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뒤면 1년 중 가장 큰 보름달이 뜬다는 정월 대보름이다. 설날이 가족 간의 명절이었다면 정월 대보름은 마을의 축제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오곡밥과 나물을 나눠 먹고 새벽에는 단단한 껍질을 가진 호두, 땅콩, 잣 등 부럼을 함께 까먹었다. 아침에는 귀밝이술을 마셨다. 최근에는 과거만큼 정월 대보름에 의미를 두지 않지만 여전히 전통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는 1년 동안 건강하고 만사가 뜻대로 되며 부스럼이 나지 않길 기원하며 부럼을 먹는다. 껍질이 단단한 견과류 등을 부럼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정월 대보름 전날 미리 부럼을 준비한다. 대개 자기 나이 수대로 깨물며 한 번에 깨서 먹어야 좋다고 여긴다. 일부 지역에서는 부럼을 먹지 않고 마당에다 뿌리기도 한다. 부럼 깨기에 이용되는 견과류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 무기질 등 각종 영양소가 듬뿍 들어 있으며 특히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
귀밝이술은 ‘이 술을 마심으로써 귀가 밝아진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특별히 술을 제조하는 게 아니라 소주나 청주를 차게 해서 마신다. 지역에 따라 이명주(耳明酒), 명이주(明耳酒), 치롱주(癡聾酒), 총이주(聰耳酒) 등으로 불린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정월 대보름날이면 가정, 부락, 면, 읍 단위로 행사가 많았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귀가 밝아야 농사에 유익한 각종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또한 인간관계를 잘 맺어 둬야 농번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어 귀밝이술은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대보름날 저녁에는 약식을 먹었다. 하지만 서민들은 재료값이 비싼 약식 대신 잡곡을 섞은 오곡밥을 즐겼다. 한해 풍요로운 수확을 염원하고 액운을 쫓으며 행복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일반적으로 찹쌀, 차조, 붉은팥, 찰수수, 검은콩 등 다섯 가지 곡식으로 짓는다. 한의학에서는 오행에 각 장부를 배속하고 색, 맛, 기운 등을 연결해 풀이하는 ‘오행학설’을 제시한다. 이에 따르면 오곡밥에 들어가는 곡식은 오색을 모두 갖춘 데다 각 체질에 맞는 음식이라 오곡밥은 조화로운 음식으로 평가받는다.
찹쌀은 흰색과 서늘한 성질로 인해 금(金)을 상징한다. 식이섬유를 다량 함유하고 있어 장기능을 활성화시키고 변비를 막아준다. 뼈를 단단하게 하는 작용을 가진 비타민D 등도 풍부하다.
차조는 성질이 약한 차고 맛이 달아 토(土)를 의미한다. 독이 없고 소화흡수가 잘 돼 위와 비장 기능 강화에 좋다. 식욕부진을 줄이고 내장을 고르게 해 신물, 구역질, 설사 등 속병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
붉은팥은 전통적으로 목(木)에 해당한다. 맛이 달고 신 특징이 있어 간(肝) 기능과 연관 짓는다. 비타민B₁이 풍부해 피로회복에 효과적이다. 사포닌을 함유해 간을 해독하는 효능도 갖고 있다.
찰수수는 따뜻한 성질로 화(火)를 대표한다. 심장 및 순환기 혈행을 개선시킨다. 수수에 들어 있는 타닌과 페놀은 항산화 및 항암 작용을 한다. 무기질은 피부를 부드럽고 매끈하게 만들어 준다.
검은콩은 수(水)를 상징한다. 단백질 속 아르기닌과 페닐알라닌은 남자의 정자 생성에 도움이 된다. 비타민E는 혈액순환을 돕고 항산화작용으로 노화방지에 도움이 된다.
오곡밥을 배추잎, 김, 취나물 이파리, 곰취 등에 쌈을 사서 먹는 ‘복쌈’도 정월 대보름 풍습 중 하나다. 한 입 가득 복쌈을 먹으며 풍년이 들고 복이 굴러들어 오길 기원하는 마음이 담겼다.
정월 대보름에는 오곡밥과 함께 ‘진채식’으로 부르는 아홉 가지 묵은 나물을 기름에 볶아 먹었다. 아침 일찍 친구에게 ‘내 더위 사 가라’며 더위팔기를 하는데 묵은 나물을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여겼다. 진채식은 시래기, 호박고지, 콩나물, 도라지, 취나물, 고사리, 토란대, 고구마줄기, 무나물 등으로 구성돼 있다. 봄철에 미리 산나물을 뜯어다 말려 갈무리를 해뒀다가 썼다. 묵은 나물은 식이섬유와 철분, 비타민 등을 다량 섭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건강식이다. 묵은 나물에 풍부한 비타민A는 지용성 비타민이라 기름에 볶아야 제 맛과 향을 내고 영양소도 잘 흡수된다. 특히 들기름에 볶아 들깨에 버무리면 구수한 맛을 더 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