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가 건강관리 요법으로 ‘프루테리언’(fruiterian) 라이프스타일을 택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프루테리언 식단은 채식주의의 범주 안에 들어 있는 개념으로 흔히 ‘과일만 먹는 식사법이겠거니’ 생각하지만 조금은 다르다.
한국에서는 흔히 ‘fruit’가 과일로 번역되지만, 엄밀히 말하면 열매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식이요법은 과일뿐만 아니라 열매나 씨앗을 먹는 과채류까지 포함한다. 다만 줄기나 뿌리는 제외한다. 단백질은 견과류나 콩 같은 씨앗으로 섭취한다.
프루테리언 식이요법은 수 세기 동안 존속해온 방식으로 단순히 체중감량을 위해 등장한 ‘반짝 다이어트법’이 아니다. 프루테리언들은 기본적인 채식주의보다 더 극단적인 성향이다. ‘식물도 생명체이기에 함부로 먹을 수 없다’는 철학을 가졌다. ‘식물의 생명 자체를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먹을 것을 구하다보니 식물의 몸체에서 생명과 관계된 뿌리와 줄기는 먹지 않고 열매만 먹는다. 가열해 조리하는 화식 대신 ‘생채식’을 하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 점이다.
열매는 식물이 자손을 번식하기 위한 것으로 어차피 다 익으면 저절로 떨어져 본체와 분리된다. 푸르테리안 중에서 가장 심한 부류는 식물의 본체에 매달려있는 열매는 먹지 않고 저절로 떨어진 것만 섭취하기도 한다.
프루테리언 식이요법은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주목받았다. 2013년 구글에서 1년간 가장 많이 검색된 다이어트법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클린이팅’(clean eating, 유기농 음식만 먹고 가공식품은 먹지 않는 것)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더해진 것도 한몫 한다.
프루테리언들은 기존보다 ‘훨씬 더 건강해졌다’고 주장한다. 과일과 채소만으로 구성된 식단으로 바꾸면 단기적이긴 하지만 건강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전 식단이 균형잡히지 않았거나, 새로운 식이요법을 시행하며 설탕과 술을 줄였다면 건강해질 수밖에 없다.
영국의 공인 영양사 샬럿 스털링-리드는 “가공하거나 조리하지 않은 신선한 식품의 섭취를 권장할 수 있는 게 이같은 생채식 다이어트의 긍정적 측면”이라며 “이전에 과일과 채소를 충분히 먹지 않았다면 새로운 다이어트에 따라 비타민, 미네랄, 수분을 더 많이 섭취하기 때문에 당연히 건강해졌다고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프루테리언 식단을 유지하면 자칫 비타민D·철·아연·단백질 같은 영양분이 부족해질 수 있다”며 “나이가 들면 골다공증이나 빈혈 등 심각한 증상이 나타날 위험도 있다” 지적했다.
당뇨병 환자는 절대 피해야 할 식이요법이기도 하다. 프루테리언이 주식으로 삼는 과일 속에는 당분이 많이 포함돼 있어 혈당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밖에 췌장 및 신장이 나쁜 사람도 피하는 게 좋다는 게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치아가 약한 사람도 되도록 피하는 게 좋다. 높은 당분을 지속적으로 섭취하는 것은 치아를 상하게 할 수 있다. 가령 사과는 사탕이나 탄산음료처럼 치아를 부식시킬 수 있다. 오렌지는 높은 산도로 치아 에나멜을 약하게 만들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무리한 변화’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할리우드 배우 애쉬튼 커처도 스티브 잡스의 삶을 그린 영화 ‘잡스(Jobs)’에서 주인공 잡스 역을 맡으며 캐릭터 분석을 위해 잡스처럼 프루테리언 라이프스타일을 이어가다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커쳐는 인터뷰에서 “그의 라이프스타일을 따라하며 캐릭터에 대한 통찰력과 영감을 얻었지만, 내 췌장이 완전히 상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스털링-리드 영양사는 “프루테리언 식이요법을 신념이나 철학적인 관점에서 선택한 게 아니라 단순히 몸매를 가꾸기 위해 시행한다면 재고해봐야 한다”며 “날씬해지길 원할 때 무조건 빠르고 쉽게 해결하는 방법을 택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클린이팅이 유행하면서 모든 건강 문제를 즉시 해결해주는 마법으로 홍보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특정 식품을 건강에 나쁜 것으로 몰아붙이면 사람들이 심한 죄책감에 시달릴 수 있고, 더욱이 특정 식품을 거부하다가 다시 먹으면서 죄책감을 갖는 상황이 반복되면 식품을 대하는 시각이 왜곡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그는 “몸매강박이 심한 사람이 제한적인 다이어트를 시행하다 거식증이나 폭식증 같은 섭식장애로 이어진 경우가 흔하다”며 “대개 특정 식품을 식단에서 제외하는 순간이 섭식장애의 시발점이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