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 가장 많이 바이럴처럼 퍼진 의료계 ‘핫 키워드’ 중 하나는 단연 ‘줄기세포’다. 박근혜 전 대통령,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등이 줄기세포주사를 맞았을 것이란 보도가 나오면서다. VIP가 알아서, 먼저 찾는 시술이다 보니 ‘현대판 불로초’로 인식되며 대중의 궁금증이 높아지고 이와 관련된 낭설도 적잖다.
줄기세포는 다양한 신체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미분화 세포’다. 적절한 조건을 맞춰주면 여러 조직세포로 분화하는 게 특징이다. 여기에 면역억제반응, 항염증효과, 혈관생성 유도, 빠른 회복 등으로 치료효과를 높이고 손상된 조직을 재생하는 성질로 난치병 치료의 열쇠로 꼽히기도 한다. 실제로 당뇨병 및 합병증으로 인한 피부궤양, 류마티스 관절염, 파킨슨병 등 희귀난치병 극복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치매치료법 연구도 활발하다. 또 심장질환, 발기부전, 퇴행성 무릎관절염 등에도 두루 적용되고 있다.
줄기세포는 크게 △배아줄기세포 △역분화줄기세포 △성체줄기세포 등 3가지로 나뉜다. 국내서는 배아줄기세포는 주로 연구용으로만 쓰이고, 성체줄기세포를 임상치료에 활용한다.
배아줄기세포는 태반을 제외한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만능세포로 여겨지나, 착상 직전 배반포기 배아나 임신 8~12주에 유산된 태아에서 추출해야 하기 때문에 윤리적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
역분화줄기세포는 완전히 분화된 체세포에 전사인자(유전자발현조절단백질)를 주입해 배아줄기세포와 같은 분화 이전의 줄기세포로 만드는 것이다. 시계를 거꾸로 돌리듯 모든 세포로 자랄 수 있는 줄기세포를 유도해 냈다고 해서 ‘유도만능줄기세포’라고도 한다.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가 고안해 개발 후 최단 시간에 노벨 생리의학상(2012년)을 수상했다.
골수·혈액·지방조직 등에서 추출할 수 있는 성체줄기세포는 쉽게 만들 수 있는 반면 몇 가지 세포로만 분화해 효과가 제한적이어서 난치병 치료보다는 안티에이징 케어 및 통증개선치료에 주로 활용된다. 꼭 난치성 질환을 치료하는 목적이 아니라도 줄기세포는 이미 대중의 일상에 가까이 다가와 있다.
초·중기 퇴행성관절염 치료 및 통증관리에 효과적
2002년 ‘한국 축구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도 줄기세포로 무릎 관절염을 완치했다고 알려지며 이를 활용한 통증치료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퇴행성관절염은 무릎 내 관절을 보호해주는 연골이 노화나 외부 충격으로 손상되면서 발생한다. 대개 약물주사, 관절내시경 치료, 인공관절수술로 치료했다. 연골은 한번 손상되면 재생되지 않는 특성으로 퇴행성관절염 초·중기 환자의 치료가 까다로웠다.
하지만 최근엔 줄기세포로 연골을 다시 만들어 관절을 그대로 보존하는 치료법이 개발돼 퇴행성관절염을 초기에 잡을 수 있는 상황이다. 골수, 지방, 제대혈 등에서 추출해 연골 부위에 주사하는 방식을 쓴다.
VIP의 줄기세포 재생주사, 배양 거치지 않으면 ‘합법’
박 전 대통령 등이 맞았다고 알려지며 유명해진 게 줄기세포 재생력 주사다. 자신의 몸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원심분리, 링거 형태로 정맥을 통해 체내에 주사하는 방법이다. ‘비리’ 문제로 ‘불법의, 어둠의 시술’로 여겨지고 있지만 줄기세포 추출 후 배양을 거치지 않으면 ‘합법적인 치료’다. 실제로 해당 주사를 맞았다는 소문이 난 뒤 오히려 줄기세포 항노화 클리닉을 찾는 의료소비자는 오히려 증가했다.
2007년부터 줄기세포치료법을 연구해온 신동진 SC301의원 원장은 “줄기세포는 혈액을 타고 신체 곳곳에 도달해 부족한 조직의 결손을 보충하고 혈관의 생성이나 단백질 합성을 돕기 때문에 피로회복, 피부탄력 개선, 성욕 저하 탈피, 면역력 증강 등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가슴성형·지방이식 등 ‘안티에이징 시술’에 활발히 적용
현재 줄기세포가 가장 활발하게 이용되는 분야는 가슴성형이나 안면성형 등에 부족한 유방이나 얼굴의 볼륨감을 향상시키는 지방이식으로 유추된다. 단순 지방이식은 잠시 볼륨감을 만족스럽게 채울 수 있지만 생착률이 20~30%대로 저조해 효과가 일시적인 게 한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방과 함께 지방유래 줄기세포를 함께 주입하면 신생혈관 형성, 재생효과 등으로 생착률이 2~3배 뛴다는 게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신동진 원장은 “인공보형물을 기피하는 여성들이 선호하는 가슴성형(유방확대술)은 자가지방이식인데 생착률이 20~30%에 그치는 게 한계”라며 “신기하게도 지방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순수 지방세포와 최적의 비율로 배합해 가슴에 주입하면 생착률이 70%에 달해 장기간 풍만한 볼륨감을 유지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와 관련된 연구를 이어가며 2012~2015년 중국 산둥대 의대 학술지에 ‘줄기세포 가슴성형’의 생착률 70% 달성을 입증한 논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신 원장은 “기존 단순 자가지방이식의 낮은 생착률로 환자들의 불만이 컸다”며 “이를 커버하기 위해 재시술을 하는 것은 부담스럽고, 과욕을 부려 한꺼번에 지방을 과도하게 이식하면 석회화나 괴사가 일어나는 부작용이 초래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안면부에도 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다만 아무리 줄기세포 효과가 좋더라도 한번에 필요한 세포를 손상되지 않게 충분히 채취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이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의료진의 임상 경험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신 원장은 “환자의 몸에서 지방을 채취하고 줄기세포를 추출한 뒤 2시간 안에 시술하지 않으면 줄기세포가 소멸되기 시작하므로 시술이 늦어지면 줄기세포를 주입하는 의미가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안티에이징 케어에 유리한 줄기세포는 ‘지방유래줄기세포’
줄기세포의 출처에 따라 가장 활성도가 높을 것으로 보이는 것은 골수이지만 추출량이 적고, 추출 과정에 고통이 수반돼 대체로 지방과 혈액이 쓰인다. 신 원장은 “혈액은 줄기세포가 극소량 들어 있어 혈액을 통한 줄기세포로는 개선 효과를 보기 어렵고, 지방은 상대적으로 추출량과 활성도가 높은데다가 군살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어 지방 유래 성체줄기세포가 항노화 치료에 가장 많이 쓰인다”고 말했다.
성기능 개선에까지 활용 … 필요에 따라 ‘셀뱅킹’하는 의료소비자 늘어
최근 줄기세포는 ‘고개숙인 남자’의 자신감까지 찾아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르타 호르 덴마크 오덴세대병원 교수는 발기부전 환자의 복부지방세포에서 채취한 중간엽 줄기세포(mesenchymal stem cell)를 음경의 발기조직인 해면체(corpus cavernosum)에 주입했더니 발기부전을 개선할 수 있었다는 연구결과를 지난 25일 발표했다.
전립선암 치료를 위한 근치 전립선절제수술의 부작용으로 발기부전이 된 21명(40~70세)을 대상으로 줄기세포 치료를 시행한 결과 이 중 8명이 자연 발기에 의한 성행위를 할 수 있게 됐다. 신동진 원장은 “줄기세포는 주입된 뒤 혈관을 재생성하고 근육을 강화, 음경에 원활한 혈액공급을 도와 강직한 발기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줄기세포가 다양하게 활용되다보니 하루라도 젊은 자신의 줄기세포를 보관하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가령 다이어트를 하며 지방이식에 쓸 줄기세포와 지방세포를 미리 보관하거나, 치매·관절염 등 질병에 대비하는 등 ‘만일의 사태’를 걱정해서다. SC301의원은 흡입한 지방을 줄기세포와 순수지방으로 분리, 영하 196도 초저온으로 냉동보관한 뒤 언제라도 꺼내 수술 받을 수 있도록 셀뱅킹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신동진 원장은 “지방세포·줄기세포 셀뱅킹은 젊은 나이일수록 양질의 줄기세포를 많이 얻을 수 있어 미리 보관하는 것을 추천한다”며 “필요할 때 언제든지 환자의 조건과 희망사항에 따라서 맞춤형 수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