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stress)는 마치 암세포처럼 만병의 근원으로 여겨진다. 일이 생각대로 쉽게 풀리지 않거나, 기분이 상한 일이 생기면 습관적으로 ‘아 스트레스 받아’라고 혼잣말을 한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앓아 누워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구나’라는 반응을 보인다. 일만 생기면 무조건 스트레스 핑계를 대는 탓에 2016년 한국인이 자주 사용하는 외래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스트레스는 외부의 상해·자극에 대해 체내에서 일어나는 비특이적인 생체반응이다. 긴장하거나 어떤 상황 또는 사람에게 위협을 느끼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서 교감신경이 활성화돼 혈압과 맥박이 오르고, 심장이 빨리 뛰며, 근육이 수축된다. 큰 일을 앞두고 가슴이 쿵쿵 뛰면서 입이 마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현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는 위험 상황에 대비해 몸의 전반적인 반응성을 높이는 일종의 안전장치”라며 “전원을 오래 켜두면 건전지가 빨리 닳듯 스트레스가 만성화되면 심장을 비롯한 신체 곳곳이 과부하가 걸려 고장나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스트레스가 여러 질병 위험을 높인다는 것엔 이견이 없다. 단기적으로 두통·불안증·우울증을 유발하고, 특히 소화기계에 악영향을 끼쳐 소화불량·위염·위궤양·과민성대장증후군의 발생 위험을 높인다. 만성화되면 고혈압·당뇨병·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무조건 ‘나쁘다’라고 단정짓기엔 억울한 측면이 크다. 일상에서 잠깐씩, 단기적으로 느끼는 스트레스는 삶에 적당한 긴장과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스트레스 개념을 처음 정립한 한스 휴고 캐나다 몬트리올대 교수는 향후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스트레스를 ‘유스트레스(eustress)’로 분류하며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디스트레스(distress)’와 구분했다. 유(eu)는 ‘좋은’ ‘긍정적’이란 뜻의 접두사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초기엔 먼저 유스트레스가 나타났다가 만성화되면서 디스트레스로 전환된다.
스트레스로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아드레날린과 함께 ‘스트레스호르몬’인 코티솔(cortisol)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은 당장 급하지 않은 식욕과 성욕을 억제한다. 상처를 치유하고 염증과 통증을 줄여준다. 삶의 변화에 대한 적응력도 키워준다. 그러나 코티솔이 장기적으로 너무 많이 분비되면 혈압·혈당을 높이고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 피지가 늘어나 여드름도 악화된다. 지방합성이 늘어나 비만을 유발하기 쉽다.
기억력과 집중력도 향상시킨다. 스트레스호르몬이 뇌에서 인지와 감정을 담당하는 전두엽 피질을 자극하면 문제를 해결하고 감각정보를 처리하는 ‘작업기억’ 능력이 향상된다. 단 만성 스트레스는 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할 수 있다.
타인과의 결속감을 높이는 효과도 볼 수 있다. 단기 스트레스를 받으면 저항반응으로 뇌하수체에서 ‘사랑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은 상대에 대한 신뢰감과 정서적 유대감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애인 사이에서 적당한 ‘밀당(밀고 당기기)’이 필요한 이유다. 이밖에 적당한 긴장감과 스트레스가 자신감·창의력을 등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됐다.
스트레스는 의지와 상관없이 반사적으로 나타나는 신체반응이어서 아예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 회복탄력성(레질리언스, resilience)을 키우면 스트레스가 만성화되는 것을 막는 데 도움된다. 먼저 평소 스트레스를 받는 원인을 파악하고 스트레스 강도를 미리 예상해두면 정신적 데미지가 덜하다. 1주일 3회, 30분씩 유산소운동을 하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된다. 복식호흡이나, 전신에 힘을 줬다 빼는 근육이완법도 효과적이다. 하지현 교수는 “스트레스는 잘만 사용하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힘이 될 수 있다”며 “스트레스를 몸의 일반적인 반응 패턴으로 받아들이고 잘 관리·조절하려는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