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각 나라마다 새해를 맞는 풍경은 약간씩 다르지만 한 해 행운을 기원하면서 가족들과 음식을 나눠 먹는 풍경은 비슷하다. 한국에서는 새해 아침에 가족들이 모여 떡국을 먹는다. 소고기 양지로 낸 국물에 하얀 가래떡을 얇게 썰어 넣고 그 위에 달걀 지단과 김 가루를 올려 먹는다. 가족끼리 새해 계획을 얘기하며 담소를 나눈다. 문헌에 따로 기록된 것은 없지만 설날 아침에 떡국을 먹는 것은 희고 긴 떡가래처럼 한해 건강하고 장수하라는 의미를 안고 있다. 가래떡은 동전과 비슷해 1년 간 재화가 풍성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겨져 있다.
일본은 음력설이 아닌 양력설을 쇤다. 일본인들은 양력 1월 1일부터 3일간 성대하게 신년을 축하하며 기념한다. 섣달 그믐에는 ‘오오소오지’(大掃除)라고 부르는 대청소를 통해 집안을 말끔히 정리한다. 설날 연휴에는 특별한 요리를 하지 않는다. 신이 내방하는 기간에는 소음이나 냄새를 풍기지 않고 경건하게 보내는 풍습 때문이다. 대신 미리 만들어 놓은 ‘오세치’(お節)를 먹는다. 이 음식은 ‘오세치쿠’(御節供)에서 변화한 단어로 신에게 공양하던 음식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3~5단 찬합에 검은콩조림, 멸치조림, 찐새우, 연근조림, 밤조림, 다시마, 청어알조림 등을 담는다. 새우는 장수, 연근은 지혜, 밤은 재운, 청어알은 자손의 번성, 다시마는 행운 등을 의미한다. 국물이 없으며 쉽게 상하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에 3일 내내 먹을 수 있다. 최근에는 건강을 생각해 채소류를 늘리는 등 갖가지 개성을 살린 오세치가 가정마다 진화하고 있다.
중국에서 설날(춘제, 春節)은 1년 중 가장 큰 명절이다. 중국인들은 새해가 되면 물만두인 ‘쟈오쯔’(餃子, Jiaozi, 교자)를 먹는다. 얇게 민 밀가루에 대추, 배추, 땅콩, 고기, 채소 등을 넣고 반달 모양으로 빚는다. 오래 살라는 의미로 국수면이나 승진운을 기원하는 찹쌀떡을 첨가하기도 한다. 끓는 물에 만두를 넣고 찬물을 세 번 정도 넣어가며 삶고 간장소스를 곁들여 먹으면 된다. 중국 동한 말기(220년 경) 의사였던 장중경이 사람들의 귀에 걸린 동상을 치료하기 위해 만든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치료 목적이 아닌 ‘송구영신’(送舊迎新,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의 의미로 섣달 그믐(음력 12월 31일)에 쟈오쯔를 빚어 새해가 되면 먹는다.
‘니엔가오(年餠 Nian Gao)’도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 새해 음식이다. 네모난 모양의 떡으로 황색과 흰색으로 구성된다. 각각 황금과 백은을 상징한다. 새해 부자가 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큰 원통 모양의 니엔가오를 찜기에 쪄낸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얇게 잘라 달걀을 입히거나 그대로 프라이팬에 굽는다. 새해에 좋은 일이 일어라는 뜻의 ‘니엔가오’(年高)와 발음이 같다. 북부 지역에서는 단맛이 강하며, 남부 지역에서는 담백한 맛이 강조된다. 니엔가오를 찔 때 소란을 피우거나 불길한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금기도 내려져 온다.
미국에서 대표적인 새해 음식으로는 ‘호핑 존’(hopping john)이 있다. 과거 남부 지방의 가난한 노예들이 먹던 음식에서 유래됐다. 남북전쟁을 계기로 미국 전역에서 먹게 됐다. 검은콩, 쌀, 돼지고기 등에 남는 야채를 몽땅 넣어 끓인다. 호핑 존에 들어 가는 음식은 모두 부를 상징한다. 콩은 동전을 의미하며 각종 채소는 지폐로 여긴다. 지역에 따라 진짜 동전을 넣는데, 호핑 존을 먹다 동전을 발견하면 1년 내내 행운이 따른다고 믿는다.
불가리아에서는 새해에 가족들이 모여 ‘포카치아’(Focaccia)를 먹는다. 넓적하고 둥근 반죽에 올리브오일, 소금 등을 뿌리고 로즈메리와 같은 허브를 함께 넣어 굽는다. 포카치아란 이름은 따뜻한 난로나 화로를 뜻하는 ‘포쿠스’(focus)에서 유래됐다. 과거에 난로나 화로는 거실 중앙에 놓여졌는데 포쿠스는 ‘중심, 가운데’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평소 스낵으로 먹기도 하고 수프나 샐러드에 곁들이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대표적 ‘플랫 브레드’(flat bread, 납작한 빵) 중 하나였지만 불가리아로 넘어가 전통음식으로 탈바꿈했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먹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카치아의 맛은 토핑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같은 이유로 일부에서는 피자의 전신으로 보기도 한다.
영국인들은 크리스마스부터 새해까지 ‘민스파이’(Mince pie)를 디저트로 먹는다. 크리스마스부터 12일간 매일 민스파이를 한 개씩 먹으면 새해에 행운이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민스파이는 ‘치웨트’(chewette)라는 파이의 일종이다. 13세기 영국 십자군이 중동에서 돌아올 때 갖고 온 음식에서 유래됐다. 민스파이의 민스(mince)는 파이의 속재료인 ‘민스미트’(mincemeat, 다진 고기)를 뜻한다. 과거에는 고기를 넣어 짭조름하면서도 달콤한 맛을 냈지만 지금은 고기가 들어가지 않고 말린 과일, 시트러스, 견과류 등을 넣어 만든다.
독일에서는 새해가 되면 행운을 상징하는 물건을 주변 사람들과 주고 받는다. 이때 교환하는 물건 중 하나가 귀여운 돼지 모양의 과자인 ‘마지팬 피그’(Marzipan pig)다. 마지팬은 아몬드와 설탕을 섞어 만든다. 독일인들은 잼이나 액체 형태로 속이 채워진 도너츠도 먹는다. 베를린에서는 ‘판쿠헨’(Pfannkuchen)이라 부르고 다른 지역에서는 ‘베를리너’(Berliner)라고 칭하기도 한다. 도너츠 안에 가끔 겨자소스를 넣는데, 이를 먹는 사람은 한해 불운하니 조심히 지내야 된다고 믿는다.
프랑스에서는 거위, 칠면조, 푸아그라 등을 먹고 샴페인을 마시며 새해를 축하한다. 프랑스인들은 ‘왕의 파이’로 불리는 ‘갈레트’(Galette)를 새해 첫 일요일에 먹는데 이는 예수의 탄생과 새해 시작을 축하하는 뜻을 담고 있다. 갈레트를 구울 때 반죽 안에 ‘페브’(feve)라는 작은 도자기 인형을 넣는다. 그 인형이 든 빵조각을 먹는 사람은 하루 동안 왕이 돼 특별한 대접을 받고 1년 내내 행운이 깃든다고 여긴다.
네덜란드에서는 과일을 넣은 반죽을 기름에 튀긴 도너츠의 일종인 ‘올리볼렌’(oli bollen)을 먹는다. 연말이 되면 네덜란드 길거리 곳곳에서 올리볼렌 튀기는 냄새가 진동할 정도다. 맛있다고 소문난 가게에서는 1~2시간씩 기다려야 올리볼렌을 살 수 있다. 온 가족이 갓 튀긴 올리볼렌을 나눠 먹으며 한 해 평안과 행운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