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해물찜이나 얼큰한 매운탕을 먹다가 미더덕 때문에 입 천장을 데어본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다. 미끌하지만 딱딱한 식감을 가진 미더덕은 특유의 향미 덕에 해산물 요리 재료로 자주 쓰인다. 껍질째 먹으면 몸에 좋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지만 건강에 아무런 지장이 없어 마음껏 섭취해도 좋다.
미더덕은 1970년대까지 어촌에서도 잘 먹지 않았다. 미더덕 외피를 벗기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돌이나 바닥에 붙어있는 미더덕을 주워 꼬리와 몸통을 잘라 터져나오는 안쪽 내용물을 죄다 버리고 조금 남은 속껍질과 내장으로 국물을 내어 먹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외피을 얇게 벗기는 방법을 알게 되면서 미더덕에 대한 인식이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흔히 시장이나 식당에서 볼 수 있는 미더덕은 외피 중에서도 바깥쪽만를 벗겨낸 것이어서 요즘은 외피 중 속껍질과 그 속의 내장과 내용물을 모두 즐길 수 있게 됐다.
미더덕은 측성해초목 미더덕과 생물이다. 한반도 전 연안에 분포하지만 남해안에 집중돼 있다. 다 자란 것은 어른 엄지손가락 크기만 하다. 미더덕의 학명은 ‘Styela clava HERDMAN’이다.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이 지은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는 미더덕을 ‘음충’(淫蟲) 또는 ‘오만둥이’ 등으로 적어놨다. 미더덕의 외피는 매우 딱딱하며 황갈색을 띤다. 암수한몸으로 난소는 가늘고 길며, 정소는 난소 사이에 위치해 있다.
미더덕은 생명력이 강하고 번식력 및 이식력이 뛰어나다. 1999년까지 미더덕 양식은 공식적으로 허용되지 않았다. 미더덕이 다른 패류에 붙어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더덕 소비가 늘면서 지금은 남해안 곳곳에서 미더덕 양식장을 찾아볼 수 있다.
국내 미더덕의 약 60%는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일대에서 나온다. 진동면 앞바다는 국내 최대 규모의 미더덕 양식장이 몰려있다. 마산 사람들은 미더덕을 이용한 해물찜을 자주 먹는다. 미더덕에 콩나물, 미나리 등 각종 채소를 넣고 된장·고춧가루·마늘로 양념을 내서 즐긴다. 1980년대 이후 아귀찜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면서 미더덕도 함께 알려졌다. 아귀찜에는 미더덕이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간다. 매년 4월에는 진동면 앞바다에서 미더덕 축제도 열린다.
미더덕은 1월부터 수확할 수 있지만 살이 다 오르지 않아 맛이 덜하다. 3월부터 살이 붙기 시작해 4~5월이 되면 절정의 맛을 낸다. 6월부터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면 미더덕은 죽는다.
미더덕은 ‘물에서 나는 더덕’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미더덕의 생김새가 쭈글쭈글한 더덕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미’라는 단어는 물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이다. 물의 고어에는 믈, 밀, 몰, 말, 무, 미 등이 있다. 무지개, 미나리 등이 물의 고어가 들어간 대표적인 단어다. 일부에서는 미더덕이 바닷가 주변 바위에 더덕더덕 붙어있어 이같은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불분명하다.
흔히 미더덕은 오만둥이(오만디)와 비교된다. 오만둥이의 오만은 여러 잡다한 것을 일컫는 말로 중요하지 않은 잡스러운 생물을 의미한다. 오만둥이는 미더덕과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입수공(入水孔)과 출수공(出水孔)이 밖으로 나와 있지 않다. 향미는 미더덕보다 떨어지고 껍질도 두껍지만 내용물이 부드럽고 쫄깃해 식감은 오히려 좋은 편이다.
오만둥이는 미더덕에 비해 생육기간이 짧아 가격도 저렴하다. 때문에 일반적인 해산물 대중음식점에서는 오만둥이를 훨씬 많이 쓴다. 미더덕은 주로 3~5월에 나오고, 오만둥이는 계절의 영향을 덜 받아 냉동한 것을 포함해 사시사철 접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미더덕과 오만둥이를 먹는 나라는 한국, 일본, 미국 등에 불과하다. 그나마 미국과 일본에서는 한국에서 건너간 재외동포들만 먹는다.
오만둥이의 학명은 Styela plicata다. 지역에 따라 오만디, 오만동, 오만동이, 만득이, 만디기, 통만디 등으로 불린다. 오만둥이는 돌미더덕으로 칭하기도 한다. 미더덕은 참미더덕으로 불러 양자를 구분한다. 일반적으로 미더덕은 머리 부분만 두고 가공하는데 오만둥이는 대체로 통째로 유통된다. 경남 통영시 일대가 오만둥이 양식지로 이름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