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중순에 접어들며 망년회·신년회 등 이런저런 약속에 1주일이 금세 지나가는 요즘이다. 모임을 앞두고 특정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들이라면 음주 습관을 신경 써야 할 필요가 있다. 술자리에서 약물을 복용한다며 절주한다고 하면 ‘괜찮아 안 죽어’라며 가볍게 여기는 게 한국의 음주정서다.
하지만 음주 자체도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보기엔 어려운데다가, 특정 약물과 만나면 건강 손실로 직결될 우려가 높다. 최악의 경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항히스타민제, 술과 만나면 졸림·어지럼증 유발 우려
겨울철에 걸리기 쉬운 감기로 약을 복용한다면 술에 금방 취하기 마련이다. 특히 코감기에 처방되는 약물에는 ‘항히스타민제’가 주로 들어 있다. 몸속에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히스타민 작용을 억제해 콧물감기, 알레르기, 두드러기 등을 완화시키는 성분이다.
송상욱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항히스타민제는 중추신경 억제 작용을 하는데다가 술과 만나면 이같은 작용이 더 강해져 졸림, 어지럼증 등이 심해진다”며 “자칫 보행사고, 낙상사고에 노출되거나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쉬워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음주 전후 진통제 복용, 간손상 주범
해열진통제도 주의해야 한다. 타이레놀 등 진통제의 대표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하면서 술을 마시면 간 손상이 생길 수 있다. 정세영 경희대 약대 교수는 “아세트아미노펜과 알코올은 모두 간에서 분해돼 간의 부담을 더하고 간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같은 이유로 숙취가 심할 때 진통제를 찾는 것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은 간독성이 더욱 심하게 나타날 수 있고, 심한 경우 호흡능력이 위험한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다.
아스피린도 주의해야 한다. 아스피린은 위장관 자극이 강한 약제로 알코올 섭취 시 위장관 출혈이 발생할 수 있어 음주를 제한하는 게 바람직하다.
피임약, 더 빨리 취하는 것처럼 만들어
여성들이 복용하는 경구피임약도 술과 만나서 좋을 게 없다. 피임약은 복용 후 몸에 퍼져 효과를 발휘하기까지 약 3시간이 걸린다. 술을 마신다고 피임 효과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약효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더 빨리 술에 취한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섭취한 알코올의 에탄올이 대사작용을 일으키는데, 피임약 성분과 만나면 알코올이 분해되는 시간이 더뎌진다. 이는 여성의 의사결정 능력을 방해해 여성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항불안제·항우울제 복용 중이라면 술은 멀리해야
항불안제나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사람도 음주를 자제해야 한다. 대표적인 게 항불안제 벤조디아제핀(Benzodiazepines), 항우울제 졸로프트(Zoloft)·프로작(Prozac)·자낙스(Xanax) 등이다.
벤조디아제핀은 불면증치료를 위한 수면제·신경안정제로 많이 쓰인다. 이는 알코올과 섞이면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어 원칙적으로 금주가 이뤄져야 한다. 알코올과 벤조디아제핀은 동일한 GABAa 수용기를 거쳐 중추신경 억제 작용을 한다. 이 과정에서 자칫 호흡근육이 멈추고 중추신경계 반응을 느리게 만들어 혼수상태와 죽음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2001~2014년 이 약물로 인한 사망자 수는 5배가 늘었으며, 한국에서도 해마다 약 3천100만∼3천500만건 정도 처방되고 있다.
의사들이 처방하는 항우울제는 대부분 술과 섞이면 알코올의 강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 약물과 섞이면 평소보다 더 많이 취한 것처럼 느끼게 하며, 몇몇 항우울제는 의사결정을 무너뜨리고, 고혈압의 위험을 높이며, 심지어 기분을 더 우울하게 만들 수 있다. 이밖에 현기증, 혼란, 발작, 혼수상태까지 유발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고혈압·항당뇨병 치료제 복용중이라면 금주는 ‘당연지사’
히드랄라진(Hydralazine), 프라조신(Prazosin) 등 고혈압치료제를 알코올과 병용하면 알코올의 혈관확장 작용으로 혈압강하 작용이 증가된다. 고혈압 환자는 과량의 음주나 지속적인 음주는 절대 금물이다.
알코올은 혈당강하작용을 한다. 따라서 인슐린이나 경구혈당강하제를 복용하고 있는 환자는 음주 시 심한 혈당강하증이 일어나 위험할 수 있어 음주를 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