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된장, 간장 등 장(醬)은 발효가 생명이다. 아무리 좋은 재료를 사용했더라도 제대로 숙성하지 않으면 장 고유의 깊은 맛을 낼 수 없다. 최소 몇개월은 충분히 삭혀야 맛있는 장을 만들 수 있다. 최근 장류 식품에 대한 연구가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지만 주로 충분히 발효시켜야 하는 간장, 된장, 고추장 등에 국한된 게 사실이다. 반면 과거부터 기타 별미로 단기간에 담가 먹던 즙장, 막장 등은 인지도가 낮고 정의조차 제대로 확립되지 못해 점차 사람들로부터 잊혀지고 있다.
‘집장’으로도 불리는 즙장은 중부 이남 지역에서 만들어 먹던 장류 중 하나다. 다른 장에 비해 채소를 많이 넣고 담궈 일부 지역에서는 ‘채장’으로 칭하기도 한다. 삭은 즙장이 검은색을 띠어 ‘검정장’으로 부르기도 한다.
즙장은 16세기 말 하생원이 쓴 조리서 ‘주방문‘(酒方文)에 처음 등장한다. 1766년 유중림이 기존 ‘산림경제’에 내용을 추가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는 제조법이 상세하게 나온다. ‘밀 2말, 콩 2말 등을 물에 담궈 불렸다가 함께 빻은 뒤 닥나무잎에 띄워 메주를 만들고, 여기에 물과 소금을 섞고 항아리에 담아 말똥 속에 7일간 익히면 완성된다’고 적혀 있다.
즙장은 고추장과 된장에 채소를 넣는 것을 비롯해 제조법이 다르다. 기본 메줏가루, 밀, 엿기름 등에 각종 채소를 함께 넣고 따뜻한 곳에 7~8시간 두고 속성으로 발효시킨다. 여기에 지역마다 추가되는 재료가 약간씩 다르다. 박, 가지, 토란줄기, 열무, 풋고추, 고춧잎, 호박잎, 무 등 만드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재료가 달라진다. 충청도에서는 해산물을 넣기도 했다. 담그는 시기는 특별히 정해진 게 없다. 일반적으로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그해 수확한 채소를 정리하면서 장을 담근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여름이나 정월에도 즙장을 만든다.
과거 경상도와 전라도에서는 즙장을 넣은 항아리를 따뜻한 퇴비에 넣고 삭혔다. 충청도에서는 물 속에 항아리를 3분의 2 가량 잠기게 한 뒤 따뜻한 곳에 3~4일 가량 발효시켜 담갔다. 요즘은 전기밥솥을 활용해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채소를 많이 넣기 때문에 즙장은 조금씩 제조해 바로 먹어야 한다. 즙장은 곡류와 더불어 채소류를 함께 넣어 퇴비 속에 묻어 그 열로 발효시킨 것으로 겨우내 부족하기 쉬운 무기질, 비타민, 단백질 등이 풍부하다. 막 익은 즙장은 콩, 밀, 무 등의 달착지근하고 부드러운 맛과 채소의 씹히는 맛이 더해져 별미다. 있는 그대로 밥에 쓱쓱 비벼 먹거나 찌개처럼 끓이기도 한다.
막장은 즙장과 함께 빨리 만들 수 있는 장으로 빠개장 또는 가루장으로 불린다. 메줏가루를 잘게 부순 것에다 보리쌀이나 엿기름, 콩알 등을 넣어 햇볕이나 따뜻한 곳에서 숙성시켜 담근다. 열흘 정도면 맛볼 수 있어 일종의 속성 된장으로 생각하면 된다. 일반 된장에 비해 전분질 함유량이 많고 이것이 당분으로 쉽게 분해돼 단맛이 많이 난다. 즙장과 마찬가지로 빨리 숙성되는 만큼 저장성이 떨어져 1년 이상 보관할 수 없는 단점을 갖고 있다. 숙성기간이 짧은 탓에 수분 유출이 적고 상대적으로 수분을 많이 함유하게 된다.
김미리 충남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시판 중인 된장의 평균 염도가 11.8%인 것에 비해 막장은 평균 8.16%로 상대적으로 수치가 낮다”며 “이는 빠르게 발효시키기 위해 소금을 덜 넣는 제조법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분질이 풍부한 덕분에 단맛이 강해 현대인들이 만족할 수 있는 장”이라고 덧붙였다.
일반적인 된장은 간장을 뽑아 내고 남은 것으로 만들지만 막장은 메줏가루를 갈아 직접 담근다. 주로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에서 즐겨 먹는다. 강원도에서는 보리쌀과 엿기름을 삭혀 죽을 쑨 뒤 메줏가루, 소금 등을 넣어 익혀 만든다. 경상도는 강원도에 비해 콩과 멥쌀을 많이 넣고 소금은 적게 사용한다. 충청도에서는 보리밥에 메줏가루 등을 섞고 소금으로 간을 하고 고춧가루를 첨가한다. 막장은 수육, 편육 등을 찍어 먹는 양념장을 만들거나, 물회를 해 먹을 때 들어간다.
즙장, 막장, 된장 등 콩으로 만든 장은 다른 장에 비해 비만억제 효과가 뛰어나다. 박건영 부산대 식품영양학과 교수팀이 고지방 음식을 30일 가량 먹인 실험용 쥐에게 된장, 쌈장, 고추장 등을 추가로 섭취시킨 결과 된장을 먹인 쥐가 다른 쥐에 비해 8~17g 가량 몸무게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박 교수는 “된장의 주원료인 콩의 단백질이 발효과정에서 펩타이드로 분해되고 발효가 더 진행돼 아미노산으로 쪼개지면서 비만억제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