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 중 하나로 잔치상이나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오른다. 전세계적으로 약 162종이 있으며, 한반도 연해에서는 11종이 분포한다. 대표적으로 보구치, 부세, 흑구어, 물강다리, 강다리, 세레니, 참조기 등이 있다.
전남 영광 법성포 칠산 앞바다는 예부터 참조기 어장으로 유명했다. 조선시대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석수어가 영광군 서쪽의 파시평(波市坪, 지금의 법성포 일대)에서 많이 난다’고 기록돼 있다. 법성포 사람들은 넘쳐나는 참조기를 오래 두고 먹기 위해 굴비로 만들었다. 영광 법성포가 굴비의 본고장이 된 이유다. 비슷한 사례로 포항의 과메기, 안동의 간고등어 등이 있다.
법성포는 굴비를 만들기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좁은 만구(灣口)에 뻗은 작은 반도의 남안에 자리잡아 겨울철 북서계절풍을 막을 수 있는 천연의 항구다. 고려시대 성종 때 조창(漕倉)이 설치돼 주변 12개 군의 세곡을 받아 저장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들어 조창이 없어지고 지금은 영광 굴비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굴비란 이름은 고려 17대 인종 시절 난을 일으킨 이자겸이 정주(지금의 전남 영광 법성포 인근)로 귀양왔다가 해풍에 말린 조기를 맛보고 임금에게 진상한 것에서 유래됐다. 이자겸은 말린 조기를 보내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屈) 않겠다(非)’는 의미로 이같은 이름을 붙였다.
굴비를 만들려면 먼저 알이 꽉 차고 기름진 조기를 꿰어 그 위에 소금을 뿌리고 구부러지 않게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 다른 지역 굴비는 한 줄에 스무 마리 가량인 것에 비해 법성포 굴비는 몸집이 커 열 마리가 올려진다. 법성포에서는 다른 지역과 달리 섶간(1년 넘게 보관해 간수가 완전히 빠진 천일염)을 뿌린다. 이후 무거운 돌로 조기를 누른 뒤 소나무 장대 수십개로 밑이 넓고 위가 좁은 원형 건조장을 만들어 건조시키게 된다. 법성포에서는 3~6개월 가량 숙성시킨다.
법성포 굴비의 재료가 되는 참조기는 3월 중순을 전후로 알을 낳기 위해 서해안으로 회유한다. 동중국해(동지나해)에서 주로 생활하다가 추자도, 흑산도 등을 거쳐 올라온다. 이 시기에 잡히는 참조기는 알이 가득차고 황금빛 윤기를 지녀 최상품으로 대접받는다. 일반적으로 추자도 어장에서는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조기가 잡힌다. 칠산 어장은 3~4월, 죽동 어장은 4~5월, 연평 어장은 5~6월에 찾아볼 수 있다. 날이 따뜻해질수록 북상한다.
과거 참조기가 가득했던 법성포 앞바다에서는 최근 참조기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일부에서는 원양어선이 늘어나면서 참조기가 법성포까지 오기 전에 그물로 걷어 올리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쪽에서는 중국배들이 참조기를 싹쓸어가면서 서해안까지 참조기가 올라오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같은 이유로 국내 대부분 참조기 어선들은 동중국해까지 나가 참조기를 잡는다.
정성인 전남 영광 월량유통 대표는 “가을에 잡히는 조기는 알이 부족하고 몸집이 작지만 살이 연해 맛이 부드러운 게 장점”이라며 “영광굴비는 씨알이 굵은 봄철에 잡힌 참조기를 이용해 만든다”고 밝혔다. 이어 “같은 바다에서 잡는 고기도 한국배가 잡으면 국산, 중국이 걷어 올리면 중국산”이라며 “영광 법성포에서는 다른 지역과 달리 해풍 속에서 염을 잘 해 만들어 맛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보리굴비는 굴비를 통보리 뒤주 속에 보관한 것으로 좀더 오래 보관하기 위해 고안됐다. 보리의 겨가 굴비의 숙성을 이끌어내면서 맛이 좋아지고 굴비 속 기름이 거죽으로 배어 나온다. 이렇게 만든 보리굴비는 누런색을 띠면서 장기간 두어도 쉽게 상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보리굴비용 조기로 참조기를 사용했다. 하지만 최근 참조기가 귀해져 대부분 조기의 일종인 부세를 이용해 만든다. 바짝 마른 보리굴비는 북어처럼 두들겨 포로 먹거나 고추장양념을 발라 무침으로 섭취하면 된다. 쌀뜨물에 한 시간 가량 담가놔 수분기를 주고 찜통에 찌거나 구워 먹어도 좋다.
좋은 굴비는 머리가 둥글고 두툼하며 몸통에 상처가 없이 비늘이 온전한 것이다. 특유의 윤기 있는 노란빛을 띠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