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한 자가 문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김중식님의 '황금빛 모서리' 시집에 실린 시이다.
많은 사랑을 받은 시집이고 개인적으로도 꾀나 영향을 받은 시집이다. 낭만이 전부이던 시절 학교 앞 까페를 잠시 차렸고 까페 이름이 '이탈한 자가 문 득 자유롭다는 것을' 이었다.
황금빛 모서리
뼛속을 긁어낸 의지의 대가(代價)로
석양 무렵 황금빛 모서리를 갖는 새는
몸을 솟구칠 때마다
금부스러기를 지상에 떨어뜨린다
날개가 가자는 대로 먼 곳까지 갔다가
석양의 흑점(黑點)에서 클로즈업으로 날아온 새가
기진맥진
빈 몸의 무게조차 가누지 못해도
아직 떠나지 않은 새의
피안(彼岸)을 노려보는 눈에는
발 밑의 벌레를 놓치는 원시(遠視)의 배고픔쯤
헛것이 보여도
현란한 비상(飛翔)만 보인다
등장하는 새가 두마리일 수도 있고 한마리 일수도 있다. 그냥 생각을 열어두는 걸 좋아한다.
물위에서 석양을 배경으로 날아오는 새의 비상에 빛이 산란하는 물방울들일 수도 있고 먼지가 흩날리는 모습일 수도 있다.
시각적이미지가 강력한 시를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었지만 삶에 대한 젊은 시인의 거친 성찰에 이끌렸다.
궤도의 이탈이나 모서리는 경계이자 전환의 지점이다. 어느쪽 면에 속하지 않았거나 넘나들었을 그 지점, 혹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다른 경계면에 대한 고찰. 어떤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는 "보았다"고 "보인다"로 표현으로 스스로를 관찰자 시점에서 성찰한다.
경계가 뚜렷한 모난 부분,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돌의 표면을 만지는 것 처럼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이 시집을 관통한다.
그는 황금빛 모서리 이후 쉰살이 넘어 25년만에 낸 시집 '울지도 못했다'에서 회고한다 '혁명이 아니면 사치였던 청춘' 이였다고 되뇌이고 또 '뒷걸음치면서 살아남는 거다' 라고 이야기 한다. 이제 흙가루가 남지 않은 매끈한 조약돌을 쥔 느낌이다.
'봄에 할 일은 꽃을 피우는 것' 그의 거친 성찰의 결과는 여전히 경계면에서 어느 한 방향을 가르키려 하는 것 같다. 다만 거친 각들이 차츰 둥글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