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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업무정지’ 여론 달래기 미봉책 … 과징금 인상이 현실적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8-02-12 07:52:48
  • 수정 2020-09-13 15: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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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원치료 환자 등 애먼 피해자 발생 … 정지 1일당 53만원 과징금 갈음, 대형병원엔 미미한 수준
의료사고의 근본 원인에 대한 파악 없이 강제 업무정지 등 처벌에만 집중하면 중환자·응급실 인력 부족, 외과 전공의 부족 등 부작용이 심화될 수 있다는 게 의료계의 입장이다.
신생아 집단사망 사건, 밀양 세종병원 화재사건 등 의료 재난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가운데 의료진 부주의에 따른 사고 발생시 15일간 병원 업무를 강제 정지시키는 방안이 추진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갑작스럽게 병원 업무가 정지되면 현재 입원 및 치료 중인 환자나 병원 종사자 등 또다른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의료사고의 상당수가 의료진 과실 등 인과관계를 명확히 밝히기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성난 여론을 달래려는 ‘언발에 오줌누기식’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 ‘신생아중환자실 안전관리 단기대책’의 하나로 의료기관의 준수사항 위반으로 사람 생명과 신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경우 제재 기준을 기존 시정명령 후 업무정지에서 즉각 업무정지(무조건적 강제 업무정지)로 바꾸는 의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는 먼저 시정명령을 내린 뒤 이행하지 않을 때에만 업무정지 15일 처분을 내릴 수 있다. 이로 인해 병원에 대한 제재수위가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하지만 의료계는 시정명령을 생략한 병원 업무정지는 의료 특성을 무시한 전형적인 탁상행정, 보여주기식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같은 질병이라도 환자 상태에 따라 예후가 급격하게 달라져 환자 사망이라는 최악에 상황에 이를 수 있다”며 “의사가 모든 과정을 100% 정확히 예측해 대응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무턱대고 병원과 의사를 처벌할 경우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 중환자 및 응급 진료 사정이 더 열악해지고, 위험한 고난도수술이 많은 외과 기피 현상이 심화돼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라며 “병원 업무가 정지되면 입원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키라는 것인지, 아니면 신규 외래 환자만 받지 말라는 것인지 대안이나 가이드라인도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사제나 영양제 등 안전관리는 병원 외에 제약회사나 의약품 도매상 등도 관여돼 있는데 병원만 행정조치를 당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시각도 있다.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대형병원은 영업정지 처분을 과징금으로 갈음할 수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행 의료법 제67조 및 시행령에 따르면 업무정지 처분을 받은 의료기관은 국민 보건의료에 커다란 위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인정되면 5000만원 이하의 과징금으로 대체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의료계 안팎에선 현실성이 떨어지고 애먼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는 업무정지보다는 과태료 인상이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업무정지 처분을 대신하는 과태료의 상한선은 5000만원 이하지만 실제 병원이 부담하는 금액은 훨씬 적다. 현행법에 따르면 의료기관의 연간 총매출(5000만~90억원)에 따라 매출 구간을 20단계로 나누고 업무정지 1일당 최소 7만5000원에서 최대 53만7500원까지 과징금을 부과한다. 예컨대 연 매출 규모가 90억원을 넘으면 아무리 매출규모가 크더라도 일괄적으로 53만7500원이 적용된다. 예컨대 연매출 100억원의 종합병원이 업무정지 15일을 받았다면 53만7500원에 15를 곱해 총 806만2500원만 납부하면 된다. 

연매출이 수천억원, 많게는 1조원이 넘는 대학병원 입장에선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2015년 발생한 메르스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에 부과된 과징금도 806만2500원에 그쳤다.
중증질환 환자가 대부분인 상급종합병원 등 대형병원들은 환자와 보호자의 혼란 방지를 이유로 업무정지 처분을 과징금 납부로 대체해왔다. 하지만 과징금 액수가 워낙 적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이런 가운데 올해 초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업무정지를 갈음해 부과하는 과징금 상한을 연 매출액의 100분의 3으로 상향 조정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작년엔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과징금을 연 매출의 100분의 5 이하, 매출액 산정이 불가능하면 최대 10억원 이하로 상향 조정하는 법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 의료계 관계자는 “신생아 사망사건 등의 1차 책임은 분명 의료진에게 있지만 저수가, 인력 부족 등 국내 의료의 구조적 문제가 근본 원인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정치권과 보건당국은 여론을 의식한 나머지 근본 원인엔 눈을 닫고 의료기관 처벌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련의 사건에 기인해 성급히 관련 법률을 개정하기보다는 의료사고 발생시 인과 과정을 명확히 밝힐 수 있는 검증시스템을 갖추고 과징금 산정방식, 부과기준 대상, 의료기관 종별에 따른 차등 요인 등 형평성을 고려한 여러 변수를 반영한 과징금 부과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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