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경쟁과 취업난·생활고 등으로 스트레스가 가중되면서 인간관계 자체를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관계와 권태기의 합성어인 ‘관태기’나 ‘자싸(자발적 아웃사이더)’ 같은 신조어는 타인에게 마음의 창을 닫아버린 젊은층의 단면이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20대 남녀 64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4명 중 1명(25%)은 새로운 인간관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응답자의 80% 정도가 혼자 보내는 시간에 대해 긍정적으로 느낀다고 답변했다.
혼밥·혼술 등 나홀로 문화가 트렌드가 된 것도 관태족의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 직장인 구모 씨(29)는 “사회생활을 하고 조직에서 살아남으려면 싫은 사람 앞에서도 웃는 척, 좋은 척 해야 하는데 사적인 시간까지 인간관계에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다”며 “불편한 사람과 어울리는 것보다는 혼자 밥을 먹거나 영화관람 등 취미생활을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청년층이 새로운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삶에 여유가 없어서다. 학창 시절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밤 늦게까지 공부에 매달리고, 대학 입학 후에도 취업 스펙을 쌓느라 정신이 없다.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않으면 값비싼 등록금을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노력했는데도 취업난 탓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기 어려워지면 절망감과 스트레스가 동반되면서 인간관계에 냉소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
혼자만의 시간은 뇌와 마음에 휴식을 주고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다만 그런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마음의 창이 점점 굳게 닫히고 사회성이나 협력성이 떨어질 수 있다. 아예 대인관계 자체에 공포감과 불안감을 갖게 되기도 한다. 대인공포증(사회불안장애, 사회공포증)은 외향적인 사람보다 내향적인 사람에서 자주 나타나며 성인 남녀 100명 중 2~3명에서 발병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결과 지난해 대인공포증 환자는 1만7758명으로 2013년 1만6506명보다 7.5% 증가했다.
이 단계에 이르면 학교나 직장에서 종일 긴장과 불안 속에 지내고 점점 기진맥진해지고 잠을 잘 때에만 비로소 편안함을 느낀다. 조성진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회공포증은 신체적인 질병 못지않게 심각한 노동력의 상실과 삶의 질 저하를 초래한다”며 “대다수 환자들이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로 여겨 치료를 미루고 고통을 감내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꿈도 미래도 없다는 ‘헬조선’의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 한 관태기를 앓는 청춘들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거부하고 심지어 공포감까지 갖는 청년층의 모습은 향후 한국사회의 각종 공동체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관태기를 극복하려면 가장 가깝고 믿을 수 있는 지인과 교류하며 인간관계에서 오는 기쁨을 느끼고, 만남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는 게 도움된다. 다만 오프라인 만남에 거부감을 느껴 찾게 되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오히려 일회성 인간관계에서 오는 허무함과 우울증을 가중시킬 수 있어 지양하는 게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