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의술의 발전으로 인해 평균수명이 계속 늘면서 ‘건강수명’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평균수명이 0세를 기준으로 몇 년을 살 수 있는지 절대치를 나타내는 지표라면, 건강수명은 평균수명 중 건강하고 능동적인 삶을 산 기간을 의미한다. 중·장년층 중 치매 등 인지기능장애로 건강수명이 줄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사람이 상당수다. 평소 무언가를 자주 잊어버리는 자신의 모습에 치매 초기 증세가 아닐까 걱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 건망증인지 인지기능장애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양현우 서울부민병원 신경과 과장은 “단순 건망증은 스스로 무언가를 잊어버린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편이지만 치매 초기 증상은 보호자나 가족들이 기억장애를 인지하는 경우가 많다”며 “증상이 심해지면 주변 사람이 자신의 기억력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부인하는 사례도 목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단순 건망증은 기억력을 제외한 다른 인지능력에는 큰 문제가 없다. 반면 인지기능장애는 기억력을 비롯해 언어장애, 시공간능력 및 계산능력 저하 등이 동반돼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 예전엔 사교적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외출하기를 꺼려한다던가, 평소와 다르게 의욕이 저하되거나,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해지는 등 성격과 감정의 변화가 나타나면 초기 치매를 의심해볼 수 있다.
경도인지장애라는 치매와 정상 노화의 중간 단계로 인지기능엔 문제가 있지만 일상생활엔 별다른 장애가 생기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당장은 불편하지 않더라도 치매로 진행될 확률이 훨씬 높아 주의가 필요하다.
기억력 자체도 큰 차이가 존재한다. 건망증 환자는 잊어버린 사실도 관련 내용을 조금 상기시키면 금방 기억해낸다. 그러나 인지기능장애 환자는 옆에서 귀띔을 해줘도 해당 사건 전체를 아예 잊어버린 경우가 많다. 또 건망증은 물건을 사러 갔다가 몇 가지를 빠뜨리고 오는 등 기억해야 할 일이 있다면 일부분에 한해서만 기억능력이 저하되지만 인지기능장애는 이 곳에 왜 왔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아 집으로 돌아오는 등 기억능력 저하가 더 심하게 나타난다.
최근엔 사회 인식이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치매는 완치가 불가능해 적극적인 치료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환자가 많다. 실제로 치매는 깨끗하게 완치될 수 있는 질환은 아니다. 하지만 병 진행을 최대한 늦춰 독립 생활을 영위하는 기간을 늘리려면 적극적인 치료가 필수다. 치매 원인질환을 파악해 알맞은 조치를 취하면 인지기능 개선에도 도움된다.
양현우 과장은 “치매는 약물치료에 규칙적인 운동, 능동적인 두뇌활동, 식사 조절, 금연, 절주, 체중조절, 충분한 수면,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관리를 병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 및 가족은 환자의 기억향상을 위한 과도한 시도나 윽박 지르는 등의 행동을 삼가야 한다. 변화가 많은 생활패턴보다는 크게 변화를 주지 않는 단조로운 생활환경을 조성해 환자의 감정 기복을 최소화하고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다. 특히 환자의 자존감을 최대한 지켜주고 “말해도 몰라요” 등 환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언행을 하지 않도록 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