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많은 신체변화가 있을 것으로 각오했지만 ‘치아’까지 상할 것으론 생각지도 못한 산모가 적잖다. 회사원 주모 씨(32·여)는 출산한 지 1년이 지난 현재 무심코 거울을 들여다보다 자신의 틀어진 치열에 깜짝 놀랐다. 15년 전 치아교정을 받아 고른 치열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출산 후 치아가 삐뚤빼뚤해진 것이다.
이같은 경험을 겪은 산모는 생각보다 많다. 최근 젊은 산모 중에는 학창시절 치아교정을 받은 경우가 상당수다. 고통스러운 2~3년의 교정 기간을 거치며 영원할 줄 알았던 고른 치아는 출산 후 유난히 더 심하게 틀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임산부 커뮤니티에서 ‘신랑도 비슷한 시기에 교정치료를 받았는데 출산 후 나만 치열만 틀어졌다’는 사례나 ‘출산 시 교정된 치아가 흐뜨러지지 않으려면 입을 벌리고 힘을 주라’는 당황스러운 팁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산모들은 대부분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여기며 그대로 생활하거나 재교정에 나서는 정도다. 이에 주모 씨는 다시 힘든 교정치료를 받아야 할지, 아니면 과거 교정한대로 치열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아리송하다.
신수빈 아이디병원 치과 교정과 원장은 “여성은 임신 후 교정치료 여부에 상관없이 잇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치아이동이 발생할 수 있다”며 “교정받았던 치열이 비뚤어지는 경우가 적잖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부 산모는 이같은 현상을 놓고 ‘임신하면 태아에게 칼슘을 나눠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엄마의 치아가 상할 수밖에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태아에게 필요한 칼슘을 나눠주기 위해 엄마의 치아와 뼈에서 칼슘이 빠져나간다고 여기는 게 일상적이다.
하지만 치아를 형성하는 칼슘은 절대 빠져나가지 않는다. 신 원장은 “치아를 구성하고 있는 법랑질과 상아질에 함유된 성분은 대부분 칼슘으로 이뤄져 있지만 치아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다”며 “뼈 속 칼슘이 호르몬 대사에 의해 영향받는 것과 달리 치아의 칼슘은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임신 중에 치아가 나빠지는 것은 호르몬 변화로 인해 입 속 세균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초체온이 상승해 입안 세균은 더욱 활발히 활동하며 충치나 임신성 치은염 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결국 출산 후 치아와 잇몸이 약해지기 쉽다. 임신 중 면역력이 떨어지고, 프로게스테론과 에스트로겐 등 여성호르몬이 증가하면서 잇몸 염증이 유발되기 쉽고 결국 잇몸건강이 취약해진다. 임신하면서 변화된 호르몬은 치아를 잡아주는 인대를 느슨하게 만들어 치아 흔들림 야기하기도 한다.
신수빈 원장은 “결국 이미 교정된 치아라도 구강환경이 변화하면서 다시 틀어질 우려가 높다”며 “과거 교정치료 후 가지런한 치열이 틀어진 경우 출산 후 건강이 회복되더라도 원래 배열로 돌아오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출산 후에는 구강상태가 임신 전 상태로 돌아간다. 하지만 한번 생기 충치나 틀어지거나 흔들리는 치아, 치아 사이의 치석 등은 원상복구되지 않는다. 따라서 출산 후 교정한 치아가 많이 틀어졌다고 느낀다면 치과를 교정해 자신의 상황에 맞는 교정치료를 받는 게 도움이 된다.
만약 교정치료가 끝난 지 얼마되지 않았거나, 재교정이 번거롭다고 여겨지는 산모라면 평소 교정후 유지장치를 잘 착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유지장치는 크게 2가지로 치아 안쪽으로 부착하는 부착형과 탈착할 수 있는 가철식 등으로 나뉜다. 부착형 유지장치는 얇은 철사로 이뤄져 있고 가급적 장기간 활용하는 게 좋다. 안쪽 장치가 떨어지거나 끊어지지 않았다면 임신 및 출산 과정에서 앞니가 틀어지지 않는다. 가철식 유지장치는 처음 장치 제거 후 1년 동안 24시간 끼고 지내다가 점차 줄이게 된다.
서울 강남구의 한 치위생사는 교정이 끝난 지 오래 된 사람도 무조건 유지장치를 착용하라고 조언한다. 매일 끼지 않더라도 이틀에 한번은 신경쓰는 게 치열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유지장치는 평생 낀다고 생각하고 점차 시간을 줄여나가는 방식이 좋다”며 “나 역시 10년 전에 교정치료를 마치고 출산한 지 2개월이 넘어가는 지금도 착용하고 있어 치열이 크게 틀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수빈 원장은 “만약 출산 후 교정치료를 결심했다면 출산 3주 이후 가능하고 발치나 치아교정, 외과적 시술은 출산 6개월 이후에 받는 게 좋다”며 “산욕기인 출산 6~8주 이후에 치과를 찾아 검진받고 치석 제거를 비롯한 비교적 쉬운 치아 및 잇몸관리를 시작하는 게 무난하다”고 조언했다.
만약 모유수유 중이라면 치료 전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 교정치료는 시작하기 전 발치해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 진통제와 소염제, 항생제 등을 먹어야 하고 모유수유로 인해 마취도 자유롭지 못하다. 웬만해서는 모유수유가 끝난 뒤 교정치료에 나서는 게 좋다.
재교정을 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보다 틀어진 부분만 교정하는 방식을 활용하기도 하므로 크게 겁먹지 않아도 된다. 가령 어금니의 교합이 양호하고 치아의 틀어짐이 위아래 앞니 부위에만 국한된 경우 앞쪽의 6~8개 치아에만 장치를 부착하는 부분교정치료만으로 충분한 경우가 많다. 이때 어금니의 현재 교합은 그대로 유지하므로 치료기간이 짧고 이물감이 적어 기존 치료보다 수월하게 받을 수 있다.