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럼증은 저혈압, 부정맥, 이석증, 메니에르병, 뇌질환 등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어 무턱대고 빈혈로 보고 철분제를 먹는 것을 삼가야 한다. 빈혈은 철분 결핍 외에도 암, 치매, 당뇨병 등 여러 질환과 연관된다. 발생 원인이 철분 부족이 아니라면 철분제를 먹어도 효과가 없고, 오히려 원인질환을 치료할 시기를 놓치거나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빈혈은 혈액 내 적혈구·헤모글로빈 농도가 정상 수치 이하로 감소하는 질환으로 피로·어지럼증을 유발하고 심하면 쓰러지기도 한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남자 성인은 13g/㎗, 여자 성인은 12g/㎗ 미만이면 빈혈로 진단한다. 여성은 생리에 의해 주기적으로 철분이 체외로 빠져나가 남성보다 빈혈 발병률이 3배가량 높다.
남성, 노인, 폐경기 이후 여성에서 발생하는 빈혈은 다른 질환을 알리는 신호일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위장관출혈을 동반하는 소화기계질환이다. 위·십이지장궤양과 위암·대장암 등 위장관에 발생한 악성종양은 출혈을 일으켜 빈혈을 유발한다. 빈혈 검사를 받다가 우연히 대장암이나 위암을 발견하는 사례가 적잖다.
특히 비장(왼쪽 신장과 횡격막 사이에 있는 장기)을 중심으로 오른쪽 대장은 상대적으로 표면이 얇아 종양이 생기면 출혈이 더 잘 생기고 빈혈 증상도 심해질 수 있다. 또 염증과 악성종양에 의해 위·장관 기능이 떨어지면 헤모글로빈을 만드는 단백질과 비타민이 제대로 흡수되지 않아 빈혈 위험이 높아진다.
당뇨병이나 류마티스관절염 같은 만성질환도 빈혈과 연관된다. 만성질환을 앓으면 체내에 염증성 사이토카인이라는 염증물질이 생긴다. 이 물질이 쌓이면 철분이 골수로 이동하는 길을 막아 빈혈을 일으킨다. 자궁근종 등 자궁질환으로 인한 과다출혈도 빈혈의 원인이다.
빈혈 자체가 다른 질환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가 부족해지면 계단을 오르거나 가볍게 걷기만 해도 숨이 차고, 심할 경우 가만히 있어도 호흡이 가빠진다. 이 때 심장은 피를 더 많이 뿜어내 체내 산소량을 조절하기 때문에 빈혈 상태가 지속되면 심장에 과부하가 걸려 심혈관질환 위험이 상승한다.
노인빈혈은 치매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빈혈 환자는 일반인보다 치매 발생 위험이 24%가량 높고, 증상이 심할 경우 발생률이 최대 5.72배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동욱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빈혈이 어떤 기전으로 치매를 일으키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만성적인 뇌 저산소증, 뇌피질 위축, 뇌신경전달물질 변화, 비타민 B12 부족 등이 관여하는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인 철 결핍성 빈혈은 철분제로 치료한다. 철분제 복용 후 2개월이 지나면 혈색소가 정상화되며 추가로 3~6개월간 약물치료를 지속해야 효과가 유지된다.
단 무분별한 철분제 복용은 금물이다. 유영진 인제대 상계백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빈혈 원인을 파악하지 않고 약만 먹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라며 “오히려 철분이 체내에 과도하게 쌓이면 여러 건강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장암이나 위암에 의해 발생한 빈혈은 철분제가 암을 키우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철분은 암세포의 성장과 번식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과도한 철분이 산화스트레스를 유발해 당뇨병, 골다공증, 담석증 등의 위험을 높인다는 해외 연구결과도 보고됐다. ‘핑’하고 도는 어지럼증을 빈혈 증상으로 단정 짓고 철분제를 먹는 것도 문제다. 어지럼증은 빈혈 외에도 저혈압, 부정맥, 이석증, 메니에르병, 뇌질환 등 원인질환이 많다. 오히려 심장 과부하에 따른 숨참 증상, 산소 부족으로 인한 만성피로가 빈혈보다도 더 흔한 어지럼증 원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따라서 철분 결핍이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한 빈혈은 정밀진단 후 원인질환 치료가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