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오랜 전통으로 정월대보름엔 가족과 이웃이 모여 견과류 등 단단한 음식을 깨물어 먹으며 한 해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는 ‘부럼 깨기’ 풍습을 계승해왔다.
농경사회에서 시작된 이 전통은 오늘날에도 본격적인 한 해의 업무 일정 시작과 새 학년을 준비하는 현대인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김창연 대전자생한방병원 병원장이 부럼의 영양학적 가치, 한성훈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치과 교수가 부럼 깨다가 자칫 유발될 치아외상 위험을 소개한다.
부럼의 영양학적 가치
부럼은 딱딱한 껍질 속 열매를 칭하는 말로, 대표적인 부럼에는 호두가 있다. 한의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따르면, 호두는 신장 기능을 강화하고 두뇌 활동을 촉진하며, 허약한 기운을 보충하는 효과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실제로도 비타민E와 오메가3 등이 풍부해 혈액순환을 돕고 뇌 건강 증진에 도움을 준다. 아울러 호두는 콩팥의 기능을 강화해 이뇨작용을 촉진시켜 주는 효과가 있으며, 관절통과 요통 등에 호전 효과를 보이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잣은 예로부터 신선이 먹는 음식으로 불리며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견과류로 여겨져 왔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도 피부를 윤택하게 하고 오장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기술돼 있다. 영양학적으로도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해 성인병 예방, 노화 억제, 신진대사 촉진 등에 도움을 준다. 특히 잣에는 다른 견과류에는 없는 ‘피놀렌산’이라는 불포화지방산이 들어가 있는데, 혈중 콜레스테롤은 물론 혈당 조절에 효과적이다.
땅콩 역시 건강에 이로운 성분이 풍부하다. 땅콩은 예로부터 ‘낙화생(落花生)’이라고도 불렸으며, 혈액 순환을 개선하고 피로 회복과 호흡기·소화기 건강을 보호하는 데 유익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비타민 B군과 ‘레시틴’이라는 성분이 포함돼 두뇌와 신경세포 활성화를 높여주는 견과류로도 꼽힌다. 다만 땅콩은 장기간 실온에 둘 경우 ‘아플라톡신’이라는 발암물질이 형성될 수 있어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 보관하는 게 좋다. 정월대보름에 모여 부럼깨기하는 가족의 모습 (출처 자생한방병원이 ChatGPT로 제작)부럼 깨기는 아이들에도 재미있는 풍습이지만 견과류를 비롯한 단단한 음식은 어린 아이들의 치아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성장기 아이들의 유치는 영구치보다 법랑질이 얇아 쉽게 손상될 수 있어, 무리한 힘을 가하면 치아에 금이 가거나 깨질 위험이 있다. 이는 심한 통증을 유발할 수 있으며, 나아가 영구치 맹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만약 유치가 조기에 탈락된다면, 아래에서 자라는 영구치의 맹출 공간이 부족해져 치열이 어긋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따르면, 0세에서 6세 사이의 아이들에게는 구강 부위 외상이 전체 신체 외상의 약 18%를 차지하며 이는 두번째로 빈번한 문제다.
영구치열이 시작되기 전의 유치는 그 자체로 소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유치는 저작 기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이후 영구치가 올바른 위치에서 맹출 할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영구치열에서 치아 외상은 치관 파절이 더 많이 일어나는 반면 유치에서는 치아가 완전히 빠지거나 탈구돼 제 위치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더 빈번하게 나타난다. 만약 계승 영구치(유치가 빠지고 나올 영구치)가 새로 나올 시기가 임박해 이미 흔들리던 유치가 자연스럽게 탈락하는 경우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외상에 의해 동요도 없던 유치가 조기에 탈락하거나, 제자리를 이탈하는 경우에는 이후 영구치 맹출 시 공간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인접 치아들이 그 빈 공간으로 서서히 변위되어 유발하는 공간 부족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부정교합이나 치열 불균형 등 다양한 치아 발달 문제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유치 외상으로 인해 조기 탈락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결손된 치아 공간을 방치하지 않고, 이후 영구치 맹출 공간을 유지하거나 되찾기 위한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 한성훈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치과 교수가 소아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한성훈 교수는 “치과교정학적 진단을 통해 영구치 맹출 공간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공간 유지 장치 적용이 고려될 수 있다”며 “이후 영구치가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도록 지속적인 공간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유치 외상으로 조기 탈구나 변위가 일어난 경우에는 치과를 방문해 적절한 평가를 받고, 필요에 따라 치과교정과 전문의와 상담하는 게 중요하다. 치아의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예방하고, 올바른 교정을 통해 정상적인 치열 발달을 유도할 수 있어서다.
부럼 깨기는 부모님의 세심한 관심과 지도와 함께 진행돼야 한다. 아이들이 견과류와 같이 단단한 음식을 섭취할 때는 너무 급하게 깨물지 않도록 주의시키고, 한입 크기로 나누어 먹도록 권하도록 한다. 외상 후에 아이가 평소와 다르게 입안 통증을 호소하거나 치아의 위치와 색깔 변화가 관찰된다면, 신속히 치과를 방문하여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게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