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드름을 개선하기 위해 피임약을 복용한다’는 여성이 적잖다. 실제로 다른 피부과 치료 없이 피임약을 복용한 것만으로 증상이 개선됐다고 ‘간증’을 올리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
여드름 치료 목적으로 피임약을 복용중이라는 여대생 이모(23)씨는 “몇 달 동안 유난히 생리 직전에 여드름이 올라와 고생했는데 피임약을 두 달간 복용하는 동안 이같은 현상이 사라졌다”며 “나처럼 평소엔 별 문제 없다가 생리 직전 트러블이 올라오는 경우 피임약을 여드름 치료 목적으로 복용하는 케이스가 적잖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여드름은 남성호르몬 작용이 활발해지며 유발되는 일종의 난치성 피부질환이다. 여성에게도 남성호르몬이 소량 분비돼 피임약을 복용해 호르몬 균형을 맞춤으로써 여드름을 가라앉히는 원리로 이를 치료한다는 것이다.
김태준 호산여성병원 산부인과 원장은 “생리 직전기는 트러블을 유발하는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이 최고조에 이르러 피부 상태가 ‘최악’”이라며 “피지 분비가 왕성해지고 각종 트러블이 유발된 탓에 피부는 저항력이 떨어져 작은 접촉에도 염증과 트러블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학적으로 피임약을 여드름 치료를 위한 처방으로 내는 경우도 적잖다. 김 원장은 “여드름은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 수치가 증가하며 발생하기 때문에 피임약의 항남성호르몬 성분이 여드름을 호전시킬 수 있다”며 “여성호르몬이 남성호르몬 안드로겐을 억제해 피지선을 줄여주는 원리”라고 설명했다.
다만 모든 피임약이 이같은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고 성분 중 ‘에치닐에스트라디올’(estradiol)과 주로 전문약에 들어 있는 ‘드로스피레논’(drospirenone)이 들어간 약물에서 나타난다.
김태준 원장은 “평소 여드름을 달고 사는 여성보다 월경 주기에 따라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거나, 난소에서 비정상적으로 남성호르몬을 만들어내며 여드름에 시달리는 다낭난소증후군 환자에게 매우 유용한 치료가 된다”고 말했다.
에스트로겐을 오래 복용하면 혈전이 생길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으나 피임약에 들어있는 정도는 그리 많은 양이 아니므로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흡연하거나 고도비만인 여성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피임약을 복용한 뒤 부작용으로 여드름이 났다는 경우도 있다. 약 성분이 호르몬을 조절하는 만큼 사람에 따라 여드름을 유발할 수 있다. 이는 약 성분에 체질에 맞지 않을 경우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약을 중단하면 원상태로 돌아온다.
김태준 원장은 “피임약에 대한 지식 없이 임의적으로 피부 개선 목적을 위해 장기간 오남용하면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며 “사람마다 피부와 건강상태가 달라 피임약이 끼치는 영향이 상이하기 때문에 먼저 의사와 상담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령 여성호르몬이 영향을 미치는 유방암, 간부전, 혈전증 등 기저질환을 가진 사람은 복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