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윤모 씨(39)는 얼마전 두 살 짜리 딸에게 그림책을 보여주다가 아이가 눈을 자꾸 깜박거리면서 시선을 잘 맞추지 못하고 엉뚱한 곳을 멍하게 쳐다보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엔 ‘별일 아니겠거니’라고 넘겼지만 같은 행동이 반복되자 병원을 찾았고 선천성 백내장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머리가 희끗한 고령환자만 걸리는 질병인 줄 알았던 백내장이 고작 두 살의 딸에게 나타났다나는 사실에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
골프유망주였던 중학생 성모 군(16)은 3개월 전부터 초점이 흐려져 스윙이 제대로 되지 않는 증상을 겪었다. 평소 시력이 좋았기 때문에 과도한 연습으로 인한 피로 탓으로 여겨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증상이 심해져 헛스윙을 하거나 공을 제대로 치지 못하는 경우가 잦아지자 안과 전문의에게 검사받은 결과 유전성 안질환인 아벨리노각막이상증이라는 소견을 받았다.
유전성 안질환은 초기에 특별한 증상이 별로 없고 노안이나 근시처럼 대중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질환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내기 쉽다. 또 생활환경이나 건강상태에 따라 발병 시기가 천차만별인데다 완치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대표적인 유전성 안질환으로는 선천성 백내장, 커튼눈증후군, 아벨리노각막이상증 등이 있다.
백내장은 수정체가 혼탁해지고 딱딱하게 굳으면서 빛이 제대로 통과하지 못해 안개가 낀 것처럼 시야가 뿌옇게 보이는 질환이다. 노화가 주된 원인이어서 노인성 질환으로 인식되기 쉽다. 하지만 선천적 원인에 의한 소아 선천성 백내장, 외상·약물 부작용·당뇨병·포도막염 등으로 인한 2차성 백내장도 드문 확률로 발생할 수 있다.
소아 선천성 백내장은 태내 감염, 대사이상 질환, 유전적인 소인 등에 의해 발생한다. 불빛을 따라 보지 못하거나, 사시가 되거나, 눈을 자주 찡그리거나, 한 곳을 주시하거나 또는 시선을 잘 맞추지 못하거나, 심한 눈부심 등이 나타날 경우에 의심해볼 수 있다. 단순 증상으로 여겨 치료를 미룰 경우 시력이 점차 떨어져 영구적인 시력저하로 이어지기도 한다.
김응권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안과 교수는 “원인 모를 시력저하로 검사를 받으러왔다가 백내장 진단을 받는 어린이들이 많다”며 “소아 백내장은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지 않으면 시력저하가 심해질 수 있어 약간의 증상이라도 나타나면 바로 전문의에게 진단 및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소아는 증상 등에 대한 설명이나 의사 표현이 불완전해 진단 및 치료가 늦어질 확률이 높다. 미국은 신생아 대상 안검사가 필수 검진항목이라 선천성 백내장을 빠르게 진단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필수검사가 아니다. 생후 6~8주 이내에 수술받아야 정상적인 시력회복이 가능한 점을 고려해 증상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미리 안과 검진을 받아보는 게 좋다. 치료법으로 기존 백내장수술과 같은 인공수정체삽입술을 실시하며, 수술 후에는 콘택트렌즈와 안경을 착용해 약시를 예방해야 한다.
커튼눈증후군은 눈꺼풀이 커튼이 드리워진 것처럼 처지면서 눈동자를 덮어 눈이 작아 보이고 시야도 확보되지 않아 약시를 유발한다. 90% 이상이 유전적 요인에 의해 발병하며 유년기부터 30대까지 증상 발현 시기가 다양하다. 눈꺼풀이 처진 상태가 지속되면 무의식적으로 눈을 크게 뜨기 위해 이맛살로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버릇이 생긴다. 이럴 경우 이마와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기고 눈꺼풀 처짐 속도가 빨라진다. 또 시간이 지날수록 속눈썹이 눈을 찌르거나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아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겪고 약시의 원인이 될 수 있어 쌍꺼풀수술 등 치료를 서둘러 받는 게 좋다.
각막이상증의 일종인 아벨리노각막이상증은 삶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리는 유전성 안질환이다. 현재 국내에 알려진 각막이상증으로는 아벨리노형 외에도 과립형각막이상증 제1형, 격자형 각막이상증 제1형, 레이스버클러스 각막이상증, 티엘벵케 각막이상증 등이 있다. 이중 가장 흔한 게 아벨리노각막이상증이다.
이 질환은 양쪽 눈 각막 중심부에 단백질이 침착해 시야가 점차 혼탁해지고 시력이 떨어진다. 한국인 1320명 중 1명 가량이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동협접합자와 이형접합자로 구분되는데, 부모 모두에게서 각막이상증 유전자를 물려받은 동형접합자의 경우 3살 무렵부터 증상이 나타나 6살 무렵에 실명에 이를 수 있다.
한 쪽에서만 유전자를 받은 경우 자외선 노출도 등에 따라 다르지만 약 12세부터 각막에 흰 점이 생기기 시작해 60세 이상부터 증상이 눈에 띄게 악화된다. 김응권 교수는 “아벨리노각막이상증은 유전적 요인으로 체내에 산화스트레스가 쌓여 발생한다”며 “산화스트레스가 세포를 손상시켜 노화 및 질병을 초래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치료법으로 혼탁된 각막층을 일부 제거하는 치료적 레이저 각막절제술이나, 각막 투명도를 높이기 위한 각막이식 등을 실시한다. 하지만 시술 이후에도 단백질 침착에 따른 재발 및 증상 악화를 겪는 환자가 많아 실질적인 완치법은 아직 없는 상황이다.
유전자검사 결과 아벨리노 각막이상증 고위험군으로 판별됐다면 눈을 비비는 행동을 자제하고 외상을 입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선글라스를 착용해 각막을 손상시킬 수 있는 자외선을 차단하고, 라식·라섹 등 시력교정술은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어 시술 전 정밀 검진 및 상담이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