anthony Fauci) 국장을 비롯한 미국 관리들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이 개발될 수 있는 가장 빠른 기간을 12개월~18개월로 제시했다. 포시는 지난 15일 CBS 이브닝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나친 낙관을 경계한다”면서도 전망이 ‘밝다’(Bright)란 단어를 써가며 백신이 예상보다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백신은 치료제와 달리 안전성 검증에 많은 시간 필요 … 일각서 ‘낙관론’은 시기상조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들은 “코로나19 치료제가 백신보다 먼저 출시될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만약 말라리아 치료제 클로로퀸과 히드록시클로로퀸과 같이 FDA의 긴급 승인이 된다면, 코로나19 백신 출시는 앞당겨질 수도 있다. 클래리베이트는 임상 3상 중인 길리어드사이언스의 렘데시비르(remdesivir)의 성공 가능성을 89%로 점치고 있으며, 2022년 승인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코로나19에 대한 빠른 해결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백신을 위해 5년을 기다리거나, 치료제가 이르면 2년 후에나 나온다는 전망은 속수무책에 가깝다.
코로나19 백신이 모든 사람들을 격리에서 해제할 것이라는 낙관론에 대해 클래리베이트만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투자기관인 SVB 리링크(SVB Leerink)의 애널리스트들은 “FDA가 백신 안전성을 매우 면밀히 검토하는 경향에 비추어본다면, 코로나19 백신의 연구개발엔 일반 치료제 신약에 비해 더 시간이 소요된다”며 “FDA는 효과보다 안전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며, 백신이 승인되려면 장기적인 안전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모더나가 mRNA-1273을 시장에 출시하기 위해 FDA로부터 긴급 사용 승인을 받을 지도 불분명하다. 작스는 “긴급사용에 대한 결정은 데이터가 얼마나 진전됐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예측이 매우 어렵다”고 밝혔다.
개발 경쟁에서 모더나의 라이벌이 된 이노비오 대변인은 “추측성이나 이론적 시나리오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며 “코로나19에 대항하는 백신 후보 개발 등 독점적인 DNA 플랫폼을 보유한 상세한 지식과 폭넓은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후보의 유효성과 성공 가능성에 대해 강한 확신이 있다”고 말했다.
백신은 일반적으로 수년간의 설계와 다수의 실험을 거친 결과물이다. 건강한 사람들에게 제공되기 때문에 실험적인 백신은 일반적으로 수천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장기간의 연구과정을 거친다. 특히 홍역, 인플루엔자, 폐렴처럼 환자가 많은 광범위한 질병에 사용되는 백신은 단백질을 제조하는 기법이나 이를 희석하는 기술이 고난도여서 개발이 어렵고 생산 단가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성백린 연세대 생명공학과 교수는 “백신이 환자가 아닌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접종 후 부작용 등 안전성 이슈가 훨씬 부각되며 까다로운 인·허가 기준으로 인해 통상 개발기간이 치료제 보다 더 걸린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최근 들어 코로나 3종 변이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가 나와 코로나 백신 개발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한편 모더나처럼 mRNA 백신 개발 회사로는 독일의 생명공학회사인 큐어백(CureVac), 매사추세츠 기반의 트랜스레이트 바이오(Translate Bio) 등이 있다. 독일 바이오엔텍(BioNTech)은 중국 중국 푸싱의약(復星醫藥, Fosun Pharma)과 손잡고, 메신저RNA 기반 약물 개발 플랫폼을 활용한 코로나19 백신 개발 및 상업화에 나서기로 계약했다고 지난달 15일 발표했다. 바이오엔텍은 자사의 백신후보물질인 BNT162을 푸싱이 사용하도록 라이선스-아웃했으며, 이달 안으로 임상시험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모더나는 지난달 16일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백신 임상시험을 최초로 시작했다. 이노비오는 이달 9일 미국에서 첫번째 환자에게 백신 후보를 투여했고, 장차 중국으로도 임상 연구가 확대되길 희망하고 있다. 중국의 칸시노바이오로직스(CanSino Biologics) 등이 지난 14일 임상 2상에 착수했다고 중국 과학보건성은 발표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들 3개사를 가장 앞서가는 백신 개발사로 꼽았다.
그 뒤를 이어 사노피 및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연합군, 존슨앤드존슨(얀센)과 같은 글로벌 빅파마가 올해 안에 인체 임상시험을 시작하기 위해 전임상 연구를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GSK의 CEO인 엠마 웜슬리(Emma Walmsley)는 “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하나 이상의 백신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