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대신 치즈 주세요”. 국내 치즈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 주요 대형마트 중 우유보다 각종 치즈를 모아둔 진열대 크기가 더 넓은 곳이 많아졌다. 유제품 소비 트렌드가 기존 일반 우유에서 치즈, 요구르트 등 가공식품 위주로 바뀌면서 국내 치즈 시장은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낙농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인당 우유 소비량은 26.6kg으로 2000년 30.8kg 대비 4kg 이상 줄었다. 반면 치즈 소비량은 2000년 1kg에서 지난해 2.1kg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시장조사기관 닐슨코리아 집계 기준 2014년 8100억원이었던 시장 규모도 2018년 1조3000억원으로 30% 가까이 증가했다. 꾸준히 한국인의 배달음식으로 사랑받는 치킨, 피자, 돈가스 등에서부터 요즘 유행하는 각종 프랜차이즈 음식점 메뉴, 과자류 등에 이르기까지 산업 분야에서 치즈 활용이 늘어난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도 청소년 영양공급과 지역 축산업 활성화를 위해 정책지원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우유급식률이 낮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신체발달과 건강증진을 위해 올해 2학기부터 26개 지자체 152개 중·고등학교 재학생에게 국산 원유를 사용하고 설탕과 인공색소가 첨가되지 않은 발효유, 치즈를 주 3회 급식으로 시범 공급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공급 대상 학교를 확대할 예정이다.
치즈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소비자의 입맛도 치즈에 익숙해졌다. 판매 중인 가정용 치즈 제품군도 국산·수입산을 합쳐 수백 가지에 이른다. 흔히 한국에서 치즈하면 떠오르는 살구색 슬라이스 치즈뿐만 아니라 과거 수입산 제품이 주를 이뤘던 모차렐라·까망베르 치즈까지 대중화됐다. 최근엔 구워먹는 치즈나 전통방식으로 만들어 유통기한이 짧은 고급 치즈도 등장했다.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치즈가 생산된 것은 벨기에에서 온 지정환(본명 디디에 세르스테반스) 신부가 1966년 전라북도 임실에서 치즈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지 신부는 1969년 유럽에서 3개월 동안 치즈 제조 기술을 배워와 1970년 체다치즈를 만들었다. 조선호텔과 계약해 대량 납품하면서 치즈생산이 본 궤도에 올랐다.
치즈는 원유(原乳)의 종류, 숙성되는 기간, 미생물의 종류, 발효 온도, 유지방 함량, 저온살균 여부 등 다양한 조합에 따라 형태·굳기·질감·향미가 다른 약 4000여종으로 구분된다.
영양면에서 동일한 무게의 우유보다 단백질이 7배, 칼슘은 5배 많이 들어있다. 하루에 60g만 먹어도 하루 칼슘 섭취권장량을 충족할 수 있다. 지방이 농축돼 칼로리도 높은 편이어서 영양보충에도 도움이 된다. 동양인은 유당 때문에 우유보다 치즈가 건강에 좋다. 서양인은 유당을 소화하는 효소를 갖고 있지만 동양인은 대부분 성인이 되면서 이 효소가 사라지는 ‘유당불내증’으로 바뀐다. 치즈는 발효 과정에서 유당이 유산·가스로 변해 날아간다. 유럽식 발효 치즈에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 것이 바로 날아간 가스의 흔적이다.
치즈 제조법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제조공정 원리는 비슷하다. 원료인 우유가 치즈로 만들기 적합한지 여부를 확인하고 우유를 굳히는 응결효소인 레닛(Rennet)과 젖산균을 넣는다. 덩어리화 된 우유를 가늘게 썰어 수축시키면서 수분기를 제거한다. 이후 판에 채워 압착하고 배수시키면서 예비발효가 일어난다.
일정 온도를 유지한 장소에서 수 주일~수 개월, 종류에 따라선 1년 이상 숙성시키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발효미생물이 작용해 치즈 고유의 풍미와 조직을 갖게 된다. 숙성 과정에서 젖당은 젖산으로 변해 치즈 내부를 산성으로 만들고 젖산균 및 다른 미생물에서 분비되는 여러가지 효소를 통해 단백질은 펩티드를 거쳐 아미노산으로 분해된다.
가장 흔한 원료로 소젖인 우유뿐만 아니라 염소유, 양유, 산양유, 물소유 등이 치즈로 만들어진다. 일부 국가에선 드물지만 낙타와 순록의 젖을 활용하기도 한다. 우유로 만든 치즈는 가장 무난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염소유는 우유 다음으로 많이 쓰이지만 생산량이 많지 않아 가격이 다소 비싼 편이다. 양유는 유럽에서 주로 사용하고 우유와 혼합해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물소유는 흔한 원료는 아니지만 지중해 근처 국가와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활용된다. 피자치즈로 알려진 ‘모차렐라’는 요즘 우유로 만들지만 과거에는 물소의 젖으로 만들었다.
숙성 기간에 따라선 생치즈와 숙성치즈로 구분된다. 생치즈는 우유와 거의 비슷한 성분을 갖고 있으며 응고 후 분리해 낸 것으로 보존처리를 하지 않은 것이다. ‘모차렐라(Mozzarella)’, ‘리코타(Ricotta)’, ‘코티지(Cottage)’, ‘파니르(Paneer)’ 등이 대표적이다. 숙성치즈는 보존처리 후 일정 기간 저장된 치즈다.
치즈의 숙성을 돕는 미생물로는 페니실리움 칸디둠(Penicillium candidum), 페니실리움 글라우쿰(Penicillium glaucum) 등이 있다. 페니실리움 칸디둠은 흰색 껍질을 만들어 질감이 부드럽고 끈적끈적한 연질치즈(카망베르 등)를 만든다. 또 페니실리움 글라우쿰은 숙성 중인 치즈 속으로 들어가 연한 녹색에서 진한 청색(고르곤졸라 등 청색치즈)의 치즈를 이끌어낸다.
질감 차이로는 연질, 반연질, 반경질, 경질로 구분된다. 치즈의 질감은 수분의 함량에 영향을 받는데 치즈 내 곰팡이와 숙성기간과도 관련이 있다. 연질일수록 맛이 부드럽고 경질일수록 맛이 독특하다. 반경질 치즈는 수분 함량이 45~55% 정도로 칼로 썰리는 정도다. 대표적인 연질치즈가 ‘카망베르(Camembert)’, 경질치즈에는 영국 서머싯주 체다(Cheddar) 지방이 원조인 체다치즈가 대표적이다. 녹여서 퐁듀로 먹는 ‘파마산(Parmersan)’, ‘에멘탈(Emmental)’ 등도 경질치즈다. 국내 마트에서 어린이 간식용으로 팔리는 ‘슬라이드 체다치즈’는 경질치즈가 아니고 반경질에 가깝다. ‘고다(Gouda)’, ‘다나블루(Danablu)’ 등은 대표적인 반경질(반경성) 치즈다.
피자 토핑으로 흔히 활용돼 미국인과 한국인에 익숙한 모차렐라 치즈는 모차렐라가 발원지로 생치즈에 속한다. 가루 치즈로 유명한 파마산 치즈는 단단한 경질 치즈로 특유의 향이 강해 파스타·샐러드 토핑으로 사용한다. 피자집에서 뿌려먹는 파마산 치즈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것으로 오리지널 파마산과는 거리가 있다.
각 치즈의 특성을 살리면 풍미를 배가시킬 수 있다. 질감이 말랑말랑하고 지방 함유량이 높은 치즈는 부드럽고 맛이 진한 와인에 어울린다. 단맛이 강한 와인은 신맛이 강한 치즈와 잘 맞고 레드와인보다는 화이트와인과 조화를 이룬다.
레드와인은 대부분의 치즈와 잘 어울린다. 드라이한 와인은 양젖을 원료로 한 부드러운 치즈와 어울리고, 신맛이 강한 와인엔 짠맛 나는 치즈가 궁합이 맞다. 드라이한 스파클링와인은 표면에 하얗게 생긴 곰팡이가 눈에 띄는 카망베르, 브리(Brie 프랑스 원산) 등이 환상적 조화를 이룬다. 기왕이면 비슷한 지역에서 생산된 치즈와 와인을 함께 먹어야 풍미가 좋아진다.
감자, 버터와 함께 요리해서 먹으면 맛뿐만 아니라 영양적으로 어울린다. 감자에 부족한 단백질을 치즈가 보충해준다. 치즈에 풍부한 비타민 A·B1·B2·나이아신(B3)·칼슘·인 등과 감자에 상대적으로 많은 비타민C와 칼륨, 일부 비타민B군은 상호 보완하는 효과가 있다.
치즈는 한국 음식에도 잘 어울린다. 매운 떡볶이·라면에 치즈를 넣어 조리하면 매운맛을 잡아주고 고소한 맛을 더해준다. 부침개, 전 등에 모차렐라 치즈 등을 넣으면 치즈가 쭉 늘어나는 시각적 효과도 있고 피자와 같은 풍미를 느낄 수 있다. 기름이 많은 음식에 첨가하면 고소한 맛이 배가된다.
궁합이 맞지 않는 음식도 있다. 바로 콩이다. 콩은 지방과 인산의 함량이 높은 고단백 식품으로 치즈와 같이 먹으면 인산칼슘이 만들어져 흡수되지 않고 몸 밖으로 그냥 배출돼버린다. 맥주도 칼슘 흡수를 방해해 함께 먹기엔 어울리지 않는다.
자연치즈가 아닌 가공치즈도 있다. 이 치즈는 각종 첨가물을 섞고 공장에서 열처리 등 가공을 거쳐 치즈로 탄생하지만 식용유를 써서 만든 치즈맛 나게 하는 ‘기름덩어리’인 경우가 많다. 팜유 같은 식용유를 주원료로 해 화학조미료, 색소, 유화제 등을 넣고 레닛카제인(응결제)을 넣은 뒤 굳혀 모차렐라 치즈와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 가격은 싸지만 건강에는 해롭다. 주로 저렴한 피자가게에서 사용한다. 약 30% 정도만 자연치즈와 섞어 쓰면 구별하기 어렵다. 식었을 때 투명한 색으로 변한다면 가공치즈로 볼 수 있다. 온도가 낮아지면 식용유의 본래 성질로 돌아가려는 특성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