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 같은 질환을 앓거나 고령이 아닌 젊은 환자도 신장(콩팥)이 망가질 수 있다. 특히 소아청소년과 젊은층에서 자주 발병하는 사구체질환은 심할 경우 만성콩팥병으로 악화돼 평생 투석치료가 필요할 수 있어 빠른 대처가 중요하다.
신장은 노폐물을 여과 및 배설하고 체내 항상성을 유지하는 기관으로 사구체와 세뇨관으로 구성된다. 모세혈관 덩어리로 이뤄진 사구체는 양쪽 콩팥에 각각 100만개씩 자리잡아 수분과 노폐물을 걸러 세뇨관으로 전달한다. 이 부위에 염증이 생겨 신장기능이 저하돼 단백질과 적혈구가 소변을 통해 배출되는 것을 사구체질환이라고 한다. 발생원인이나 증상에 따라 사구체신염, 신증후군, IgA 신장병증(버거씨 신장병증), 헤노흐·쉔라인자반증, 반월체성·막증식성 사구체신염, 전신홍반낭창 신장염 등으로 구분된다.
이중 사구체신염은 당뇨병·고혈압과 함께 말기 신부전에 의한 투석치료를 유발하는 3대 요인으로 꼽힌다. 정확한 발병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과거 인후염이나 포도염을 앓았을 때 체내에 들어온 항원과 여기에 대응해 생성된 항체가 만나 면역복합체를 형성하고, 이 복합체가 사구체에 쌓여 염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측된다. 면역체계가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의 하나로 다량의 단백질이 빠져나가 소변색이 탁하고 거품이 생긴다. 얼굴과 다리 부근이 퉁퉁 붓고 평소보다 혈압이 올라가면서 만성피로, 권태감, 식욕부진, 옆구리통증 등이 동반된다.
이름이나 발생 부위가 비슷한 신우신염과 헷갈리기 쉬운데 신우신염은 대장균 등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요관을 따라 신장에 올라가 염증을 일으키는 감염질환으로 발생기전부터 완전히 다르다.
사구체신염은 일반적인 신장질환과 달리 소아나 20대 젊은 성인에서 발병률이 높은 게 특징이다. 선천적·유전적 면역기전 이상, 잦은 인스턴트음식 섭취에 따른 면역체계 혼란, 비만 등이 이유로 꼽히지만 확실치 않다. 20대 남성은 어릴 때부터 질환을 앓다가 입대 전 병무청 신체검사에서 소변검사를 받고 확진되는 사례가 많다. 과거엔 병역면제(4급 보충역, 사회복무요원) 사유로 인정돼 고위층 자제나 연예인들이 소변에 단백질과 피를 섞는 방식으로 병역 면탈에 자주 악용했다. 하지만 2009년부터는 등급이 상향 조정돼 사구체신염을 진단받아도 3급 현역으로 입대해야 한다.
조기에 진단해 치료하면 대부분 예후가 좋지만 방치할 경우 만성신부전증으로 악화돼 평생 투석치료나 신장이식이 필요할 수 있다. 실제로 전체 환자의 15~20%가 관리소홀 탓에 투석치료 또는 신장이식을 받고 있다.
특히 어린이들은 사구체질환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 국내에선 1998년부터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학교에서 소변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그동안의 학교 소변검사 결과 초·중·고교생의 0.5∼0.9%에서 혈뇨, 0.2%에서 단백뇨가 검출됐다. 하지만 혈뇨나 단백뇨가 발견된 뒤 병원에 가 진단받은 비율은 5%에 불과했다. 사구체질환 고위험군 어린이의 95%가 부모의 무관심 등으로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치료는 스테로이드나 사이클로스포린 등 면역억제제와 항생제 투여를 기본으로 한다. 또 고혈압이 동반되면 만성 신부전으로의 진행이 빨라져 정상 혈압을 철저히 유지해야 한다. 혈압을 잡기 힘들땐 안지오텐신전환효소억제제나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 같은 고혈압치료제를 병용한다. 부종이 심하면 적당한 양의 이뇨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임천규 경희대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평소 오줌에 거품이 많고 피가 섞여 나오거나, 심한 감기나 편도선염 등을 앓은 뒤 오줌색이 간장빛으로 변하거나, 혈압이 높으면서 얼굴·다리·발등이 붓는다면 사구체신염을 의심해볼 수 있다”며 “1~2년에 한번씩 간단한 소변검사와 혈압검사만 받아도 신장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