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에 근거를 두고 있는 재즈파마슈티컬스(Jazz Pharmaceuticals)의 기면증 치료제인 ‘자이와브 경구용 액제’(Xywav 성분명 칼슘+마그네슘+칼륨+옥시베이트나트륨: calcium, magnesium, potassium, sodium oxybates, 코드명 JZP-258)가 12일(현지시각)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특발성 과다수면증(idiopathic hypersomnia, IH) 적응증을 추가로 승인받았다.
특발성 과다수면증 치료제가 FDA 시판 승인을 받은 것은 ‘자이와브’가 처음이다. 이 질환은 밤 시간에 숙면을 취한 후에도 이튿날 낮시간에 과도한 졸림 증상을 나타내는 증상을 말한다.
기면증(Narcolepsy)는 특발성 과다수면증의 잠재적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갑자기 근육의 힘이 빠지며 잠이 갑작스레 오는 탈력발작(脫力發作 cataplexy)과 수면시작 시 급속안구운동(rapid eye movement, REM) 이 일어나는 특징을 보인다. 반면 특발성 과다수면증은 탈력발작과 REM을 보이지 않으며 낮잠을 자도 상쾌하지 않은 게 기면증과 다르다.
자이와브는 경구용 액제로 지난해 7월 21일 7세 이상의 기면증 환자들에게서 탈력발작 및 과도한 주간졸림증(excessive daytime sleepness, EDS)을 개선하는 용도로 승인받았다.
FDA 약물평가연구센터(CDER) 신경의학 치료제 관리국의 에릭 배스팅(Eric Bastings) 부국장은 “자이와브에게 처음으로 특발성 과다수면증 적응증이 승인된 것은 이 질환이 장기간 거의 평생 지속되면서 과도한 졸림증, 각성장애(잠에서 깨어나기 어려움), 보행곤란으로 인한 사고 등에 노출되는 파괴적인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이와브의 유효성은 19~75세 특발성 과다수면증 환자 154명을 대상으로 12~16주에 걸쳐 진행한 1건의 이중맹검, 위약대조, 피험자 무작위 배정 방식의 3상 시험을 통해 확인됐다.
이 임상에서 자이와브를 복용했다가 위약으로 바꾼 환자군은 자이와브 지속 복용군과 비교할 때 졸림증 등 특발성 과다수면증 관련 증상이 눈에 띄게 악화됐다. 임상에서 가장 빈도 높게 나타난 부작용은 구역, 두통, 어지럼증, 불안, 구토 등으로 피험자의 10~20%가량에서 관찰됐다. 부작용이 적잖았고 이런 부작용은 복용중단에 따른 금단증상일 수도 있을 것으로 추정됐지만 주간졸음증, 과다수면증을 일거해 해소하는 이점이 위험보다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자이와브는 중추신경계 우울증과 오‧남용 위험성을 주의하라는 돌출주의문(boxed warning)이 라벨에 명시된 상태로 시판되고 있다. 자이와브의 중요한 유효성분 가운데 하나인 옥시베이트는 관리대상 의약품법상 1급(Schedule Ⅰ) 약물이다. 원래 화학식이 감마-히드록시부티레이트(gamma hydroxybutyrate)여서 약칭 GHB로도 불리고 있다.
불법적인 GHB 오‧남용은 발작, 호흡곤란, 각성도(alertness) 변화, 혼수상태, 사망 등 위중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임상적으로 유의해야 하는 호흡억제와 각성도의 감소가 옥시베이트 나트륨을 복용한 일부 성인에서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처방‧조제 과정에서 위험성평가 및 완화전략(REMS) 프로그램에 따라 엄격한 안전성 관리가 적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이와브는 REMS 지침에 따라 공인된 자격이 있는 의사만이 처방할 수 있고 별도로 공인된 약국(certified pharmacy)에 등록된 환자만이 조제를 받아 약을 복용할 수 있다. 직접 소비자에게 약을 전달하게 돼 있고 온라인 처방이나 배송은 금지돼 있다.
자이와브는 그동안 특발성 과다수면증과 관련 ‘패스트트랙’, ‘우선심사’, ‘희귀의약품’ 등으로 지정받았다. 올해 4월 12일 FDA로부터 우선심사 대상으로 지정돼 처방약생산자수수료법(PDUFA)에 따라 FDA는 이달 12일까지 특발성 과다수면증 적응증 추가 승인 여부를 결정하게 돼 있었으며 시한에 임박해 승인이 나왔다.
자이와브는 독특한 양이온 조성물이다. 기존 기면증 치료제인 재즈파마의 ‘자이렘’(Xyrem 성분명 옥시베이트나트륨 단일성분)에 비해 나트륨 함량을 92%나 낮춘 제품이라는 차별화 포인트가 눈에 띈다. 즉 자이렘이 하루에 6~9g의 옥시베이트 나트륨을 복용해야 한다면 자이와브는 하루에 1~1.5g만 복용하면 된다. 나트륨은 혈압을 상승시키기 때문에 고혈압 환자에게 큰 위험이 된다. 이를 상쇄하기 위해 칼륨, 칼슘, 마그네슘을 양이온 상태로 추가한 게 자이와브다.
옥시베이트 나트륨의 정확한 기전은 규명되지 않았지만 GABA(γ-aminobutyric acid) 신경전달물질의 대사산물이자 내인성 화합물인 GHB의 나트륨염으로서 GABA B 수용체에 작용해 노르아드레날린성, 도파민성, 시상피질(thalamocortical) 등 신경에 작용해 각성 효과를 매개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GHB는 1874년 러시아 화학자 알렉산더 자이체프(Alexander Zaytsev)에 의해 처음 합성된 오래된 약물이다. 1세기 후 미국에서 이를 건강보조식품으로 판매했다. 학계에서는 기면증이 있는 사람들의 야간수면을 크게 개선하고 낮동안의 탈력발작을 억제한다고 보고하기 시작했다.
1994년 FDA는 기면증 치료제로서 GHB를 조사하기 위해 미네소타주의 오판메디컬(Orphan Medical)이라는 제약사에 연구를 의뢰했다. 미국 정부는 희귀의약품 개발을 위해 세액 공제 및 7년 시장 독점권을 포함한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 때 불법 GHB가 큰 문제가 됐다. 저용량에서 냄새가 없는 분말은 행복감과 성적 흥분을 유발할 수 있어 파티와 만찬에서 인기가 있었다. ‘데이트 강간’ 약물로 논란을 일으켰다. 고용량에서 알코올과 같은 다른 진정제와 혼합하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지 못한 채 사람을 기절시킬 수도 있었다.
2000년에 GHB가 성폭행 및 사망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미 의회는 이를 불법약물(마약)로 규정하는 입법을 했다. 그러나 의료적 목적의 사용은 허용했다. 그 해 말 오판메디컬은 자이렘 승인을 FDA에 요청했다.
FDA 자문위원회는 회의를 열고 자이렘의 승인 찬반 의견을 경청했다. 19년 동안 기면증으로 GHB를 복용한 변호사 “탈력발작이 부작용 없이 거의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다”고 증언했다. 반면 다른 증언자는 그녀의 딸이 보디빌딩용 보충제로 GHB를 구입하고 중독됐으며 죽음에 이르렀다고 호소했다.
자문위는 2002년에 탈력발작을 동반한 기면증에 자이렘을 승인할 것을 FDA에 권고했다. 그 해 7월 17일 FDA 승인이 나왔다. 2005년 오판메디컬은 1억2260만달러에 재즈파마에 인수됐다. 2017년 1월 17일 FDA는 자이렘의 첫 제네릭을 승인했다. 내년부터 자이렘은 제네릭 버전과 본격 경쟁하기 시작하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트륨 함량을 줄여 개발한 게 2021년 7월 승인받은 기면증 치료제 자이와브로서 2027년까지 시장독점권을 갖게 된다.
이 약은 부작용 우려가 여전이 존재한다. FDA의 공개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시판 이후 올해 6월 30일까지 자이렘 또는 자이와브를 복용한 환자 중 총 2만7000건 이상의 ‘심각한 사건’(serious adverse events, 생명을 위협하거나 입원, 사망에 이르게 한 증상)이 접수됐으며 이 중 753명이 사망했다 .
오판메디컬과 재즈파마는 자이렘 또는 자이와브 시판 후 몇 년 동안 불면증, 우울증, 섬유근육통 등 적응증으로 승인되지 않은 부적절한 조건에 약물 처방을 조장 또는 방조하다가 연방정부와 충돌했다. 그릇된 약물 마케팅으로 만성적인 피로와 통증으로 연계된 경우가 미국에서만 최소 4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에 재즈파마는 2000만달러 상당의 벌금을 물게 됐다.
2010년 재즈파마는 섬유근육통(fibromyalgia) 치료제로 이 약을 승인하려고 했지만 FDA 자문위원회는 압도적인 표결로 반대했다. 당시 반대한 자문위원들은 엄청나게 많은 섬유근육통 환자를 감안할 때 승인이 위험이 너무 높다고 평가했다. ‘잠재적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견해였다.
한편 재즈파마슈티컬스는 SK바이오팜과 수면개선제 ‘수노시’(Sunosi 성분명 솔리암페톨 Solriamfetol)를 공동 개발해 2019년 3월 FDA 승인을 받았던 제약사로 국내에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