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열을 동반한 A·B형 독감 환자가 한 달이 넘도록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이달 6일까지 인플루엔자 의심 환자 수는 병원 방문 외래환자 1000명당 72.1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주(71.8명)에 비해 늘었고, 올겨울 유행주의보 발령 기준(6.6명)의 11배 수준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등 동아시아·북미·유럽·호주·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까지 환자가 급증하는 추세다. 중국 보건당국은 독감 긴급 환자 수가 최근 3년 동안 최고치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현지 언론은 2002년 11월~2003년 7월 유행해 700여명이 사망한 ‘사스(SARS·중증급성 호흡 증후군)’보다 심각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 46개 주에서는 동시에 독감이 발생해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 20여명이 사망했고, 앨라배마주는 집단감염 사태로 비상 휴교령이 선포됐다. 영국에서도 이번 겨울 독감으로 100명 가까이 숨졌으며 이중 절반가량이 최근 1주일 새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올해는 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독감(1918년), 100만명이 숨진 홍콩독감(1968년)이 유행한 지 각각 100년, 50년되는 해여서 독감 확산을 심상치 않게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최근 유독 독감 환자가 많은 것은 A형과 B형 독감이 동시에 유행해서다. 독감 바이러스는 A형(H3N2, ·H1N1), B형(빅토리아, 야마가타), C형으로 나뉜다. 지금까지 겨울인 12~1월에 A형 독감이 먼저 유행하고 봄인 3~4월에 B형이 유행하는 형태를 띠어 왔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 조사결과 지난해 9월 3일부터 이달 6일까지 B형은 409건(54.6%), A형(H3N2)은 294건(39.3%), A(H1N1)형은 46건(6.1%)이 각각 검출됐다.
B형독감은 A형보다 증상이 약하지만 연령별로 고루 감염되는 A형과 달리 영유아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발열기간도 길다. 설사, 두통, 근육통이 더 자주 나타나는 것도 특징이다.
또 다른 유형보다 변종 출현 가능성이 높은 A형 중 ‘H3N2’ 독감이 이례적인 강세를 보이는 것도 독감 환자가 급증한 요인이다. 이 바이러스는 다른 것보다 변종 출현 가능성이 높아 백신을 맞아도 예방률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보통 건강한 사람의 독감 백신 예방률은 70% 정도로 추정된다.
H3N2 독감은 지난 7월 호주에서 집단 발병한 뒤 최근 영국과 북미 지역에서 환자가 급격하게 늘었다. 연말과 성탄을 맞아 친지를 방문하거나 휴가를 보내려고 호주와 영국·미국·캐나다 사이를 오간 비행기 승객 등을 통해 전염된 것으로 분석된다.
또 올해는 예방접종을 맞았는데도 독감에 걸리는 사례가 예년보다 많은 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빗나간 예측이 주원인으로 지목된다. WHO는 이번 겨울에 유행할 것으로 예측한 바이러스로 A형의 H1N1과 H3N2, B형의 빅토리아를 예측했다. 이로 인해 국가예방접종대상(65세 이상 5세 미만)에 들어 있는 3가백신은 이들 세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백신으로 조성됐다. 하지만 정작 빅토리아형이 아닌 야마가타 B형독감이 유행하면서 백신 예방효과가 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1~4일 후 38도 이상 고열이 동반되고 전신 쇠약감, 두통, 인후통, 근육통 등이 동반된다. 특별한 기저질환이 없고 건강한 성인은 대증치료만으로 호전되지만 면역력이 낮은 노인이나 만성 심장질환·폐질환·당뇨병 환자에겐 치명적이다. 특히 어린이는 간혹 폐렴까지 급속하게 진행되는 사례가 많아 유의해야 한다.
단순 감기인 줄 알고 독감을 방치하면 주위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기거나 합병증을 키울 수 있다. 독감과 감기를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고열이다. 목이 아프거나 코가 막히는 증상보다 38도 이상 고열과 전신통증이 지속되면 독감을 의심해보는 게 좋다.
임정우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이번 독감은 1~2주내로 끝날 상황이 아니라 올 3~4월까지 유행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아직 예방접종을 하지 않았다면 접종을 서두르는 게 좋다”며 “손씻기와 마스크 착용을 생활화하는 등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독감 증상이 나타나면 최대한 빨리 병원을 찾아 항바이러스 처방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