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담도암 병기 분류법이 전세계 담도암 환자의 진단 및 치료 표준지침으로 사용된다. 홍승모 서울아산병원 병리과 교수팀은 암세포의 특정 침윤 깊이(5㎜ 및 12㎜)에 따라 간외 담도암의 병기를 나누는 분류법이 미국암연합위원회(AJCC)가 제정하는 ‘제8판 암 병기 메뉴얼(Cancer Staging Manual)’의 공식 담도암 병기 분류법으로 채택됐다고 21일 밝혔다.
이 매뉴얼은 세계 의학계가 암 병기 결정시 따르는 국제 표준 지침서다. 6∼8년마다 새로운 병기 분류 기준을 개정하는데 국내 연구팀이 제시한 기준이 채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담도암은 간에서 분비된 담즙이 십이지장으로 보내지는 통로인 담도(담관)에 발생한다. 암 위치에 따라 간외 담도암과 간내 담도암으로 나눈다.
암 병기 매뉴얼은 담도암 병기를 결정할 때 암 침윤 깊이(T), 임파선 전이(N), 다른 장기로의 전이(M)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TNM 분류법을 사용한다.
특히 담도암은 위나 대장 등 위장관처럼 내부가 비어있는 관 형태의 구조를 띠고 있어 위장관계암의 T병기 분류를 그대로 따른다. 기존 분류는 담도벽을 이루는 점막층과 섬유근층 등 조직층의 침윤 정도가 기준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홍 교수팀은 담도암의 조직학적 구조에 주목해 위장관계 암과 동일한 분류법을 적용하는 게 부정확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서울아산병원에서 담도암수술을 받은 환자 101명을 대상으로 담도벽을 구성하는 평활근의 분포가 담도 위치에 따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담도의 조직학적 구조가 일반적인 위장관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담도암은 암세포가 침윤하면서 주변 조직을 파괴하고 딱딱하게 만들어 잔존 조직구조를 지표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도 밝혀 위장관계 암 분류법이 근본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서울아산병원에서 담도암수술을 받은 환자 222명을 대상으로 기존의 T병기별 생존율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2기와 3기 환자 생존율에 차이가 없음을 2005년 미국암협회 학술지 ‘캔서(Cancer)’에 발표해 기존 분류법의 부정확성을 지적했다.
나아가 연구팀은 병기 설정을 위한 새 지표를 알아보기 위해 암세포 침윤 깊이에 따른 담도암 환자의 생존율을 분석했다.
수술 환자 222명의 담도암 조직검체를 대상으로 주변 정상 담도상피의 기저층으로부터 암세포가 가장 깊숙이 침윤한 부위까지의 깊이를 측정했다. 그 결과 측정 수치가 5㎜ 미만이면 중앙생존기간(100명의 환자를 생존기간의 순서대로 나열할 때에 50번째 환자가 생존하는 기간)이 61개월, 5~12㎜ 이하이면 23개월, 12㎜를 초과하면 17개월인 것으로 나타났다.
담도암세포의 침윤 깊이를 객관적 수치로 분류하고 생존율 차이를 발견한 최초의 연구다. 이 연구결과는 2007년 ‘미국 외과병리학회지(American Journal of Surgical Patholo로y)’에 발표됐다.
이어 미국 존스홉킨스대병원의 담도암 환자 147명에게 새로운 T병기 분류법을 적용해 5년생존율을 분석했다. 그 결과 암세포 침윤 깊이가 5㎜ 미만이면 5년생존율이 69%, 5~12㎜ 이하이면 22%, 12㎜를 초과하면 4%로 큰 차이를 보였다. 이 연구결과는 2009년 국제학술지 ‘서저리(Surgery)’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이같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암세포의 특정 침윤 깊이에 따라 간외 담도암의 병기를 나누는 분류법을 새롭게 고안했다. 새 분류법은 암세포 침윤 깊이가 5㎜ 미만이면 담도암 1기, 5~12㎜ 이하이면 2기, 12㎜를 초과하면 3기로 구분하고 있다.
새 분류법은 기존 방법의 한계를 극복하고 병기별 생존율을 정확히 제시함으로써 최종 채택될 수 있었다.
홍 교수는 “국제표준으로 사용되는 미국암연합위원회의 암 병기가 국내 연구자와 서울아산병원의 임상 자료를 이용해 개정된 것은 의미가 특별하다”며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 서울아산병원의 국내 암 진단 및 치료 성적을 바탕으로 담도암 치료의 새 표준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담도암뿐만 아니라 췌장암이나 담낭암 등 췌담도계에서 발생한 암에 대한 정확한 병기 분류법을 개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