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 젊은층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렌드가 고가의 명품 등을 자랑하는 ‘과시’에서 평범한 일상이나 물건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을 부각시키는 ‘차별화’로 변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비슷한 일상과 관심사라도 SNS상에서 좀 더 ‘있어 보이도록’ 만드는 능력을 의미하는 ‘있어빌리티(있어 + ability)’가 SNS와 라이프스타일의 핫키워드로 자리잡았다. 있어빌리티는 우리말의 있다와 능력을 뜻하는 영단어 ‘ability’를 결합한 신조어다.
있어빌리티는 좋은 차나 명품 가방이 아닌 자신만의 취향, 경험, 재능 등을 매력으로 극대화해 연출하는 게 특징이다. 레스토랑이 아닌 집에서 직접 만든 음식을 예쁘게 차려 놓고 사진을 찍거나, 해외 또는 관광명소가 아닌 매일 다니는 집 골목을 배경으로 콘셉트 사진을 찍는 행위 등이 포함된다.
대인관계를 기피하고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집밥이나 ‘홈트족(홈트레이닝족)’ 관련 콘텐츠가 늘어나는 것도 있어빌리티의 유행 요인 중 하나다. 일각에선 유명 프랜차이즈보다 알려지지 않는 골목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비싼 새집보다 싼 집을 산 뒤 셀프 인테리어로 개조하거나, 다 쓴 물건을 버리지 않고 재활용하는 등의 소비 풍토가 관련 산업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예측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취업난이나 양극화로 지갑이 얇아진 상황에서 어떻게든 남보다 돋보이고 싶어하는 청년층의 우울한 자화상 또는 합리적인 소비를 지향하지만 결국 ‘덜 가진 사람’의 ‘자기과시욕’일 뿐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재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저축 대신 소비를 선택하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자극적인 것보다는 일상 속 소소한 줄거움이나 안락함을 추구하는 ‘휘게(Hygge)’와 일정 부분 비슷한 면이 있다. 최근엔 직접 그린 웹툰 또는 캐리커처를 올리거나, 주얼리제품 등을 SNS에 올려 구매를 유도하는 재능형 있어빌리티가 대세다.
있어빌리티를 추구하려면 적당한 ‘뻔뻔함’과 ‘허세’가 필수다. 하지만 허세는 ‘실속이 없이 겉으로만 드러나 보이는 기세’라는 의미처럼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학교나 직장에서 허세가 심한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구성원들로부터 ‘왕따’나 ‘관심종자(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긍정적인 면도 존재한다. 강승걸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적당한 허세는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남과 비교당하며 낮아지는 자존감을 회복하고, 스스로를 다잡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영업직처럼 직업상 사람을 자주 만나는 직업군은 낭비하지 않는 선에서 좋은 옷과 패션아이템, 적절한 자기 피알로 약간의 허세를 부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허세는 팍팍한 삶에 활기를 더해주는 양념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만 SNS에 남들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삶을 획일적이고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 또 친구 혹은 지인이 연인과 행복해하는 모습, 자신은 가보지 못한 곳곳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 등을 보면서 ‘나는 왜 이런 행복을 즐기지 못할까’, ‘왜 이런 개성을 갖지 못할까’라며 상대적인 박탈감에 빠지고 자존감이 점차 떨어지게 된다. 이런 점을 주의해야 한다.
만약 경제적 빈곤이나 취업난 등 현실적인 문제가 결부되면 단순히 우울증에 빠지는 데 그치지 않고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처럼 SNS로 인해 느끼는 박탈감과 상실감은 흔히 ‘카페인 우울증’으로 표현된다. ‘카’는 카카오스토리, ‘페’는 페이스북, ‘인’은 인스타그램을 의미한다.
인간은 자신보다 더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동경하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SNS라는 틀에 갇혀 남과 비교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게 된다. 하지만 포토샵과 화려한 연출을 통해 탄생한 사진은 실제와 다르다. SNS는 ‘현재의 나’ 또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앞으로 되고 싶은 나’를 보여줄 뿐이다. 다른 사람의 SNS를 보면서 부러워하거나, 조금이라도 더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안간힘을 쓸 필요가 없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최소화하고 삶의 질을 높이려면 남보다는 나를 먼저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외모 또는 경제적 기준에 대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거나, 스스로 흙수저라고 깎아내리며 부모를 탓하는 행위는 도움되지 않는다. 일이나 학업을 쉬더라도 내 시간의 주인은 나라는 생각을 갖고 재충전 기회로 삼는 게 좋다.
강승걸 교수는 “사람은 각자 행복의 기준이 다르므로 다른 비교 대상과 무조건 똑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며 “남이 아닌 스스로를 돌아보며 현재 가진 행복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