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 권모 씨는 1년 넘게 만성두통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별다른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하루에 몇 번씩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픈 것은 물론 목이 당기고 어깨까지 결렸다. 두통이 점차 심해지면서 눈 주변까지 쿡쿡 쑤셔 진통제를 처방받았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면서 긴장성두통, 신경성두통, 편두통, 우울증 등 다양한 질병을 진단받아 온갖 치료를 받았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뒷골이 당기면서 목과 어깨통증이 발생하는 것을 경추성 두통이라고 한다. 한 해외 연구결과 전체 두통 환자의 40% 정도가 경추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두통은 두개골막, 혈관, 뇌신경 일부, 부비동(코 주변 뼈 속에 형성된 공간), 근육 등 통증에 민감한 조직이 자극받아 발생한다. 반면 경추성은 목뼈 관절과 추간판(디스크) 이상으로 초래된다. 발병 원인이 다르기 때문에 일반 두통으로 여겨 진통제만 처방받거나 다른 치료를 받으면 증상 개선이 어렵다.
박승원 중앙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위쪽 목뼈인 제2~3경추(상부 경추)가 손상되거나 퇴행되면 어깨와 팔 통증보다 두통이 심하게 나타난다”며 “잘못된 자세로 인한 후두부신경(뒤통수 피부 아래를 지나는 신경)의 눌림, 목관절 부담 증가, 부족한 운동에 의한 경추 주변 근력저하, 교통사고후유증, 만성 류마티스관절염 및 경추간판수핵탈출증(목디스크)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고 설명했다.
교통사고 후 갑자기 두통이 생겼다면 경추성일 확률이 높다. 교통사고 등 갑작스런 충격으로 목이 앞뒤로 크게 젖혀지는 ‘채찍질손상(whiplash injury)’이 발생할 경우 약 53%의 비율로 경추성두통이 발생한다는 해외 연구결과도 있다.
노화나 외부충격을 제외하면 대부분 평소 잘못된 생활습관과 자세에서 비롯된다. 고개를 과도하게 숙이거나 삐딱하게 앉아 장시간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목에 과도한 부담이 가해지고 경추성 두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
보통 한쪽 후두부(뒤통수)에서 통증이 느껴지다가 어지럼증, 이명, 목통증, 어깨통증, 팔저림, 구역 등이 동반된다. 제2~3경추신경에서 나오는 후두신경이 눌리면 목통증에 급격한 눈 피로감과 안구통증이 동반되는 게 특징이다. 심하면 기억력 저하, 실신 등 중추신경계 증상을 초래하기도 한다. 드문 확률로 목이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면서 뒤틀어지는 사경증(근긴장이상증)으로 악화되기도 한다.
편두통과 증상이 비슷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증상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 가장 큰 차이는 박동성이다. 편두통은 이마 쪽과 측두엽 부근이 쿵쿵 울리는 박동성이 심한 반면 경추성 두통은 박동성이나 쿡쿡 찌르는 통증이 없다. 뒷목과 뒷통수를 눌렀을 때 통증이 심해지고 목 움직임이 제한되는 것도 특징이다. 이밖에 기침, 재채기, 웃음 후 후두부가 아프다면 경추성 통증을 의심해보는 게 좋다.
경추성 두통은 보통 어지럼증과 동반될 때가 많다. 경추가 삐뚤어지거나 손상되면 인체에서 균형감각을 담당하는 소뇌와 전정기관의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 이럴 경우 천천히 걷거나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주변이 빙글빙글 도는 듯한 어지럼증이 발생하게 된다.
치료는 자세교정, 물리치료, 약물치료 등 보존적 요법을 시도해 볼 수 있다. 항상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특히 목이 꺾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박승원 교수는 “조기진단 후 약물치료를 하면 70~80%의 비율로 증상이 호전될 수 있다”며 “약물치료가 소용 없을 땐 신경차단술과 박동성 고주파신경조절술 등을 시행해 질병이 악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경차단술은 과흥분된 신경에 약물을 주입해 통증을 경감시키는 치료법이다. 하지만 효과가 1개월 미만으로 짧고 반복치료가 필요한 데다 근본치료가 아니어서 재발 위험이 높다는 게 단점이다.
박동성 고주파신경조절술은 통증을 유발하는 근육이나 인대로 가는 가느다란 신경에 고주파를 전달시켜 선택적으로 신경의 흥분을 가라 앉혀 주는 치료법이다. 치료효과가 6~12개월 이상 지속돼 기존 주사치료보다 효과가 오래 지속되는 편이다.
박 교수는 “경추성이든 편두통이든 두통 치료 과정에서 진통제 사용을 가급적 피해야 한다”며 “진통제를 사용하면 당장의 통증은 사라질 수 있어도 질환이 얼마만큼 진행됐는지,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가급적 빨리 병원을 찾아 치료받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