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바이러스와 결합해 세포감염 촉진, 치료제 효과 감소 … 혈액유동성 저하, 조산 위험도 높여
추운 날씨 탓에 면역력이 떨어지는 겨울철엔 양치질만 소홀히 해도 ‘종합병동’이 되기 십상이다. 침엔 1㎖당 5억~10억마리의 세균이 살고 있으며 가짓수가 최대 1000종에 달한다. 이 중 충치 원인균인 스트렙토코쿠스 뮤탄스균과 잇몸질환(치주질환) 원인균인 포르피로모나스 진지발리스균이 전신질환을 일으키는 원흉이다.
뮤탄스균은 치아 표면에 붙어있는 당과 단백질을 흡수한 뒤 산 성분을 배출해 치아를 부식시킨다. 진지발리스균은 단백질 분해효소과 독소를 뿜어내 세포조직을 손상시키고 염증을 유발한다. 정종혁 경희대치과병원 치주과 교수는 “구강내 병원성 세균과 염증매개물질이 혈관을 통해 전신으로 퍼지면 혈전 생성이 촉진되고 혈액 유동성이 저하돼 심장과 뇌 등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강세균은 최근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독감 바이러스와 궁합이 잘맞는다. 오치아이 쿠니야스 일본 니혼대 교수팀의 연구결과 진지발리스균이 독감 감염 및 증상 악화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지발리스균의 효소가 독감바이러스와 결합해 세포 감염을 촉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코가 아닌 입으로 숨 쉬면 독감바이러스와 구강세균이 결합할 확률이 높아진다. 또 독감이 걱정된다고 해서 종일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 입이 건조해지면서 침에 의한 항균작용이 저하돼 치주질환 위험이 높아진다.
입 속 세균이 독감 치료를 방해하기도 한다. 독감바이러스는 세포내로 침투하거나 세포안 안에서 증식을 마치고 세포 밖으로 나가는 과정에서 뉴라미니다제(NA)라는 효소를 이용해 세포막을 녹인다. ‘타미플루’ 등 독감치료제는 이같은 뉴라미니다제의 작용을 방해해 바이러스 전염을 억제한다. 하지만 구강세균과 결합한 독감바이러스는 치료제를 투여해도 감염 확대가 억제되지 않는 특성을 나타낸다. 세균이 독감치료제 효과를 방해하는 정확한 기전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입과 가까운 심장과 뇌는 구강세균이 침투하기 쉬운 부위다. 2016년 네이처 자매지 ‘바이오필름&마이크로바이옴’에 게재된 연구논문에 따르면 혈관수술을 받은 1791명을 정밀진단한 결과 23종의 구강세균이 심혈관, 폐, 소화관, 뇌 등에서 발견됐다.
잇몸에 염증과 출혈이 생기면 구강세균이 상처를 통해 혈관 속으로 들어간다. 혈액에 침투한 세균의 세포막이 혈관세포를 자극하면 염증 반응으로 혈액응고체계가 활성화된다. 이럴 경우 혈관을 수축시키고 혈전을 생성하는 피브리노겐이 증가하면서 고혈압, 뇌졸중, 심근경색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실제로 치주염 환자는 정상인보다 동맥경화 등 혈관질환 발병 위험이 2배, 뇌졸중은 3배, 심근경색은 3.8배 높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됐다. 또 폐로 들어간 구강세균은 폐렴과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의 원인이 된다.
임신·출산과도 연관된다. 구강세균이 온몸을 돌고 돌아 자궁까지 흘러가면 염증매개물질인 프로스타글란딘이 분비되면서 자궁이 강하게 수축돼 조산과 저체중아 출산을 초래할 수 있다.
백영걸 용인동백 유디치과의원 원장은 “치주질환은 생명과 별다른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구강건강만 잘 관리해도 독감이나 다른 전신질환을 예방하는 데 도움된다”며 “치아를 자극하지 않는 미지근한 물을 하루 6번 이상 마시고, 스케일링과 치과검진을 주기적으로 받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양치질을 제대로 하려면 칫솔은 3개월 주기로 교체하고, 칫솔모는 치아 두 개 반 정도를 덮을 사이즈를 선택한다. 보철장치를 착용하거나 치아 임플란트를 한 환자는 치실과 치간칫솔을 사용하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