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한달여 앞둔 가운데 수험생들 사이에서 ‘공부 잘하는 약’을 무분별하게 복용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과도한 교육열과 경쟁심리, 부모의 몰지각함이 청소년의 건강을 좀먹고 있다.
청소년의 약물 오·남용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미국에선 학교생활에 모범적이었던 대학생이 ‘머리가 좋아지는 약’을 복용한 뒤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미국신경학회는 “건강한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인지능력·기억력·집중력 향상을 이유로 약을 처방하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공부 잘하는 약으로 잘못 알려진 게 ‘메틸페니데이트(methylphenidate)’ 계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결과 2011~2016년 총 228만명이 메틸페니데이트 성분 의약품을 처방받았다. 처방 건수는 매년 감소했지만 같은 기간 고3에 해당하는 만 18세의 메틸페니데이트계 약물 처방금액은 4억7800만원에서 7억9900만원으로 증가했다. 특히 수능을 앞둔 10월에 처방금액이 약 9021만원으로 최고치에 달했다.
ADHD는 과잉운동, 주의산만, 충동적 행동 등 세가지 행동패턴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정확한 발병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집중력에 관여하는 뇌속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의 분비 이상이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메틸페니데이트 약물은 도파민의 재흡수를 억제해 뇌기능을 활성화한다. 아토목세틴 계열 약물 등 다른 ADHD치료제보다 효과가 빨리 나타나 집중력이 향상된 느낌을 받기 쉽다. 하지만 질병에 의해 떨어진 집중력만 정상 수치에 가깝게 올려줄 뿐 정상인 사람의 집중력을 높이는 것은 아니다.
이들 약은 오히려 정상적인 청소년이 잘못 복용하면 두통, 불안감, 가슴두근거림, 환각, 망상, 성장지연, 공격성 등이 나타나고 심할 경우 자살이나 심혈관계질환에 의한 돌연사로 이어질 수 있다. 발기 상태가 지속돼 통증이 생기고 음경이 손상되는 것도 부작용 중 하나다. 또 의존성이 생겨 약을 먹지 않으면 이전보다 산만해지거나 우울해질 수 있다.
약물 복용 후 성적이 올랐다면 원래 있던 주의력결핍 증상이 완화된 것 뿐이다. ADHD로 인한 집중력 장애와 정상인의 집중력 감소는 엄연히 다르다. ADHD로 인한 집중력 장애는 신경전달물질 부족 등이 원인이지만 정상인의 집중력 감소는 체력 저하나 피로로 발생한다.
미국 유학파 청소년과 부모들 사이에서 ‘머리가 좋아지는 약’으로 유명한 암페타민(amphetamine) 계열 ADHD 치료제는 국내에서 마약류로 분류돼 유통이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오·남용시 정신병이나 심장질환 등 심각한 부작용의 원인이 된다. 각성제로 알려진 기면증치료제 ‘모다피닐(modafinil)’도 불안증과 자살충동을 유발할 수 있다. 메틸페니데이트나 암페타민 등 의약품을 복용하려면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지만 인터넷카페 등을 통해 무분별하게 거래되는 게 문제다.
‘긴장감 완화약’으로 잘 알려진 우황청심원은 잘못 복용하면 신경을 과도하게 안정시켜 졸음을 유발할 수 있고, 속쓰림·두통·소화불량 등 위장장애가 동반되기도 한다. 이밖에 대서양·북극해 지역에 서식하는 하프물범을 미꾸라지·홍삼 등과 함께 달여 만드는 ‘물범탕’, 일부 성형외과·피부과에서 홍보하는 ‘브레인주사’, 한의원에서 처방하는 ‘총명탕·수능환’ 등도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설사 이들 제품이 효과가 있더라도 평소 먹지 않았던 약이나 식품을 갑자기 섭취하면 득보다 실이 많을 확률이 높다.
서호석 차의과학대 강남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고가의 약을 따로 복용하는 것보다 하루 세끼를 잘 챙겨 먹는 게 집중력 향상의 비결”이라며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끼니를 거르면 뇌 활동에 쓰이는 포도당이 부족해 기억력 등이 저하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하루 7시간 이상 규칙적인 숙면은 뇌세포를 활성화해 집중력을 높여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