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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따라 위험 암 달라 … 농부·건축업자 폐암 주의해야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6-12-26 15:03:53
  • 수정 2020-09-13 16:4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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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소·석면 폐암, 벤젠은 백혈병 유발 … 긴 잠복기 탓 산재 인정 어려워
지난 9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후 폐암에 걸려 사망한 노동자 두 명이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반도체 노동자가 걸린 폐암이 업무상 질병(산재)으로 인정된 첫 사례였다. 반면 같은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발생한 혈액암의 일종인 백혈병은 여전히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암은 유전, 식습관, 흡연, 과음, 생활환경 등 다양한 이유로 발병하는데 간혹 ‘직업’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직업상 사염화탄소·클로로폼·DDT·클로르나이트로아닐린·에스트로겐·카본블랙 등 각종 유해물질에 노출돼 발병하는 암을 ‘직업 암’이라고 한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르면 피부암·간혈관육종·폐암·후두암·비강 및 부비동암·백혈병·다발성골수종·악성중피종·간암·난소암·침샘암·식도암·위암·대장암·뼈암·유방암·신장암·방광암·갑상선암·뇌 및 중추신경계암·비인두암 등이 직업성 암으로 분류돼 있다.  이 중 호흡기계 암인 폐암의 발병률이 가장 높다. 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 조사 결과 1992~2005년 직업성 암으로 인정된 99건 중 호흡기계 암이 64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폐암이 52건을 차지했다. 

유해물질을 가까이에서 다루는 농업·임업·광업·공업 등 1차산업 종사에서 발병률이 높다. 국내의 경우 전체 암 사망의 9.7%가 직업 암인 것으로 추측되지만 산재로 인정받아 보상받는 경우는 10% 가량에 불과하다.

지난 5월 국내 생명보험업계 발표자료에 따르면 보유계약 건수 대비 사망건수의 비율이 가장 높은 직종은 농림·어업·광업·축산업 관련 분야였다. 2014년 기준으 이 직종에 종사하는 남성의 암보험 가입건수는 10만2782건, 사망건수는 628건으로 0.61%의 비율을 나타냈다. 같은 해 이 직종 여성 종사자의 암보험 가입건수는 7만2806건, 사망건수는 158건으로 0.22%였다.
다음으로 보유계약 건수 대비 사망 건수가 많은 직종은 건설·운송 등 기능직이었으며, 음식·숙박·여행 등 서비스 관련 분야와 화학·섬유·식품·설비·기타 제조 등 생산직 분야가 뒤를 이었다.

임종한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화학물질과 관련한 직업이나 생산공정 분야의 직업이 직업성 암 발병률이 높은 편”이라며 “화학물질 중 비소와 비소화합물은 폐암과 피부암, 석면은 폐암과 중피종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벤젠은 백혈병, 콜타르와 광물성 오일은 피부암, 염화비닐은 간암·폐암·뇌암·백혈병·림프종 등과 연관된다”고 덧붙였다.

직업별로 농업 및 건축 종사자는 폐암 위험이 높다. 농가에서 살충제와 제초제로 많이 쓰는 비소(As)는 주로 공기를 통해 코와 입으로 흡입돼 폐암을 유발한다. 칠레에서 수행된 연구에선 과도한 비소 노출지역의 폐암 사망률이 일반지역보다 3배 이상으로 높았다. 또 적은 양으로는 메스꺼움, 구토, 설사를 일으키고 심하면 방광암, 피부암, 간암, 신장암 등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동서양 모두에서 사람을 독살하는 데 자주 사용될 정도로 독성이 강하며, 임금이 죄인에게 내린 사약(賜藥)에도 비상이 들어간 것으로 여겨진다. 

건축업자는 페인트에 들어 있는 벤조피렌이나 과거 천장재·내장벽재에 쓰였던 석면이 원인이 돼 폐암이 발생할 수 있다. 석면은 호흡기를 거쳐 폐 속에 축적돼 화학반응을 일으켜 만성염증을 유발한다. 점차 폐가 딱딱해지는 섬유화를 일으키며 결국 폐암으로 악화될 수 있다.
이밖에 △광부 △석재가공업 △중장비기사·터널공(착암 및 발파공) 등의 건설업 △용접공 △조선업 △항공 및 철도 관련 종사자 △아파트 경비원 △환경미화원 등에서도 폐암 발병이 늘고 있는 추세다.

도금업, 인쇄업 등 석유화학 분야 종사자는 벤젠(benzene) 축적으로 인한 백혈병에 주의해야 한다. 벤젠은 염료·향료·폭약·살충제 제조에 들어가는 화학물질로 유전자(DNA)를 손상시켜 암과 백혈병 위험을 높인다. 국제암연구소로부터 1급 발암물질로 지정돼 있다. 휘발성이 강해 대부분 공기 중으로 배출되며, 공기에 퍼진 벤젠가스를 장기간 다량 흡입하면 두통·현기증·호흡곤란·구토·흉부압박·흥분 등 증상이 나타나고 체온과 혈압이 떨어진다. 

아스팔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도로건설 및 교통 관련 종사자나 페인트공은 폐암과 피부암에 걸릴 위험이 높다. 김선영 경희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아스팔트와 페인트의 재료인 콜타르(coal tar)는 석탄을 1000도 이상 고온으로 가열하면 생성되는 흑색 액체로 도로포장이나 페인트 외에도 방수제, 건전지, 목재 방부제 등으로 사용한다”며 “호흡기와 피부를 통해 각각 폐암과 피부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알루미늄 생산 공정에선 폐암·방광암·림프종, 고무 및 섬유는 방광암·백혈병, 제철은 폐암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직업성 암은 발암물질이 업무 중 접촉 또는 흡입되면서 발생한다. 짧은 시간 내 발병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잠복기가 긴 게 특징이다.

1차산업 종사자가 아닌 사무직 종사자도 암에 걸리기 쉬운데 가장 대표적인 원인이 야근이다. 잦은 야근은 건강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준다. 2007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RAC)는 20년 이상 야간작업을 하면 유방암 발생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를 근거로 야간교대근무를 발암물질등급 중 두 번째로 높은 ‘2A(2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김 교수는 “계속된 야근으로 빛에 노출되면 멜라토닌 분비량이 줄어드는 대신 에스트로겐이 증가해 생리불순, 유산, 유방암, 난소암, 자궁내막암, 전립선암 등의 위험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멜라토닌은 뇌 속 송과체에서 분비되는 신경호르몬으로 세포내 유해산소를 제거하고 발암물질에 의한 세포손상을 막는 등 인체에 유익한 작용을 한다. 해가 진 후 어두울 때 분비량이 증가하고 수면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로 ‘밤의 호르몬’ 또는 ‘수면호르몬’으로 불린다. 

임 교수는 “직업성 암의 대부분은 잠복기가 길어 암이 발생하는 시점엔 이미 퇴직한 경우가 많고, 현직에 있더라도 과거와 취급물질 및 작업환경이 많이 변해 산재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며 “직업성 암으로 산재 보상을 받는 비율은 10% 가량에 불과해 산재인정 기준을 시급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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