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말 포르투갈, 에스파냐, 영국, 네덜란드 등 서구 신흥세력을 중심이 된 대항해시대에 바다를 누비는 선장에겐 선원들의 식량은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였다. 선원들이 배부르게 항해를 마칠 수 있을 만큼 식량을 갖고 떠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같은 이유로 배 안 요리사는 선장 다음으로 지위가 높았다. 그들이 요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항해 자체에 문제가 생기기까지했다.
‘푸딩’(pudding)은 대항해시대 요리사에 의해 만들어진 음식이다. 항해 막바지에 어정쩡하게 남은 밀가루, 우유, 쿠키 등을 모아 쪄 먹었던 게 푸딩의 유래로 추정된다. 지금은 한낮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우아하게 먹지만 푸딩의 시작은 열악했다. 요리사들의 푸딩 조리법은 일반 가정으로 전해져 지금의 조리법으로 바뀌었다. 영국에서는 요크셔, 웨일즈, 켄트 등 지역마다 고유의 푸딩 레시피가 내려져올 정도로 푸딩을 즐겨 먹는다.
일부에서는 피를 굳혀 만든 ‘블랙푸딩’(Black pudding)이 원조라고 주장한다. 소 창자에 피, 고기, 오트밀 등을 채워 익혀 먹는 것으로 한국의 순대와 비슷하다. ‘블러드 소시지’(blood sausage)로도 불린다. 유럽에서 개신교인척 하는 유태인들을 구별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태인들은 유대교의 율법에 따라 동물의 피를 먹지 못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푸딩은 주로 계란, 설탕, 우유 등을 섞고 중탕하면서 굽는다. 재료에 따라 여러 형태로 나뉘며 빵과 젤리의 중간 형태로 부드러운 식감이 특징이다. 서양인들은 집에서 흔히 만들어 먹는 디저트다. 일본인은 서양인 못지 않게 푸딩을 사랑한다. 약 3조원으로 추정되는 일본 디저트 시장에서 푸딩은 젤리(약 6300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약 5300억원)를 자랑한다. 국내에서는 제과점이나 식품회사에서 만든 완제품을 주로 즐긴다. 최근에는 편의점 푸딩 제품이 속속 출시되며 관심을 받고 있다. 누구나 손쉽게 사먹을 수 있다는 장점을 어필하며 소비자들의 입맛을 노리고 있다.
푸딩은 재료의 농도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계랸을 25~35%, 젤라틴 3~4%, 전분을 8~10% 사용한다. 같은 농도에서도 주재료와 부재료를 어떻게 넣으냐에 따라 굳기가 달라진다. 만드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오븐에 굽거나 냉장고에 두고 서서히 굳힌다. 전자는 상대적으로 탱탱한 식감을 가지며 후자는 부드러운 맛을 느낄 수 있다.
대표적인 푸딩으로는 ‘커스터드 푸딩’(custard pudding)이 꼽힌다. ‘캐러멜 푸딩’(caramel pudding)으로도 불린다. 일반적으로 푸딩하면 떠오르는 게 바로 이것이다. 맛은 크림빵의 속과 비슷하다. 같은 형태의 커스터드라도 들어간 재료나 조리법에 따라 맛이나 질감이 달라진다. 기본적으로 우유, 설탕, 계란, 바닐라향, 생크림 등이 커스터드의 재료가 된다. 오븐이 없다면 젤라틴, 한천 등을 넣어 커스터드가 흐물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최근에는 시중에 푸딩믹스가 나와 누구나 집에서도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수플레’(Souffle)는 프랑스어로 ‘부풀어 있는’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식감이 부드러운 케이크로 생각하면 좋다. 전분을 주로 이용하는데 반죽에 향미를 주고 가열시켜 만든다. 레스토랑에서는 그릇에 담긴 채 오븐에서 막 구워진 상태로 나온다. 수플레는 따뜻한 상태에서 먹는 게 좋다.
‘슈아브’(Suave)는 소의 심장이나 콩팥 주변에 있는 지방분을 이용해 만들어 풍미가 독특하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서양에서는 크리스마스 저녁 슈아브 위에 술을 붓고 불을 붙이면서 파티를 시작한다.
‘요크셔 푸딩’(Yorkshire pudding)은 밀가루, 달걀, 우유 등을 섞은 반죽을 구워 부풀린 것으로 영국인들이 즐겨 먹는 ‘로스트 비프’(Roast beef)와 함께 먹는다. 일반 푸딩과 달리 짭조름한 맛을 느낄 수 있으며 소고기 육즙으로 만든 소스가 들어가 고소하다. 쇠고기와 함께 조리하면 굳이 육즙 소스를 부을 필요가 없다. 오늘날 요크셔 푸딩은 머핀 틀처럼 둥근 홈이 여럿 있는 틀에 넣어 굽지만 전통적인 요크셔 푸딩은 쟁반처럼 넓적하고 큰 틀을 사용했다. 오븐에서 나온 큼지막한 푸딩은 사각형 모양으로 나눠 먹었다.
터키에서도 푸딩과 유사한 음식을 즐긴다. 쌀, 설탕, 우유 등을 낮은 불에서 끓여 만드는 ‘수틀라치’(sutlac)는 대표적인 터키 디저트다. 헤즐넛이나 파스타치오를 푸딩 위에 얹는데 일반 푸딩과 달리 쌀알이 씹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쌀 대신 쌀가루를 넣는 ‘무할레비’(Muhallebi)도 터키인이 좋아하는 후식 중 하나다.
푸딩은 젤리나 요구르트와 혼동하기 쉽다. 탱글탱글한 식감의 젤리보다 부드러우며 발효취나 신맛을 가진 요구르트와 달리 달콤하다. 젤리는 설탕물이나 과즙을 주로 섞으며 요구르트는 우유, 염소젖 등이 유산균에 의해 발효 응고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