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팬데믹의 파급 효과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FDA는 코로나19 발병 대응뿐만 아니라 임상시험 의약품의 허가 승인 검토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올 1분기에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ristol Myers Squibb, BMS)의 다발성경화증 약물 ‘제포시아’(Zeposia, 성분명 오자니모드 ozanimod)만 지난 25일 당초 일정에 맞춰 승인됐다. 하지만 팬데믹이 제약사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FDA가 향후 몇 개월 동안 평소와 같은 일정을 유지하기란 쉽지만은 않다. 특히 2분기에 5개 의약품이 FDA의 승인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약품의 승인과 판매에 어떠한 변화를 줄 지 귀추가 주목된다.
뉴로크라인의 파킨슨병 치료제 ‘오피카폰’
샌디에이고에 소재한 뉴로크라인바이오사이언스(Neurocrine Biosciences)는 오는 26일 파킨슨병 치료제 오피카폰(opicapone)의 FDA 승인을 기대하고 있다. 오피카폰은 1일 1회 경구투여하는 약으로 COMT 저해제(Catechol-O-Methyltransferase Inhibitor)다. 레보도파(Levodopa) 및 카르비도파(Carbidopa)의 병용요법제로 쓰인다. 처방의약품 신청자 수수료법(Prescription Drug User Fee Act, PDUFA) 규정에 따라 오는 4월 26일 허가 여부가 결정난다.
오피카폰은 BIAL파마슈티컬(BIAL Pharmaceuticals)이 유럽에서 2016년 중반 승인받아 ‘온젠티스’(Ongentys, 성분명 오피카폰 opicapone)란 브랜드로 판매해왔다. 그러나 승인된 지 8개월 후 BIAL은 뉴로크라인에 약3000만달러를 받고 이 약품의 개발 권한과 미국과 캐나다에서의 상용화 판권을 뉴로크라인에 넘겼다.
애널리스트들은 FDA의 승인을 기대하지만 오피카폰이 단기적으로 큰 수익을 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뉴크로라인은 현재 지연성운동장애(tardive dyskinesia, 눈 감기 등 불수의적 운동이 어려움) 치료제 ‘인그레자’(Ingrezza, 성분명 발베나진 valbenazine)로 대부분의 수익을 얻고 있다. RBC 캐피탈에 따르면 인그레자의 판매량은 2017년 승인 이후 매년 증가했으며, 올해 약 10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할 전망이다.
그러나 다른 많은 의약품과 마찬가지로 신종코로나바이러스는 인그레자의 판매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지난달 26일 RBC 애널리스트들은 “뉴크로라인이 인그레자로 인해 다른 제약회사보다 코로나19에 더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투자자 노트에 썼다. RBC는 이 약물이 신규 환자에게 처방전을 발행하는데 영업 사원과 의사의 대면 커뮤니케이션에 크게 의존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뉴로크라인은 최근 팬데믹 여파로 현장 영업인력을 원격 근무로 전환하는 게 불가피했다.
BMS의 폐암치료제 ‘옵디보’와 ‘여보이’
비소세포폐암 환자는 초기 치료 시 일반적으로 면역요법과 화학요법을 병행한다. 지금까지 미국 머크(MSD)의 ‘키트루다주’(Keytruda 성분명 펨브롤리주맙, Pembrolizumab)와 로슈의 ‘티쎈트릭주’(Tecentriq 성분명 아테졸리주맙, atezolizumab)는 1차 병용요법에 쓸 수 있는 면역요법제로 승인받았다. 한때 경쟁 업체 업체보다 앞섰던 BMS는 거듭된 임상시험 실패로 뒤처졌다.
BMS의 반등 전략의 핵심은 항 PD-1 항체인 ‘옵디보주’(Opdivo 성분명 니볼루맙, Nivolumab)와 최초의 CTLA-4 항체인 ‘여보이주’(Yervoy 성분명 ipilimumab)의 면역요법 조합이었다. 이 조합은 현재 대장암, 피부암, 신장암, 간암을 앓고 있는 특정 환자들에게 승인되었지만 제약사는 폐암에도 유용한지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틈새시장을 찾기 위해 BMS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의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종양, 즉 종양변이부담(Tumor Mutational Burden, TMB)으로 알려진 환자에게 처방을 집중했다. 그러나 이 마커는 비교적 생소하고 암세포의 표면에 있는 단백질인 PD-L1이라는 다른 면역요법 바이오마커처럼 확연한 지표로 설정된 것은 아니었다. BMS는 지난 2년 동안 유럽과 미국에서 TMB와 관련해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해 신약승인 프로그램에 적용시켜야 하는 고생을 했다.
BMS는 결국 지난 1월 31일 유럽에서 승인받기를 포기했지만 미국 FDA는 오는 5월 15일 옵디보 및 여보이 병용요법의 폐암 적응증 승인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유럽의약품청(EMA)은 BMS가 임상시험 프로토콜을 여러 번 변경해 전체적인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로슈의 척수근위축증 치료제 ‘리스디플람’
희귀하고 치명적인 유전질환인 척수근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 SMA)에 대한 치료는 지난 몇 년 동안 크게 변화됐다. 이제까지는 직접적인 치료제가 없어 의사들은 진행을 늦추는 두 가지 치료제인 바이오젠의 ‘스핀라자주’(Spinraza 성분명 뉴시너센나트륨, Nusinersen)와 노바티스의 ‘졸겐스마’(Zolgensma 성분명 오나셈노진 아베파보벡, Onasemnogene abeparvovec)만 사용해왔다.
그러나 로슈와 PTC테라퓨틱스(PTC Therapeutics)의 경구약 리스디플람(risdiplam)은 근육위축증 환자에게는 없는 단백질 생산을 촉진해 2형 또는 3형 척추근육위축증 환자 대상 임상 3상에서 유용한 결과를 보였다. FDA는 오는 5월 24일까지 승인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리스디플람은 경쟁 약품에 비해 분명한 이점이 있다. 주사로 맞아야 하는 스핀라자와 졸겐즈마와는 달리 이 약은 병원 진료실에 들어가지 않아도 처방받아 사용할 수 있다. 이는 팬데믹 이전에도 로슈에게 큰 마케팅 활력소가 되었으며, 치료를 위해 이동하는 게 부가적 위험으로 다가오는 현 코로나 상황에선 채택받는 데 꽤 유리한 상황이다.
리스디플람은 스핀라자를 투여하는 환자 중 요추천자(척추 아랫부분에 바늘을 꽂음)로 주사맞는 것을 견디지 못하거나 졸겐즈마를 처방받지 못하는 환자에게 유리할 수 있다. 스핀라자와 졸겐스마는 모두 초고가로 시장에 출시돼 제약사의 판매 원동력이 됐다. 졸겐스마의 판매가는 1회 210만달러다. 스핀라자는 미국 기준 1회 주입비가 12만5000달러(약 1억3000만원)에 달한다. 총 6회 투여하는 치료 첫 해에 75만달러(약 8억1000만원)가 소요되고 이후 매년 3회씩 투여하며 첫 해의 절반인 37만5000달러(약 4억500만원)가 든다. 졸겐스마는 유전자치료제로서 딱 한 번만 치료하면 되므로 오히려 스핀라자보다 저렴하다는 게 노바티스 측의 주장이다.
투자은행사들은 리스디플람의 수익도 다른 SMA 치료제와 비슷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약물의 상업적 운명은 2016년 FDA가 스핀라자에게 광범위한 적응증을 부여한 것처럼 리스디플람도 같은 혜택을 볼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로슈는 여러 가지 형태의 질병을 앓고 있는 신생아부터 60세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척수근육위축증 환자에게 약물을 테스트해왔다.
노바티스의 다발성경화증 치료제 ‘오파투무맙’
오파투무맙은 특정 만성림프구성백혈병(CLL)을 치료하기 위해 ‘아르제라주’(Arzerra 성분명 오파투무맙, ofatumumab)란 브랜드로 10년 동안 미국 시장에서 판매돼왔다. 글락소스마스클라인과 덴마크에 소재한 젠맙(Genmab)이 개발한 이 약은 2015년 12월 노바티스에게 권리가 양도됐다.
노바티스는 이 약을 다발성경화증 치료제로 적응증을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 회사는 오파투무맙을 투여받은 환자가 사노피의 경구용 다발성경화증 치료제인 ‘오바지오필름코팅정14mg’(Aubagio 성분명 테리플루노마이드, teriflunomide)을 투여한 환자에 비해 재발 횟수가 감소한 것을 보여주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노바티스의 다른 데이터에 따르면 오파투무맙은 다발성경화증 치료제로 가장 잘 팔리는 약물인 로슈의 ‘오크레부스’(Ocrevus 오크렐리주맙, ocrelizumab)와 유사한 효능이 있다. 오크레부스는 2017년 FDA 승인 이후 빠르게 1차치료제로 시장에 안착했지만 지금은 20개 증상조절제(disease-modifying drugs, DMDs)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오파투무맙이 오는 6월에 승인을 받을 경우 이런 DMDs의 한계를 딛고 올라가야 한다.
다른 경쟁 약물로는 바이오젠의 ‘텍피데라’(Tecfidera 성분명 디메틸푸마르산염 Dimethyl fumarate), 사노피의 ‘렘트라다’(Lemtrada, 알렘투주맙, alemtuzumab)와 지난달 승인된 BMS의 ‘제포시아’가 있다. 노바티스의 블록버스터 알약인 길레냐’(Gilenya, 성분명 핑골리모드 fingolimod)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테바의 제네릭 ‘코팍손’(Copaxone, 성분명 글라티라머아세트산염 glatiramer acetate)도 있다. 존슨앤드존슨이 최근 포네시모드(ponesimod)라는 약물의 승인을 신청함에 따라 시장은 더욱 혼잡해질 전망이다.
인터셉트의 비알코올성지방간염 치료제 ‘오베티콜릭산’
투자은행들은 흔히 지방간으로 부르는 비알코올성지방간염(non-alcoholic steatohepatitis, NASH)에서 많은 건강 위험요소를 보고 있다. NASH는 간염바이러스에 감염됐거나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알코올성간염과 비슷한 증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간의 급성 혹은 만성적인 염증, 식욕 부진, 복부의 통증, 비장 증대, 간 증대, 황달, 복수, 뇌질환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
초기 단계에서 NASH는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그러나 심해지면 간경변이 진행되고 간이식이 필요해질 수 있다. 미국에서 NASH가 있는 사람만 수백만 명에 달한다. 따라서 NASH는 많은 제약 회사의 관심 사항이었지만 이 치료제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회사는 없었다.
그러나 인터셉트파마슈티컬(Intercept Pharmaceuticals)는 ‘오칼리바’(Ocaliva, 성분명 오베티콜릭산 obeticholic acid)를 상태가 꽤 진행된 NASH 환자에게 투여한 임상시험에서 업계 최초로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FDA는 오는 6월 9일 약물 승인 여부를 논의 하는 회의를 열고, 26일까지 승인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본래 이 약물은 지난달 25일 FDA 산하 자문위원회에서 미팅을 열고 승인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었다.
이 약의 승인은 판매에 전제 요건이지만 이 회사는 가격 책정, 상환(급여), 영업을 최초로 접하는 어려운 위치에 서게 된다. 마크 프루잔스키(Mark Pruzanski) CEO는 지난 1월 “우리는 준비가 되어있고 이 약을 성공적으로 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