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걸릴까봐 가장 두려워하는 병으로는 암과 치매가 꼽힌다. 치매가 암보다 더 끔찍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잖다. 치매의 조기 발견과 치매가 강조되고 있지만 뇌 자기공명영상(MRI)에 소요되는 비용이 만만찮아 대중적인 선별검사로 활용하기에는 제약이 많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윤영철 중앙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종래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 환자의 뇌파와 그림을 보고 경제적이고 간편하게 치매를 진단하는 방법과 관련 의료기기를 개발 중이다. 윤 교수를 만나 참신한 연구방법론과 그동안의 성과에 대해 들어봤다.
- 선제적으로 치매를 진단하는 다양한 연구를 진행해왔는데 어떤 게 있는지.
“기존 진단법은 비용이 많이 들고 침습적이어서 진료현장에서 쉽게 시행할 수 없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서 발견되는 이상 단백질 성분인 아밀로이드-베타(Amyloid-β)와 인산화타우(p-Tau), 총타우(t-Tau)를 환자의 뇌척수액에서 뽑아내면 확인이 가능하지만 위험하고 고비용이다. 이에 ‘아밀로이드-베타의 올리고머화 정도’를 혈액으로 측정해 치매의 진행 단계와 비례해 올리고머화 정도가 상승함을 규명했다. 민감도 100%, 특이도 92%의 높은 진단율을 자랑해 현재 해외에 진단키트가 수출되고 있다. 조만간 국내 진료현장에서도 활용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환자의 뇌파, 그림, 음성 등을 통해 진단하는 알고리즘과 이를 실행할 인공지능(AI)를 개발 중이다. 광생물조절장치를 이용한 치료기도 연구 중이다.”
- 뇌파의 어떤 특성을 이용해 진단하나요.
“알츠하이머병의 진단과 치료에 뇌파(Brain wave, EEG), 음파 (sound), 빛(light wave) 등 파(wave)를 활용하고 있다. 뇌파는 일반적으로 경련성 질환(뇌전증)이나 의식의 변화가 있을 때 임상에서 사용하는 검사도구다. 하지만 치매와 같은 인지장애에서 전통적인 뇌파검사로는 정상인과 분간하기 어렵다. 이에 컴퓨터 기반의 정량뇌파를 이용해 정상, 경도인지장애, 치매를 선별하는 연구를 시행하고 있다. 다만 정량뇌파로는 이들 3가지 특징이 혼재돼 나타나므로 예측하기 쉽지 않다. 이에 따라 뇌파의 만 수천가지의 특징을 뽑아내고, 의미 있는 특징만을 선별해 인공지능 분석법으로 경도인지장애를 정상인과 구별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 환자의 음성은 치매 진단에 어떤 단서가 되나요.
“인지장애가 있으면 일반적인 대화에서 음성의 변화, 특히 모음을 구성하는 음성 성분(formant)에 변화가 나타난다. 발화 음성을 조절하는 데 대뇌가 관여한다는 것은 이미 해외의 여러 연구자들이 발표한 사실들이다. 원격진료에서 음성검사를 통해 일정 형식의 질문을 하고 답변을 유도해 그 의미와 유창성을 분석함으로써 인지장애를 예측하는 알고리즘이 개발돼왔다. 일종의 원격 인지기능검사에 가깝다. 현재 우리팀이 연구하는 것은 일반대화(자연발화)에서 음성 자체와 내용어 등을 분석해 인지장애를 예측하는 것이다. 예컨대 부모님과의 전화 대화를 녹음했다가 인지 변화를 미리 알아내 선별검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하는 게 목표다.”
- 그림으로도 치매를 판명할 수 있다는데 무슨 내용인가요.
“환자에게 시계그림을 그리게 해서 인지장애의 위험성을 인공지능 알고리즘(convolutional neural network)을 이용해 예측하는 것이다. 장난감 수준의 단순한 연구로 시작했지만 의미를 인정받아 좋은 학술지에 출판됐다.”
- 광생물장치라는 생소한 개념의 치매 치료장치를 개발 중인데 메커니즘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광생물장치란 빛을 이용해 생물학적 변화를 유도하는 장치를 말한다. 예컨대 물리치료에 사용되는 적외선 온열장치나, 마취 후 환자 상태를 살펴보는 산소포화도 측정장치(pulse oxymeter), 약물 분석에 쓰이는 근적외선분광법스펙트로스코피(Near-infrared spectroscopy) 등 적외선 장치는 이미 의료현장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가시광선 주변에는 자외선과 적외선이 있다. 자외선은 파장이 짧고, 투과력은 약한 반면 적외선은 파장이 780~1000nm로 길고 투과력이 강하다. 적외선 중에서도 파장이 더 짧은 축에 속하는 근적외선은 뇌신경에서 혈관 생성을 돕고 혈류를 증가시키며, 신경세포의 생존을 돕는다(anti-apotosis, 세포자살 억제)고 알려져 있다. 또 항산화, 항염증, 신경생성 및 재생, 부종감소 등의 효과가 있다.
근적외선이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동물실험을 수행한 결과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간주되고 있는 베타-아밀로이드 플라크를 뇌에서 제거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적외선을 이용한 광생물학조절장치는 알츠하이머병의 디지털 치료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 이런 연구를 유튜브와 도서를 통해 착안하고 지식을 습득해 진행한다는 게 참으로 대단하다. 의학 관련 인접 학문을 독학하느라 고생이 많을 것 같다. 그동안 이뤄낸 성과를 요약한다면.
“정량 뇌파를 이용한 경도인지장애 진단기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임상을 (주)아이메디신과 함께 진행했고 시판 허가를 획득했다. 상용화 과정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고 곧 국내 진료현장에서 사용될 전망이다. 음성을 이용한 인지장애 예측 분류기는 (주)바이칼에이아이와 함께 연구하고 있다. 예측 정확도가 75~80% 수준으로 해외 연구 수준에 근접했고, 최적화를 거쳐 최고 수준에 이르도록 노력하고 있다. 광생물조절장치는 하동환 중앙대 공대 교수팀과 공동으로 알츠하이머병 치료에 최적화된 장치를 개발했고 곧 사업화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와 유사한 기기가 해외에서 조금 더 일찍 개발돼 소규모의 임상 연구가 시작됐다. 이에 독자적인 장비를 개발해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연구를 진행 중이다.”
- 경도인지장애의 조기진단에 초점을 맞춰 연구하고 있다. 그 동기는 무엇인가.
“보통 치매라고 하면 나빠지기만 하고 호전될 가능성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가능성 있는 환자를 찾아 조기에 치료하면 증상이 나빠지지 않게 관리할 수 있으며, 알츠하이머병으로 진단돼도 모두 다 치매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경도인지장애의 조기진단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손쉽게 스크리닝할 수 있는 뇌파, 음성, 그림, 혈액샘플 등을 활용한 진단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 같은 알츠하이머병 환자라도 조기에 치료하면 호전될 가능성이 있는지 어떻게 판단하나.
“치매는 뇌에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 기억을 해마에서 꺼내 활용하는 대뇌 전두엽의 기능에 이상이 있을 때 발병한다. 해마가 정상이어서 기억의 저장이 가능한데 기억을 꺼내는 회로가 손상돼 기억력이 떨어지는 게 경도인지장애로 치매로 진행될 위험성이 낮다. 반면 해마에 문제가 생겨 저장형 기억장애가 있을 때 알츠하이머병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더 높다. 다시 말해 해마의 기억회로 손상에 의한 기능 저하는 경미한 인지장애 증상을 보이지만 구조적 이상에 의한 기능 마비는 중증 치매를 야기한다. 따라서 전자의 경우 적극적인 조기치료로 치매를 최대한 지연시킬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신경과 의사로서 갖는 보람이다.”
- 개발 중인 새로운 진단법이 보편화되면 기존 영상의학 진단보다 저렴하고 비침습적이며 신속 간편할 것 같다. 더욱 기대되는 장점이 있다면.
“정량뇌파나 음성을 이용한 인지장애 선별도구는 아밀로이드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이나 MRI를 대체할 수 있는 검사는 아니다. 이런 고비용 검사가 필요 없는 사람을 걸러내고, 꼭 정밀검사를 받아야 할 환자를 찾아내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 되기 위한 것이다. 신약개발에서도 대상자를 처음부터 아밀로이드 PET나 MRI로 물색한다면 천문학적 비용이 들지만 먼저 선별검사를 이용하여 가능성 높은 환자를 걸러낸다면 관련 연구개발 비용도 크게 절감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환자에게는 선별검사를 통한 조기진단을 통해 삶을 계획하는 데, 최적의 치료전략을 세우는 데, 최신 치료제의 적응 대상자를 찾는 데 도움이 된다.”
- 우리나라 치매 진료 관행에 대해 지적한다면.
“최근 치매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조기치료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의료진에게 조기진단과 적절한 치료에 대한 중압감이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알츠하이머병이 더 과잉 진단되고 불필요하게 약물이 처방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알츠하이머병이 아닌 대사성 혹은 내과적 질환, 약물에 의한 인지장애 등인데 치매 약물을 처방하게 되는 경우다. 알츠하이머병 치매로 진단하기 전에 인지장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 등을 모두 평가하고 교정하는 게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진료시간이 확보돼야 하고 이에 상응하는 보상이 의료기관에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가 제공될 수 있다고 본다.”
- 많은 애주가들이 과음과 블랙아웃(음주 중 기억망각, 일명 필름끊김)이 치매에 미치는 영향을 걱정하는데.
“음주뿐 아니라 뇌진탕, 뇌졸중 등 뇌에 손상을 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치매의 위험인자라고 인식해야 한다. 다만 알츠하이머병이 있다고 모두 치매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해 뇌 역량이 줄어들지만, 뇌역량이 충분히 큰 사람은 알츠하이머병이 생기더라도 치매 증상이 없을 수도 있다. 뇌역량을 줄이는 위험인자에 노출되지 않도록 생활습관을 교정하고 기저질환과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게 강조된다.”
- 바이오젠이 개발한 ‘애듀헬름’(Aduhelm 성분명 아두카누맙, (aducanumab)이 지난달 승인되면서 유효성 논란이 제기됐다. 어떻게 평가하며 국내에서도 승인된다면 처방할 의향은?
“아두카누맙 승인은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아밀로이트-베타의 생성을 억제하는 항체라는 개념의 새로운 기전의 신약이어서 의미가 있다. 병의 경과를 변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약제로서 만약 국내에서 승인된다면 환자의 여명과 삶의 질, 증상, 비용을 고려해 처방할 수 있을 것이다.”
윤영철(尹永哲) 중앙대병원 신경과 교수 프로필
학력
1992년 2월 중앙대 의대 의학과 졸업
1995년 8월 중앙대 의대 대학원 의학석사
2001년 2월 중앙대 의대 대학원 의학박사
경력
1992년 3월~1993년 2월 중앙대 용산병원 인턴
1993년 3월~1997년 2월 중앙대 의대 레지던트, 신경과 전문의 취득
1997년 5월~2000년 2월 노체자애병원 신경과 군 복무
2000년 5월~2003년 8월 중앙대병원 신경과 임상강사
2003년 9월~2006년 8월 중앙대 의대 신경과 조교수
2006년 9월~2011년 8월 중앙대 의대 신경과 부교수
2011년 9월~현재 중앙대 의대 신경과 교수
2010년 8월~2011년 7월 캐나다 밴쿠버 브리티시콜롬비아대 신경과 방문교수
2013년 3월~2019년 2월 중앙대 의대 신경과 주임교수 및 임상과장
2016년 3월~현재 중앙대병원 의생명연구원 위원
2016년 9월~현재 중앙대병원 임상시험피험자보호센터장
대외활동
2014년 3월~2015년 2월 대한치매학회 연구이사
2018년 3월~2020년 2월 대한치매학회 수련이사
2020년 3월~현재 대한치매학회 연구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