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인제군과 양구군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게다가 수량이 풍부한 계곡물도 흘러 산나물이 자라기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이 일대에서는 해마다 봄이 되면 특유의 향미를 갖춘 ‘곰취’가 자란다. 곰취 특유의 향은 봄철 입맛을 찾는 데 제격이다.
곰취는 잎 모양이 곰 발바닥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강원도 민간에서는 겨울잠에서 깬 곰이 가장 먼저 찾는 나물이라는 의미도 전해져 온다. 깊은 산중 약간 습하고 나무 그늘이 적당한 곳에서 잘 자란다. 까칠하고 쌉쌀한 맛을 갖고 있지만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팔색조 매력을 갖고 있다. 과거 조선시대 왕들은 “각종 산나물은 강원도에서 봉진(封進, 임금에게 진상하는 물건을 올리는 것)하게 하라”고 명을 내렸을 정도다.
곰취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시베리아 동부 등에서 자란다. 심장형 모양의 넓은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광택이 없는 게 특징이다. 만약 산행 시 곰취와 비슷한 나물을 발견했더라도 채취해서 먹으면 안된다. 독을 가진 ‘동의나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의나물은 잎에 광택이 나는 데서 차별화된다.
박동훈 양구군 현안대책추진단 주무관은 “곰취는 같은 품종이라도 재배 기법에 따라 잎의 두께나 향이 달라진다”며 “양구에서는 1980년대 이전부터 산에서 곰취를 키워 온 덕에 재배기술이 축적된 데다 큰 일교차 속에서 자라 잎이 두껍지 않고 부드럽다”고 밝혔다. 이어 “한때 양구 곰취가 곤달비나물이란 주장이 제기됐지만 곤달비는 곰취의 한 종류라 큰 의미는 없다”고 설명했다.
취나물의 종류는 크게 이파리가 넓고 원형에 가까운 곰취류와 잎사귀가 잘고 길쭉한 편에 속하는 개미취류로 나눌 수 있다. 곰취는 고기에 쌈을 해먹는 용도로 대형마트에서 많이 팔리는 반면 개미취는 데쳐서 나물무침이나 된장국에 넣는 재료로 재래시장에서 주로 거래된다. 외관과 식감은 곰취가 좋으나 약성은 개미취가 다소 낫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곰취는 나물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으뜸으로 대접받는다. 쓴맛이 강하면서도 특유의 향이 강해 처음 맛 보는 사람은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한번 맛에 길들여지면 봄마다 찾게 된다.
곰취는 주로 어린잎을 채취해 먹는다. 삼겹살 등 육류를 곰취와 함께 입에 넣으면 느끼함이 사라지고 입 안 가득 진한 향이 퍼진다. 오래 숙성시켜도 맛과 향은 웬만해선 없어지지 않는다. 곰취를 살짝 데친 후 볶아도 그 맛은 여전하다. 겉절이, 장아찌, 된장국, 부침개 등의 다양한 요리의 재료로도 이용할 수 있다.
곰취나물을 만들려면 먼저 말린 곰취를 하룻밤 불린 뒤 헹궈 40~50분 가량 푹 삶아야 한다. 몇 번 씻어 맛을 보고 쓴맛이 적당하면 물기를 짠 뒤 잘게 썰어 국간장, 파, 마늘, 설탕, 참기름 등을 넣어 조물조물 무친다. 쓴맛을 싫어하면 팬에 볶아 이를 완화시킬 수 있다. 삶은 나물에 쓴맛이 강하다면 물에 담가 쓴맛을 우린 뒤 사용하는 게 좋다. 말린 곰취를 이용해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다면 한꺼번에 많이 불려 잘게 썰어 물기를 짠 뒤 먹을 분량 만큼 비닐봉지에 담아 냉동해 활용하면 된다. 곰취나물을 밥에 넣으면 곰취밥이 되며 각종 요리에 넣으면 곰취향을 느낄 수 있다.
인제나 양구에서는 밭에서 모종을 키운 뒤 산으로 옮겨 재배한다. 심은 지 1년 뒤부터 식용에 적당한 잎과 잎자루를 6~7차례에 걸쳐 수확한다. 곰취는 크기에 따라 분류한다. 15㎝ 미만인 쌈용은 A급, 15~20㎝의 장아찌용은 B급, 20㎝ 이상인 가공용(분말)은 C급으로 나눠 선별한다. 과거엔 먹기 어려운 고급 나물이었지만 농업기술의 발달로 비닐하우스 재배도 가능하다. 다만 햇빛을 차단해야 하고 습도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므로 비용이 꽤 들며 손도 많이 간다.
곰취에는 단백질, 탄수화물, 칼슘, 비타민A, 비타민C 등이 함유돼 있다. 뛰어난 황산화 작용을 하는 베타카로틴은 100g당 무려 4,415㎍ 들어 있다. 상추보다 비타민C는 6배, 섬유소는 8배 이상 풍부하다. 섬유소는 많고 열량은 낮아 다이어트에도 제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