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가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 소재한 임상단계 면역 항암제 개발 전문 제약기업 트릴리움테라퓨틱스(Trillium Therapeutics)를 22억6000만달러에 인수키로 했다고 23일(현지시각) 공표했다.
화이자는 트릴리움 주식 100%를 주당 18.50달러, 즉 최근 60일간 종가의 가중평균치에 118%, 22일 종가의 200%의 프리미엄을 얹힌 금액으로 매입키로 했다.
화이자는 면역계 기능을 향상시켜 암세포들을 탐지하고 파괴하도록 설계된 2가지 CD47 대식세포 면역관문억제제(항 α(SIRPα)-CD47 제제)인 ‘TTI-662’와 ‘TTI-621’를 확보하기 위해 인수를 감행했다.
두 신약후보는 CD47을 차단하는 동시에 대식세포에 대식세포에 ‘나를 잡아먹어주세요(eat me)’ 신호를 전달한다. 여기에 TTI-621은 자연살해(NK)세포를 활성화하는 기능을 추가로 갖도록 설계됐다.
TTI-662와 TTI-621은 새로운 동종 계열 최강의 SIRPα-Fc 융합 단백질(억제제)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혈액학적 악성종양에 초점을 맞추고 1b/2상을 진행 중이다.
화이자 항암제 사업부의 앤디 슈멜츠(Andy Schmeltz) 글로벌 대표는 “오늘 발표는 우리의 혁신적인 파이프라인에 잠재적 동종 계열 최강의 물질들을 추가해 과학적인 혁신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이라며 “항암제 분야에서 화이자가 구축하고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기반으로 성사된 트릴리움테라퓨틱스 인수가 우리의 혈액암 포트폴리오를 증강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화이자는 혈액암 분야에 대한 심도깊은 경험과 다양한 지식을 기반으로 허가를 취득했거나 개발이 진행 중인 8개의 혈액암 치료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며 “잠재적으로 중요한 치료제들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게 공급할 수 있도록 해 줄 토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혈액학적 악성종양은 혈액, 골수, 림프절 등에 영향을 미치는 암들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다양한 유형의 백혈병, 다발성골수종, 림프종 등이 포함된다.
지난해에만 세계 각국에서 100만명 이상이 혈액암을 진단받아 전체 암의 6%에 가까운 비율을 점유했다. 또 지난해 세계 각국에서 70만명 이상이 혈액암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트릴리움테라퓨틱스의 얀 시크바르카(Jan Skvarka) 대표는 “오늘 발표에 기쁘다”며 “트릴리움테라퓨틱스가 보유한 잠재적 동종 계열 최강의 SIRPα-CD47 표적 면역항암제의 위상과 기여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트릴리움의 SIRPα-CD47 표적물질은 임상적으로 유의할 만한 단독요법제 치료반응뿐 아니라 강력한 병용요법제로 기대를 모으고 있고, 전임상 단계에서 다양한 용도의 치료제로 입증자료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임상시험에서 TTI-662와 TTI-621은 미만성(彌慢性) 거대 B세포 림프종(DLBCL), 말초 T세포 림프종(PTCL), 여포성 림프종(FL) , 기타 림프구 관련종양들을 포함한 각종 재발성 또는 불응성 악성 림프종에 단독요법제로서 효능을 입증했다.
지난달 26일 도출된 TTI-622의 임상 1상 자료를 보면 반응을 평가할 수 있고 집중적인 치료를 진행한 경험이 있는 30명의 환자들에게서 심도깊고 지속적인 반응이 입증됐다. 여기에는 2건의 완전반응이 포함됐는데 이 중 1건은 114주 이상 지속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지금까지 보고된 TTI-662와 TTI-621의 부작용을 보면 관리가 가능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TTI-622은 3급 및 4급 부작용은 드물고 제한적인 일과성 혈구감소증이 보고됐다. TTI-662와 TTI-621은 최소한의 적혈구 응집과 극히 일부의 빈혈 수반사례들이 보고된 것으로 나타났다. 추가적인 자료는 가까운 시일 내에 의학 학술회의에서 공유될 예정이다.
화이자 글로벌 제품개발 부문의 크리스 보쇼프(Chris Boshoff) 항암제 담당 최고 개발책임자는 “집중적인 치료를 진행한 전력이 있는 림프구 악성종양 환자들에게서 TTI-662와 TTI-621 단독요법제가 나타낸 초기 임상자료가 상당히 고무적인 데다 다발성골수종 환자에서 TTI-622가 보여준 초기 활성도도 마찬가지”라며 “PD-1 및 PD-L1 억제제들이 각종 고형암에서 면역항암효과를 입증한 것처럼 SIRPα-CD47과 신물질의 상호작용이 혈액암을 포함한 다양한 유형의 암에서 또 하나의 주축(backbone) 면역치료제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면역항암제에서 PD-1 및 PD-L1 억제제에 이어 두 번째로 주목받는 핵심 치료제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보쇼프는 “화이자가 보유한 선도적인 연구‧글로벌 개발역량을 이용해 새롭고 혁신적인 병용요법제이자 혁신적인 차세대 혈액학적 악성종양 치료제로 SIRPα 융합 단백질의 임상개발을 가속화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화이자 측은 지난해 9월 ‘화이자 혁신 성장 이니셔티브’(PBGI: Pfizer Breakthrough Growth Initiative)의 일환으로 트릴리움테라퓨틱스에 2500만 달러를 투자하면서 자사의 제프 세틀먼(Jeff Settleman) 항암제 연구개발 부문 부사장 겸 최고과학책임자(CSO)를 트릴리움테라퓨틱스 이사회의 일원으로 선임한 바 있다.
지난해 6월 선포된 PBGI는 유망한 연구들에 자금을 지원하고 화이자 측 전문가들이 접근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면서 화이자의 전략적 관심대상이 될 수 있는 임상 프로그램들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화이자 측은 PBGI 건당 최대 50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이번 화이자의 인수는 길리어드 포티세븐(Forty Seven) 인수, 애브비의 아이맙(I-Mab) 제휴, 자체 개발 중인 아크온콜로지(Arch Oncology)와 함께 CD47 차단제 경쟁 대열에 참여하게 됐다.
길리어드는 지난해 3월 2일 49억달러에 포티세븐을 인수하면서 CD47 단일클론항체 매그롤리맙(magrolimab)을 확보했다. 애브비는 중화권 이외의 지역에서 CD47 억제제 렘조팔리맙(lemzoparlimab)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아이맙에 1억8000만달러를 선불로 지불했다.
캘리포니아주 브리즈번(BRISBANE)과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본부를 둔 아크온콜로지는 IgG2 CD47 항체인 AO-176로 고형종양과 혈액종양에서 각각 1/2상을 단독요법으로 진행 중이다. 고형종양에서는 화학요법제(진행 중) 또는 미국 머크(MSD)의 PD-1 억제제인 ‘키트루다주’(Keytruda, 성분명 펨브롤리주맙 Pembrolizumab)(계획 중)와 병용요법을 평가하고 있다.
트릴리움은 TTI-622를 암젠의 ‘키프롤리스주’(Kyprolis 성분명 카르필조밉 Carfilzomib)+덱사메타손, 저메틸화제(Hypomethylating Agent, HMA)인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비다자주’(Vidaza 성분명 아자시티딘 azacitidine), 아자시티딘+애브비의 Bcl-2 차단제인 ‘벤클렉스타정’(Venclexta 성분명 베네토클랙스 venetoclax) 등과 병용하는 3건의 1/2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현재는 환자를 모집 중이며 내년에 본격적으로 임상에 들어간다.
연구의 핵심은 트릴리움의 신물질이 다른 CD47 억제제와 차별화된다는 믿음을 검증하는 데 맞춰져 있다. 특히 포티세븐의 마그롤리맙과 달리 자사의 두 신물질이 적혈구와 결합(응집)하지 않아 빈혈 위험을 최소화한다는 우위를 과시하려 벼르고 있다.
화이자의 트릴리움을 내세운 베팅은 길리어드 및 애브비라는 만만찮은 상대에 대한 거물급 도전으로 평가된다. 트릴리움의 주가는 항CD47 제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2019년 말 0.30달러 미만에서 1년 후 20달러로 상승했다. 올들어 내내 하락해 절반 이하인 8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화이자가 막대한 프리미엄을 얹혀줬음에도 불구하고 연중 최고가(27.12달러)에도 못미치는 가격에 인수를 당했다.
화이자는 트릴리움에 진즉에 관심을 뒀지만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에 대한 대응, 또 이로 인한 트릴리움의 임상 진행 중단 등으로 인수를 미뤄왔다. 월가의 분석가들은 트릴리움이 10억~100억달러의 가치가 있고 주가를 내릴 만한 악성 재료가 없었음에도 이번에 화이자가 ‘푼돈’을 들여 ‘쉽게 먹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화이자는 23일 긴급사용승인에서 정식승인으로 승격된 코로나19 백신 ‘코미나티주’(Comirnaty)를 통해 올해 약 335억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부스터샷(3차 이상 추가 접종)이 공식화될 경우 수 년 간 추가 수입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당장 22억6000만달러의 인수자금을 마련하려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겠지만 큰 부담은 아니다. 증권사인 파이퍼샌들러(Piper Sandler)의 애널리스트들은 화이자의 이번 인수는 올해의 마지막 큰 거래도 아니고 ‘감정을 고조시킬’(drive sentiment higher) 거래도 아닐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